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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아트페어2010.09.27 00:30

'예술+과학기술' 접목 넘어 산업을 노크하다
소셜미디어와 충북의 미래지도 <3>문화적 변화 : 예술과 기술이 창조한 신세계
2010년 09월 26일 (일) 19:57:09 지면보기 5면 김정미 기자 warm@jbnews.com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 2010(INDAF2010)이 지난 1일 인천 송도 투모로우시티에서 개막했다.

모바일 비전, 무한미학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예측 불가능한 미래 예술의 다양성을

선보인다.

인다프 2010은 그동안 봐왔던 전시와는 분명히 차별화된 즐거움을 주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측면도 그렇지만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구현되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미술이 소셜미디어의 범주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관객과 작품이 혼연일체가 되고 물질세계와 가상세계는 경계가 없어지고, 미술, 건축, 음악,

디자인, 과학, 미디어아트 등 장르의 벽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가 바꿔놓고 있는 문화적 변화,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문화 콘텐츠, 인다프 2010이

제시하는 미래예술의 청사진을 들여다본다.

   



인다프2010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창조한 신세계를 열어보인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이 총동원된 전시에선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무색하다.

프로세스 중심의 디지털 아트 특성에서 알 수 있듯 전시는 참여적 성격을 갖는다.

기존 아날로그 예술이 제작된 결과물을 가지고 관객들을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했다면

디지털 아트는 능동적 참여를 요구한다.

류병학 큐레이터는 이러한 디지털 아트의 특징을 '플랫폼'으로 설명한다

"디지털 아트는 관객들의 의견과 생각, 경험, 관점 등을 서로 공유하기 위한 일종의 플랫폼을 뜻해요.

만약 여러분이 그 점에 주목한다면 왜 디지털 아트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지 알게 될 겁니다.

'인터랙티브(interactive)'에 초점을 맞춘 디지털 아트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경험한 오늘날 관객은

디지털 아트에 참여, 공유, 개방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디어 아트 개척자 '로이 애스콧'의 초대전은 이같은 의도를 잘 반영한다.

그의 작품은 관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이러한 작업을 1960년에 시도했다니 디지털 아트의 선두주자답다.

그는 롤랑 바르트의 '분산된 저자' 개념을 '분열된 작가성'으로 확장시킨다.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 '텔레매틱스 아트(telematics art)' 역시 관찰자와 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웹2.0의 특징인 참여, 공유, 개방은 물론 집단지성을 구현하는데 앞장선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인다프 총감독을 맡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도 마샬 맥루한을 언급하며

'세계가 우리 손안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예술은 인다프2010을 관통하는 주제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선보인 작품 역시 증강현실(육안으로 보이는 현실에 스마트폰을

들이대면 가상세계가 보인다)을 이용한다.

김준 작가의 '때밀이:푸른 물고기'는 여자의 알몸에 때밀이 타올을 대고 벗겨내면 문신을

새겨넣을 수 있게 했으며 김태연 작가의 '하이퍼 피쉬'는 스크린에 투사된 동그란 원에

스마트폰을 갖다대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했다.

회화를 전공한 작가도 있지만 프로그래머도 있고 작곡을 전공한 가수도 참여하면서

디지털 아티스트의 지평도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대표적인 프로세스 중심 작품은 한젬마의 '팝 메일 송'이다.

한젬마의 대표 작품인 '못-인간'에 스마트폰을 가져가면 텍스트 입력을 위한 자판이 등장하고

원하는 텍스트를 쓰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자음과 모음에 입력된 사운드가 텍스트에 따라

흘러나오는 작품이다. 관객은 물론 작가도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소셜미디어가 바꿔놓을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영국 우스먼 하크의 '네추럴 퓨즈' 양수인 작가와 미국의 데이비드 벤저민이 제작한

'라이프 사이클' 등은 미래사회가 집단지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네트워크 사회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네추럴 퓨즈'는 제한된 에너지원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네트워크에 참여해 환경에 미치는

나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주고, '라이프 사이클'은 구글검색과 연동시켜 구글에서 친환경적 단어가

얼마나 검색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결과가 달라지게 해놓았다.

