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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빈곤의 시대,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by 비전 디자이너 | 2011. 02. 01

2010년 1월20일 대통령의 첫 라디오, 인터넷 연설의 주제는 ‘G20 세대’였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쌓은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는 요지였다. 연설 내용 가운데 G20 세대 중에서 페이스북 설립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20대 글로벌 기업 창업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정부 지원 벤처 융성론’의 논리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인 마크 주커버그가 과연 미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성공한 인물인가가 의문시되었기 때문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정부로부터 사무 공간을 임대받고, 경영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받는 벤처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1인 기업가인가?

이 답을 구하기 위해 이 새로운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구글의 검색엔진과 페이스북의 소셜 네트워크와 같이 시장을 뒤흔드는 서비스를 만드는 핵심을 생각해 보자. 과연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도 마크 주커버그가 있었다는 것이다. 1999년 9월 이동형 대표는 형용준, 정태석씨 등 6인과 싸이월드를 창업한다. 싸이월드는 2004년 2월 런칭한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보다 약 4년은 더 시대를 앞선 서비스였다. 당시 급증한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도시로 몰려든 인구가 아파트 주민으로 수용됐듯이, 자연스럽게 싸이월드 고객이 됐다. 인터넷화는 곧 싸이월드화였고, 싸이월드는 대한민국의 ‘국민 인터넷 서비스’였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이들 창업자들의 빈한한 초창기와 주커버그의 탄탄한 성공 가도와의 큰 차이다. 작년 개봉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극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실리콘밸리의 주목을 받은 주커버그는 초기에 충분한 벤처 자금을 받아 기록적인 속도로 성장한 기업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싸이월드가 혁신적 서비스를 창조한 결과는 그 인기와 맞물려 증가한 빚더미다. 여타의 신사업들이 그렇듯이, 비즈니스 모델이 명확히 세워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자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관리, 유지, 보수하는 비용 자체가 곧 적자였다. 결국 싸이월드는 17억원이나 되는 빚에 시달리다가 서비스를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국내 대기업인 SK커뮤니케이션즈에 서비스를 매각한다. 기술과 서비스의 차이를 넘은 투자의 차이가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서로 다른 운명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들 투자를 만드는 배경의 어떤 차이가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간의 운명을 가른 것인가. 그리고 정부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이 투자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에 정부의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관련된 문제의 뿌리를 생각하기 위해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인터넷이 사이버 대항해 시대를 열기 전에 있었던 기술 혁신에 의한 모험과 정복의 본류, 유럽 근대의 대항해 시대로 돌아가보자.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있었던 유럽의 대항해 시대, 그들의 부의 근본이 된 항해, 식민지 개척의 시작은 포르투갈의 해상왕자 앙리케부터다. 그는 미개척지인 보자도르곳에 포르투갈 선원들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선박 개조, 지도 제작 등 각종 항해에 관련된 실질적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 결과 그의 꿈은 그 이후 세대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 크로스토퍼 콜럼버스, 바르톨로뮤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 등과 같은 인물들은 유럽의 지도를 바꿨고, 그들의 발견은 유럽의 근대사를 인류의 미래로 확장시켰다.

동시에 이 위대한 대항해의 후원자와 함께 기억해야 할 인물은 16, 17세기 유럽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중 한 명인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신적 권위, 인간적 권위를 넘어서 무엇보다도 실험과 관찰을 동반한 이성을 강조한 베이컨의 영향은 지도 밖의 암흑 세계를 공포의 대상에서 적극적 탐험의 대상으로 바꿨다. 콜럼버스의 도전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을 앙리케 왕자가 제공해 주었다면, 그를 위한 정신적, 사상적 기반은 베이컨 등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인들이 제공했다. 그들은 전문가들의 지식을 답습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적 철학관을 전복하고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 혁신과 창조의 가치를 격상시켰다.

