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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2011.02.11 04:21

과학에 대한 편견과 문화로서의 과학 상아탑에 대한 오해 2011년 02월 11일(금)

과학지식인 열전 영웅신화로서의 과학은 과학자들에게서 능동적인 역사 참가자로서의 역할을 빼앗아간다. 과학지식의 내용이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영웅신화는 필연적이다. 그것은 과학지식이 지닌 비역사적인 특징과 일반성을 추구하는 과학의 독특한 성격으로부터 기원한다. 하지만 과학과 사회가 상호작용하는 영역에서, 그러한 영웅신화는 ‘문화로서의 과학’,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의 전통을 망각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과학에 대한 대중과 철학자의 편견

이상하(과학철학자)는 ‘과학자는 역사 참가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대중의 편견’과 ‘철학자의 편견’으로 구체화했다. 대중의 편견은 다음과 같다.

“대중의 편견: 오로지 실험과 관측에 의거해 과학의 객관성이 확보된다. 경험적인 학문일 수 밖에 없는 과학은 다른 학문 분야와 구별되는 동시에 분리되어 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오랜 훈련 과정 속에서 세상의 다른 일에는 무관심해진다1.”

이러한 대중의 편견은 ‘상아탑 속의 과학자’라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과학자는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존재하며, 전문분야의 지식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발언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대중의 편견은 다음과 같이 공략할 수 있다. 즉, “과학의 대상은 경험이고, 경험이 과학의 출발일지라도, 경험만으로 과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의 역사 의존성이 드러난다. 소박한 과학의 역사 의존성을 인정하게 되면 과학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고전역학에 함축된 세계를 명백히 그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일종의 습관이다. 그 어떤 과학자도 수식을 통해 물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다. 그렇게 그려내 보는 것은 고전역학을 형성했던 세계관과 역사적 배경을 추적해야 가능하다. 이러한 추적 과정에서 과학은 다른 분야와 분리되어 다루어질 수 없다. 역사 속에서 과학과 타 분야의 상호 의존성을 의식한 과학자는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 무관심할 수 없다. 과학이 오로지 경험적으로 성립하며 다른 분과와 분리되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2.”

과학에 대한 철학자들의 편견은 다음과 같다.

“철학자의 편견: 과학의 발달은 비역사적인 어떤 구조를 갖고 있다. 과학자 집단은 그 구조의 운반체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작업 속에서 발견되는 철학적 문제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관심을 갖더라도 그 관심은 과학 발달의 구조와 무관하다. 과학자는 과학 발달 자체에 대한 능동적인 역사 참가자가 될 수 없다. 과학자는 패러다임 등에 함축된 퍼즐 풀기 과정의 운반체이거나 아니면 이론통합 과정의 운반체이다3.”

이러한 철학자의 편견은 ‘지식 운반체로서의 과학자’라는 이미지로 집결된다. 즉, “과학자들은 정상과학에서 과학혁명으로 이동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비역사적인 구조의 운반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4.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 철학자들의 이처럼 오만한 태도는 과학자들은 물론 철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철학자들의 편견은 과학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동시에 철학적이며,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이러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공략될 수 있다.

“양자역학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은 동시에 철학적 문제들이다. 이론 물리학자들이 다루는 철학적 문제들은 양자역학을 둘러싼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폭을 넘어서 훨씬 복잡하다. 과학자들 중 일부는 반드시 그들이 다루는 과학 내에 함축된 비정합성과 철학적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 어느 시대든 그 당시 이론이 안고 있는 비정합성과 철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 이론은 더욱 정교해진 동시에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다5.”

과학에 대한 과학자 스스로의 편견

어느 시대든 자신의 작업을 철학적으로 고민했던 과학자들이 존재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과학자들 중 일부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고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민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제도들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현대사회 속에 사는 과학자들은 다른 시대를 살았던 과학자들보다 더욱 민감하게 이 문제를 의식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과학자는 역사 참가자가 될 수 없다는 과학자 스스로의 편견으로 나타난다.

