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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비콘(18) '알량한 기술', 오만과 착각이 위기를 부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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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대기업조차 중국 사업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삼성 갤럭시는 좁쌀(小米)한테 발목이 잡혔고, LG는 변두리 시장에서도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가 약해졌습니다. 포스코 현지 법인들은 적자로 신음하고 있고요. 왜 그럴까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기술을 맹신한 나머지 시장 흐름에 둔감했기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기술로 앞서니 우리가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이 낳은 위기라는 거지요. 중국기업의 기술 수준이 떨어질 때는 그게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한국 제품이라면 줄을 서서 사가는 시대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알량한 기술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 우위가 사라지면서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겁니다.
 
해결책은 하나, 내 제품을 안정적으로 받아 줄 고객을 잡아 두는 겁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기술 우위를 유지하거나, 그게 안된다면 중국 고객을 확실히 잡아 둘 시장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 기업, 기술 우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시장에서 답을 구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기술이 아닌 시장, 품질이 아닌 유통시스템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FTA시대, 13억 중국 시장이 내수시장 됐다고 하잖아요. 중국 비즈니스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지금, 시장 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합니다.
 
내 제품은 건강한 유통환경을 갖고 있는가?
이춘우 카라카라 사장을 모시어 중국비즈니스 콘서트를 연 이유입니다.
 
**********
 
이춘우 사장의 열강이 이어진다.
 
“1990년대, 2000년대 우리나라에 유명 화장품 브래드가 있었습니다. 한불화장품, 한국화장품, 퓨어리스, 코리아나, 그런 것들입니다. 그 당시 최고 모델을 썼던 브랜드들이죠. 지금 다 어디 갔죠? 다 망했잖아요. IMF때문입니다.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지니, 소비자들은 비싼 것 외면했죠. 그들을 시장에서 몰아낸 게 바로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미샤 등이었어요. 중저가 상품이었던 거지요."
 
브랜드 파워? 택도 없는 소리. '한국에서던, 중국에서든 지갑이 닫히면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브랜드'라는 게 이 사장의 지론이다. 경제가 흔들려도, 내 시장은 흔들리지 않을 그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해답은 시장, 유통에 있다.
 
“알리바바를 두고 IT혁명이라 하지만 사실 그들은 지금 유통혁명을 하고 있는 겁니다. 13억이 사는 중국에 맞는 유통, 그 광활한 땅에 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 하우스 매장과 인터넷 매장이 격돌을 벌이고 있지요.
 
이베이는 알리바바를 이기지 못해 결국 중국에서 철수했습니다. 왜냐? 이베이는 거래에 수수료를 받았고, 알리바바는 꽁짜로 했거든요. 그러니 기업이 알리바바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겁니다. 꽁짜니까. 그게 지금 중국에서 벌어진 유통혁명이예요. 내가 100원에 팔고 있는데 중국인이 옆에서 50원에 판다면 어떻게 되나요? 망하는 거죠. 삼성 갤럭시는 대리상을 통해서 팔지만, 샤오미는 인터넷으로 팝니다. 누가 싸게 팔 수 있는 가요? 유통에 지고는 왜 기술을 얘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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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에게서 질문이 나왔다.
 
“저는 중국에서 화장품 사업에 관심이 있는데. 그들의 화장품 수입 관세율이 제법 높습니다. 어떻게 하면 피해갈 수 있나요?”
 
화장품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강연자에게 던질만한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장은 ‘전 모릅니다’라고 질문을 일축한다.
 
“나에게 화장품 품질을 묻지 마세요. 관세율이 얼마인지도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알 필요도 없습니다. 품질은 우리 회사 생산관리 담당자가 알아서 할 것이고, 관세는 수출영업부 직원이 알겠죠.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지요? 난 지금 유통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사장이 할 일입니다.”
 
그의 시장 혁명 얘기는 계속된다.
 
“델이 어떻게 성공했지요? 컴퓨터를 개발했나요? 아니잖아요. 마이클 델이라는 청년이 PC를 사려는데 메이드PC밖에 없는 거예요. 필요 없는 사양이 많은 고가 PC. 그래서 학비를 갖고 시작한 게 바로 주문 PC사업이잖아요.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필요한 사양만 넣어서 3000달러 짜리를 1000달러에 팔았습니다. 델이 삼성과 도시바 죽였습니다. 왜요? 싸니까. 컴퓨터라는 걸 최초로 만들고 발명한 게 아니라 유통만 바꿔서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 겁니다.
 
스타벅스가 커피를 창조했나요? 스타벅스 회장이 로마를 갔는데 신기한 것을 봤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커피숍에 와서 그냥 노닥거리며 놀고, 책 읽고, 바리스타하고 농담하고 그런 겁니다. 문화적 충격을 받았지요. 그래서 미국에 와 시작한 게 지금의 스타벅스입니다.
 
하이마트가 TV, 냉장고 처음 만들었습니까? 아니죠. 삼성, LG, 대우 다 모아 놓고 가격 비교하게 하니까, 사람들이 몰려들었잖아요. 그게 바로 유통 혁명인 겁니다. 그런 일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유통혁명의 길을 화장품에서 찾았습니다. 어디 화장품뿐이겠습니까? 여러분도 해당 분야에서 한 번 찾아보세요. 분명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맞는 얘기다. 알리바바가 성공한도 바로 그 때문이다. MS·애플·구글·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은 상품(서비스)에 혁명적 진보를 가져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알리바바는 다르다. 비즈니스 모델인 전자상거래시스템은 이베이나 아마존 등에서 배워 왔을 뿐 혁신 하고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뉴욕 투자가들은 알리바바의 기업공개(IPO)에 약 218억 달러를 몰아줬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맥킨지는 ‘시장화를 통한 혁신(Innovation through commercialization)’ 때문이라고 답한다. 해외에서 개발된 기술을 중국 소비자에 맞춰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기술이 아닌 시장에서 혁신을 이뤘다. 중국인들은 혁신을 해도 '중국 식 혁신'을 한다. 이춘우 사장이 말하는 시장 혁명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카라카라는 어떻게 시장 혁명, 유통 혁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어떻게 중저가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을까?
 
“우리는 로드샵을 운영합니다.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거리에 조그만 가게를 내고 팔아요. 처음 내가 그것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다들 반대했어요. 비싸면 백화점에서 팔고, 싸면 마트에서 파는 게 화장품이라는 거였지요. 화장품이 싸면 안 된다, 길거리에서 팔면 안 된다, 모델 없으면 안 된다...등등 얘기가 많았습니다. 내 생각은 달랐습니다. 화장품도 언젠가 비누처럼 일반 제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저가 화장품은 더 그렇고요. 지나가다가 집에 비누가 없지? 하며 들어올 것이고, 스킨로션 떨어졌네 하며 들어와 편하게 살 것입니다. 그걸 사러 왜 백화점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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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라에는 3개가 없단다. 중간 대리상이 없고, 과대포장이 없고, 광고가 없다.
 
“김태희를 광고모델로 쓰면 40억 원이 듭니다. 그러면 광고 찍고 어떻게 해요? 신문에 뿌리고 광고해야죠. 그거 다 고객에서 뽑아내야 할 돈입니다. 깔끔하면 됐지 억지 포장을 왜 합니까. 유통 대리상, 우리는 없습니다. 그냥 본사에서 가맹점으로 직접 보내줍니다.
 
물론 약점은 있습니다. 늦어요. 광고를 안하니까요. 그러니 멀리 보고 해야 합니다. 5년, 10년을 보고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업은 오너가 해야 합니다. 저는 이니스프리, 미샤 그들과 경쟁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왜요? 오너인 제가 직접 하니까요.”
 
가격이 싸면 서비스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카라카라의 고객 서비스는 A급이란다.
 