이들 작품은 기술의 진보와 예술의 융합이 다층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다프 2010에도 한계는 있어보인다.

참여적 성격을 강조했지만 로이 애스콧의 작품처럼 능동적 참여에는 못미치는 느낌이다.

한젬마의 작품을 제외하곤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만 관객의 참여를 허용했다.

그대(작가) 안의 PC에서 관객의 개입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미래의 미술관이 가능하기 위해선, 전시장이 곧 작업실이 되기 위해선

집단지성을 활용한 예술의 참여적 기능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 김정미



"당신의 모바일이 미래의 미술관이다"

   

<류병학 인다프2010 큐레이터 인터뷰>

- 모바일 아트에 대해 질문하기 전에 아날로그 아트와

디지털 아트가 어떻게 다른지 듣고 싶어요.

"모든 예술작품은 '정신'을 지향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제가 미술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국한해

본다면, 아날로그 아트가 '물질'을 다루었다고 한다면,

디지털 아트는 '비(非)물질'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물질/비물질은 결과물/프로세스에 대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아날로그 아트가 '결과물' 중심적이라면,

디지털 아트는 '프로세스' 중심적이라고 말입니다."

-모바일 아트를 구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60년대 후기소비사회로 진입한 미국에서는 '소비'를 개념으로 팝아트(pop art)가 등장했습니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소비의 대명사인 '백화점을 미래의 미술관'으로 예언했습니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 선생님은 1984년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TV를 통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방영했지요.

 백 선생님은 모든 사람들이 TV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미래의 미술관을 대중매체'로 보았던 것이죠.

1990년대 각 가정마다 PC가 보급되면서 미술관은 온라인상에 '디지털 미술관'을 구축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2010년 무엇이 미래의 미술관이 될 수 있을까요?

미래의 미술관은 대중매체와 컴퓨터를 넘어 모바일로 나타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스마트폰(smart phone)은 휴대폰과

개인휴대단말기(personal digital assistant;PDA)의 장점을 결합, 즉 휴대폰 기능에 일정관리,

팩스 송·수신 및 인터넷 접속 등의 데이터 통신기능을 통합시킨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독특한 특징은 완제품으로 출시되어 주어진 기능만 사용하던 기존의 휴대폰과는

달리 수백여 종의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설치하고 추가

또는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제 인터넷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우리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의 무선인터넷을 이용하여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직접 접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브라우징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접속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스마트폰은 우리가 원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직접 제작할 수도 있고,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맞은 인터페이스를 구현할 수 있으며, 같은 운영체제(OS)를

가진 스마트폰 간에 어플리케이션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모바일은 세상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주고받기 위한 매체를 넘어서 세상이 존재케 하는 도구로 출현하고 있습니다."

-요즘 '컨버전스(convergence)'란 용어가 유행할 정도이지만 그동안 아티스트와 공학자의 접목은

결코 순조롭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바일 아트'는 흔히 말하는 예술과 기술과학의 접목을 넘어 산업과도 연계한 전시라고 하던데요.

"예술과 기술과학이 산업과 연계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섭(convergence)'이 될 것입니다. 기

존 아티스트들과 공학자들의 연계를 넘어 특히 산업과의 연계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볼 경우

'미션 임파셔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삼성과 KT 그리고 SK텔레콤)은 저희가 추진하는 예술과 기술과학에

기술적 지원 이외에 경제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제 미술도 소비가 아닌 생산에 관여하는 신성장동력(新成長動力)으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 김정미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소셜 미디어의 대화 법칙
by 비전 디자이너 | 2010. 07. 21

(1) 소셜웹

소셜 미디어는 유용한가?