이 대항해 시대와 극적으로 상반되는 예가 14~15세기 중국 명나라에 있다. 영락제의 명령을 받아 남해에 일곱 차례 원정을 떠났던 환관이자 장군인 정화는 그의 함대를 동남아,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보낸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유럽의 대항해 시대보다 70년이나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은 명나라의 조공 무역 네트워크를 확장하는데 그쳤다. 이후 유교 관료들의 반발로 더 이상 원정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당대의 명나라는 선박 제조술, 항해법 등 기술적 기반에서 유럽에 비해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술을 활용하는 철학의 부재가 결국 대항해를 개막하는 영광을 유럽에게 양보하게 했다.

이 수백년 전의 대항해 시대가 오늘날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주는 시사점은 간결하다. 해당 기술에 투자하는 정책적 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비록 우리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그 결실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초기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자. 그 공통점은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싸이월드는 그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결국은 대기업에 매각이 되었지만, 페이스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 가치 59조에 머잖아 더 큰 기업 가치를 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싸이월드가, 크게는, 소셜 네트워크의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일까? 아니, 좀 더 크게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시대에 던지는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 평가의 기준은 당장의 투자 이익 회수인가 아니면 잠재적인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인가?

과거 전신, 전화, 라디오, TV, 영화, 케이블, 인터넷 그 어느 미디어 중에서 초기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하지 않았던 것이 없었다. 마르코니는 전신을 선박들이 안개 속에서 통신을 하기 위해서 개발했다. 안토니오 모치는 상호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 명령을 염두에 두고 전화를 만들었다.(편집자 주 : 그레험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는 기존 사실은 지난 2002년 미 의회에서 안토니오 모치로 바로 잡혔다.) 안토니오 모치는 모바일에서 문자 기능이 모바일 문화의 핵심적 문화를 차지할 줄은 초기 GSM 기술 표준이 제정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나중에 사용된 비즈니스 모델은 개발자들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창조한 것이었다. 그처럼 이용자들에 의해서 해당 기술이 관심과 흥미를 받게 된 후에도, 라디오와 TV의 경우는 RCA의 사코프, 영화의 경우는 파라마운트의 아돌프 주커, 케이블의 경우는 CNN의 테드 터너, 인터넷의 경우는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슨 같은 인물이 등장해 해당 기술의 상용화를 본격화하기 전까지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이상의 예들이 들려주는 것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상용화되고, 대중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까지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많은 인내와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신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첨단 미디어 혁명들은 당장 그 것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해서 매장시켜 버렸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생텍쥐베리가 말한 것처럼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누어 주는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야” 한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과연 무엇이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는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생각해볼 때, 초기 벤처기업 생태계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들고 나온 벤처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할 수 밖에 없고, 그 기술과 서비스의 참신성을 사회의 대중적 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누군가가 지원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역할의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엔 그것이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 문화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가 근대화 이후 해왔던 전통적 후원자 역할에 근거해 그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지난 1월20일에 발표된 대통령 성명, 그들의 마크 주커버그 육성론의 정체인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역할에 대한 주장이 그 역할을 뒷받침하는 원칙과 기준이 무엇이냐는 논의를 잠들게 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그들의 마크 주커버그 육성론이 설득력을 가지게 할 만한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 정부가 견인하는 벤처산업을 상상할 경우, 정부가 말하는 벤처기업, 소위 1인 창조 기업의 가치가 우리가 말하는 구글, 페이스북 등의 파괴적 기술을 이끄는 시장 선도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같은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혁신’과 ‘창조’는 그 풍성한 논란을 떠나서, 실질적으로 대접을 높이 받을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그리고 그 근거는 앙리케 왕자의 신념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상, 그리고 영락제의 야심과 정화의 한계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 벤처의 미래가 싸이월드의 과거와 페이스북의 과거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는가?

이상의 의문이 그 성명 발표가 세간에 화제를, 그리고 논란을 불러 일으킨 이유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의문을 불식시킬 만큼, 설득력 있는 답변을, 그리고 실질적인 정책을 듣지 못했다.