“가격이 싸면 왜 서비스 품질이 차(差)해야 하지요? 우린 가격은 싸지만 서비스는 잘하자고 달려듭니다. 우리 모든 제품을 매장에서 무료로 써보게 합니다. 무료로 화장 시범을 보이게 합니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반발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아침에 출근할 때 와 쓰고, 저녁에 들렸다고 얼굴에 찍어 바르고, 그리고는 안 산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가격과 품질이 좋다면 주머니에 손이 갈 거라고 봤지요. 맞았습니다. '아니 50위안 짜리가 왜 이렇게 좋아, 저기는 300원에 팔던데…' 결국 우리 가게로 와 고객이 됩니다.”
 
질문이 나왔다.
 
“가격, 가격 말씀하시는데, 중국 로컬 기업들은 더 잘하지 않나요? 그들이 쫓아오면 어쩌지요?”
 
그의 답은 이랬다.
 
“간단해요. 그들이 10위안에 팔면, 나는 어떻게 하면 8위안에 팔지를 연구하는 겁니다. 우리 회사는 포스트잇이 아까워 영수증 뒤에다 메모를 합니다. 가라오케? 난 끊은 지 오랩니다. 품질 걱정은 아웃소싱 업체에서 대신 해주겠지요. 내가 할 일은 앞으로 5, 10년 뒤 중국소비자는 어떻게 변하나, 이런 걸 연구하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말입니다.”
 
한우덕
Woody Han/无敌汉
 
'중국비즈니스 콘서트'의 오프라인 콘서트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중국에 계신 전문가들을 모시어 생생한 얘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춘우 사장의 실제 콘서트 동영상은 여기(http://tv.kita.net/main/detail.asp?sid=494)에 있습니다. 혹 모시어 얘기를 듣고 싶은 중국비즈니스 전문가가 옆에 계시다면 추천해 주십시요. 이번 오프라인 콘서트는 성균관대학 중문과에 재학중인 이혜수 학생이 정리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이나 인사이트구독을 원하시면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저희 중국연구소는 보다 깊고 재미있는 정보 전달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최소 1500억, 은나라 도자기 한국에있다…중국들썩

뉴시스 | 신동립 | 입력 2012.07.07 07:04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대만 신생보(新生報)가 은나라 마지막 황제 제신(帝辛)이 '목야(牧野)의 전쟁' 직전 별점을 치고, 그 점괘를 새겨 남긴 홍도관을 전면 특집으로 보도했다.

제목(殷商古物現身韓國 占星紅陶罐出土) 아래 7개 서브타이틀(前言, 輾轉經手 不知是寶物, 陶罐甲骨文 暗藏天機, 熱釋光檢測 真偽解惑, 殷古物 總算驗明正身, 歷史價值 金錢難衡量, 專訪甲骨文專家 朴大鍾: 紅陶罐 來歷不凡)로 대서특필했다.

◇은나라 유물 한국에 현신(現身), 별점이 기록된 홍도관 출토

원래는 단지 어깨부위에 꽃무늬가 있는 일개 화병으로만 여겨졌던 향토적 홍도관이었다. 처음엔 그 둘레에 원형으로 새겨진 불규칙적 꽃무늬가 곧 갑골문임은 명확히 인지되지 않았다. 고증을 거치면서 이 일단의 갑골문은 역사적 '목야(牧野)의 전쟁' 사실과 관련이 있고 이 물건은 중국역사의 은상 유물인 것으로 능히 검증돼 현재 한국에 현신(現身)했다.

1899년 중국대륙 은허 유적지에서 발견된 갑골문 이후 지금까지 약 15만 편의 갑골이 출토돼 세상에 전해 내려왔다. 그런데 그 중 대부분은 귀갑수골 위에 새겨진 것이고 또한 대부분은 모두 파손된 불완전한 것들이며, 도기상에 새겨진 갑골문은 드물 뿐만 아니라 물건이 거의 완정에 가까운 것은 더욱 보기 어렵다. 그리고 출토된 물건 위에 새겨진 갑골문 내용을 연구해보면 점복으로써 길흉을 묻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아직까지 별점 사실(史實)을 기술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관계로 은(殷) 주왕(紂王) 홍도관의 출토는 별도로 상조문화의 신영역에 대한 일개 연구를 개창하는 것이 된다.

특히 홍도관 상에 새겨진 갑골문은 상나라 주왕이 별자리 모양을 관찰하고 주나라 무왕을 토벌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어, 이 홍도관이 상나라 주왕의 왕실유물일 수 있음을 증명, 가히 일건의 세계급 문화유산이자 세상에 보기 드문 진귀한 물건이라 할 수 있어, 그 중요성 및 역사 형성에 대한 충격은 모두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과소평가할 수 없게 만든다.

◇여러 손으로 옮겨가는 동안 보물인 줄 몰랐다

한국인 골동품 수집가인 안 선생은 중국대륙을 자주 다닌 사람으로, 1992년 또는 1993년 요녕성 부신(阜新)시 외곽지역에서 현지 골동상으로부터 1차로 물건들을 구입했는데 그 중에 이 홍도관이 포함돼 있었다. 그 후 안 선생은 이 물건을 요녕성 심양시 만융촌 내 거주지에 보관해두었다. 2005년 7월20일 전후로 안 선생은 이 홍도관을 또다른 한국인 골동품 수장가인 석 선생에게 팔았고, 석 선생은 8월18일 홍도관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중국 북경공항에서 X레이 검색을 받은 뒤 북방항공편을 이용해 한국 인천공항으로 들여왔다. 홍도관이 한국에 도착한 이후 석 선생은 또 8월 말에 또다른 김 선생에게 팔았고, 접수자인 김 선생 또한 현재 소장자인 조 선생에게 소유권을 양도했다.

이러한 일련의 이동 과정 중에서 소유인 모두는 홍도관 상에 새겨진 것을 단지 꽃무늬가 수려하고 독특하다라고만 생각했지, 그 특별한 의의와 가치는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는데 현재 소장자인 조 선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 선생은 홍도관을 획득한 후에도 특별히 중시하지 않고 단지 일반가정에 진열해놓았다. 텔레비전 받침대 위에 놔둬 평시에는 그것을 수장함(收藏盒)이 되게 하고 손길가는대로 일부 잡동사니와 어린 아들의 장난감들을 담아놓았다. 2005년 12월24일 저녁시간, 조 선생은 TV를 보는 도중, 동시에 시선이 이 홍도관에 이르렀는데, 곧 그것을 손으로 붙잡고 자세히 한 번 감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문득 이 독특한 꽃무늬가 중국 고문자와 닮았고, 만일 그렇다면 이 홍도관은 진정한 골동품일 수 있음을 경각(驚覺)했다. 또한 이 고문자에 대해 도대체 무슨 뜻인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이에 이튿날 그는 즉시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을 찾았고 그때부터 홍도관이 갖는 진정한 신분의 역정(歷程)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천기가 암장된 제신홍도관(帝辛紅陶罐) 갑골문

갑골문은 일종의 매우 중요한 고한자(古漢字) 자료이다. 절대 부분은 은허에서 발견됐는데 기본적으로는 모두 은상왕조 통치자의 점복기록이다. 은허는 저명한 은상시대 유적지로 그 범위는 하남성 안양시 서북 소둔촌, 화원장, 후가장 등지를 포괄한다. 이곳은 일찍이 은상 후기 왕조들의 도성 소재지인 까닭에 은허라 불리운다.

