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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애플 vs `추월자` 삼성…최후의 승자는?
기사입력 2011.02.27 13:58:49 | 최종수정 2011.02.27 15:41:42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지난해 <포춘(Fortune)>에 이어 월스트리트 계열 주간지 <배론즈(Barron’s)>도 최신호에서 애플(Apple)을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았다. 왜 세상은 애플에 열광하는 걸까. 우리 모두가 잘 아는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애플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든 기업인가? 아니다. 최초의 MP3 플레이어를 제조한 회사인가? 아니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처음 내놓은 회사인가?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매킨토시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애플제품에 혁신이라는 찬사를 붙이는 이유는 뭔가. 애플이 위대한 기업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종전의 PC와 MP3 재생기기, 휴대폰의 활용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린 데 있다. 그리고 애플이 열어놓은 새로운 차원에서 소비자들은 종전의 PC나 휴대폰으로는 꿈꾸지 못했던 만족을 경험했다.

PC에서 애플은 제록스(Xerox)사가 개발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최초로 적용시킨 매킨토시로 혁명을 일으켰다. 명령어를 일일이 치지 않아도 마우스만 클릭하면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GUI는 컴퓨터를 대중의 도구로 만들었다.

MP3플레이어는 아이리버(iriver) 브랜드를 단 한국 기업 레인콤이 먼저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정작 MP3 플레이어의 존재 이유이자 진정한 수익원인 MP3 음원은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MP3 플레이어 제조에 뛰어들기 전 음원 불법유통을 차단할 수 있는 아이튠즈(iTUNES) 소프트웨어와 아이튠즈뮤직스토어(iTMS)를 만들었다. 소니, 워너뮤직, BMG, EMI, 그라모폰 등 5대 음반 메이저들은 음반시장을 붕괴시키던 불법 MP3 음원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콧대가 세기로 이름난 그들은 잡스의 혁신적인 조치에 환호하면서 애플과 제휴해 iTMS에 음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광대한 합법적 음원시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뒤에 나온 아이팟은 애플이 개척한 무궁무진한 음원의 바다를 대중과 이어주는 무지개 다리였다. 하드웨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꿰뚫어 본 통찰력의 개가였다.

종전의 휴대폰은 통화 기능이 전부였다. 스마트폰으로의 진화를 모색한 림(RIM)의 블랙베리도 일부 비즈니스맨의 이메일 송수신 기능에 그쳤다. 애플은 휴대폰에 모바일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접목시켜 소셜 네트워킹과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스티브 잡스가 2007년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이야기한 대로 이는 ‘휴대폰의 재창조’였다.

삼성 역시 애플처럼 발명가나 창조자는 아니다.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와 LCD TV,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은 변방의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마치 몽골의 기마군단이 유라시아 대륙을 점령하듯 깜짝 놀랄만한 속도로 달려 나가 세계시장을 휩쓸었다. 애플처럼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지는 못했지만 선발주자를 뛰어 넘는데는 어느 기업도 따라가지 못할 천부적 능력을 과시했다.

애플을 ‘초월자’로, 삼성을 ‘추월자’로 정의한다면 두 기업의 대결에서 궁극의 승자는 누구일까.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앞뒤가 충돌하는 순환논쟁일 수도 있다. 애플은 계속해서 기존의 시장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겠지만 결국 삼성은 애플을 추월해 낼것이라는 형식논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광은 어디까지나 초월자의 몫이다. 지금 세계는 애플을 주목하고 있다. 아이폰이 깃발을 꽂은 스마트폰 시장과 아이패드가 열어놓은 태블릿PC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의 대결은 한국인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세계 IT 시장의 대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다. 특히 수익성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애플은 지난해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를 점유했지만 수익은 42%를 달했다. 노키아와 삼성, 모토롤라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세계인들이 아이폰에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해준 덕분이다. 갤럭시S와 갤럭시탭이 한국을 비롯한 일부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해도 대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기업 활동과 시장의 움직임에는 헤아릴 수 없는 변수들이 있다. 당장 스티브 잡스의 병가로 인해 세계는 애플의 미래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5년 뒤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두 기업의 생성 토양, 두 기업을 이끌어가는 CEO들의 리더십과 통찰력, 조직적 특성이 형성하고 있는 두 기업의 DNA를 분석해 본다면 다가올 미래를 한 발짝 가까운 곳에서 전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태생 : 3불(不)의 황무지 vs IT산업의 성지(聖地)

#1 천막

미국 뉴저지주 리치필드의 삼성전자 미국법인.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위해 9층짜리 사옥을 현지 부동산 업자에 판 뒤 아직도 빌려쓰고 있다. 3년 연속 미국 TVv시장 석권, 2010년 북미 휴대폰시장 1위에 오른 삼성의 화려한 질주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작은 임대 사무실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물산, 제일기획 등에서 나온 1000여 명의 주재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일한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에서라고 한다. 중원을 향해 질주하던 몽골 기마군단의 야전 막사를 연상케 한다.

