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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 " 지금도 조승우를 망원경으로 지켜본다"

  • 조선닷컴
박칼린(Kolleen Park·43) /사진=여성조선
KBS 2TV ‘남자의 자격’에서 오합지졸 합창단을 진두지휘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 박칼린(Kolleen Park·43). 강한 카리스마와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진정한 리더라는 평을 받은 ‘영혼의 지휘자’ 박칼린의 어제와 오늘을 그녀가 최근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그냥’을 통해 여성조선이 살펴 봤다.

박칼린은 미국 유학생이었던 한국인 아버지 박근실 씨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아이렌 박 사이에서 셋째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한국무용을 배웠던 큰 언니 킴벌리, 개나리합창단원이었던 작은 언니 켈리, 성악을 전공했던 어머니 밑에서 첼로와 피아노를 배웠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공부를 하던 그녀는 만화영화 대부 ‘디즈니 아저씨’가 세운 명문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 지원해 엉뚱하게도 ‘새타령’을 불러 합격했다고 한다. 대학 4년을 음악과 연극에 흠뻑 빠져 지낸 뒤 지난 1991년 돌연 귀국, 서울대 대학원 국악작곡과에 들어갔다.

박칼린의 어머니는 리투아니아계 미국인으로 ESL(모국어가 아닌 제 2의 언어로서의 영어) 교수였고, 아버지는 무역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 가족은 모두 음악을 사랑했다”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음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아버지가 뉴욕의 한 대학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한 눈에 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생일대 전환점이 된 ‘남자의 자격’에는 왜 출연하게 됐을까. 박칼린은 어느 날 제작진으로부터 ‘만나자’는 이야기를 들었고,처음으로 ‘남자의 자격’을 찾아 봤다고 한다.

“과연 합창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토론을 했는데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매우 흥미로운 퍼즐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대신 그녀가 방송국에 내건 조건은 두 가지. 첫번째는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TV에 출연하겠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각본을 짠 예능은 하지 않겠다는 것.

박칼린은 온 국민을 감동에 빠지게 했던 ‘남자의 자격’ 합창단 공연에 대해 “무대 생활을 30년 했지만 그런 감동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이 아니라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며 “솔직히 아직도 후유증이 큰 상태다. 다른 작품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을 믿어주었던 많은 사람들과 이런 특별한 미션을 안겨 준 ‘남자의 자격’팀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또 ‘박칼린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작가이자 작사자인 양인자와 소설가 이문열, 그리고 배우 조승우. 세 사람과의 만남은 뮤지컬 ‘명성황후’가 계기였다. 그녀는 ‘명성황후’에서 작사가나 작곡가들이 작업한 곡들을 편곡하고 배우에게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박칼린은 양인자에 대해 “언제나 자상하고 소녀 같은 분”이라고 했고, 이문열은 존재감이 명징한 사람이라고 했다. 조승우에 대해서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라며 “그리고 그가 뭔가를 필요로 할 때 그때만 잠시 가까이 가는 게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조승우를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 전문은 여성조선 1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TAG 박칼린

[매경이 만난 사람] 카리스마 있는 여자 박칼린
무대는 지독한 곳…제 삶도 마찬가지
기사입력 2010.12.03 15:09:01 | 최종수정 2010.12.03 19:35:14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가장 먼저 무대에 들어서고,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이 있다. 붉은 벨벳 객석에 앉으면 이 자리는 한 뼘의 뒤통수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 자리는 치열한 무대의 리트머스지와 다름없다. 황홀한 오렌지빛 조명을 묵묵히 받으며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세 시간 동안 공연하면서 흐트러질 수도, 쓰러질 수도 없다. 기침이 나도 참아야 하고, 손끝에서 힘을 놓는 순간 그 극은 실타래처럼 풀려버린다. 뮤지컬 음악감독. 그녀 이름 앞에 18년 동안 따라다닌 `또 다른 이름`이다.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그에겐 최근 또 다른 별명이 생겼다. `남자의 자격` 오합지졸 합창단을 전국합창경연대회 입상팀으로 `환골탈태`시킨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칼마에`로 불리게 됐다. 혹자는 자고 나니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겐 단지 무대인생에서 작은 쉼표일 뿐이었다. 20여 년 만에 생긴 빽빽한 스케줄표 속 빈 공간. 그로 인해 택한 두 달여 외도로 `박칼린 열풍`이 불었지만, 정작 본인은 언제나처럼 앞으로도 항상 무대에 서겠다는 바람뿐이다. 종종걸음으로 곧장 뮤지컬 `아이다`로 돌아온 그의 치열했던 무대인생. 그 편린을 엿보았다.