“과학자의 편견: 과학과 기술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로 존재한다. 따라서 ‘순수과학’의 이상은 포기하고 ‘과학기술’이라는 개념 속에서 연구를 수행해야만 한다. 호기심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과학 연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과학은 국가의 대규모 지원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거대과학으로 변모했고, 국가의 지원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과학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창출해야만 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작업의 철학적 문제들을 고민할 시간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한 작업은 더 이상 과학적 능력을 발휘하기 힘든 노년의 은퇴한 과학자들이 취미로나 하는 것이며, 그런 작업에 흥미를 느끼는 과학자들은 과학적 능력이 형편없기 때문에 그런 분야로 후퇴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작업 이외의 것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6.”

이미 대중의 편견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역사적/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증명된 ‘상아탑 속의 과학자’의 이미지가 과학자들 스스로의 편견 속에 재등장한다. 이러한 과학자 스스로의 편견은 이미 앞에서 기술한 영웅신화적 과학이 도달하는 곳이다. 현대사회를 사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암묵적으로 이러한 편견에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암묵지(暗默知)는 실험실에서 도제관계를 통해 전수되고 확산된다.

국가와 대중이 원하는 ‘이상적인 과학자’의 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과학자’다. 노벨상은 과학지식이 인류에 기여했다는 보증수표다. 따라서 노벨상은 과학지식이 실제로 응용되어 실생활에 도움을 준 것으로 판단된 분야에 우선적으로 수여되는 경향으로 편향되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과학자들의 사고도 그러한 방향으로 세뇌되어간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자들에 의해 시도된 영웅신화적 과학을 강화시킨다.

과학지식이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 하고, 과학자들이 국민들의 세금에 대해 그러한 의무를 가진다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이 과학자들 스스로의 정체성조차 확립하지 못한 채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큰 문제일 수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채, 단순히 인류에 봉사한다는 신념으로 과학에 종사하는 과학자는 자신의 작업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단순한 신념, 즉 과학자의 인류봉사라는 신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가 어떤 방식으로 인류에 봉사해왔으며, 어떤 방식의 봉사가 인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철학적/윤리학적 고민은 과학자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든다. 현대사회의 과학기술이 위험사회로 가는 도구가 된다는 대중과 철학자들의 신념에 대해, 과학자들은 주체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철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이 세워둔 틀을 따라서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가꾸어온 전통, 그 전통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여야만 한다.

과학자들의 윤리의식이란 노벨상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승자로 알려졌던 과학자들의 부정행위를 통해서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7. 그것은 지극히 수동적인 윤리의식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의 연구윤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자들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강요된 그러한 윤리로는 과학자 스스로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없다. 오히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지니고 있었던 그 '잊혀진 전통'을 다시금 되살림으로써만 그러한 윤리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문화로서의 과학,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에 대한 소고

과학자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과학은 어떻게 사회와 상호작용해 왔는가? 과학의 주체로써 과학자들은 어떻게 그 역할을 수행해 왔는가? 이러한 탐구를 통해 수동적으로 부여된 과학자들의 윤리, 과학의 윤리가 능동적인 모습으로 탈바꿈될 수 있다. 역사 속의 과학, 지성사 속의 과학자들은, 사회로부터 윤리적 기준을 수동적으로 부여 받아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그런 약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역사 속의 과학은 모든 분야의 학문에 영향을 미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과학지식이라는 비인간적인 체계로서만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그 주체로서의 과학자, 당당한 사회 속의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9세기와 20세기는 그러한 당당한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들이 활약했던 세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체계로서의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과학자들의 그러한 모습은 점차 희미해져 갔지만, 한번 확립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성사 속에서 과학자들은 당당히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단순히 그들의 직업인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식인의 한 축으로서 과학자들은 투쟁해 왔다.

▲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이제 ‘문화로서의 과학’과 ‘도구로서의 과학’을 들춰 볼 때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의 진정한 영향력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도구로서의 과학’에 만족하는 한, 과학자들은 역사의 참가자가 될 수 없다. 도구로서의 과학 속에서 과학자는 역사의 이방인이 될 뿐이다.