(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andrewfeinberg/2325430224. CC BY.)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13조원대 주식부자 주커버그는 누구

어릴 때 이미 프로그래밍 신동

[아시아경제 김민경 기자] 골드만삭스 등이 페이스북에 4억5000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페이스북 설립자이자 CEO인 마크 주커버그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이번 투자에서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는 500억달러(약 56조원)로 평가받았다. 산술적으로 보면 페이스북 주식 24%를 보유한 주커버그는 120억달러(약 13조원)의 주식부자가 되는 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도 지난해 포브스가 69억달러로 추정했던 주커버그의 지분 평가액이 이번에 두 배로 뛰어, 150억달러 규모의 주식을 각각 보유한 구글 설립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물다섯을 맞는 해에 13조원의 주식부자로 등극한 주커버그는 어떤 인물일까.

◇어릴 때 이미 프로그래밍 천재 = 정신과의사 어머니와 치과의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주커버그는 프로그래밍 신동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중학생일 때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데이비드 뉴먼을 개인교사로 고용해 프로그래밍을 가르쳤다. 고등학교 시절 집 근처 대학원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강의를 듣기도 했다.

고교 때 '시냅스미디어플레이어'를 개발해 마이크로소프트(MS), 에이오엘(AOL) 등에서 채용 제의를 받기도 했다.

만 스무살 되던 해 하버드대학 기숙사에서 룸메이트 더스틴 모스코비츠 등과 함께 페이스북 운영을 시작해 6년만인 지난 2010년 7월 이용자가 5억명을 돌파했다.

◇실패·송사 등 좌절도 = 주커버그가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2004년 8월에는 당시 각광받던 p2p파일공유 서비스 '와이어호그(Wirehog)'를 선보였으나 경쟁 서비스에 묻혀 이듬해 사업을 접었다. 2007년 선보인 소셜광고기법인 비콘 역시 개인정보침해 논란으로 중단했다.

송사에 휘말린 것도 여러 건이다. 주커버그는 창업구상을 도용한 혐의로 하버드대생이었던 윙클보스 형제에게 피소됐고, 지난 2008년 현금 200만달러와 120만달러어치의 페이스북 지분 제공에 합의했다.

지난해 6월에는 페이스북의 한 이용자가 시행한 '무하마드그리기대회' 때문에 신성모독 혐의로 파키스탄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같은 해 6월에는 폴 세글리아가 페이스북 지분 84%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어왔다.

◇재산 50% 기부서명 동참 = 극적인 성공을 이룬 만큼 기부활동도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뉴어크의 공립학교를 지원하는 1억 달러 규모의 '스타트업:교육재단'을 설립했다. 12월에는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이 주도한 유명인들의 재산 50% 이상 기부운동인 '기부서약(Giving Pledge)'에 동참했다.

◇경쟁업체 출현, IPO 등 과제= 올해 주커버그의 최대 과제는 기업공개(IPO)로 예상된다.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수 차례에 걸친 외부 투자는 기업공개를 위한 서막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현재 페이스북, 트위터 등 비공개주식의 장외거래를 조사 중이다. SEC 규정에 따르면 주주 500인 이상인 비공개 기업은 수익, 매출 등의 재무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있어 자연스럽게 기업공개 수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재무 정보 공개시 현재 야후, 구글도 뛰어넘은 페이스북의 기업가치가 엄격히 재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경쟁업체의 출현도 점쳐진다. 업계에서는 페이스북 퇴사자들이 만든 오픈소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디아스포라'에 주목하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지난해 11월부터 비공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편 향후 몇 년간은 페이스북의 독주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페이스북에 대적할 SNS의 출현'을 전망했으나 실현되지 않아 '빗나간 전망'의 불명예를 안았다.

