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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지원/입법2010.10.05 22:31

[2010국감 문방위] 나경원, "위기의 문화재 콘텐츠 개발 시급"
[폴리뉴스 이청원 기자 ] 기사입력시간 : 2010-10-05 17:48:47
위기의 무형문화재를 살리기 위해 콘텐츠 개발로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의 나경원
의원은 “문화재의 콘텐츠화와 재창조를 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의원은 “문화재청의 기본 업무는 가치와 상태 보존이며 문화재에 대한 보수•정비가
주요 사업”이라면서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문화유산을 우리만의
콘텐츠로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체험하고 향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점에서 단순한 보전•관리•전승에서 문화재의 콘텐츠화 및 전통의
재창조로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또 나 의원은 무형문화재 콘텐츠 개발에 대해 “전승자의 고령화, 전승교육자 수 감소,
전수교육관 재정 부실 등의 요인으로 무형문화재가 단절될 위기가 처해있으며, 현재
약 30%의 무형문화재는 전승자라 없는 실정”이라 강조한 뒤 “무형문화재를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며, 이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제고하고 무형문화재 분야를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시키며 지역경제 및 미술 시장의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형 문화재 디지털 콘텐츠화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문화재의 활용 내지
콘텐츠화와 관련된 예산은 문화재 수리•보전 관련 예산 2,100억의 2% 수준인 47억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나 의원은 “문화재청은 기록물의 DB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바,
이 사업은 현재  문화재 관련 자료를 취합•정리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문화재의 콘텐츠와를
정책 목표로 삼고, 취합•정리된 DB를 공공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나 의원은 문화재청이 지난 2008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문화재 지리정보시스템(GIS)
에 대해 “문화재 GIS는 매장문화재의 존재 가능성을 예측하여 문화재 조사의 효율성을 높이고
 개발 사업을 원활하게 함과 동시에 문화재 훼손 가능성을 줄이고자 한 것임에도 불구, 현재
문화재 GIS 시스템은 폭넓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 의원은 “이는 매장문화재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경우 지가가 급락하고 개발에
장애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상세한 조사 결과가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말한 뒤
 “이에 대한 활용 대책 중 하나로 ‘GIS 문화재 안내 시스템’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나 의원은 “급증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재 정보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면 효과가 배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
이청원 기자 lgoon@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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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무형문화재 보존도 '멀티미디어 콘텐츠' 시대
[유니온프레스=이준걸 기자] 무형문화재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무형문화재 콘텐츠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동영상, 영화, 음반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인간문화재는 각종 지역축제에 참여해 보유한 무형문화재를 전수하기도 한다.

울산 동구, 일산별신굿 동영상 제작

울산시 동구는 음력 10월 1일인 오는 11월 6일 동구 일산진마을 일대에서 일산별신굿을 재현, 진행과정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영구보존하기로 했다. 전통문화 보존계승 사업비로 시비와 국비 등 4천400만원을 확보했다.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2호인 일산별신굿은 2년에 한 번, 음력 10월 1일날 마을주민의 평안과 어선들의 풍어를 비는 마을제다. 울산과 동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굿으로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 하지만 일산진마을의 주민이 줄면서 비용충당이 어려워져 지난 2007년에는 행사를 갖지 못해, 2008년 행사 이후 동영상 제작을 추진해 왔다.

한국민요연구회, 민요 음반 발매

한국민요연구회는 2006년부터 개발한 향토소리 공연을 발전시켜 이번달 '관현악과 함께하는 지역향토소리' CD로 발매했다. 점점 맥이 끊겨가는 각 지역의 향토민요 총 34곡을 2장의 CD에 담았다.

한국 전통 농업노동요, 어업노동요, 장례노동요와 같은 소박한 향토 가락들이 전문적인 소리 명창들의 세련된 목소리와 화려한 관현악 반주, 그리고 대중의 취향에 맞춘 편곡을 통해 문화콘텐츠로서의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이 작업의 기획 및 선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준보유자인 김혜란 이사장과 한국민요연구회 회원들이 힘을 모았다. 편곡은 이경섭 외 7명이 맡았으며 관현악 반주에는 이관웅의 지휘아래 관현악 편성 국악실내악단 17인이 동원됐다.

