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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8 [백가쟁명:유주열] 공자 문화공동체(孔子 文化共同體) [중앙일보]
글로컬 /중국2011.02.08 01:31

[백가쟁명:유주열] 공자 문화공동체(孔子 文化共同體)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1-02-07 오전 9:47:12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의 마지막 방문지가 미국의 최초 최대의 공자학원이 있는 시카고의 윌톤 페이톤 칼레지 고등학교였다. 그는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선생들을 중국에 초청하였다. 미국을 방문한 후주석 한 손에는 450억불의 돈다발과 함께 다른 한 손으로는 공자를 안고 있었다.
한 때 중국에서는 공자를 盜丘라하여 근대화의 장애물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대혁명 때 그 절정에 이르렀으나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공자의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공자 열풍은 2008년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본격화 되었다. 당시 산동항공의 캐빈에는 공자의 어록인 논어 글귀로 차 있었다. 그리고 개막식에는 3000명의 공자제자들이 논어를 암송하는 퍼레이드를 벌렸다.

그 후 “공자”라는 영화로 중국에서는 세계적인 히트작 “아바타”를 눌렀다. 그리고 노벨 평화상에 필적 하여 孔子賞을 제정하였고 지난 1.11에는 중국의 얼굴인 천안문광장에 높이 9.5m의 孔子像을 만들어 놓았다.

마오쩌둥이 20세기 혼란의 중국을 통일하였다면 21세기의 중국은 孔子에게 길을 묻겠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30년의 성공을 거두어 세계 제2위의 富를 이루었으나 빈부 격차의 중국 사회는 2500년 전 춘추시대 중국의 경제가 풍족해졌으나 오히려 禮(질서)가 혼란스러웠던 공자시대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공자라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서울의 주요 대문은 공자의 가르침으로 간판을 내 걸었다. 禮를 숭상하는 崇禮門(남대문) 仁을 일으키는 興仁之門(동대문) 義를 돈독히 하는 敦義門(서대문)이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매일 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교화시켜 온 셈이다. 그리고 성균관을 위시하여 전국에 200여 개의 孔子廟(향교)가 봄 가을 석존대제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다.

공자의 어록이 담긴 論語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달해 준 사람이 백제인 王仁이었다. 중국의 宋대 이후 북방의 소수 민족에 의해 지배되어 유학이 쇠퇴되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오히러 유학을 존숭하여 일반인의 생활 속까지 뿌리를 내렸다.

2007년 말 일본의 후쿠다야스오(福田康夫)수상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를 찾아 일본의 정신문화에 영향을 준 공자에게 존경을 표시하였다. 지금도 일본 東京의 文京區 東京대학이 있는 곳을 本鄕(홍고)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에도(江戶)막부 초기 도꾸가와이예야스(德川家康)의 젊은 참모 하야시라잔(林羅山)의 사설학원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을 에도막부는 공식 교육기관으로 만들어 공자를 숭배하는 의미에서 이곳의 지명을 취푸의 옛이름인 昌平鄕으로 불러 왔다. “홍고”는 창평향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인근의 유시마(湯島)聖堂은 공자를 모신 일본 최대의 孔子廟이다. 유시마 성당에는 매년 공자에게 제사지내는 大成殿이 있고 세계 최대라는 孔子像도 있다.

16세기 중국에 온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 의해 “孔夫子”(Confucious)로 서양에 소개된 공자의 人本사상은 유럽에 중국의 바람을 일으켰고 볼테르. 몽테스큐등 당시 계몽학자들은 공자사상으로 절대왕정을 비판하였다.

공자사상을 중국의 소프트 파워로만 여겨 방관할 것이 아니다.
공자를 중국의 공자, 한국 일본의 공자로 구분할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랫동안 정신문화에 영향을 준 공자의 인류 보편적인 가르침을 연대하여 汎孔子思想을 연구 발전시키는 韓中日의 공자문화공동체(Confucious Community)가 필요하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