김민경 기자 sky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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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페이스북과 아이러브스쿨의 명암 벤처로 살아남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 2010년 11월 15일(월)

오는 18일 개봉 예정영화 ‘소셜 네트워크(데이비드 핀처 감독)’는 ‘페이스북(facebook)’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할리우드가 실존 인물이면서 전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인 주커버그의 성공신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은 페이스북이 그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익히 알려졌듯이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페이스북을 창립, 대학을 중퇴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마크는 2003년 가을 하버드의 비밀 엘리트 클럽의 윈클보스 형제에게 하버드 선남선녀들만 교류할 수 있도록 ‘하버드커넥션’ 사이트 제작을 의뢰 받는다.
 
일종의 비밀 미팅사이트로 볼 수 있는데 마크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맥 교류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개발한다.

실제로 마크 주커버그는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페이스북의 초기 버전인 학생 교류사이트를 개발했으며 여기에서 한 발 나가 오늘날의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현재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대략 3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으며 마크의 재산은 지난해 20억 달러에서 올해 69억 달러(약 8조원)로 급증했다. 

▲ 페이스북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소셜 네트워크' 

페이스북 승승장구, 아이러브스쿨 자취모호

한편 이 페이스북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한국에도 존재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신기원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아이러브스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99년 김영삼씨가 만든 아이러브스쿨은 ‘싸이월드’와 더불어 토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명사격인 업체였다. 주커버그의 성공신화처럼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해 성공한 김 씨의 아이러브스쿨은 90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한국 벤처기업 성공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2000년 8월 야후의 500억 원 인수제안을 거부하고 국내 업체에 매각하려 했던 아이러브스쿨의 운명은 당시 지분매각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리면서 급속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김 씨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한국의 창업문화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반 이후 인터넷 등 국내 IT 업계에서 대기업 외에 신규로 창업해 성공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며 “개인적으로 한 번 맛본 쓰라림을 극복하고 재기하기엔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외에 신규로 창업한 사례가 없었다’는 김 씨의 말은 한국에서는 더 이상 아이러브스쿨 같은 창업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벤처기업이 탄생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90년대 말 한국사회에 불어 온 닷컴 열풍을 타고 한국 증시를 새롭게 쓴 수많은 벤처기업들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닷컴 기업들의 퇴출요인에는 비이성적 투자로 인한 주가상승과 버블붕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벤처 1세대인 김 씨의 생생한 경험담은 단순히 김 씨 개인만의 한탄만으로는 볼 수는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 돈을 벌려면 ‘등록 시켜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증권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설로 통하고 있다. 여기서 등록한다는 얘기는 코스닥에 등록을 한다는 의미이다. 코스피에 상장을 하듯 코스닥 등록을 통해 액면가보다 몇 배 이상으로 주가를 키운 뒤 어느 시점에 회사를 팔아야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흔히 기업사냥꾼들이 말하는 ‘먹튀(먹고 튀는)’ 전략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으로 회사를 창업했다고 해도 반드시 그 회사를 끝까지 경영해야 할 이유는 없다. 증권가의 정설처럼 좋은 투자자와 회사를 건실하게 운영할 수 있는 경영자에게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판다면 본인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한 일례에서 보듯 그러한 성공사례도 존재한다.

성공매각과 외부환경 기업매각 현격한 차이

그러나 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는 것과 매각을 해야할 수밖에 없는 외부 환경요인에 의해 회사를 매각하는 것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비단 김 씨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한 중소기업들이 자사의 특허를 놓고 대기업과 법적 투쟁을 벌이는 사례는 한국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기실 의미 없는 일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한국사회에서 고착된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을 갖고 벤처정신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원동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고급 이공계 인력들이 해외로 유출하거나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이른바 전문 직종으로 쏠리는 편중현상이 점점 심화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다.

