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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탄생 IPTV `미디어 새 시대` 신호탄
방송-통신 진영 2년여간 논쟁 거쳐 IPTV법 통과
2008년 KT 상용서비스 시작으로 '방통융합' 활짝

강희종 기자 mindle@dt.co.kr | 입력: 2010-08-25 22:04 | 수정: 2010-08-26 08:53



■ 또 다른 신화가 시작된다 2020 IT코리아
Ⅰ. 통신서비스 부문
1부-TDX에서 유무선통합까지
(5) IPTV, 방통융합 시대 열다

1986년 국산 TDX(전전자교환기) 상용화는 우리나라의 통신역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 일대 사건이었다. TDX 상용화에 따라 비로소 한 가구에 한 대의 전화기를 놓을 수 있었으며, `통신문화'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통신선진국으로 한발씩 걸음을 옮겼다. 이어 1999년 4월 ADSL(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 상용화를 통해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순식간에 10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며,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브로드강국으로 부상했다. 통신 선진국을 곁눈질하며 앞선 기술을 배워야 했던 우리나라는 IT강국으로 도약하면서 오히려 다른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집전화을 보편화, 초고속인터넷의 대중화는 결국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를 열었다. IPTV상용화를 통해 시작된 방통융합서비스는 광대역통합망(BCN)을 타고 또다른 미래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2006년 8월 3일 방송위원회는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이 추진하는 TV포털 서비스는 방송법에 정의하고 있는 방송 유형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보냈다. 얼마 전 케이블TV협회가 방송위에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가 방송인지 아닌지를 가려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회신이었다. 이 한 장의 공문은 이후 몇 달간 주문형비디오(VOD)가 방송인지 아닌지를 놓고 통신과 방송진영이 법정 소송을 불사하며 싸우는 발단이 됐다. 이 공문을 근거로 케이블TV 사업자들은 하나로텔레콤의 TV포털인 `하나TV'에 대한 차단에 들어갔고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다. 통신사업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또, 정보통신부가 방송위원회와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양 기관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공교롭게 방송위가 이 공문을 발송하기 며칠전인 2006년 7월 28일은 국무조정실 산하에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가 출범한 날이었다. 그리고 융추위는 2006년 8월 18일 첫 회의를 가졌다. 융추위는 방송통신 융합 추세에 따른 기구 개편과 대표적인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인 IPTV의 도입을 논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처럼 민감한 때에 방송위가 `VOD는 방송'이라는 유권 해석을 내린 것은 막 시작한 IPTV 도입 논의에서 방송 진영이 기선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됐다.

◇융추위 활동과 통신방송 진영 갈등=2006년 7월 24일 하나로텔레콤이 프리(Pre) IPTV 서비스인 `하나TV'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나TV는 VOD 중심의 TV포털 서비스로 IPTV의 전 단계라는 의미에서 `프리IPTV'로 분류됐다. 하나로텔레콤이 바로 IPTV를 도입하지 않고 굳이 TV포털을 먼저 시작한 것은 IPTV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하나로텔레콤보다 먼저 KT도 2004년 6월 11일부터 초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한 VOD 서비스인 `홈엔(HomeN)'을 출시했다. 그러나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정작 실시간 방송을 포함한 IPTV는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망을 두고도 첨단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는 법에 발목이 잡혀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드세게 일었다. 특히, 2005년말 이미 IPTV 시연에 성공한 KT는 "기술은 다 준비돼 있는데 제도가 없어 국민들이 IPTV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IPTV 도입이 속속 이루어졌다. IPTV는 2002년 유럽에서 먼저 선을 보인 뒤 2003년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미 2004년말 기준 홍콩의 PCCW와 프랑스텔레콤이 각각 42만명, 45만명의 IPTV 가입자를 확보하는 등 IPTV 시장이 급성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몇 년이 지나도록 IPTV 서비스를 꿈도 꾸지 못했다. 세계는 방송통신 융합 시대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인프라와 기술을 갖고도 법에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러다 어렵게 쌓은 `IT강국'의 이미지가 곧바로 퇴색될 것이란 우려와 지적이 잇따랐다. 가장 IPTV와 관련한 특허가 줄줄이 외국에 빼앗기는 형국이 연출됐음은 물론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와 국무총리가 나서야 했다.