문화로서의 과학을 향해 나아갈 때에만 과학자들은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 문화로서의 과학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지식인’이었던 자신들의 과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지식인으로서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화로서의 과학,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의 모습을 통해, 영웅신화 속의 과학이 지닌 한계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영웅신화는 과학자를 과학이라는 상아탑 속에 가두고, 결국 그를 노예로 전락시킨다.

1. 이상하, “과학 철학.” 철학과 현실사 (2004). pp. 291.

2. 이상하, “과학 철학.” 철학과 현실사 (2004). pp. 294.

3. 이상하, “과학 철학.” 철학과 현실사 (2004). pp. 292.

4. 이상하, “과학 철학.” 철학과 현실사 (2004). pp. 299.

5. 이상하, “과학 철학.” 철학과 현실사 (2004). pp. 298.

6. 다음의 글이 과학자들 스스로 만든 이러한 편견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John R.G. Turner, "The History
of Science and the Working Scientist", in “Companion to the history of modern science.” Edited by Robert C. Olby, Routledge (1989).

7. 이러한 방식의 저술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하다. 다음의 책들을 참고할 것.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책들이 황우석 사태 이후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레버 핀치, 이충형 역, “골렘.” 새물결 (2005); 하인리히 찬클, 김현정 역, “과학의 사기꾼.” 시아출판사 (2006); 하인리히 찬클, 박규호 역, “노벨상 스캔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저작권자 2011.02.11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노벨상보다 필요한 건 아인슈타인이다 한국과학자 사회에 고하는 제언 2010년 10월 13일(수)

미르(miR) 이야기 문화로서의 과학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동의와 과학자사회의 각성이 필요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사회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연구의 정당성은 실제로 과학이 줄 수 있는 것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구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과학자들이 언론을 통해 연구의 효과를 과장하고,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부풀려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이유다. 또한 과학자들이 논문을 조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화로서의 과학은 사회의 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결국 과학자 사회의 각성은 문화로서의 과학을 정착시키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는 정치적인 행위나 다름 없다.

한국사회에 과학이 수입된 역사는 수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과학을 발전시켜온 일본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지 유신이 문화로서의 과학을 모토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양무운동을 축으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구로 수입했던 역사가 있다. 양무운동이 과학을 철저히 기술의 관점에서 도구로 수입했던 것에 비해, 메이지 유신에는 독특한 측면이 있다. 일본도 과학을 도구로 수입했지만 그들은 사회의 전반적인 제도를 모두 서양으로부터 베껴 근대화하려는 노력을 했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한 상이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을 벗어난다. 문화로서의 과학을 정착시키기 위해 서구의 문화를 그대로 수입하자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과학이 수입되고 정착되는 과정 역시 복잡하다. 그곳엔 문화와 제도, 개개인들의 다양한 영향력이 군데군데 얽혀 있다.

다만 한국에서 과학이 정착하는 과정의 독특한 측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화기에 지식인들을 주축으로 수입된 과학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식민지 시대 속으로 함몰됐다.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간헐적인 과학운동이 존재했지만 독립운동의 기수들에게조차 과학은 긴급한 사안이 될 수 없었다. 여기에 첫 번째 단절이 존재한다.

해방 이후 다시 전쟁을 겪고 그 상처를 치유할 즈음에서야 과학이라는 것이 사회구성원들에게 논의될 수 있었다. 상황은 열악했고, 당장 시급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이었다. 굶지 않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배부르게 과학을 논의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정책이 사회구성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된다. 기술을 중심으로 한 박정희의 정책은 한국과학기술정책의 판도를 뒤바꿔 놓았다. 도구로서의 과학이라는 이념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고, 사회 구석구석에 깊은 흔적을 남겨놓았다. 국민들이 여유를 찾고 문화로서의 과학에 눈을 돌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두 번째 단절이 존재한다1.