`남자의 자격`에서 박칼린은 매혹적이었다. 쉴 새 없이 `플랫`을 외치며 틀리는 부분을 지적할 때는 엄격했고 불같이 뜨거웠다. 하지만 공정했다. 단원을 신뢰했고 소통을 중시했다. 전국합창대회 무대에 오르기 직전 긴장한 단원들에게 "I 믿 You(나는 너를 믿는다)"라며 따뜻한 포옹을 해주는 따스한 리더십엔 온 국민이 감동했다. 사실 연습실에서 그는 오래전부터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 불렸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성격 탓이다. 1995년 26세에 `명성황후` 음악감독을 맡았던 그는 한국 뮤지컬 1세대다. 황무지에서 오늘날 한국 뮤지컬을 일궈낸 그들에게 창작 과정에서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틀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연습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음과 가사를 못 외울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피곤하면 불평도 잘하고 잘 싸우기도 하는데 너무 좋게만 그려진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배우한테 엄청 화도 내고 벽에 머리를 찧기까지 하는데 말이죠. 하하."

박칼린 인생에도 잊을 수 없는 스승이 있었다. 엄마처럼 돌보며 첼로를 가르쳐준 로즈마리 크로보사, 리처드 마이어 선생님, 음악감독을 응원해준 피터 케이시, 국악을 전수받은 박동진 명창 등이다. 이들에게서 그는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모두 고요하고 부드러웠다. 공통적으로 제자들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제자들을 흔들림 없이 그들 길로 이끌어갔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인연은 한 인간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다고 믿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인연이고 싶어요. 사실 리더라는 말을 싫어해요. 제가 누군가보다 위에 있거나 동등하지 않은 위치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군단에서도 물론 제가 나이는 많지만, 그들 얘기를 열심히 들으려고 해요. 동등한 관계이고 싶은 거죠. 사실 위아래 관계면 끌고 갈 수가 없죠. 가장 조심해야 하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가야 하고, 마지막으로 밥을 먹어야 해요. 그런 다음에 정말 힘들 때 한번씩 `미안하지만 도와줄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리더가 아닐까요?”

사실 그의 자리는 항상 누군가보다 앞이었다. 지휘봉을 처음 잡은 것은 중학교 시절. 오케스트라 첼로 주자였을 뿐인데도 음악 선생님은 잠깐 자리를 비울 때면 지휘봉을 맡겼다. "심지어 여름에 음악캠프를 가도 항상 지휘는 제 차지였다"며 "키가 커서 그랬을까요?"라며 웃는다. 그렇게 언제나 꼭 앞에 서 있었고 누군가를 이끌고 있었다. 뮤지컬 스태프와 배우들을 이끌면서 그의 앞에는 수십, 수백 명까지 사람들이 늘어났다.

언젠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데 `투턴(무대에서 두 바퀴 도는 동작)`이 안 되는 배우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며 짜증을 내는 배우에게 그는 따끔한 한마디를 던졌다.

"딱 100번만 해봐. 한 번, 한 번을 진지하게. 주변 사람 시선 의식하지 말고 너만 깊숙이 들여다보며 거울 앞에서 진지하게 해보란 말이야. 그렇게 100번만 해봐. 100번 해서 안 되면 1000번을 진지하게 해보란 말이야." 결국 그 배우는 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기 실력을 탓하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배우들에게 그는 `진지한 노력`을 요구할 뿐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첼로를 전공하던 대학입학 초기, 실망스러운 연주로 괴로워하던 그가 선생님께 받은 레슨이기도 하다.