#2 신전

뉴욕 맨해튼 중심인 5번가 767번지.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1주일 내내 24시간 문을 여는 건물이 있다. ‘글래스 애플 템플(Glass Apple Temple)’로 불리는 애플의 뉴욕 매장이다.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애플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심리를 컬트(cult)라는 종교적 열정에 비교한다. 템플이란 말은 애플컬트들이 모이는 사원이란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으로 기적을 증거한 후 글래스 애플 템플은 전 세계 애플컬트들이 죽기 전에 한번은 꼭 들어야하는 순례의 성지로 통한다고 한다.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 불철주야 야전막사를 지키는 삼성전자, 가만히 있어도 신전에 경배하러 오는 신도들처럼 소비자들이 몰려드는 애플. 두 기업이 처한 현실, 두 기업의 본질이 단적으로 비교되는 장면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54조원과 영업이익 17조원을 기록해 국내 단일 기업 최초로 150조-15조 클럽에 진입했다.

미화로 환산한 삼성전자의 매출은 1370억 달러였다. 애플은 HP(1260억 달러), IBM(999억)에 이어 756억 달러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23조원으로 삼성전자보다 35% 많았다. 고생은 삼성전자가 훨씬 더 했지만 벌어들인 돈은 애플이 훨씬 더 많았던 셈이다.

기업의 장래성을 반영하는 시가총액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일본 노무라증권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주가지수(FTSE)를 기준으로 지난해 말 세계 주요 기업의 시가총액을 비교한 결과 삼성전자는 1222억 달러, 애플은 2958억 달러로 두 배가 훨씬 넘었다.

두 기업의 격차는 실속과 성장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애플은 지금 새로운 문화와 시장을 열어가는 프론티어다. ‘트렌드 세터(trend setter)’이자 ‘마켓 크리에이터(market creator)’라는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동안 세계 IT 산업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삼성은 애플의 눈부신 광휘에 가려 갑자기 초라해졌다. 왜 삼성은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을 뿐 한 차원 넘어선 새로운 경지를 열지 못했던 걸까.

삼성전자의 지난 42년은 부단한 도전과 질주의 세월이었다. 세계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질주하는 모습은 몽골의 기마군단을 연상케 한다. 삼성의 정복자 기질이 DNA에 아로새겨진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생성된 것일까.

‘3개의 별’을 뜻하는 삼성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확장을 지향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삼성의 3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며, 별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뜻한다”고 기록했다.

이름이 상징하는 숙명일까. 삼성은 크고 많고 강한 것을 지향하며 세계를 향해 한없이 뻗어나가는 숙명의 행로를 걷게 된다. 그 확장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이 태동한 곳이 3가지 지향점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불모지라는 데서 발원했다. 불모지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옥한 땅을 찾아 밖으로 진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74년 12월6일 이건희 회장은 주위의 우려에도 아버지 이병철 선대회장을 설득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렇게 시작한 반도체 사업은 한 동안 결실을 보지 못하다가 19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삼성은 그해 2월8일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 확장을 선언한다. 천문학적인 시설 투자가 필요한 모험이었다. 기로에 선 삼성에 돌아온 것은 격려와 박수가 아니라 조롱과 냉소였다. 관료와 전문가들조차 자본과 기술과 시장이 없다는 소위 ‘3불가론’을 들어 반도체 사업의 무모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삼성은 불과 6개월만에 기흥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 뒤(타설된 콘크리트가 빨리 건조되도록 선풍기와 난로를 동원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곳에서 삼성에게 없는 자본과 기술과 시장을 찾아 세계무대로의 진군을 시작한다. 삼성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정복한 스피드는 실로 놀라웠다. 1992년 세계 D램 시장 1위, 1993년 메모리 분야 세계 1위, 1995년 S램 세계 1위에 올라 명실 공히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의 자리를 차지했다.