홍도관에는 모두 61개의 갑골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중 '占(그 외부에는 囗이 있음)'자 하나는 바닥부위에 있고, 나머지 60개 글자는 도관 견부에 있는데, 중복된 부분을 제외하면 총 49자이다. 도관 견부의 60개 글자들은 각자 모두 하나의 완전한 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결코 조금의 간격도 없이 단원횡행(單圓橫行) 방식으로, 우측에서 좌측 방향으로 서사돼 있다. 그 주요사항은 성상(星象)을 관찰하고 전쟁결과를 추구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연구에 따르면 '주왕(紂王)'이라고도 하는 은상 최후의 황제 '제신(帝辛)'의 재위 만기 시에 '태백경천'이라고 하는 금성의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반란 및 국가기강을 파괴하는 대흉조였으니 은상으로서는 왕조 존망이 걸린 절박한 지경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는 때마침 주나라 무왕이 기병해 주(紂) 왕을 치려는 시기여서, 주왕은 화근을 소멸시키기로 결정하고 이에 출병 전에 제사의 예를 거행하고 성상을 관찰, 그 결과를 구해 물었다. 주왕이 평상시처럼 그 결과를 수골(獸骨) 위에 새기지 않은 까닭을 규명해보면, 그 주된 원인은 중국전통의 천간과 지지는 60으로써 한 사이클을 이룬다는 사고방식이 있는데 주왕은 응당 천자의 군대가 작전 중에 전체 과정을 끝까지 가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둥근 원에 꽉 차게 표시를 한 것은 승리를 획득해 상왕조의 사직을 지키는 의의가 있다. 이에 주왕은 특수한 정황에 직면한 상태에서 특수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장차 결과는 60개의 글자들을 둥근 도관 위에 새겨 구웠으니 이것이 곧 현재의 이 홍도관이다.

60개의 갑골문자는 각 30자씩 2조로 나뉘어져 있다. 제1조 복사는 '금(金)'에서 '후(侯)'까지로, 추구해 묻는 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불길하게도 대낮에 금성이 나타났습니다. 신(辛)의 군대를 출병시킬까요? 주후서백(周侯西伯)의 군대와 그의 우군들이 주(州) 서읍으로부터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없을까요?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께서 돕고 지켜주실까요? 엄정한 기강이 무너지고 방임되는 일이 있을까요? 과연 서백후(西伯侯)로부터 그러한 일이 있었다."

제2조복사는 '조(祖)'에서 '어(御)'까지로 계속해서 질문을 구함과 아울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이시여! 문(文)을 치기 위해 저녁에 제를 올리면, 우리 군대가 승리를 획득할 수 있을까요? 정수(井宿)에 제를 올리면 짐이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요? 왕이 성조를 살펴 길흉판단을 해 가로되, '각성(角星)이 밝게 빛나니, 나는 문(文)의 세력을 정벌해 배(나라)를 평안하고 고요하게 이끌 것이고, 승리를 획득한 후에는 서읍을 분봉할 것이며, 재앙은 능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해석 박대종)

이 60개의 글자들은 3000여년 전 주왕과 주후서백간의 전쟁을 앞둔 장면을 생동감 있고 완전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왕은 금성이 대낮에 출현한 사실을 흉조로 여기고, 국가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성제성(以星制星)'의 전략적 사고 하에 각성(角星) 별점을 진행해, 금성으로부터 야기된 불안을 저지해낼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데 그것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의의는 확실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진위 의혹을 풀기 위한 열석광검측(熱釋光檢測)

옛 물건에 대한 진위를 고증하는 일은 일단 힘들고 고생스러우며 또한 완전무결함을 얻기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각 방면으로부터 힐책이 따르게 되는데, 물론 선의도 있고 혹은 악의도 있다.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상세하게 하나하나 해설을 해줘야 한다. 진정한 것인지에 이르러야 의문자로 하여금 진심으로 신복(信服)하게 만드니 오직 '진인사청천명(盡人事聽天命)' 밖에 없는 것이다.

홍도관의 고증에 대해 갑골문 방면의 의혹이 따랐는데,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박대종 저 '상제신(商帝辛)의 점도문(占陶文)에 관한 연구' 논문에 매우 상세하게 설명돼있어 여기서 더 이상 반복해, 이 갑골문은 도대체 어느 때 새겨졌는지, 도기를 굽기 전에 새겼는지 아니면 도기를 구운 후에 새겼는지 등의 의문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7호인 김일만 옹기장은 비록 홍도관 상의 각문을 한 글자도 알지 못하지만 집안 대대로 6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옹기 명인으로, 그가 제기한 견해는 전문적일 뿐만 아니라 권위도 있다. 그는 "홍도관 위에 새겨진 문자는 점토로 기물의 형태를 완성한 다음 완전히 굳기 전에 새기고 나서 자기에 비해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것이며, 이미 구워낸 도기에 이처럼 섬세한 곡선을 새겨넣는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홍도관과 글자'는 함께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그는 또한 "이 홍도관은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가 낮고 묵직해 일반적인 그런 맑고 듣기 좋은 소리 같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장기간 흙속에 매장돼 습기를 받았기 때문이며, 사용한 도토는 곧 강 근처의 토질이다"고 표명했다. 이 두 가지 견해 또한 홍도관이 장기간 지하에 묻혀 있었던 것과 은상 도성의 위치 및 실제정황이 모두 완전히 부합한다.

이밖에, 갑골문이 발견된 연대가 1899년이므로 그 이전에는 이런 종류의 문자를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자연히 위각(偽刻)이 나타나기는 불가능하므로, 홍도관의 소성연대가 1899년보다 더 이르다는 것이 증명되기만 하면 홍도관 상의 갑골문의 진실성은 실증된 것에 해당한다. 그래서 홍도관 소장자인 조 선생은 중국 고문자학자인 중산대학 진위담(陳煒湛) 교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최선진의 '열석광검측'을 진행, 홍도관의 연대를 판단키로 결정했다.

◇검측으로 정신(正身)이 증명된 은나라 유물

2008년 3월 조 선생 등은 홍콩의 고동감정유한공사(古董鑑定有限公司), 중과연발유한공사(中科研發有限公司), 성대전업고문유한공사(城大專業顧問有限公司) 및 중국상해박물관 문물보호 고고과학실험실에 열석광검측을 신청했다. 홍도관의 안전을 고려해 한국에 방문해 시료채취(샘플링)하는 조건이었는데 결과는 오직 성대(城大)만이 받아들여 그 책임자인 량보류(梁寶鎏) 박사가 4월15일 방한했다. 이와 동시에 조 선생 등은 또한 상해박물관 하군정(夏君定)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홍도관 분말을 칼로 긁어내어 국제우편으로 상해박물관에 보내 검측을 진행했다.

2008년 4월23일 홍콩 성대(城大)의 검측보고가 나왔는데 그 결과는 지금으로부터 1465년이었다. 이는 홍도관이 옛 물건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이어 바로 며칠 뒤 4월25일에 상해박물관 또한 검측결과를 제출했는데 그 결과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미만이고, 또 홍도관은 모방제작한 모조품이라 말했으니 양가(兩家)의 감정결과가 1000년 이상 차이가 나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할 도리가 없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이 경과해 전자우편으로 연락, 상해박물관은 제2차검측 및 하군정을 파견키로 결정한다. 그는 2009년 12월14일에 친히 한국을 방문해 직접 시료채취를 했는데, 22일자 발표검측결과는 지금으로부터 480년 전이고 오차는 ±100년이었다. 이러한 검측결과는 비록 홍도관이 진정한 옛 물건임을 실증하는 것이었지만 검측연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신복(信服)케 하기 어려운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그러한 유감을 풀 길이 없어 조 선생 등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영국 옥스퍼드 감정공사에 요청, 최종 검측을 진행키로 결정한다.

2012년 2월26일 영국 옥스퍼드 감정공사는 요원들을 한국에 파견, 시료를 채취했다. 3월8일자로 발표된 검측결과는 지금으로부터 1700~2700년 전이었다. 홍도관은 출토된 지 20년 이상이 지나 비로소 열석광검측을 진행했고 더욱이 출토 후 뜨거운 햇빛을 받고 뜨거운 물로 세척하는 등의 과정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검측결과로 인해, 물건의 연대가 오직 감소할 수는 있지만 증가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지금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홍도관은 정신(正身)을 밝힌 것으로 응당 은상의 고물(古物)이라는 점에 추호의 의문도 없게 된다.