스마트폰이 유행이다. 연말에는 스마트폰이 500만대란다. 아이폰 4G와 갤럭시S를 모르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모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시사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필수다. 박근혜 의원님까지 트위터를 하기 시작했다. 경영을 하든, 정치를 하든, 트위터나 소셜 미디어는 이제 선택과 취향이 아닌, 필요와 전략의 문제가 됐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같은 유행과 필수의 흐름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전제는 소셜 미디어는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는 유용할까? 아니 유용해야 할까? 애시당초, 그 유용하다는 말이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1973년. 이제는 추억으로 기억해야 할 해에, 독일 아동 문학가 미카엘 엔데가 <모모>라는 책을 썼다. 한 마을의 외곽 고대 극장에 모모라는 출신 성분도 애매한 여자아이가 산다. 실상은 거지이지만, 이 아이를 위해 기꺼이 마을 사람들이 돕고 돌보는 것은 이 아이의 ‘듣는 능력’ 때문이다. 이 아이가 듣고 있으면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기꺼이 하게 되고, 그 ‘소통’을 위해서 사람들은 이 아이에게 헌신한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마을에 회색남들이 몰려온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 정원에 있는 시간의 꽃을 노리고 있다. 좀 더 경제적이고 윤택한 삶을 말하며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 말에 농락당한 마을 사람들은 예전의 정신적 풍요 대신에 물질적 편리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열심히 못 사는 삶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놓치고 잃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돌아갈 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모모는 자기 친구들을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이 시간 사냥꾼 회색남들을 대적하여 싸우기 시작한다. 이 모모를 호라 박사와 그의 거북이 카시오페아가 돕는다. 그들의 덕분으로 출중한 듣기에 탁월한 느림까지 갖춘 모모에게 근면하고 화려한 회색남들은 처절히 무너지고, 마을은 다시 예전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다.

왜 이 모모의 이야기를 할까? 그것은 모모와 우리가 경험해온 ‘미디어’ 소위 ‘매스 미디어’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매스 미디어는 모모와 얼마나 다른가? 모모는 듣고 있지만, 매스 미디어는 말한다. 매스 미디어는 우리가 말한 것을 듣고 전하기 위해서,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을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언론학자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그 자체로 대화의 법칙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했다. 그가 이 미디어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 것은 그 자체가 내부에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밤을 낮으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켰다는 의미에서, 전구다. 그러나 그 전구는 일방적이다. 그 빛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햇빛처럼 생명을 자라게는 못한다.

그것은 분명 낮이지만, 그렇게 태어난 낮이, 문명이 우리에게 얼마나 더 나은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까. 따라서 무언가를 얻었을 때는 반드시 다른 또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의미에서 매스 미디어가 우리에게 가져간 것은 모모였다. 우리에게 말하는 큰 목소리(Big Voice)를 얻게 된 대신에, 우리를 통제하는 거대 미디어(Big Brother)를 얻게 된 대신에,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법을, 소통의 법칙을 상실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통한다는 것, 말한다는 것은 언어학자 촘스키가 말한다는 것이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 요소라고 말했던 것을 생각했을 때 우리의 ‘인간다움’의 중심적인 성격을 잃어버려왔던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뜬다는 것은,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국내외에 출몰하는 포스퀘어, 아임 등 각종 온오프믹스의 사람들과 사람들을 서로 엮어주는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의 등장은, 그 것은 단적으로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미치도록 외로웠는가, 소통을 그리워했는 가를 보여준다. 더 효율적인 삶, 경제적인 삶에 납득을 해오면서도, 그러면서도 놓치고 온 소통의 가치와 나눔의 행복이 소셜 미디어가 회복시킨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스마트폰의 점화로 촉진된 소셜 미디어의 진화가 굳이, 꼭 유용해야 하나? 경제적이어야 하나? 물론 그것은 돈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소셜 미디어의 장기 생존을 위해서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모모의 곁에서는 수 백 수 천 가지의 이야기를 지어냈으면서도 회색남들에게 영혼을 판 후에는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조합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던 모모의 친구 지지처럼 진정한 장기 생존은 소셜 미디어의 진정성(authenticity)과 자발적 창조성(generativity)가 지켜져야 가능한 문제다.

