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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와 <미생>을 통해 보는 한국형 웹툰의 발전과 미래상상발전소/만애캐 2014/12/29 14:33 Posted by 상상발전소 KOCCA



글|박석환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창작과 교수)



단행본 위주로 발전해온 만화 산업이 웹・모바일이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포털 중심의 웹툰 플랫폼을 통해 만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폭넓은 인지도와 선호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최근 가장 핫한 드라마이자 웹툰으로 주목받는 윤태호의 <미생>을 통해 한국형 웹툰의 발전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본다.



▲ 사진1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 콘텐츠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2012년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바둑기사를 꿈꿨던 청년의 직장 생활기를 그리고 있다. 연재 기간 중 누적 조회 수는 6억 뷰였고, 그해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등 각종 상을 수상했다. 전 9권으로 출판된 단행본은 2013년 기준 5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직장인을 위한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tvN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 중이다. 드라마 <미생>은 3%대면 선방이라는 케이블TV에서 시청률 7.9%(2014.11.28. 기준)를 기록하며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원작 웹툰의 인기에 드라마의 히트가 더해지면서 콘텐츠 <미생>의 실적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연재 시 무료였던 웹툰이 유료로 전환됐지만 누적 조회 수가 10억 뷰로 늘었고 단행본 판매는 11월 기준 200만 부를 넘어섰다. 드라마 다시보기 서비스(VOD)의 누적 판매액도 15억 원에 달한다. 해외 방송계의 관심도 커서 드라마 판권과 리메이크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원작 캐릭터를 이용한 GS25의 상품 판매율은 전년대비 40% 증가했고, 드라마에 PPL 형식으로 노출된 관련 상품의 판매도 급상승 중이다. 


얼마 전 열린 ‘2014 창조경제박람회’(11.27~30)에서는 창조경제의 핵심 아이콘로 <미생>이 지목되기도 했다. 한 편의 웹툰이 만화는 물론이고 IT, 출판, 방송, 캐릭터, 광고 등 콘텐츠 관련 산업 전반으로 파생되면서 사회문화적 의제를 제시하고 경제산업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0년 등장한 웹툰이 만화 산업의 틀을 바꿔놨다면 이제 웹툰은 콘텐츠 산업의 룰도 바꿔놓을 기세다. 이른바 웹투노믹스의 시대가 온 것이다. 




<미생>붐을 불러온 원작자 윤태호는 만화사 측면에서 보면 여러 세대를 경험한 표류자이자 각 시대의 문제를 넘어서며 현재에 이른 극복자라 할 수 있다. 이현세가 톱을 달리던 극화 시대(1980~90년대)에 허영만과 조운학의 문하로 입문했고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각광받던 코믹스 시대(1990~2000년대)에 <야후>라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내 만화 세상은 웹툰 시대(2000~현재)로 전환됐고 새로운 환경에 맞춰 자기 혁신에 나서야 했다. 윤태호의 도전과 성과를 중심으로 한국 만화 플랫폼의 변화 과정과 과제에 대해 살펴본다.


생산자 중심 플랫폼 시대


극화 시대에 만화의 생산과 소비를 전담했던 플랫폼은 대본소로, 그 숫자가 전국적으로 2만 개가 넘었다. 잉크만 묻어도 2만 부가 팔린다는 호시절이었지만 2만 부 이상이 팔리지도 않는 ‘다종 생산 소량 판매 체제’였다. 인기 만화가는 소속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달에 10~30권 분량의 작품을 내야 했다. 인기 만화가의 문화생이란 명목으로 다수의 스태프가 창의력과 생산력을 저당잡힌 채 만화를 그려냈다. 윤태호 역시 이 무대에 있었다. 코믹스 시대는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저가로 다량 판매되는 만화잡지가 주 플랫폼이었다. 호당 3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만화잡지를 통해 독자를 얻은 작품은 단행본 출판 시 통권 100만 부, 200만 부가 판매됐다. ‘소종 생산 다량 판매 체제’가 된 것이다. 대규모 스태프가 생산에 집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적 역량을 단일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극화의 무덤에 파묻혀 있던 수많은 예비 만화가가 이 시장에 참여했다. 윤태호도 이 무대를 통해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소재로 한 대체 역사물 <야후>를 발표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극화 시대처럼 코믹스 시대 역시 10년 호황을 이어가지 못했다. 출판 불황이 오자 판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다종 생산 체제를 답습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중심 플랫폼 시대


웹툰 시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다. 2000년대 초 출판만화 시장의 소비자가 급감했다. 생산자 중심 시장이었던 만화계는 인터넷 시대의 소비자를 찾아 포털사이트로 이동했다. 2003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시작된 웹툰 서비스는 기존의 만화 플랫폼과는 달랐다. 기성 만화가의 명성은 1천만 명의 포털 사용자 앞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소비자가 작품 생산의 방향성을 제시했고 인터넷 ‘사용자 환경’에 최적화한 형태로 만화는 형과 식을 달리해야 했다. 페이지 단위로 연출되던 만화는 이제 모니터 화면 스크롤로 시간과 감정을 조정해야 했다. 기존의 경험치가 경쟁 요소가 되지 못하자 인터넷 문화와 컴퓨팅 작업 환경에 익숙한 신예들이 대거 등장했다. 네이버 등의 포털 사이트가 웹툰 시장에 참여하면서 기존 만화 시장은 웹툰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나 편집자의 의도는 최소화됐다. 사용자의 성향과 수요에 맞춘 작품 편성이 이뤄졌다. 윤태호 역시 2006년 포털 사이트 파란에 <첩보대작전>이라는 작품을 연재했고, 2007년에는 독립형 웹진 만끽에 인간의 탐욕과 인과응보를 주제로 한 웹툰 <이끼>를 발표하면서 웹툰 적응기를 거쳤다. 하지만 긍정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 매체는 편집자의 의도와 작가의 지명도에 기댄 코믹스 시절의 편성 정책을 유지했다. 