◇역사적 가치 돈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무왕벌주(武王伐紂)', '목야(牧野)의 전쟁'은 우리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제신홍도관의 출토는, 고대도자발전사 발전과정을 명백히 나타냈다는 의의 외에 도관상의 갑골문 또한 은상시대 언어문자학 및 천문성상학 방면에 대한 천석(闡釋)을 갖추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가장 적극적인 의의는 상(商)과 주(周) 왕조가 서로 대항하는 균형성을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기(史記)', '상서(尚書)'에 기술된 역사 내용의 진실성을 다시 한 번 검증해줬다는 것으로, 그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돈으로 값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크다.

◇갑골문 전문가 박대종 전방(專訪), 평범치 않은 홍도관의 내력

박대종은 갑골문을 연구한 한국인이다. 그가 2005년 12월25일 처음으로 제신홍도관을 보았을 때 그의 표정은 거의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는 홍도관 바닥 부위에 새겨진 '占(그 외부에는 囗이 있음)'자가 은상시대 복사 전문용어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것이 은나라의 유물임을 알고 놀랐다. 그가 갑골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지 15년간에 오직 보통의 점복 사건을 기재한 100여 건의 갑골문만을 접촉한 적이 있었을 뿐이고 이번 경우는 전연 그와 같지 않았기 때문에 홍도관은 현저하게 그 내력이 평범치 않았다. 갑골문을 연구한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구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고 또한 만날 수는 있으나 구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의 손은 바야흐로 한 건의 완정한 역사적 사실을 기재한 3000년된 유물일 가능성을 붙잡고, 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말 청천벽력 같았으며, 일순간 온 몸의 감각이 소름이 끼치고 전율했다고 한다.

3일이 경과해 자지도 쉬지도 않고 연구한 끝에 그는 홍도관 견부상의 60개 갑골문자를 명확히 인식했다. 그것은 상왕조 말엽 국가가 긴급사태에 직면해 황제가 별점을 쳐 점괘를 구한 결과를 기술한 것이었다. 또한 그 새김 문자들 중에는 황제와 강적 라이벌의 이름이 명백하게 나와 있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이것이 상 왕조의 역사 사실을 완정하게 기술한 홍도관이며 이처럼 완정하게 보존된 세계 유일의 국보급 유물임을 인식했다.

2006년 2월 박대종은 제신홍도관의 갑골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뒤이어 수년 동안 그는 부단히 논문을 개진했고 외부의 질의들에 대해 일일이 해설해 지금은 의심을 품은 목소리가 갈수록 적어지게 됐으며, 홍도관의 신분은 점차 모두의 인정과 동의를 획득하게 됐다. 이 모두는 박대종의 공헌이며, 그 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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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대만 신생보(新生報)가 은나라 마지막 황제 제신(帝辛)이 '목야(牧野)의 전쟁' 직전 별점을 치고, 그 점괘를 새겨 남긴 홍도관을 전면 특집으로 보도했다.

제목(殷商古物現身韓國 占星紅陶罐出土) 아래 7개 서브타이틀(前言, 輾轉經手 不知是寶物, 陶罐甲骨文 暗藏天機, 熱釋光檢測 真偽解惑, 殷古物 總算驗明正身, 歷史價值 金錢難衡量, 專訪甲骨文專家 朴大鍾: 紅陶罐 來歷不凡)로 대서특필했다.

◇은나라 유물 한국에 현신(現身), 별점이 기록된 홍도관 출토

원래는 단지 어깨부위에 꽃무늬가 있는 일개 화병으로만 여겨졌던 향토적 홍도관이었다. 처음엔 그 둘레에 원형으로 새겨진 불규칙적 꽃무늬가 곧 갑골문임은 명확히 인지되지 않았다. 고증을 거치면서 이 일단의 갑골문은 역사적 '목야(牧野)의 전쟁' 사실과 관련이 있고 이 물건은 중국역사의 은상 유물인 것으로 능히 검증돼 현재 한국에 현신(現身)했다.

1899년 중국대륙 은허 유적지에서 발견된 갑골문 이후 지금까지 약 15만 편의 갑골이 출토돼 세상에 전해 내려왔다. 그런데 그 중 대부분은 귀갑수골 위에 새겨진 것이고 또한 대부분은 모두 파손된 불완전한 것들이며, 도기상에 새겨진 갑골문은 드물 뿐만 아니라 물건이 거의 완정에 가까운 것은 더욱 보기 어렵다. 그리고 출토된 물건 위에 새겨진 갑골문 내용을 연구해보면 점복으로써 길흉을 묻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아직까지 별점 사실(史實)을 기술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관계로 은(殷) 주왕(紂王) 홍도관의 출토는 별도로 상조문화의 신영역에 대한 일개 연구를 개창하는 것이 된다.

특히 홍도관 상에 새겨진 갑골문은 상나라 주왕이 별자리 모양을 관찰하고 주나라 무왕을 토벌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어, 이 홍도관이 상나라 주왕의 왕실유물일 수 있음을 증명, 가히 일건의 세계급 문화유산이자 세상에 보기 드문 진귀한 물건이라 할 수 있어, 그 중요성 및 역사 형성에 대한 충격은 모두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과소평가할 수 없게 만든다.

◇여러 손으로 옮겨가는 동안 보물인 줄 몰랐다

한국인 골동품 수집가인 안 선생은 중국대륙을 자주 다닌 사람으로, 1992년 또는 1993년 요녕성 부신(阜新)시 외곽지역에서 현지 골동상으로부터 1차로 물건들을 구입했는데 그 중에 이 홍도관이 포함돼 있었다. 그 후 안 선생은 이 물건을 요녕성 심양시 만융촌 내 거주지에 보관해두었다. 2005년 7월20일 전후로 안 선생은 이 홍도관을 또다른 한국인 골동품 수장가인 석 선생에게 팔았고, 석 선생은 8월18일 홍도관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중국 북경공항에서 X레이 검색을 받은 뒤 북방항공편을 이용해 한국 인천공항으로 들여왔다. 홍도관이 한국에 도착한 이후 석 선생은 또 8월 말에 또다른 김 선생에게 팔았고, 접수자인 김 선생 또한 현재 소장자인 조 선생에게 소유권을 양도했다.

이러한 일련의 이동 과정 중에서 소유인 모두는 홍도관 상에 새겨진 것을 단지 꽃무늬가 수려하고 독특하다라고만 생각했지, 그 특별한 의의와 가치는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는데 현재 소장자인 조 선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 선생은 홍도관을 획득한 후에도 특별히 중시하지 않고 단지 일반가정에 진열해놓았다. 텔레비전 받침대 위에 놔둬 평시에는 그것을 수장함(收藏盒)이 되게 하고 손길가는대로 일부 잡동사니와 어린 아들의 장난감들을 담아놓았다. 2005년 12월24일 저녁시간, 조 선생은 TV를 보는 도중, 동시에 시선이 이 홍도관에 이르렀는데, 곧 그것을 손으로 붙잡고 자세히 한 번 감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문득 이 독특한 꽃무늬가 중국 고문자와 닮았고, 만일 그렇다면 이 홍도관은 진정한 골동품일 수 있음을 경각(驚覺)했다. 또한 이 고문자에 대해 도대체 무슨 뜻인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이에 이튿날 그는 즉시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을 찾았고 그때부터 홍도관이 갖는 진정한 신분의 역정(歷程)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천기가 암장된 제신홍도관(帝辛紅陶罐) 갑골문

갑골문은 일종의 매우 중요한 고한자(古漢字) 자료이다. 절대 부분은 은허에서 발견됐는데 기본적으로는 모두 은상왕조 통치자의 점복기록이다. 은허는 저명한 은상시대 유적지로 그 범위는 하남성 안양시 서북 소둔촌, 화원장, 후가장 등지를 포괄한다. 이곳은 일찍이 은상 후기 왕조들의 도성 소재지인 까닭에 은허라 불리운다.