소통의 가치를 상실한 소셜 미디어는 더 이상 ‘소셜’이란 말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것은 소셜의 가면을 쓴 커머셜 미디어일 뿐이다.

비록 닷컴의 버블에 휩쓸려 가긴 했지만, 1999년 인터넷에 공표됐다가 2000년에 출간된 <클루트레인 선언>이라는 루터의 종교개혁 선언서를 본딴 책은 시장(market)은 원래 시장’터’(marketplace)였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인터넷이 붐을 이루는 것은 원래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 만들어진 경제의 뿌리로, 그곳으로 인간이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촌에 일고 있는 IT라는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 그리고 그 미디어를 통한 인간과 인간의 대화의 시작과 상호 작용의 극적 확대는 사람들이 그 동안 너무나 서로와 이야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눔정신(sharism)이 동서냉전이 끝난, 21세기, 소셜 웹 시대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1984년, 애플이 조지 오웰이 경고한 빅 브라더로서의 IBM을 격파하는 것을 상징한 <1984> 광고물을 화려하게 선보이며 맥킨토시를 시중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약 20여년 후. 우리는 한 때 MS의 독점 체제에 무너졌던 그 애플이 부활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디어와 IT를 하나로 융합하는 선두에 선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디지털이 어느 곳에나 있는 사회, 스마트폰과 증강현실, 소셜 미디어가 삶의 일부가 되고 있는 시대, 그럼에도 그 ‘소셜’이 여전히 꿈이고, 이상이고, 열정에 불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법칙이고, 원리이고, 추종해야 할 변화로 수용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주목하고 있을 때는 그 놓쳤던, 잃었던 ‘소셜’함을 보고 있는 것인가.

소셜 미디어는 유용한가. 아니, 유용해야만 하나.

그 것을 묻고 싶다.

블로터닷넷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콘텐츠/블록체인2010.04.19 19:38

상상 그 이상의 ‘증강현실’

한겨레 | 입력 2010.04.19 16:40 |

[한겨레] 과학향기

2018년 우리의 미팅문화는 어떻게 바뀔까?

카페에 마주앉은 초식남 A군과 건어물녀 B양의 초면 대화를 상상해보자.

"인식 좀 해도 실례 안 될까요?"

"예. 원하시면."

B양이 살짝 목례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상대방 얼굴을 비추자 화면에 바로 A군의 신상정보 이미지가 뜬다. 성명 이대박, 나이 32세, 2012년 한국대 경영학과 졸, SX 마케팅부 대리, 2016년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 학교 지어주기 참가...정보인증 구글 퍼셉션.

"마다가스카르에 학교 지어주기? 음 훌륭하시네요. 저는 방콕 족인데. 초식남씨는 왜 절 인식안하세요? 제가 인식도 안 될 정도로 보이나요? 저도 구글 인식서비스 가족이라구요. 힝."

이상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만들어 낼 미래의 미팅문화를 그려 본 것이다. 증강현실은 1990년 보잉사의 톰 코델(Tom Caudell)이 항공기 내부 설계를 보여주기 위해 실제와 가상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 기술에서 비롯됐다.

이런 시도들은 올드 미디어(old media)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얼마 전 방영했던 TV드라마 '공부의 신'에서는 장면을 보강해주는 별도 컷이 삽입되거나, 실사 컷과 만화 컷을 병행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이처럼 현실의 부족한 점을 보완, 증강하려는 다양한 시도 중의 하나가 증강현실이다.

2010년 현재 증강현실 기술은 건물의 밖에서 내부를 보여주거나, 잡지 표지에 나온 모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다. 63빌딩 앞에 서서 스마트폰에 건물을 인식시키면 외부 모습뿐만 아니라 내부의 수족관, 아이맥스 등 고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들이 영상메시지로 동시에 제공된다. 또 일부 글로벌 패션잡지들은 표지에 코드를 삽입해서 소비자가 입력장치에 그 코드를 인식시키면, 패션모델이 실제로 다양한 옷을 입고 말하고 걷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한 종류지만 현실과 강하게 융합돼 그 영향력과 친화력이 크다. 증강현실은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를 꿈꾸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작은 이데아다. 그러므로 매력적이다. 그럼 또 한 번 증강현실의 가까운 미래로 가보자. 이번엔 기업마케팅과 산업현장으로.