무대 인생이란 시계 같은 삶이다. 배우든 스태프든 그 어떤 이유로도 공연을 펑크내거나 단 1분도 지각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공연을 위해 차를 버리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기억 속 `동호대교 사건` 전말은 이렇다. 공연을 세 시간여 앞두고 서울시청 앞에서 출발한 차는 공연 30분 전까지도 동호대교를 넘지 못했다. 안절부절못하다 급기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차를 버리고 동호대교까지 달렸다. 공연 15분 전, 친구가 타고온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달려 정각에 가까스로 `배달`됐다. 숨가쁘게 오케스트라 피트로 뛰어들었고 물론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무대 위의 삶이란 감정조차도 다스려야 한다. 가족이 아프거나 다쳐도, 누군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공연을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객에게 용서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5년 전 친할머니가 뮤지컬 `아이다` 막을 올리기 전날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마지막 연습을 끝낸 밤 11시, 탈진한 몸을 이끌고 부산에 내려가선 이튿날 새벽 올라와 무대 앞에 서야 했다.

"우리 뮤지컬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이만큼 자란 건 감기에 걸려도 쉰 목소리로 노래한 배우, 강행군으로 팔이 마비되어도 드럼을 두드린 연주자와 같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뮤지컬은 불과 10여 년 만에 지금 이 자리에 올라섰다.

"배우들 실력이 매우 높아졌어요. 우선 기초체력이 많이 쌓였고 몇몇 배우들은 세계적인 수준이죠. 옛날에는 작품 연습을 하기 전 석 달 동안은 트레이닝을 해야 했어요. 투턴도 못하고, 심지어 걷는 것도 못했어요. 발성 연기 춤수업을 죄다 해야 했죠. `명성황후` 때만 해도 정말 배우들이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던 실력, 디스코에서 막춤 추던 생각으로 들어왔거든요."

이미 배우가 샐러리맨처럼 되어버린 브로드웨이에서도 우리 배우들만큼 무대 위에서 열정을 쏟아내진 못한다고 했다. 아직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배우들이 사랑스럽다. 탁월한 기술로 무대를 만들어내는 스태프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 단언했다.

"그럼에도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부족해요. 작곡, 대본, 연출, 가사 쓰는 사람, 안무하는 크리에이터들은 턱없이 부족해요. 훌륭한 우리 자원들을 담아낼 좋은 창작 뮤지컬이 나오기엔 말이죠."

최근 그는 18년간 잡아온 지휘봉을 놓고 연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2008년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가 첫 작품이었다. 지난해엔 첫 창작뮤지컬로 김영하 원작의 `퀴즈쇼`를 연출했다. 지난번엔 음악감독을 맡았던 `아이다`로 이번엔 연출에 도전한다. 후배들과 10년째 매년 새로운 대본과 작품을 써보는 워크숍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본인 창작 뮤지컬도 내년쯤이면 선보일 작정이다. 이토록 지독하게 매달리는 무대. 그를 참을 수 없이 매혹시키는 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쟁이 짓`을 사랑하는 스태프와 배우들이다.

■ 아빠의 눈물

8세 무렵이었다. 함께 골목길을 누비던 절친한 언니와 공터에서 모래놀이를 하던 소녀에게 덩치 큰 소년들이 다가왔다. "넌 왜, 노랭이랑 노니?" 겁에 질려 우는 언니에게도 그 남학생들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너네 나라로 가"라는 말에 눈물을 펑펑 쏟는 것밖엔.

그를 맞아준 아빠가 "그건 그냥 니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게 생겨서. 그건 그 사람이 몰라서 그런 것뿐이야. 칼린. 여기도 네 나라고, 미국도 네 나라야. 그리고 모든 나라가 네 나라란다"고 위로해주며 흘렸던 눈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주 어린시절 미국을 떠나 9세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이렇게 작은 아픔은 문득 찾아오곤 했다. 미국에선 다시 영어를 익혀야 했고 그는 불가수행자만큼이나 조용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첼로라는 악기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몰라요. 커다란 악기 뒤에 조용히 숨어 있는 게 적성에 맞았죠. 조용한 오케스트라 멤버였던 저에게 어느 날 선생님은 연극 공연 연주자로 초청을 하더니 덜컥 1인 5역 배역을 맡겨버렸어요. 숨어 있길 좋아하는 아이에게서 끼를 끌어낸 건 이토록 신기한 우연이었던 거죠."