홍도관에는 모두 61개의 갑골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중 '占(그 외부에는 囗이 있음)'자 하나는 바닥부위에 있고, 나머지 60개 글자는 도관 견부에 있는데, 중복된 부분을 제외하면 총 49자이다. 도관 견부의 60개 글자들은 각자 모두 하나의 완전한 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결코 조금의 간격도 없이 단원횡행(單圓橫行) 방식으로, 우측에서 좌측 방향으로 서사돼 있다. 그 주요사항은 성상(星象)을 관찰하고 전쟁결과를 추구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연구에 따르면 '주왕(紂王)'이라고도 하는 은상 최후의 황제 '제신(帝辛)'의 재위 만기 시에 '태백경천'이라고 하는 금성의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반란 및 국가기강을 파괴하는 대흉조였으니 은상으로서는 왕조 존망이 걸린 절박한 지경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는 때마침 주나라 무왕이 기병해 주(紂) 왕을 치려는 시기여서, 주왕은 화근을 소멸시키기로 결정하고 이에 출병 전에 제사의 예를 거행하고 성상을 관찰, 그 결과를 구해 물었다. 주왕이 평상시처럼 그 결과를 수골(獸骨) 위에 새기지 않은 까닭을 규명해보면, 그 주된 원인은 중국전통의 천간과 지지는 60으로써 한 사이클을 이룬다는 사고방식이 있는데 주왕은 응당 천자의 군대가 작전 중에 전체 과정을 끝까지 가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둥근 원에 꽉 차게 표시를 한 것은 승리를 획득해 상왕조의 사직을 지키는 의의가 있다. 이에 주왕은 특수한 정황에 직면한 상태에서 특수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장차 결과는 60개의 글자들을 둥근 도관 위에 새겨 구웠으니 이것이 곧 현재의 이 홍도관이다.

60개의 갑골문자는 각 30자씩 2조로 나뉘어져 있다. 제1조 복사는 '금(金)'에서 '후(侯)'까지로, 추구해 묻는 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불길하게도 대낮에 금성이 나타났습니다. 신(辛)의 군대를 출병시킬까요? 주후서백(周侯西伯)의 군대와 그의 우군들이 주(州) 서읍으로부터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없을까요?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께서 돕고 지켜주실까요? 엄정한 기강이 무너지고 방임되는 일이 있을까요? 과연 서백후(西伯侯)로부터 그러한 일이 있었다."

제2조복사는 '조(祖)'에서 '어(御)'까지로 계속해서 질문을 구함과 아울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이시여! 문(文)을 치기 위해 저녁에 제를 올리면, 우리 군대가 승리를 획득할 수 있을까요? 정수(井宿)에 제를 올리면 짐이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요? 왕이 성조를 살펴 길흉판단을 해 가로되, '각성(角星)이 밝게 빛나니, 나는 문(文)의 세력을 정벌해 배(나라)를 평안하고 고요하게 이끌 것이고, 승리를 획득한 후에는 서읍을 분봉할 것이며, 재앙은 능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해석 박대종)

이 60개의 글자들은 3000여년 전 주왕과 주후서백간의 전쟁을 앞둔 장면을 생동감 있고 완전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왕은 금성이 대낮에 출현한 사실을 흉조로 여기고, 국가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성제성(以星制星)'의 전략적 사고 하에 각성(角星) 별점을 진행해, 금성으로부터 야기된 불안을 저지해낼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데 그것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의의는 확실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진위 의혹을 풀기 위한 열석광검측(熱釋光檢測)

옛 물건에 대한 진위를 고증하는 일은 일단 힘들고 고생스러우며 또한 완전무결함을 얻기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각 방면으로부터 힐책이 따르게 되는데, 물론 선의도 있고 혹은 악의도 있다.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상세하게 하나하나 해설을 해줘야 한다. 진정한 것인지에 이르러야 의문자로 하여금 진심으로 신복(信服)하게 만드니 오직 '진인사청천명(盡人事聽天命)' 밖에 없는 것이다.

홍도관의 고증에 대해 갑골문 방면의 의혹이 따랐는데,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박대종 저 '상제신(商帝辛)의 점도문(占陶文)에 관한 연구' 논문에 매우 상세하게 설명돼있어 여기서 더 이상 반복해, 이 갑골문은 도대체 어느 때 새겨졌는지, 도기를 굽기 전에 새겼는지 아니면 도기를 구운 후에 새겼는지 등의 의문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7호인 김일만 옹기장은 비록 홍도관 상의 각문을 한 글자도 알지 못하지만 집안 대대로 6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옹기 명인으로, 그가 제기한 견해는 전문적일 뿐만 아니라 권위도 있다. 그는 "홍도관 위에 새겨진 문자는 점토로 기물의 형태를 완성한 다음 완전히 굳기 전에 새기고 나서 자기에 비해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것이며, 이미 구워낸 도기에 이처럼 섬세한 곡선을 새겨넣는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홍도관과 글자'는 함께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그는 또한 "이 홍도관은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가 낮고 묵직해 일반적인 그런 맑고 듣기 좋은 소리 같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장기간 흙속에 매장돼 습기를 받았기 때문이며, 사용한 도토는 곧 강 근처의 토질이다"고 표명했다. 이 두 가지 견해 또한 홍도관이 장기간 지하에 묻혀 있었던 것과 은상 도성의 위치 및 실제정황이 모두 완전히 부합한다.

이밖에, 갑골문이 발견된 연대가 1899년이므로 그 이전에는 이런 종류의 문자를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자연히 위각(偽刻)이 나타나기는 불가능하므로, 홍도관의 소성연대가 1899년보다 더 이르다는 것이 증명되기만 하면 홍도관 상의 갑골문의 진실성은 실증된 것에 해당한다. 그래서 홍도관 소장자인 조 선생은 중국 고문자학자인 중산대학 진위담(陳煒湛) 교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최선진의 '열석광검측'을 진행, 홍도관의 연대를 판단키로 결정했다.

◇검측으로 정신(正身)이 증명된 은나라 유물

2008년 3월 조 선생 등은 홍콩의 고동감정유한공사(古董鑑定有限公司), 중과연발유한공사(中科研發有限公司), 성대전업고문유한공사(城大專業顧問有限公司) 및 중국상해박물관 문물보호 고고과학실험실에 열석광검측을 신청했다. 홍도관의 안전을 고려해 한국에 방문해 시료채취(샘플링)하는 조건이었는데 결과는 오직 성대(城大)만이 받아들여 그 책임자인 량보류(梁寶鎏) 박사가 4월15일 방한했다. 이와 동시에 조 선생 등은 또한 상해박물관 하군정(夏君定)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홍도관 분말을 칼로 긁어내어 국제우편으로 상해박물관에 보내 검측을 진행했다.

2008년 4월23일 홍콩 성대(城大)의 검측보고가 나왔는데 그 결과는 지금으로부터 1465년이었다. 이는 홍도관이 옛 물건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이어 바로 며칠 뒤 4월25일에 상해박물관 또한 검측결과를 제출했는데 그 결과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미만이고, 또 홍도관은 모방제작한 모조품이라 말했으니 양가(兩家)의 감정결과가 1000년 이상 차이가 나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할 도리가 없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이 경과해 전자우편으로 연락, 상해박물관은 제2차검측 및 하군정을 파견키로 결정한다. 그는 2009년 12월14일에 친히 한국을 방문해 직접 시료채취를 했는데, 22일자 발표검측결과는 지금으로부터 480년 전이고 오차는 ±100년이었다. 이러한 검측결과는 비록 홍도관이 진정한 옛 물건임을 실증하는 것이었지만 검측연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신복(信服)케 하기 어려운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그러한 유감을 풀 길이 없어 조 선생 등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영국 옥스퍼드 감정공사에 요청, 최종 검측을 진행키로 결정한다.