두 번의 단절을 겪으면서 문화로서의 과학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인식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도구로서의 과학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두 번의 단절을 겪으면서 일본처럼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하는 계기를, 우리는 갖지 못했다. 과학이 문화 속에 정착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정치적 민주화로, 경제발전으로 정신이 없었다. 문화로서의 과학은 사치에 불과했다.

각성제로서의 과학사

문화로서의 과학, 과학이 문화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겪은 불행 때문에 과학사는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다른 어느 사회보다 중요하게 인식돼야 한다. 서구의 과학사는 결국 문화로서의 과학을 다루는 분야이므로, 한국의 과학사 또한 문화로서의 과학을 다룰 때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문화로서의 과학이란 과학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다른 학문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므로, 한국의 과학사는 이제 막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과학은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황우석 사태를 거치고,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한국사회는 전세계에서 유래 없는 독특한 과학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문화로서의 과학이 탄탄하게 자리잡은 이후에 터져 나왔어도 제대로 논의가 어려웠을 크나큰 사건들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접하고 있다. 과학기술부가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초라한 과학자사회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헉슬리처럼, 반네바 부쉬처럼, 제임스 코넌트처럼, 건강한 철학을 지닌 과학의 수호자들이 일선의 과학자들을 우산처럼 보호하면서 독립된 연구를 보장해준 경험을, 우리는 해보지 못했다.

▲ 한국사회도 단순히 노벨상을 넘어 아인슈타인을 가져봐야 한다. 한 과학자가 당당한 지식인으로서 대접받고, 과학자가 내놓는 화두들이 전 사회에 울림을 주는 그런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한국의 과학, 어린 아이들에게 아인슈타인과 다윈의 꿈을 이야기해줄 때의 과학, 노벨과학상을 논의할 때의 그 과학, 즉 문화로서의 과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그것이 바로, 한국의 과학자 사회에 과학사의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과학자 사회가 인지되는 기형적인 방식, 국민들이 과학을 인지하게 되는 그 방식, 과학이 단지 도구로서만 활용되는 그 방식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과학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한국이라는 독특한 사회에서, 과학사는 과학자 사회의 각성제가 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기능강화가 과학기술계의 화두로 떠오르는 지금, 과학자들은 과학사에 눈을 떠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일본과 중국, 독일, 이스라엘의 정치지도자들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표면적인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나라에서 이공계 출신이 정치지도자가 된 배경에는 오랜 시간의 문화적 전통이 배어 있다. 이공계 출신이 대통령이 돼도 그 어떤 국민적 저항도 존재하지 않는 문화적 전통, 바로 거기에는 사회구성원들의 광범위한 동의가 존재하는 것이며, 문화로서의 과학이 설 공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한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한 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안다는 것은 그러한 문화가 정착된 역사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하고, 과학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며 사회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고, 과학의 선진국이 되는 이면에는 과학자사회의 노력과 사회의 제도 및 문화가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그들의 문화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 한국사회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용을 시도하려면, 과학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그래야만 과학자사회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회를 설득시키면서 정치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사회도 단순히 노벨상을 넘어 아인슈타인을 가져봐야 한다. 한 과학자가 당당한 지식인으로서 대접받고, 과학자가 내놓는 화두들이 전 사회에 울림을 주는 그런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부국강병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사회가 과학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때에서야 과학 한국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춤사위 속에서, 문화는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역사도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 김영식; 김근배, "근현대 한국사회의 과학," in 창작과 비평사, (1998).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저작권자 2010.10.13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10.01 06:47

문화로서의 과학, 그리고  과학사는 창의성을 증진하는가? 2010년 09월 30일(목)

미르(miR) 이야기 과학사는 과학이 반드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 쿤이 물리학의 예를 들어 설명했던 것처럼, ‘톰슨-러더포드-보어’로 이어지는 원자모형의 발전과정은 직선적이지 않다.