삼성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쟁취했다. 도전해야 할 때 도전하지 못하고 투자시기를 놓친 일본, 대만 기업들을 ‘공격자 본능’에서 앞선 것이다.

‘초월자’ 애플은 탄생의 토양부터가 삼성과는 철저히 대조적이었다. 애플은 현재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밸리 일대의 비옥한 산업 토양에서 출발했다. 명실상부한 세계 IT 산업의 성지(聖地)에는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었다. 삼성에겐 하나도 없었던 기술과 자본과 시장, 세 가지가 넘쳐났다. 우선 실리콘밸리에서 자고 새면 우후죽순 솟아오르는 첨단기술이 있었다.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와 클릭 마우스, 레이저 프린터, 네트워크 표준인 이더넷 등 PC의 모든 것을 개발해낸 ‘마법의 동굴’ 제록스 팰로알토연구소(PARC)가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성공한 벤처기업들의 신화는 이들에게 투자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보려는 벤처투자가를 낳았다. 애플 초기에 34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한 인텔 직원 출신의 마이크 마쿨라(Mike Karkkula)도 그런 인물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컴퓨터라는 고가의 첨단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었다.

애플이 출발한 실리콘밸리는 창조라는 씨앗을 뿌리면 주변의 여건들이 조화를 부려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해주는 천혜의 농장이었다. 애플은 그 열매를 거둬들일 수 있도록 자신의 영토에 튼튼한 울타리를 치고 그 영토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면 됐다.

애플의 풍요로운 토양은 삼성처럼 세계시장을 향해 절박하게 내달리는 대신 세상이 애플을 향해 달려오게 만들겠다는 오만함을 키웠다. 차고에서 창업한지 5년 만에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빅뱅에 편승해 순식간에 <포춘> 500대 기업이 된 애플에겐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애플은 그런 여유와 자신감 속에서 상상력과 통찰력을 발효시키고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삼성전자를 향해 왜 애플처럼 새로운 차원을 열지 못하느냐고 탓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내달려야 했던 삼성과 천혜의 토양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힘을 비축했던 애플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 삼성전자는 견제와 질시의 대상이 되었지만 척박한 현실을 딛고 일어난 과거를 돌아본다면, 또 애플이 누렸던 축복받은 조건과 비교해 보면 안쓰러움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그들의 인사이트(insight): 선불교적 직관 vs 본질을 꿰뚫는 눈

기업의 DNA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는 CEO의 역량과 리더십이다. 애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업자이자 혁신의 주역인 스티브 잡스를 알아야 한다.

애플이라는 이름 자체가 스티브 잡스의 선불교적 정신세계를 이해하게 해주는 코드다. 그는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리드(Reed)대학을 1학기 만에 중퇴한 뒤 오레곤주의 ‘올인원팜(All in one farm)’이라는 사과농장에서 히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 기거하던 승려를 만나 선불교에 입문한다. 이때 인연을 맺은 코분치노 오토가와(弘文乙川)라는 일본인 승려는 2002년 사망하기까지 잡스가 항상 의지하던 정신적 스승이었다. 1975년 승려가 될지, 회사를 창업할지 고민하는 잡스에게 “기업활동이나 종교적 구도나 본질은 같다”고 조언해 애플 창업의 결심을 굳히게 해줬다.

그는 이듬해 4월1일 자신의 집 차고에서 고교 5년 선배인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 함께 애플을 창업한다.

잡스는 알려진 대로 중동계 이민자가 친부모였다. 그가 태어난 1955년의 시대상황이 미혼모에게는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잡스는 전형적인 미국 블루컬러 계층이던 폴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고, 그덕분에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 틈에서 성장하게 된다.

잡스가 출생의 배경을 알게 된 것은 고교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 무렵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도피처로 당시 미국 서부를 풍미하던 히피문화에 젖어 들었다. 고교시절부터 여자친구 크리스 앤(Chris Ann Brennan)과 동거하면서 LSD와 마리화나를 상습적으로 피워대던 그가 정신적 안식을 찾은 곳이 바로 불교였다. 잡스에게 제2의 인생은 바로 사과농장에서 시작된다. 애플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상 선불교 승려인 잡스는 항상 사물의본질을 직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그것이 그가 가진 영감과 창의성의 원천이 됐다.