2012년 2월26일 영국 옥스퍼드 감정공사는 요원들을 한국에 파견, 시료를 채취했다. 3월8일자로 발표된 검측결과는 지금으로부터 1700~2700년 전이었다. 홍도관은 출토된 지 20년 이상이 지나 비로소 열석광검측을 진행했고 더욱이 출토 후 뜨거운 햇빛을 받고 뜨거운 물로 세척하는 등의 과정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검측결과로 인해, 물건의 연대가 오직 감소할 수는 있지만 증가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지금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홍도관은 정신(正身)을 밝힌 것으로 응당 은상의 고물(古物)이라는 점에 추호의 의문도 없게 된다.

◇역사적 가치 돈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무왕벌주(武王伐紂)', '목야(牧野)의 전쟁'은 우리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제신홍도관의 출토는, 고대도자발전사 발전과정을 명백히 나타냈다는 의의 외에 도관상의 갑골문 또한 은상시대 언어문자학 및 천문성상학 방면에 대한 천석(闡釋)을 갖추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가장 적극적인 의의는 상(商)과 주(周) 왕조가 서로 대항하는 균형성을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기(史記)', '상서(尚書)'에 기술된 역사 내용의 진실성을 다시 한 번 검증해줬다는 것으로, 그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돈으로 값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크다.

◇갑골문 전문가 박대종 전방(專訪), 평범치 않은 홍도관의 내력

박대종은 갑골문을 연구한 한국인이다. 그가 2005년 12월25일 처음으로 제신홍도관을 보았을 때 그의 표정은 거의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는 홍도관 바닥 부위에 새겨진 '占(그 외부에는 囗이 있음)'자가 은상시대 복사 전문용어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것이 은나라의 유물임을 알고 놀랐다. 그가 갑골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지 15년간에 오직 보통의 점복 사건을 기재한 100여 건의 갑골문만을 접촉한 적이 있었을 뿐이고 이번 경우는 전연 그와 같지 않았기 때문에 홍도관은 현저하게 그 내력이 평범치 않았다. 갑골문을 연구한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구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고 또한 만날 수는 있으나 구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의 손은 바야흐로 한 건의 완정한 역사적 사실을 기재한 3000년된 유물일 가능성을 붙잡고, 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말 청천벽력 같았으며, 일순간 온 몸의 감각이 소름이 끼치고 전율했다고 한다.

3일이 경과해 자지도 쉬지도 않고 연구한 끝에 그는 홍도관 견부상의 60개 갑골문자를 명확히 인식했다. 그것은 상왕조 말엽 국가가 긴급사태에 직면해 황제가 별점을 쳐 점괘를 구한 결과를 기술한 것이었다. 또한 그 새김 문자들 중에는 황제와 강적 라이벌의 이름이 명백하게 나와 있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이것이 상 왕조의 역사 사실을 완정하게 기술한 홍도관이며 이처럼 완정하게 보존된 세계 유일의 국보급 유물임을 인식했다.

2006년 2월 박대종은 제신홍도관의 갑골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뒤이어 수년 동안 그는 부단히 논문을 개진했고 외부의 질의들에 대해 일일이 해설해 지금은 의심을 품은 목소리가 갈수록 적어지게 됐으며, 홍도관의 신분은 점차 모두의 인정과 동의를 획득하게 됐다. 이 모두는 박대종의 공헌이며, 그 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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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최용민의 중국은 지금] 中경제의 차세대 상품과 키워드
기사입력 2010.08.20 19:02:10 | 최종수정 2010.08.23 11:00:42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중국에서 수익률이 높은 차세대 상품은 무엇인가.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경제발전을 떠받치고 새로운 기업가를 양성하였다. 외국인 의 기술과 자본도 그에 따라 춤추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중국경제를 떠받친 1세대 제품은 소상품이다. 단추, 넥타이, 신발, 라이터 등이 대표적인 소상품으로 대량생산 방식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기능과 디자인 등 개별적으로 상품을 차별화하기 보다는 많은 양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만드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당연히 낮은 인건비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소상품으로 돈을 모은 중국의 신흥 자본가들은 부동산으로 돈의 물꼬를 돌린다. 경제발전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도시화가 새로운 화두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본주의 국가는 물론 기존의 중국경제와 완전히 다른 가격전략이 등장한다. 싸다고 팔리던 마케팅이 자취를 감추고 비싸서 잘 팔리는 새로운 전략이 부상한다. 가령 아파트를 신규로 분양할 때 경쟁제품에 얼마나 저렴하냐가 투자포인트가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오를 것이냐가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건물)을 분양할 때마다 가격을 올리는 전략이 일반화된다. 설사 미분양이 있더라도 가격을 낮추어 팔기 보다는 계속해서 가격을 높인다. 늦게 사면 손해이고 먼저 사야 이익이 커진다는 논리를 확실하게 소비자에게 심어준다. 그 과정에서 입도선매가 유행하면서 가수요를 만들어 낸다. 분양가의 70∼80%까지 대출해 주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특성상 가만히 앉아 있는 소비자를 바보로 만든다.

이후 잠시 석탄 등 자원류에 돈이 몰렸다. 두자리수의 경제성장률은 필연적으로 자원부족을 수반한다고 예측한 것이다. 너도 나도 자원개발에 나서고 덩달아 국제시세도 오르면서 자원투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러나 광산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자원개발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최근 들어 고수익 산업으로 새로운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너무 빠르게 과열되면서 제대로 시장이 형상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거품이 아니냐는 질시까지 동시에 받고 있는 상품 아닌 상품이 있다. 그 주인공은 창조산업의 대표주자인 그림이다. 왜 그림이 주목을 받을까. 수익률이 높을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고수익 요건은 아직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야 하고 생산성이 낮으면서(대량생산이 안되거나 모방이 불가능해야 함을 의미) 산업표준과 시장규칙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로 요약된다. 최근 중국의 자본가들이 예술산업, 특히 그림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젊고 유능한 화가를 발굴하는데 앞다퉈 나서고 그림경매에 눈을 돌리면서 국제시장에서 중국산 예술품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일반 상품은 시간이 흐르면 감가상각이 되면서 가치가 하락한다. 그림은 그 반대다. 중국인들이 10∼20년을 내다보고 그림에 투자하는 이유다. 세계의 공장이 세계의 화랑으로 변할지 의문표가 그려지지만 전제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윤곽이 완전히 드러난 후에 뛰어 들면 너무 늦다. 안개속일 때 시작해야 높은 이윤이 주어진다. 그래서 앞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최용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choi@kita.net)]

■He is…

‘중국은 지금’ 저자, 한국무역협회 북경지부 근무, 중국대외경제역무역대학 연수,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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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中수요 폭발…상반기 순익 53% ↑
에르메스 아시아 매출 43% 증가
미·유럽도 회복세…하반기 쾌청

입력: 2010-08-02 18:06 / 수정: 2010-08-0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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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담달폰된 아이폰4'…억측 속 방통위까지 발끈

노컷뉴스 | 입력 2010.07.18 17:18 |

[CBS산업부 김정훈 기자]

이달중 국내에서 판매될 예정이던 아이폰4의 출시 시기가 늦춰지자, 그 원인을 두고 책임공방과 억측까지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발끈하고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애플사(社) 아이폰4의 한국 출시 제외는 한국 정부의 승인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밝혔다.

애플사 CEO인 스티브 잡스가 우리 시각으로 17일 새벽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정부의 승인문제가 있어 한국에 대한 아이폰4 출시를 연기한다"고 설명한 것에 대한 해명이다.

기존 아이폰 모델의 국내 출시 시기도 예정보다 미뤄져 '담달폰(다음달 폰)'이라는 오명까지 붙은 터라, 아이폰4를 기다려온 국내 소비자들의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애플은 한국 정부의 승인 문제로 그 원인을 돌렸고, 한국 정부는 '무슨 소리냐'고 발끈하고 나선 것.