지금은 전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 서비스 업체인 구글이나 동영상 서비스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유튜브 역시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빌 게이츠 전 회장이 하버드대 재학 시절 설립할 당시에는 벤처회사였다. 현재는 디즈니에서 매수한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는 현 애플 CEO인 스티븐 잡스가 설립한 조그만 영화사였다.

한국에도 다음, NHN,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등 벤처로 시작해 괄목한 성장을 한 뛰어난 기업들이 한국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같은 기업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와 같은 벤처기업들이 한국 증시에 상장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바이오벤처 암젠, 30년간 바이오 자이언츠 아성 유지

IT와 분야는 다르지만 바이오산업은 21세기 핵심성장 동력 사업으로 선진 주요국들은 시장을 점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 분야이다. 대표적인 바이오기업으로 미국의 암젠(Amgen)사가 있다. 암젠은 10여명의 과학자가 모여 80년대 초 세운 조그만 벤처회사로 출발해 세계최초 나스닥 상장 바이오기업이자 지금은 세계 최대의 바이오기업이다. 이 암젠사는 ‘적혈구를 늘려 빈혈을 치료한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바이오 업계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암젠이 개발한 EPO(Erythropoietin)는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암젠의 성장을 견인한 효자상품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하나 개발하려면 세계 최강 미국에서도 최소한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만 그렇다는 얘기다. 초기 실험실 아이디어에서부터 임상 3상까지 모든 과정을 완료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연구개발비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연구비가 필요한 신약을 만약 암젠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개발하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벤처기업들도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는 한국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업계에선 판단한다. 국내의 경우 LG생명과학이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2003년 미 FDA 최초 허가 신약 ‘팩티브’를 출시한 이래 신약개발이 속속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기업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설사 아이디어가 있더라고 그 아이디어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우기 어려운 기업 내, 외적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암젠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벤처회사가 한국사회에서 배출되기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11.15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페이스북 창업자에게 SNS의 미래 듣는다
크리스 휴즈 처음으로 한국 온다…소셜돌풍 주역 그의 입을 주목하라
부동산 재벌 트럼프 주니어는 부동산 시장 어떻게 전망하나
작년 노벨경제학상 윌리엄슨 교수 `영속 기업의 조건은` 설레는 명강연
기사입력 2010.10.05 16:50:12 | 최종수정 2010.10.05 17:38:31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제11회 세계지식포럼 10월 12~14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

크리스 휴즈, 트럼프 주니어, 윌리엄슨 교수(왼쪽부터)

요즘 국내에서 트위터가 인기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최강자는 단연 페이스북(facebook)이다. 페이스북은 출범 6년여 만인 지난 7월 전 세계 가입자 수 5억명을 돌파했다. 특히 지난 1년간 회원 수가 무려 3억명가량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전 세계 인구의 8%를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페이스북을 국가로 본다면 중국, 인도에 이은 세 번째 인구 대국이 된다.

또 트위터가 뚜렷한 수익원을 찾지 못한 채 올해 매출 전망치가 400만달러에 불과하지만 페이스북은 일찌감치 온라인 광고라는 금맥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지난해 매출이 8억달러(9000억원)를 넘어섰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SNS로 자리매김한 페이스북을 공동 창업한 크리스 휴즈(27)가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휴즈는 하버드대 룸메이트였던 마크 주커버그(현 페이스북 CEO), 더스틴 모스코비츠와 함께 페이스북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현재 휴즈 공동 창업자는 페이스북에 없다. 페이스북이 성공 가도를 질주하던 2007년 홀연히 페이스북을 떠났기 때문. 한 정치인 웹사이트를 제작ㆍ관리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정치인이 바로 미국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였다.

그는 오바마 캠프에 합류한 뒤 `마이 버락 오바마 닷컴(My.BarackObama.com)`이란 사이트를 만들었다. 마이보(MyBO)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 사이트는 오바마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조직화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거주지역 우편번호를 마이보에 입력하면 반경 80㎞ 내 위치한 오바마 지지자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도록 함으로써 지지자들끼리 서로를 격려하며 동질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2008년 미국 대선에서 18~29세 투표자 중 66%가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휴즈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디지털 혁명이었다.

