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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5 겸손함과 만남, 창의성의 두 얼굴
마켓 생태계/지식2011.04.15 08:19

겸손함과 만남, 창의성의 두 얼굴 창의성에 대한 바른 자세는? 2011년 04월 15일(금)

광속은 속도의 단위 중 가장 빠른 단위이다.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다. 이는 지구 둘레(4만3천킬로미터)를 일곱 바퀴 반 도는 것과 같다. 인간의 과학 기술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인 음속(마하 1)은 1초에 340미터를 가는 속도로서 시속으로는 1천224킬로미터에 해당한다. 현재 개발된 가장 빠른 전투기인 F-22 랩터의 최고 속도는 마하 2.5로서 시속 3천100킬로미터이다. 굉장히 빠르긴 하지만, 광속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속도이다.

광속으로는 화성까지 4분 30초가 걸리고, 지구에서 64억km 떨어진 명왕성까지 5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런데 이렇게 빠른 빛의 속도로도 은하계에 진입하려면 500만년이 필요하다. 이런 천문학적 숫자에 비하면 인류의 역사는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

현생 인류와 동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대략 1만년밖에 되지 않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쓴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 문자가 등장한 것도 6천년밖에 되지 않았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태평양의 필리핀 동쪽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로 해저 1만 1천34미터이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는 해발 8천848미터이다. 그런데 인간은 장비가 없이 잠수할 경우 수심 127미터까지만 가능하고, 잠수함으로는 6천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다.

과학의 발전과 한계

▲ 인류는 명왕성까지 무인 우주선을 보냈지만, 정작 지구 지면을 뚫고 들어간 기록은 1만 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의 층상 구조는 가장 바깥 부분부터 지각, 맨틀, 핵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각의 두께는 30~200킬로미터이고, 맨틀은 깊이가 2천890킬로미터에 이른다. 그리고 핵에 해당되는 지구 땅속 가장 깊은 곳은 6천378킬로미터까지 내려간다. 유인 우주선이 지구에서 38만4천403킬로미터 떨어진 달에 착륙하였고, 명왕성까지 무인 우주선을 보냈지만 정작 지구 지면을 뚫고 들어간 기록은 1만 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더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잠재력은 믿지만 그 한계는 존재한다.

과학 기술은 인간 복제를 코앞에 두고 있을 정도로 크게 발전했지만, 복제는 복제일 뿐 창조는 아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경이로움은 끝이 없다. 물론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류가 크게 진보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과학의 덕분에 문명 발달도 가능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은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존중과 맹신은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적 맹신에 따른 인간의 기고만장함은 실패로 이어진다는 점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짧은 인류의 역사, 은하계 속 작은 별 지구,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지를 깨닫는 것. 즉, 인간과 과학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허한 모습이 창의 정신의 참모습이다.

창의성 이끌어 낸 역사적인 ‘만남’

겸손함과 함께 창의성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이 ‘만남’이다. 역사적으로 좋은 스승과의 만남을 살펴보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 하이든과 베토벤·슈베르트의 만남, 슈만과 브람스의 만남, 브람스와 드보르자크의 만남 등 훌륭한 스승과 재능 있는 제자의 만남은 모든 영역에서 큰 발전을 이끌어 낸 바탕이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 공리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밀의 아들이다. 제임스 밀은 아들이 어린 시절에 고전 철학과 외국어를 접하도록 해주었고, 아들과의 토론을 위해 시간을 내려 애썼다. 존 스튜어트 밀이 훌륭한 사상가로 성장하는 데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볼프강 모차르트 역시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음악교육에 힘쓴 결과, 5세 때 작곡을 시작하였고 피아노는 물론 바이올린까지 연주해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어린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기획한 3년 5개월간의 유럽 연주 여행을 통해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 그 재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견문도 넓힐 수 있었다. 밀과 모차르트의 경우에서 보듯 아버지의 헌신은 값진 삶을 산 인물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역할을 해냈다.

▲ 모차르트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까지는 아버지와 친구의 도움이 컸다. 
좋은 친구와의 만남도 예로 들어보자.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우정은 그들의 음악 세계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즉흥 현악4중주를 함께 연주하였고, 모차르트는 1782~1785년 작곡한 여섯 곡의 현악4 중주곡(K.387, K.421, K.428, K.458, K.464, K.465)을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현재까지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차르트의 위대한 유산들은 타고난 재능 외에도 아버지의 헌신과 음악 세계를 나눌 수 있던 친구 덕택이다.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두 거성으로 추앙받는 괴테와 실러의 우정은 서로의 문학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 것은 괴테가 1794년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우정은 1805년 실러가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10여 년 남짓한 기간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실러는 괴테가 시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갖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러는 1797년 편집한 ‘연간시집’에 괴테와 공동으로 쓴 시를 모은 ‘크세니엔’을 발표했다.

괴테와 실러 사이에 오갔던 ‘괴테·실러 왕복 서한’은 순수하면서도 진지한 두 위대한 문호의 풍요로운 정신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실러는 괴테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그의 본업인 극작에 전념, 1799년에 3부작 ‘발렌슈타인’을 완성했다. 또 괴테가 23세부터 쓰다가 중단한 ‘파우스트’를 다시 써 1808년 그 전반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실러의 관심과 격려 덕분이었다.

이처럼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만남은 상호 의존성을 토대로 더 큰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모든 만남의 가능성에 그 문을 열어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개인의 인생사만이 아니라 역사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진리이다.

조명진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

저작권자 2011.04.15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