현대진화론의 발전과정에서 경제학의 게임이론이 받아들여진 역사는, ‘협동’이라는 진화론의 난제를 해결하는 문제풀이 과정 속에서 학문간의 협업이 이뤄진 경우다.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이 하나로 통합되는 역사는 수많은 논쟁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분자생물학의 급속한 발전은 개체를 중심으로 연구되던 진화론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유전자 수준에서 위협받던 자연선택의 보편성 문제는 통계학자, 고생물학자, 지리학자, 생화학자, 분자생물학자 등이 참여한 지루한 논쟁과 협력을 통해 해결돼 왔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증거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 동안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단백질을 강력한 유전물질 후보로 간주했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유전물질이 단백질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그의 강의에 큰 영감을 받았던 왓슨과 크릭은 결국 DNA가 유전물질이며 이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대발견을 이끌었다. 과학의 발전과정은 하나의 이론으로 포섭하기 힘든 다양성의 총체다.

과학사가 발견의 다양한 경로들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자의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기술된 과학자들 중 과학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거의 없다.

그들의 발견이 과학의 실제모습과 과학사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 토마스 쿤이 반대했던 왜곡된 과학교과서의 학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과학사가 과학자들의 창의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희망에 불과하다.

과학과 타학문의 연결고리로서의 과학사

일반적으로 인문학은 ‘문/사/철’,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고 한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특성상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윤리학을 전공하는 인문학자에게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고려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10년이 지난 논문은 잘 펼쳐보지도 않으며, 기념비적인 논문들만 가끔 언급하고 읽을 뿐이다. 과학은 태생적으로 비역사적인 특성을 지녔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과학이 아닌, 문화로서의 과학을 이야기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대화하는 방식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과학이 다른 학문에 영향을 주는 경우다.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자연과학의 성공적인 방법론은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과학의 발견들이 철학에 미친 영향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둘째, 과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일은 17~18세기 자연철학과 과학이 크게 구분되지 않던 시기에 자주 등장했고, 19~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측정량이 이론을 제한하는 과학의 세속화 여정과 관계된다. 다른 학문에서 이론의 영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론은 재확인 가능한 측정량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사이비과학과 과학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다른 학문이 과학의 외부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메타과학 혹은 과학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공간에서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구조를 탐구하거나(과학철학), 과학의 역사를 통해 과학의 본질을 알아가거나(과학사), 과학자사회의 특성을 인류학적으로 탐구(과학사회학)해나갈 수 있다.

과학은 독특한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어떤 학문들에도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스며들어 그 학문 자체의 성격을 논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미학사회학’이라는 분야도, ‘사회학철학’이라는 분야도, ‘윤리학사회학’이라는 분야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과학학은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를 소재로 삼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과학학은 본질적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과학학은 과학이 아니다1.

과학이 보여주는 강력한 특성 때문에, 종종 과학은 제어할 수 없는 도구로 여겨진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성과물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과학의 모든 성과물들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공학과 기술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과학의 발견은 실생활에 응용된다는 것이 증명돼 왔다2.

바로 이 측면 때문에 과학과 다른 학문들의 대화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철학자들은 도대체 과학이라는 괴물 같은 학문체계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하고 싶어하고, 역사학자들은 과학의 역사를 통해 그 비밀을 벗기고 싶어한다. 사회학자들은 과학자사회라는 독특한 성격의 집단을 해부하고 싶어하고, 윤리학자들은 과학의 성과물들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윤리적 성격을 진단하고 때로는 과학의 발전을 제어하려고 애쓴다.

바로 이 공간에서 과학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과학학의 주제들은 다양하고, 그 공간에서 과학과 다른 학문들이 맺는 관계도 천차만별이지만, 과학학이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인 이상, 역사적 탐구는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의 한 축이 되기 때문이다3.