방통위 측은 또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어 해명한다"면서 "현재 애플사는 한국 정부에 인증을 신청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아이폰4의 출시 지연을 놓고 일부 네티즌들이 '한국 정부가 삼성전자의 갤럭시S를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자 서둘러 파문을 진화하는 모습이다.

곤혹스러운 건 아이폰4의 한국 출시를 맡은 KT다.
KT측은 18일 오전 "형식승인을 준비하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1-2개월 내에 아이폰4를 출시하게 될 예정"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단말기와 망(網)을 검수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KT 측은 그러면서도 출시를 늦출 정도의 문제가 파악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또 결과적으로는 '7월 중 출시'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고, 애플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약속이 번복된 상황을 KT가 아닌 애플사의 기자회견을 통해 전해들어야 했으며, KT 설명에 따른 애플은 "한국 정부의 승인 문제"라고 표현해 단말기 출시를 놓고 한국 정부까지 나서는 모양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달중 출시가 어려움을 알았으면서도 경쟁사인 SK텔레콤을 통해 판매되는 갤럭시S를 견제하기 위해 '출시 임박' 설을 퍼뜨린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직면하고 있다.

KT 측은 "최상의 상태로 고객들과 만나기 위해서"라고 거듭 해명했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실망에 따른 신뢰하락은 '아이폰 열풍'을 이어가고자 하는 KT가 떠안아야 할 몫이 되고 말았다.
repor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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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잡스 "한국정부 승인 늦어져" 한마디에 억측 난무

이데일리 | 함정선 | 입력 2010.07.17 17:24

- "한국정부 승인 늦어져 30일 출시서 한국 제외"발언에 소비자 혼란

- `갤럭시S 때문이다` 등 각종 억측 난무

- KT "품질 테스트에 시간 걸려 전파인증 신청 늦어"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아이폰4`의 안테나 수신결함에 대한 애플의 해결책을 기다리던 국내 소비자들은 17일 새벽 애플의 해결책보다 더 놀라운 소식을 접해야 했다.

애플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레스 컨퍼런스를 진행, 아이폰4 수신결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오는 30일 2차 출시국가에서 한국이 제외됐다는 소식이었다. 애플이 아이폰4 안테나 수신결함을 인정하고 케이스를 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정부가 왜 막나?" 억측 난무

아이폰4의 출시 일정이 오락가락하면서 아이폰4 출시가 더 연기될 수 있다는 여러 추측이 제기돼 왔지만 2차 출시국 18개 국가에서 한국만 제외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한국 정부의 승인이 늦어져 30일 출시 국가에서 한국이 제외됐다"는 발표에 소비자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졌다. 스티브 잡스의 발언이 `애플이 출시를 연기한 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승인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한국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급기야 네티즌들은 `한국 정부가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애플의 아이폰4 출시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얘기부터 `삼성전자의 갤럭시S 판매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아이폰을 막은 것`이라는 억측까지 나왔다. 이같은 음모론은 일부 매체를 타고 전파되며 또 다른 억측으로 이어지는 혼란을 겪었다.

◇"품질테스트 지연이 원인"..KT-애플간 소통 결함?

그러나 아이폰4의 연기가 늦춰진 것은 KT(030200)의 품질테스트 지연과 KT와 애플의 생각 차이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KT는 아이폰4 출시를 위해 그동안 망 연동 테스트와 품질테스트를 진행해왔다. 이 품질테스트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리면서 정부기관에 신청하는 무선 통신기기 인증(형식 검정·등록)도 늦어진 것이다. 이를 애플측이 거두절미하고 "한국정부의 승인이 안돼"라고 발표하면서 혼란이 빚어진 것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이미 7월로 출시가 예정된 상황에서 KT가 품질테스트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이폰4에 대해 안테나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제기가 나오자 KT가 꼼꼼하게 점검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이 아니냐는 것. 국내에서는 수신결함 등 휴대폰 자체 문제라 하더라도 제조업체보다 고객과 접점을 갖고 있는 통신사에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KT는 "보다 심도있게 테스트를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KT와 애플간에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달랐고,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KT는 출시 전까지는 전파인증을 마칠 수 있다고 판단한 반면, 애플은 아직까지 전파인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제 날짜에 출시하기 어렵다고 봤다는 것. 실제로 KT는 애플에게서 출시연기를 사전통보 받지 못해 프레스 컨퍼런스를 통해서야 소식을 접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하튼 아이폰4는 또 다시 `담달폰`의 불명예를 안게됐다. 자연스럽게 국내 출시 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KT 관계자는 "이른 시일내 전파인증을 끝내고 아이폰4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안정적인 출시를 위해 품질테스트를 진행해왔다"며 "애플 측과 협의, 아이폰4 출시가 더 이상 미뤄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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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아이폰4 만져보니, 질러야할 이유가 보인다

Phone & Mobile/Smart Phone 2010/07/10 13:17 Posted by bruce™
 
 
아이폰4를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어서 라츠(Lots) 강남점에 다녀왔습니다. 국내에서 이렇게 일반 대중에 아이폰4를 공개하기는 아마 처음인것 같은데요, 라츠에서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아이폰4의 초도 예약물량을 가져와서 이렇게 한정된 체험 이벤트를 여는 것이었죠. 운좋게 저도 동참할 수 있어서 어제 다녀왔습니다.

물량이 한계가 있어서 20여명 정도만 참여할 수 있었던 행사였습니다만 아이폰4인만큼 그 어떤 행사보다도 기대와 흥분은 아이폰4 실물이 공개될때까지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뜨겁더군요 ^^
드디어 선을 보인 애플 아이폰4 !! 

(대리점들에서는 아직도 아이폰4G 라고 표현하는 곳들이 많던데 틀린겁니다 ^^)



라츠측에서 준비한 10~20여대의 아이폰4가 공개되자마자 매장안에는 김태희가 출연한 듯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고 라츠 강남점을 지나가던 바깥 사람들은 무슨 연예인이라도 왔나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하면서 지나가더군요 ^^

이렇게 아이폰4는 드디어 공개가 되었습니다. 정식 한국 버전이 아닌 미국버전이라서 USIM 을 통한 통화는 테스트해보진 못했지만 다른 모든 기능은 다 테스트해볼 수 있었네요. 최근 부정적인 이야기 일색인 기성언론들의 모습에 좀 눈이 찌푸려지기도 했습니다만 실제로 아이폰4를 만져보고 써보니 지르긴 질러야겠다는 뽐뿌가 오더군요. 

1시간 좀 넘는 짧은 경험이었습니다만 딱 4가지로 아이폰4를 질러야하는 이유를 가져왔습니다.

아이폰4를 질러야겠다고 마음먹은 4가지 이유


1. 고급스럽습니다


뭐 두께가 가장 얇으니, 생각보다 묵직하고 무겁다느니 하는 여러가지 평가가 있습니다만 그런 수치로 표현되는 부분보다는, 그런 특징들이 모여서 스펙으로 표현은 안되는 부분이 바로 '고급스러움' 입니다.




처음에 아이폰4 유출사진이 돌았을때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반반으로 나뉘었었죠. 애플의 디자인 DNA 로 봐서는 저게 아닐거야, 아이폰 3GS 가 훨 낫네 하는 회의적 의견도 있었던 반면, 저렇게 각지고 엣지가 들어간 알루미늄 디자인이 좋다, 탄탄한 유니바디 맥북과 같은 느낌이라 훨씬 맘에 든다 하는 긍정적 의견도 있었죠.

사진만 보고 그런 다양한 의견을 주신분들, 한번 직접 만져보세요.




눈으로 보고, 손으로 쥐어보는 순간 남다른 고급스러움을 느끼실 겁니다.  기존 휴대폰들과는 차원이 다른 소재와 그에 따른 애플 기기만의 '마감 능력' 이 어우러져 손안에 느껴지는 탄탄한 느낌은 사진으로만 볼때와 많이 다릅니다. 이렇게 얇은 녀석이 묵직하게 다가오면서 전해주는 피트(fit)감은 묵직~한 몽블랑 만년필을 쥐었을때의 느낌이랄까요?