우리나라가 IPTV를 도입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IPTV가 `방송'이냐 `통신'이냐를 놓고 방송계와 통신계가 몇 년간 해답 없는 논쟁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송 진영과 통신 진영의 갈등을 해소할 규제기관조차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로 나뉘어 싸우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IPTV 도입 논의는 평행선을 걸을 것이 뻔했다. 결국 IPTV 도입을 위해서는 기구를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에 따라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는 2006년 2월 `방송통신구조개편추진위위원회' 설립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6년 7월 28일 국무총리 산하 자문기구인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장에는 당시 고려대학교 안문석 부총장이 임명됐으며 정부와 민간 전문가 등 총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당시 산자부 장관, 정통부 장관, 방송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국무조정실장이 당연직 위원에 포함됐을 정도로 정부가 융추위 활동에 거는 기대도 컸다. 방송통신융합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IPTV였기 때문에 융추위는 당연히 IPTV 서비스 도입을 위한 법제화도 논의했다. 하지만 융추위의 출범은 기나긴 논쟁과 갈등의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이 갈등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 정부조직개편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탄생하기까지 2년여간 계속됐다. 정통부와 방송위의 싸움은 흡사 통신 진영과 방송진영의 대리전을 방불케 했다. 통신사업자와 정통부, 방송사업자와 방송위는 서로 편을 갈라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우선, 융추위는 2006년 10월 27일 방송통신 기구개편안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하는 성과를 냈다. 통합기구는 대통령 소속의 합의제 행정기구인 위원회 조직이 적절하며 독임제적 요소를 가미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2007년 1월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이 법안을 심사하기 위해 국회는 2007년 3월 방송통신특별위원회(방송통신특위)를 구성했다. 이에 따라 기구개편과 IPTV 도입 논의는 자연스럽게 융추위에서 국회 방송통신특위로 넘어가게 됐다. 이에 앞서 융추위는 2007년 4월 5일 "IPTV는 방송이 주된 서비스이기 때문에 방송사업자로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IPTV법 국회 통과와 가입자 200만 돌파=기구개편과 IPTV 도입 논의가 국회 방송통신특위로 넘어왔으나 논란은 여전했다. 오히려 논의가 `처음부터 다시'시작되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기구개편 논의는 뒤로 밀리고 급한 IPTV법부터 우선 논의하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그러자 IPTV 도입을 위한 법안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모두가 통신, 케이블TV, 지상파방송, 정통부, 방송위 등 각계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법안들이었다. 2007년 6~7월 사이에 홍창선, 서상기, 손봉숙, 이광철, 지병문 등 5명의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이보다 먼저 2005년에 제출된 유승희, 김재홍 의원 법안까지 포함하면 모두 7개의 IPTV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이 7개의 법안은 2007년 10월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됐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IPTV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더니 2007년 11월 20일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이 국회 방통특위를 통과했다. 논란이 됐던 대기업의 IPTV 진출과 IPTV의 전국면허 부여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이 법은 2007년 12월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기구개편 논의도 2008년 이명박 정부들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일단락됐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IPTV는 사업자 2008년 사업자 선정을 거쳐 2008년 11월 17일 KT를 시작으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9년 1월에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도 IPTV 상용 서비스를 시작, 본격적인 IPTV 시대를 열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출범과 동시에 IPTV 활성화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IPTV 가입자는 상용 서비스가 시작된 지 9개월여만인 2009년 10월 9일 100만을 돌파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케이블TV가 100만 돌파에 4년5개월이 걸렸고 위성방송이 1년9개월, 위성DMB가 1년 8개월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가장 빨리 100만에 도달한 것이다. 그 후에도 IPTV 가입자는 지속적으로 증가 상용 서비스 1년 4개월만인 2010년 4월24일 200만 가입자가 탄생했다.

수년간 수많은 논란과 논쟁을 거쳐 탄생한 IPTV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기술의 발전을 인위적으로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IPTV가 통신이냐 방송이냐는 논란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의 논쟁은 업계의 이해 관계의 충돌일뿐 국민편익과 국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반대편에서 우려하던 일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허송세월만 안했어도 IPTV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소유한 나라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안따까운 일이다.

IPTV를 시작으로 방송통신융합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지금은 IPTV를 넘어 스마트TV라는 새로운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더 이상 제도와 법이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기획취재팀
팀장=임윤규 정보미디어부장 yk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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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