그리고 실제로 과학이 다른 학문과 상호작용하는 마지막 방법이야말로, 과학이 대중과 사회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영역이 된다. 과학에 종사하지 않는 학자들과 대중들은 바로 이 공간을 통해 과학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과 문화의 연결고리로서의 과학사

과학은 유럽에서 탄생했다. 과학이 바로 그러한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문화도 유럽에 종속적이다. 유럽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오랫동안 배양돼온 과학은, 그 문화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유토피아’ 등을 비롯한 유럽의 문학작품들 속에서 과학이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방식으로 과학은 문화의 일부로 흡수된다. 과학이 문화의 일부가 된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유럽과 유럽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 그리고 일찍부터 과학을 수입했던 일본 정도가 과학과 다른 학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로서의 과학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과학을 일종의 도구로 수입했다.

서구열강들이 과학을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도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였다. 서구인들이 강한 이유는 과학 때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으며,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과학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식이 논의됐다. ‘동도서기론’을 비롯한 다양한 부국강병론에는 당대 지식인들의 이러한 고민이 반영돼 있다.

제국주의 정당화의 도구로서 수입된 과학이었지만, 과학이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과학을 제도화하는 방법에 따라 국가별로 과학의 모습은 상이해졌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관계가 모호하게 인식되면서 문화로서의 과학이 들어설 여지는 좁아졌다.

과학을 통한 기술, 기술을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논리는 상당히 강력한 이념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지금까지도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과학기술이라는 이념은 문화로서의 과학을 정착하는데 여전히 방해가 되고 있다.

결국, 도구로 수입된 과학이 제도적으로, 이념적으로 강화될 경우 과학기술강국과 같은 실용성의 측면에서만 과학이 다뤄지게 된다. 문화로서의 과학이라는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가 겪는 다양한 모순들의 축소판이다. 압축성장을 겪으면서 우리가 얻은 것들 못지 않게, 우리에겐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있다.

한국엔 도구로서의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서의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도구로서의 과학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도구로서의 과학만을 강화하면서 우리가 잃은 것, 그것이 바로 문화로서의 과학이라는 측면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공계 기피와 인문학의 위기, 청소년들 모두가 변호사와 의사만을 꿈꾸는 기형적인 한국사회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인문학의 위기와 이공계 기피현상은 같은 뿌리에서 기원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의 기준을 부자가 되는 것에서 구할 때, 자본주의의 가장 잔인한 모습이 구현될 때, 과학도 인문학도 번창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만든 유럽에서도, 자본주의를 극한까지 발전시킨 미국에서도 과학의 문화적 모습이 남아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의 잔재를 목도할 수 있다. 문화로서의 과학은 사회의 건강성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그것은 청소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인가의 문제이며, 사회의 구성원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곳에서 과학은 문화가 된다. 과학이 문화가 된 곳에서 그 문화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은 이렇게 형성된 문화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또한 문화는 과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고리 속에서 인문사회과학이 언제나 한 축을 담당한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는 절반쯤은 학문적 자폐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공계 기피현상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문화로서의 과학은 언제나 역사를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역사를 내팽개치고서는 과학의 문화적 속성을 거론할 수조차 없다. 그 과정을 건너뛴 채 현재 서구열강의 제도적 측면만을 분석해봐야 과학문화는 정착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자가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과학사에 무지할 수 없다.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된 곳에서는, 자신의 학문이 가진 역사에 무지한 과학자가 과학자사회를 이끌 수조차 없다. 허버트 스펜서, 반네바 부쉬, 제임스 코넌트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이자 과학정책의 입안자들이 과학사를 깊이 공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학사는 과학이 문화로 정착하는 곳에서 필수적인 단계가 되고, 그렇게 형성된 문화가 곧 과학과 과학사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로서의 과학, 그 곳에서 과학사는 곧 그 나라의 역사다.

1. 따라서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과학학 전공자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방식과, 과학자들이 현장에서 경험한 방식에는 언제나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과학자가 아닌 과학학 전공자들이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대부분의 역할을 맡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2. 이는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의 일부분일 뿐이다. 과학과 기술 모두 자체적인 발달의 역사와 동력을 지니고 있으며 둘의 종속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지 바살라의 ‘기술의 진화’를 보라.

3. 이상욱, “역사적 과학철학과 철학적 과학사,” 한국과학사학회지, 24 (2002).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저작권자 2010.09.30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