장황한 사용설명서 없이 전원만 켜면 되는 직관적 개념의 설계, 즉 플러그앤플레이(plug & play)라는 개념이 애플의 모든 제품에 적용됐다. 당시 미츠(MITS), 코모도어(Commodore), 탠디(Tandy) 등 많은 PC업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애플이 선두주자가 된 것도 바로 사용자 중심의 직관적 인터페이스 덕분이었다. 잡스는 소음이 명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애플 컴퓨터에 냉각팬을 없앴다.

로드 홀트(Rod Holt)라는 엔지니어가 설계한 냉각팬 없는 전원 공급 장치는 애플 컴퓨터의 경쟁력이 됐다.

그는 매킨토시 개발팀에게 ‘여행은 보상이다(the journey is thereward)’, ‘박스를 넘어서(beyond the box)’와 같은 선불교적 화두를 구호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프레젠테이션 스타일도 하나의 슬라이드에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만 들어간 선불교적 단순미와 간결함이 특징이다. 아이팟터치와 아이폰의 버튼을 최소화한 직관적 인터페이스나 손가락으로 모든 조작이 가능한 터치스크린 구조도 불교의 ‘직지(直指)’라는 관념의 반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애플이 호환성을 배제한 소프트웨어 정책으로 극단적 부침을 겪은 것이나 지금도 폐쇄적 생태계 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잡스의 정신세계와 연관이 있다. 그가 불교에 입문할 무렵의 자급자족적 공동체 경험이 경영스타일에 반영됐다는 것이 애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담이지만 잡스는 결혼식도 선불교 식으로 치렀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열린 잡스의 결혼식 주례는 그의 스승 코분치노가 맡았다. 향이 타는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운 가운데 당시 서른여섯 살의 스티브 잡스가 스물일곱 살의 신부 로렌 파월과 결혼을 서약하는 순간 전통적인 웨딩 마치 대신 불교의 풍경과 목탁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잡스와 달리 재벌가의 2세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 역시 성장기가 다복하고 순탄하지 못했다. 맹희·창희 등 두 형이 그룹 계승권을 두고 벌인 혈투를 보면서 마음 졸였던 그는 감수성 풍부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일본에서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훗날 “나는 가정교육을 1%도 받지 못했다”고 술회한 데서 그가 어린 시절 감당한 고독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이건희는 일본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영화에 몰입했다.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일요일 영화관에 가서 살면서 모두 1200~1300편의 영화를 봤다고 한다. 그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기도 했는데 한번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한번은 조연의 입장에서 그리고 감독과 카메라맨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색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습관으로 굳어지면 입체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생각의 틀이 만들어 진다”고 회고했다.

그가 성장과정에서 보인 기술과 하드웨어에 대한 집착도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다. 잡스 역시 어린 시절 정비공인 양부에게서 기계의 분해조립을 익히고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였던 이웃집 아저씨들로부터 전자공학 키트를 선물 받아 전자회로를 만지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이 회장도 기계에 대해 영화 이상의 마니아적인 집착을 보였다.

1967년 이병철 선대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하면서도 전자제품이나 각종 기계를 탐구하는데 심혈을 쏟았다. 집으로 기술자들을 불러서 기계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전문가들보다도 능숙하게 기계를 분해 조립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은 물건을 구매해서 뜯어보았다. 그 속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나는 사물의 외관이 던지는 의문에 대해 겉모습 뿐 아니라 그 이면까지도 들여다보는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의 육성 술회다.

이건희의 혜안은 기계든 영화든 그 이면과 속성을 철저히 파헤치는 습관에서 비롯된 통찰력에서 나온다는 것이 삼성임원들의 분석이다. 그가 그룹 회장 취임 이후 선대회장의 가신그룹들을 정리하고 장악력을 키워나가던 1990년 초 사장단 회의에서의 일화다.

당시까지 삼성그룹에서 분리되지 않고 있던 신세계백화점 사장에게 백화점업의 특성이 뭐냐고 물었다. 당시 사장은 ‘상품유통업’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이 회장은 “백화점업은 부동산업”이라고 지적했다. 백화점이 들어서면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주변 부동산을 개발할 여력이 커지는 만큼 백화점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업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회장은 몇 년 후 당시 호텔신라 현명관 전무에게 호텔업의 특성이 뭐냐고 물었다. 현 전무는 ‘서비스업’이라는 답변을 했다가 제대로 한번 알아보라는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현 전무가 국내외의 수많은 호텔업계 사람들을 만난 후 “호텔업은 로케이션이자 장치산업”이라고 답하자 그제서야 이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호텔의 위치는 개발이익으로 연결되는 만큼 부지를 선정할 때 각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그가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는 어떤 정의를 내렸을까. 그의 정의는 ‘타이밍 산업’이었다. 조금만 투자가 늦어지면 막대한 투자 효과가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이 회장이 그동안 반도체 산업이 불황기에도 과감하게 투자를 지속한 것은 반도체업의 특성을 꿰뚫고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는 사물을 보통사람과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본질에 접근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종교적 직관력은 세속적 통념을 뛰어넘으려는 것이다. 애플의 초월적 에너지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읽을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그들의 특질 : 몽골기병 vs 컬트군단