그는 "소셜웹의 급성장으로 전 세계가 대변혁을 겪고 있다"며 "페이스북과 유사한 소셜웹들이 보다 촘촘하게 연결되는 세상을 만드는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휴즈 공동 창업자는 10월 14일 세계지식포럼 현장에서 `페이스북 이야기, 그리고 소셜웹의 미래`를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진행한다. 어떻게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됐고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지, 그리고 페이스북과 다른 소셜웹들을 활용해 기업들이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휴즈 공동 창업자는 특별강연 외에도 `소셜네트워크가 여는 신세계 : SNS 기반의 세상` 세션에 참여한다.

올해 세계지식포럼에 참여하는 연사 중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영리더는 바로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맏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32)다.

도널드 트럼프 회장은 세계 최고층 주거용 빌딩(90층) 트럼프 월드타워 등 100여 개 자회사를 거느린 미국 최대 부동산 재벌이다. 트럼프 회장 본인이 아버지가 운영하던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부동산 개발에 대한 감을 익히고 경영수업을 쌓았듯 트럼프 주니어 부사장도 아버지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세계지식포럼 취재팀은 최근 뉴욕 5번가에 우뚝 솟아 있는 70층짜리 트럼프 타워 25층에서 트럼프 주니어 부사장을 만났다. 바로 위층인 26층은 트럼프 회장 집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회장 집무실 위쪽은 모두 주거용으로 분양됐고 트럼프 회장 집은 꼭대기층인 70층이다. 190㎝에 육박하는 훤칠한 키의 트럼프 주니어 부사장은 다혈질적이고 카리스마가 강한 아버지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미국 최대 부동산 제국을 이끌어갈 그는 "부친으로부터 디테일에 대한 열정과 완벽주의자가 될 정도로 일에 몰입하라는 배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우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가지 차별성을 내세웠다. 바로 트럼프 제국의 세계화다.

그는 "해외여행을 내켜하지 않는 아버지가 미국 시장에 집중하는 동안 아시아, 하와이, 멕시코, 스코틀랜드 등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내 몫이 됐다"고 설명했다. 해외 사업을 총괄하면서 더 큰 독립성을 가지고 한층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트럼프 주니어 부사장은 특히 아시아 등 신흥시장 부동산 투자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공격적으로 신흥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부사장은 올해 세계지식포럼 둘째날인 13일 `글로벌 부동산 시장과 트럼프식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단독 연설을 한다. 이어 "영리더스 라운드테이블 : 창의성, 창의성, 그리고 창의성` 세션에도 참석해 창의성과 새로운 리더십에 대해 말한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올리버 윌리엄슨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교수 강연도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해당 연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관례적으로 세계지식포럼에 참여한다는 전통을 올해도 이어가게 될 윌리엄슨 교수는 "기업은 항상 거래비용이 적게 드는 쪽으로 변화한다"는 가치사슬 법칙으로 유명하다.

지난 50여 년간 무려 250여 편의 논문을 썼고 78세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히 학문 탐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 경제학 연구 분야인 시장 자체보다 시장을 둘러싼 외부 환경 연구에 천착해왔다. 이른바 신제도경제학파다.

1975년 저술한 `시장과 위계(Market and Hierachies)`가 대표 저서로 꼽힌다. 이 책을 통해 윌리엄슨 교수는 "거래비용이 시장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고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가치사슬에서 수직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윌리엄슨 교수의 명쾌한 설명에 무릎을 친 글로벌 기업들이 거래비용 절감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윌리엄슨 교수는 올해 세계지식포럼 현장에서 뉴노멀 시대를 맞아 바람직한 기업 조직 형태와 효율성 극대화 전략에 대해 강연한다.

[박봉권 기자 / 신헌철 기자 / 차윤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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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