암튼 꽤 '아름답습니다.'
 

2. 빠릅니다


이 행사장에 오신 분들이 대부분 말씀하신 것 역시 빠르다는 겁니다.
같은 iOS4 를 쓰면서도 동작의 속도나 매끄러움은 iPhone 3GS 보다 한수 위라는게 느껴지는데요, 이것이 동일한 기기가 아니라 LCD 해상도를 4배나 키운 이 아이폰4에서 이정도 속도와 쾌감을 준다는 것이 인상적이라는 것이죠.

iOS4 는 진정 아이폰4를 위한 OS 였다는 느낌?
이로 인해 아이폰을 만지고 있으면 느껴지는 특유의 흐뭇함, 이 아이폰4의 속도에서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3. 감동스러운 레티나(retina) 디스플레이


아이폰4를 처음 접해보는 분이라면 누구나 디스플레이 얘기를 안하실 수 없을겁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할 정도로 깨끗한 retina 디스플레이... 정말로 픽셀이 안보입니다. 흔한 얘기로 눈을 씻고 쳐다봐도 픽셀이란게 존재하지 않는듯한 느낌. 그로인해 아이폰4가 보여주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퀄리티는 깜짝 놀랄만 했습니다.




이 부분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비교되는 그런 자료도 좋지만 하루 빨리 직접 보셔야 할것 같아요. 실제 기기에서 느껴지는 아이폰4의 디스플레이 화질은 솔직히 현존하는 미니기기중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디스플레이 하나는 죽인다' 라는 표현이 여기저기서 들리더군요. 이건 아이폰4의 자랑이라기보다 LG 디스플레이를 정말 칭찬해주고픈 부분입니다. AMOLED 와 함께 이런 최고의 퀄리티가 모두 우리나라의 기술이라는게 자랑스럽죠.

실제로 아이폰4를 쳐다보고 나면 주의하실 사항이 하나 생깁니다.

지금 쓰고 계신 스마트폰의 화면을 다시보는 순간 던져버릴지도 몰라요 ㅋㅋ  아이폰 3GS도 예외는 아닙니다. 3GS 랑 비교해도 상당한 격차를 보여주는 화질의 질감탓에 빨리 이거 약정승계남이 될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죠 ^^  특히 아이패드 쓰고 계신 분들... 아이패드의 픽셀이 느껴지실겁니다.


4. 깜짝 놀랄만한 아이폰4의 카메라

아이폰4가 공개될 당시 애플이 공개한 아이폰4의 촬영샘플 사진이 또한 화제가 되었었죠. 사실 그동안 아이폰 시리즈들이 보여준 카메라 화질과 성능은 기대 이하였기때문에 그 애플의 홍보자료를 보고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었는데요
 



스냅 디카를 대체할 아이폰4의 폰카... 좀 후덜덜했습니다.
반신반의했던 제 의구심을 후련히 날려줄 정도더군요. 이 깨끗한 화질이 단순히 레티나 디스플레이때문인가 싶었습니다만 실제로 사진을 확대해보고 모니터로 확인해본 결과 레티나 디스플레이만의 도움은 아니더군요

아이폰4가 채택한 이면조사형 센서의 위력이 이런건가 싶었습니다. 왠만한 컴팩트 디카정도가 된다가 아니라 왠만한 컴팩트 디카들보다는 오히려 낫습니다. 후면 카메라는 물론 셀카나 페이스타임(FaceTime) 용도인 전면 카메라도 꽤 좋은 화질을 보여주더군요.

이녀석 카메라를 만져보고 난 지금, NEX5 로 재구성을 하려던 제 카메라 라인업을 또 다시 재기획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





이 4가지가 대표적으로 골라본 아이폰4 뽐뿌의 이유인데요, USIM 으로 통신이 가능했다면 논란이 되고 있는 안테나 수신율 여부도 테스트해볼 수 있었을텐데 그 부분은 아쉽네요. 이 행사를 주최했던 분이 현장에서 하는 얘기로는 일본도 왔다갔다하면서 체험했는데 일본과 한국에서 그런 부분 느끼지 못했고 일본에서도 그런 문제는 전혀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이폰4까지 지르면 이거 스마트폰만 해도 몇대인지 너무 많아지겠는데 말이죠. '마누라야 미안해' 하기도 그런데... 그래도 와이프 몰래 질러야 할지 고민입니다.

끝으로 값진 경험 선물해준 Lots (라츠) 강남점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 계속 이 아이폰4를 공개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시간 이후로 모든 라츠 매장에 아이폰4가 전시되었답니다. 지금 달려가시면 바로 아이폰4를 만져보실수 있어요 ^^
 
Daum view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더 선명하고 얇아진 아이폰4…한국엔 7월 시판

헤럴드경제 | 입력 2010.06.08 07:48 |

 아이폰의 차세대 모델인 '아이폰4'가 마침내 공개됐다.
 
 아이폰4는 오는 24일부터 미국 등 5개국에 먼저 판매되고 한국에는 7월에 들어온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7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 월드와이드 개발자 콘퍼런스(WWDC)에서 아이폰4를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기존 아이폰 3GS보다 뛰어난 화질이다. 3.5인치 디스플레이에 인치당 960X640 해상도를 지원, 아이폰 3GS보다 4배 더 선명해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했다.
 

 카메라 기능도 강화됐다. 앞면에도 카메라를 장착해 영상 통화가 가능하다. 영상통화는 현재 아이폰4 간에 가능하고, 와이파이로만 작동한다. 카메라 화질도 500만 화소로 업그레이드 되는 등 HD급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고, 5배의 줌인 및 아웃 기능을 갖췄다. LED 플래시를 장착해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 촬영을 원활히 할 수 있다.
 
 중앙처리장치(CPU)는 아이패드에 채용된 A4 프로세서를 탑재했으며, 512MB의 메모리와 16GB 및 32GB 이상의 용량을 갖췄다.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기존 모델과 유사하지만, 두께는 얇아졌다.
 
 여기에 자이로스코프 기능을 채용해 회전감과 입체감을 활용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자이로스코프는 3개 축으로 동작을 인식해, 균형감과 입체적 동작을 구현하는 기능이다.
 
 아이폰4는 지난 4월 공개된 아이폰 운영체제(OS) 4.0을 기반으로 해 기존 아이폰에서 불가능했던 멀티태스킹 기능 등 신형 OS의 장점을 그대로 담았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탑재된 기존 운영체제의 이름인 아이폰 OS 4.0을 iOS 4.0으로 변경했다.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 모아 놓을 수 있는 통합 폴더와 여러 계정의 이메일을 하나의 편지함으로 모을 수 있는 통합 이메일 기능도 새 모델로들어왔다.
 
 새 모바일 광고 플랫폼인 아이애드 역시 애플 제품 처음으로 탑재돼,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등의 콘텐츠와 광고를 연계시켰다. 아이패드에서 처음 도입된 전자책 서비스인 아이북스를 아이폰4에도 채용했다.
 
 또 A4 칩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배터리 크기를 늘려 성능이 음성통화 기준으로 40%가 향상됐다.
 
 아울러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검색엔진인 '빙'을 기존 구글 및 야후와 함께 기본 검색엔진으로 탑재했다.
 
 아이폰4는 오는 15일부터 예약을 받아 24일부터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국에서 판매된다. 7월에는 한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벨기에, 캐나다 등 40여개 국가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아이폰 3GS를 판매했던 KT가 최근 애플 측과 아이폰4 출시를 협상해온 만큼, 이번에도 KT를 통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이 외에도 올해 내로 40여개 국가에서 더 출시해 총 88개 국가에서 아이폰4를 내놓을 계획이다.
 
 가격(미국 기준)은 16GB 모델이 199달러, 32GB 모델이 299달러로, 미국에서는 AT & T를 통해 2년 약정으로 출시된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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