삼성의 DNA를 구성하는 이중 나선중 하나는 ‘멈추지 않는 질주 본능’이다. 1988년 3월22일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이건희 회장은 ‘위기경영’을 강조했다. 국내 제일이라는 삼성이 위기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 의아해 보였지만 삼성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끊임없이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도전도 멈추지 않았다. “양은 0%로, 질은 100%로 해라. 이를 위해서라면 시장 점유율이 줄어도 좋고 회사가 1년 동안 문을 닫아도 좋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회장이 한 말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도 이 무렵에 나왔다.

삼성의 정복자 DNA는 변혁기에 더욱 치열하게 나타났다. 삼성은 성장사 고비마다 다른 기업들이 덤벼들지 못했던 미로에서 기회를 찾아냈다.

1990년대 초 이 회장은 “연구개발과 디자인 설계의 핵심은 사람이다. 러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라”고 주문했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러시아의 기술 인력을 흡수하라는 지시였다. 그리고 삼성은 여기서 도약의 계기를 만들었다. 1995년초 러시아를 통해 TV 색상을 디지털신호로 처리해 보다 선명하게 재현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TV에 붙어있는 DNIe(Digital Natural Image engine)이라는 기술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세계에서 일등을 하고 있는 제품의 특징은 기술 발전의 불연속성을 파고들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기에 휴대폰이 약진했고 브라운관 TV가 사라져 가는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LCD가 1위에 오른 것으로 증명된다. 원천기술을 갖지 못한 후발주자로서 언제든지 도태될 수 있는 삼성은 한 순간도 마음놓고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확장하고 뻗어나가지 않으면 고사된다는 위기의식과 강박관념은 삼성의 출발점에서부터 배태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도약 에너지는 애플도 갖지 못한 강점이다. 애플뿐 아니라 어떤 기업도 삼성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의 외길을 달려온 기업은 없다. 그러나 삼성이 도저히 애플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애플컬트로 불리는 애플의 고객집단이다.

국내에서조차 안티가 많은 삼성, 종교적인 추종에 가까운 컬트가 넘쳐나는 애플, 두 기업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와 매력적 캐릭터가 애플컬트를 형성한 중요 요인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애플컬트는 ‘에반젤리즘(evangelism)’이라고 부르는 애플 특유의 마케팅 전략의 산물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다.

에반젤리즘의 창안자는 애플의 초기 멤버이자 잡스가 애플에서 축출된 후 애플 CEO 물망에도 올랐던 일본인 가이 카와사키다. 일본계 이민 가정 출신인 가와사키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뒤 UCLA에서 MBA 코스를 공부하던 중 애플Ⅱ 컴퓨터를 사용하게 됐다. 이때부터 애플에 완전히 매료된 가와사키는 아예 애플에 입사했다. 그는 애플Ⅱ의 후속제품인 매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본순간 “구름이 걷히고 천사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술회했다. 이후 가와사키는 각종 소비자 행사와 마케팅 활동, 여러 기고문 등을 통해 얼리어답터 고객들 사이에서 애플의 절대적인 매력을 전파했다. 에반젤리즘 마케팅 전략이 애플 수뇌부에게 공식채택되면서 그는 ‘애플 에반젤리스트’로 임명된다.

이때부터 애플의 마케팅 전략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게 구원과도 같은 만족을 주는 기업이라는데 집중됐다. 이를 통해 신도를 자처하는 소비대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실제로 열성적인 신자 못지않은 행태를 보여준다. 애플컬트들은 애플 제품이 가진 절제된 아름다움, 쿨(cool)한 도회적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데서 그들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자랑하려 한다. 아직 애플이 뭔지 모르는 비교도들에게 그들은 애플의 복음을 들고 찾아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애플컬트의 충성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애플컬트들은 아이폰4의 안테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애플을 비판하는 기사마다 댓글을 달며 아이폰4와 스티브 잡스를 변호했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게 이들만큼 든든한 원군이 있었을까.