윤태호의 반전은 독립형 웹진 <만끽>이 자금난 등을 이유로 좌초하면서 시작됐다.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전개된 웹툰 시장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메뉴 탭 하나로 단순화했다. 다음이 자사의 웹툰 채널인 만화속세상에 ‘나도 만화가’라는 코너를 마련했고, 네이버는 만화 채널에 ‘도전 만화가’라는 코너를 마련했다.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소비자의 지지를 얻은 작품과 작가가 메인 페이지에 노출됐다. 노출은 인지도를 높이는 과정이 됐고 이는 인기로 이어졌다. 인지도와 인기는 원고료 산정의 지표가 됐고 연관 상품화의 척도가 됐으며, 만화가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수입이 됐다. 수많은 예비 만화가가 웹툰 작가를 지망하며 이 무대에 올라섰고 포털 사이트는 자사 회원들과 이들 생산자를 매칭해줬다. 여기에 제3자(광고주 등)를 끌어들여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판을 키웠고 웹툰 생산과 소비의 지속가능한 체제를 구축했다.



▲ 사진2



포털은 코믹스 시대의 지명도를 지닌 윤태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욕구를 충족해주면서 자신들이 조성한 생태계에서 제3자를 끌어들이며 활동할 작가를 원했다. 잔혹 스릴러를 추구하며 유료 웹툰으로 연재됐던 윤태호의 <이끼>는 이 무대의 대중적인 사용자층과 쉽게 매칭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끼>를 본 네티즌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2009년 강우석 감독이 이 웹툰을 영화로 제작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단숨에 대중적 관심작이 된 <이끼>는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연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연재가 지속되면서 포털의 수많은 사용자가 윤태호 웹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입소문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력하게 작동했고 영화의 흥행과 함께 후광효과가 더해지면서 윤태호는 비로소 후배 웹툰 작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대중적 인터넷 사용자층과 제3의 지지자들을 얻게 됐다. 윤태호는 ‘웹툰 이전 세대’이자 웹툰 붐 이후에 주목받은 ‘웹툰 이후 세대’라 할 수 있다.




‘DICON 2014’(국제 콘텐츠 컨퍼런스)에서도 윤태호와 웹툰이 주요 이슈였다. 기조강연에 나선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는 윤태호의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제2의 <미생>’을 찾아 다음카카오의 사용자들과 매칭시킬 것이라 했다. 마블엔터테인먼트의 C.B.셰블스키는 한국 작가에 의해 창작된 ‘마블의 첫 번째 웹툰 <어벤져스 : 일렉트릭 레인>이 <미생>에 밀려 2위를 했다’고 농담을 던지며 한국의 웹툰 포맷을 전 세계에 유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웹툰포럼’에서는 프랑스 델리툰의 디디에 보르그 대표가 한국의 웹툰을 보고 프랑스 만화의 디지털화를 꾀하게 됐다며 ‘망가(일본 만화)의 자리에 한국 웹툰이 자리하게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이만든 웹툰 플랫폼은 여러 세대를 거쳐 완성된 독창적이고 효용적인 디지털 만화 플랫폼이다. 세계 만화계가 주목하고 있고 다양한 콘텐츠 산업계에서 연대를 희망하고 있는 만큼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이다.



▲ 사진3



하지만 과제도 있다. 2013년 오픈해 주목받고 있는 레진코믹스는 포털 사이트 웹툰 플랫폼의 대안성을 강조하며 등장했다. 유사 성격을 지닌 플랫폼이 10여 곳 신설된다는 소식도 있다. 좋은 일이지만 현재의 포털 사이트 웹툰 플랫폼이 할 수 없는 제한적 요소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또 다수의 웹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웹툰의 생산량이 과다해지고 있다. 플랫폼이 과다 생산 체제로 접어들면 단일 작품의 소비량과 판매량은 비례해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과거 대본소와 만화잡지 플랫폼이 경쟁력을 잃었던 요인은 명백하게 과다 생산 체제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최근 웹툰의 세계 진출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 역시 반갑지만 정체기에 접어든 국내 성장 수요를 대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소비 인구의 제한은 한국 콘텐츠 시장이 지닌근본적 문제이고 해답이 세계시장에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급하게 생산량을 늘려서는 안 된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기존의 웹툰 붐과 달리 지금 윤태호와 <미생>이 상징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웹툰 산업 붐은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지금 <미생>이 일으킨 붐은 여러 세대를 걸쳐 완성된 작가가 웹툰 플랫폼을 통해서 이뤄낸 성과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작가가 대형 플랫폼의 영향력과 미디어믹스의 힘에 의해 성공작을 낸 것이 아니다. 1988년 입문한 작가가 26년 만에 제대로 만들어 성공시킨 작품이 <미생>이고 그 저력이 지금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이만한 성과를 일구기 위해서는 바람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제대로 된 한 걸음, 철저히 준비한 한 걸음을 통해 예측 가능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사진 출처

- 사진1 누룩미디어 www.nulookmedia.co.kr | tvN ch.interest.me/tvn



본 기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창조산업과 콘텐츠> 11·12월호(http://bit.ly/1qnAi9f)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