2017년 2월 YTN에서 방송된 증강현실 내용은 이럴지도 모른다.

"증강현실 시리즈 1차 방송입니다. 미디어리서치에 의하면 증강현실이 일반화되면서 기업 AR광고비가 2016년 기준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총 광고비의 15%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가 2050년대로 가정한 현실이 35년이나 먼저 구현되는 셈입니다.

방송국,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AR콘텐츠 사업에 뛰어들면서 현재 AR콘텐츠 등록업체만 100개를 넘고 있습니다. 시장의 23%를 점유한 모 결혼정보회사는 중국, 인도,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했는데, 그곳의 사회신뢰지수, 문화적 차이로 시장개척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중국 이용자의 거짓정보 제공이 30%에 달한다는 비공식자료가 입수되었고, 한 결혼정보회사는 현재 50억 수준의 피해배상 소송에 계류된 상태입니다. AR의 명암, 베이징 000특파원 연결합니다."

■ 인식의 확장, 증강현실

캐나다 미디어학자인 마샬 맥루한이 1964년에 쓴 '미디어의 이해-인간의 확장'에서 '기계는 인간의 확장이고 미디어는 마사지다'라고 지적했는데, 미디어의 마사지 효과는 증강현실에서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증강현실은 하이패스처럼 전파를 통해 정보를 원격 인식하는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기술과 GPS기술 발전에 애플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앱스토어 서비스기능이 등장하면서 만들어낸 인식기능의 확장이다. 이 기술은 앞의 두 가지 예화에서 보여주듯 개인이나 집단정보에 대한 인식서비스, 광고, 교육 콘텐츠, 여행, 게임, 쇼 비즈니스, 방송 콘텐츠 등으로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으며 점점 더 확장될 것이다.

현재의 IT리더들은 앞으로 가장 유망한 앱스토어 사업 분야 중 하나로 이 증강현실 기술 및 서비스를 꼽고 있다. 기업에게는 위기면서 황금알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의 산업이다. 물론 긍정적인 것만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용자나 지성의 측면에서만 살펴보자.

■ 증강현실의 부작용

기술은 본질적으로 중립적이다. 그걸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악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응용이 가능한 대인인식 증강현실은 성추행범, 흉악범 인식이나 습관적 사기전과자들을 가려내는 데는 전자 팔찌나 지문인식보다 탁월한 효과를 내겠지만 스팸메일처럼 프라이버시 침해나 거짓정보 범람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인간의 기억력이나 사고력, 상상력에도 영향은 불가피하리라 본다. 노래방이 나오면서 사람들의 가사암기와 음미능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고, 내비게이션은 사람들의 거리 인식과 방향 감각능력을 약화시켰다. 검색포탈이나 위키피디아가 지식의 넓이 확장에는 기여했지만 깊이 있는 지식은 아직 만들지 못하는 것을 보라. 요즘의 '모르면 포털에 물어 봐'처럼 증강현실은 '들이대면 다 나와' 경향을 심화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이고 트렌드이고 경제의 밥줄이 될 증강현실을 마냥 거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쇠퇴'에서 생각하는 힘을 상실해 가는 일본의 젊은층, 관료, 언론인들을 비판한 일본의 석학 오마에 겐이치. 그는 인터넷의 부작용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인터넷 없이 살 수 있나? 부작용을 찾기보다는 집단지성이나 동시성, 소통 능력 같은 장점을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말한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균형을 잡는 능력과 집단지성이 있다. 집단지성이 기술에만 몰리는 이 불균형 현실을 다만 우리 스스로의 생각하는 지성으로 경계할 수 있다면. 증강현실은 세계 경제와 지성에 또 한 번의 도전이 될 것이다.

글 : 황인선 KT & G 부장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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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