반면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와 관련해선 안티팬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객관적인 전문가의 호평을 전하는 블로그나 기사마저도 부정적 시각으로 봤다.

이 차이는 두 기업이 가진 체질과 속성을 단적으로 대비시켜 준다.

‘정복자’ 삼성에는 소비대중이 친밀감을 느끼거나 자신과 동일시할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플에는 소비대중과 공유할 스토리가 있었다. 애플컬트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그 스토리의 청취자이고 전파자였으며 애플에게 대중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암시해줬다.

이건희가 스티브 잡스 같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삼성이 애플컬트들과 같은 우호적 소비대중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안된다면 왜일까. 국내 한 언론은 2010년 3월 이 회장의 삼성전자 회장 복귀를 앞두고 ‘스티브 잡스의 귀환’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과연 그 비유는 얼마나 공감을 얻었을까. 삼성전자나 그 협력업체 직원 또는 삼성그룹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에이, 아무리 삼성이 중요한 광고주라지만 아부가 지나치네”라며 코웃음 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어느 정도 편견도 작용한다. 삼성그룹의 계승자라는 출발점은 그가 이룬 많은 것들을 평가절하시키는 요인이 됐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면 누군들 이건희만큼 못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으리라.

삼성그룹이라는 재벌은 한국사회에 빛과 그늘을 동시에 만들었다. 단순히 찬양만 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애플은 처음부터 컴퓨터 업계의 골리앗 IBM에 저항하는 다윗의 이미지로 각인됐지만 삼성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빅 브라더’의 이미지였고 이 점이 대중적 각광에 찬물을 끼얹어 왔다. 삼성이 모든 면에서 애플과 같아질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DNA를 일부러 바꾸지 못하듯이 기업의 DNA를 변화시키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만약 이건희 회장도 잡스처럼 대중 친화성을 바탕으로 하나의 아이콘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애플컬트와 같은 삼성컬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두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들의 미래 : IT 산업을 넘어서(beyond IT)

1976년 창업한 애플컴퓨터는 2007년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라는 꼬리를 떼고 ‘애플’로 거듭났다. 바이트 애플(byte apple) 로고도 무지갯빛 바탕색을 없애고 실루엣만 가진 심플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애플은 이를 계기로 컴퓨터 제조사에서 최고의 모바일 기업이되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실제로 혁신을 일으켰다. 아이폰, 아이패드는 애플 혁명의 자식들이다.

삼성은 어떤가. 과감한 도전정신과 1위를 향한 치열한 추구는 삼성이라는 조직의 강점이지만 창조의 씨앗을 뿌리고 발아시켜 전인미답의 새로운 경지를 여는 데는 부족하다. 천착하고 사유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끝없이 달려 나가야 하는 기마군단의 한계이기도 하다.

애플 혁명 이후 IT 산업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새로운 게임의 룰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삼성도 스스로를 규정해온 정체성을 벗어야 할 것이다. 변화된 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애플의 방식을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제 삼성전자 역시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짓는 전자라는 꼬리표를 떼버리고 변화와 본질에 충실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미 삼성전자는 차세대 사업으로 IT 산업이 아닌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분야 진출을 선언했다. 삼성을 의미하는 ‘세 가지 빛나는 별’이 그룹 출발의 초심이던 ‘크고, 많고. 강한 별’이어도 좋고 ‘새롭고, 빠르고, 미래지향적인 별’이어도 좋을 것이다. 또는 ‘부드럽고, 친밀하고, 인간지향적인 별’이어도 좋다.

스마트폰도 태블릿PC도, 스마트TV도 애플과 삼성이 맞붙는 최종 라운드일 수는 없다. 기술의 진보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경쟁과 대결의 장을 만들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애플이 이미 보여 주었듯이 새로운 게임의 룰을 형성하고 주도해나갈 능력이다.

그 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삼성은 그만한 잠재력을가진 기업일까. 그 해답은 애플에는 있지만 삼성에는 없는 2%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사과농장의 경작자는 가질 수 있지만 초원의 질주자에게는 없는 것. 바로 성찰과 명상을 통해 인간의 꿈을 숙성시키고 상상력을 발효시키는 일일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관조하면서 인간의 상상이 언젠가는 도달할 미답의 영역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기사는 매일경제 프리미엄 경제월간지 럭스맨 3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