영화촬영 현장에서 만난 인간문화재

지난 7월 22일 안양 병목안 공원, 박찬경 감독의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영화촬영 현장에서 안양예고 학생들에게 진도강강수월래를 전수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제 제8호 김종심(65) 전수자를 만날 수 있었다. 

안양예고 학생과 시민 40여 명이 전수자의 지시에 따라 진도강강수월래 리허설을 했다. 이날 촬영한 내용은 안양예고 학생들의 공연을 보던 시민들이 흥에 겨워 함께 강강수월래를 하는 장면이다. 김종심 전수자는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강강수월래를 가르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바빠. 이곳저곳 축제도 많이 불려다녔지. 진도 엄마들 팀이 있는데, 조교들과 이수생들까지 합쳐 4~50명이 대형 버스를 타고 축제하는 곳에 방문해 강강수월래를 춰. 제주도, 광주, 진도 국악원까지 가르쳐서 결국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소문이 나서 인천 시립단원까지 가르쳐야 했어."

지난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이후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강수월래를 소개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지내온 김종심 씨. 그녀가 매김소리(선창)를 하면 그 소리를 따라 부르며 모두 원무를 춘다. 매김소리에 맞춘 강강수월래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9월 중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종심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자의 매김소리에 맞춰 안양시민들이 강강수월래를 배우고 있다 ⓒ유니온프레스 이준걸 기자

2006년 현재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현황은 99개소로, 전통문화 체험, 일반인 및 학생 교육 또는 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되면 장학금을 받으며 보유자에게 무형문화재를 전수받을 수 있다. 한국중요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에 따르면 2005년 4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는 197명이고, 전수교육조교는 301명, 전수장학생은 100명이다.

한국민요연구회 관계자는 "수천 년이 넘게 입에서 입으로 전승돼 온 우리의 문화재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건 기록보다 더 큰 구전의 힘이었지만, 이젠 이 구전과 전수도 거의 끊겨 보존 작업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콘텐츠화 하는 노력이 계속돼 반가운 소식이 자주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저작권자ⓒ 1995 데일리 문화종합 '유니온프레스' 업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뉴스/세미나/2010.05.21 04:35

흥과 한으로 '병신춤' 공옥진 1인 창무극 마침내 무형문화재

  • 입력 : 2010.05.21 03:00
천대와 멸시, 흥(興)과 한(恨)이 뭉쳐진 온몸으로 관객을 주무른 광대 공옥진(79)이 지방 무형문화재가 된다. '병신춤'으로 더 잘 알려진 공옥진의 1인 창무극(唱舞劇)은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라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창조한 노래·춤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다.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위원장 김정호 진도문화원장)는 20일 심의위원회를 열고 공옥진을 '판소리 1인 창무극 심청가' 보유자로 지정예고했다. 전남도 문화재위 관계자는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심청가' 등 판소리에 바탕을 두고 발전된 것으로, 보존 전승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공옥진은 1931년 전남 영광에서 명창 공대일의 딸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일본으로 보내져 신무용가 최승희 밑에서 식모로 살았던 그는 해방 후 돌아와 광주 양림동 다리 밑에서 공연했다. 전통 판소리나 재담극을 춤과 소리로 엮어 모노드라마로 만든 것이었다. 1970년대 후반 서울에 진출한 그는 곱사춤·원숭이춤에 걸쭉한 사투리를 곁들이며 사랑받았다. 대학축제에 불려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1998년 뇌일혈로 쓰러지고 나서는 기력이 달려 거의 공연을 못했다. 아주 가끔 관객을 만날 때는 "공옥진, 이 촌년이 쓰러져부렀어요. 입도 돌아가고, 손가락도 안오그라들고, 발도 마비됐어요…" 하면서도 웃는지 우는지 야릇한 얼굴로 춤추고 재담과 소리를 했다. 공옥진은 뇌일혈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쓸쓸하고 궁핍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지난해 언론보도로 알려지며 다시 주목받았다. 그의 집으로 보약과 쌀 등을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은 이번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되면서 맥을 이을 수 있게 됐다. 전남도 문화재위는 "공옥진의 공연 자료를 모으고 활용하는 작업과 함께 전수 활동도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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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