그렇게 우연과 우연이 만나기 시작했다. 경남여고 2학년 무렵, 민속마당놀이를 변형시킨 학교 창작공연 `할미전`에서 그는 남장 배역 `한량영감`을 연기했다. 전국 순회공연을 다닐 정도로 극단 실력은 대단해서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연기상을 탈 정도였다. 무대의 매력을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란 그는 이후에도 한국에 들를 때면 부산에서 여러 극단들과 정극, 뮤지컬, 무용 등을 가리지 않고 무대에 섰다. 89년 서울 무대 첫 연극 `Tally`s Folly- 여자의 선택`에서 그는 전례없는 사고를 겪었다. 배우가 둘뿐인 무대 위에서 상대배우가 대사를 까먹고 무대에서 달아나버린 것이다. 황당했지만 무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사고를 수습해야 했다. 전무후무한 사고에 놀란 연출자는 `대사 까먹기`에 대비해 노래를 만들어 넣기로 했다. 마침 그의 노래 네 소절을 듣게 된 다른 작품 연출자가 곁에 있었다. 그에게 `뮤지컬` 제안이 들어온 계기다. `명성왕후`로, 그리고 음악감독으로서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언제나 음악은 곁에 있었다. 마치 운명처럼.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항상 저희 세 자매 손을 붙잡고 본인이 강의하는 학교로, 빈소년합창단, 발레 공연장 등으로 데려가셨어요. 매일밤 어머니가 틀어주는 말러 교향곡 1번 LP판을 들으며 잠들곤 했죠. 그래서인지 몰라요. 큰언니는 한국 무용, 작은언니는 개나리합창단, 저는 언니를 따라 피아노도 무용도 배웠죠."

■ 박칼린은

1967년 미국 LA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랐고,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아이렌)에게서 언니들(킴벌리, 캘리)과 함께 첼로와 피아노를 배웠다. 칼린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칼린은 `아일랜드 소녀`라는 뜻이다.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고 서울대 대학원(국악 작곡)에서 명창 박동진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명성황후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후 오페라의 유령, 사운드 오브 뮤직, 페임, 렌트, 시카고, 미녀와 야수, 노틀담의 꼽추, 아이다 등 작품을 지휘했다. 지금은 `킥 뮤지컬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호원대학교에서 뮤지컬을 가르치고 있다. 우주인을 꿈꾸며 비행학교를 다니기도 해서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곱슬머리 삽살개 해태, 도깨비와 함께 살며 여름이면 이들과 목적지도 없이 국도를 운전하며 길이 부르는 대로 떠나는 `구름투어`를 즐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길 즐겨 지금은 8개월째 탭댄스를 배우는 중이다. `남자의 자격`으로 인한 유명세로 물론 불편해진 점은 있다. "슈퍼마켓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가 되어 길거리에서 떡볶이 먹는 일도 이제 힘들어졌다"고 했다. 2012년까지 그의 공연스케줄 표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다.

[김슬기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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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박칼린 "내가 독하다고? 한밤에 펑펑 울기도 해요"

  • 입력 : 2010.10.17 15:56 / 수정 : 2010.10.17 17:39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박칼린 음악감독과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인터뷰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2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두 사람, 외모는 다르지만 꼭 오누이 같다. 박칼린(43) 뮤지컬 음악감독과 신시컴퍼니 박명성(47) 대표 이야기다. 박 감독은 최근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으로 떴고, 박 대표는 ‘아이다’ ‘시카고’ ‘맘마미아’ 등 인기 뮤지컬을 제작해 왔다. 박칼린 감독은 ‘남자의 자격’에서 연예인을 포함한 급조된 합창단을 이끌면서 뛰어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박 감독은 10월 5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박명성 대표와 자리를 함께 하자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남격’에서 보인 강한 이미지와 좀 달라보였다. 10년 이상 뮤지컬 제작을 통해 팀워크를 맞춰온 두 사람은 업계에서 “연인 사이 아니냐”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박 대표는 “오래도록 둘이서만 작업하니까 그런 것 같다. 박칼린과 작품을 위해 자주 만나다 보니 사귀는 느낌도 든다고만 대답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박 대표님은 오빠, 아버지 같은 분이자 제 멘토다. 밤 12시에 전화를 걸어 울면서 고민을 토로한 적도 여러 번 있다”고 말했다. 충무아트홀에서는 박 대표와 박 감독이 힘을 모아 만든 뮤지컬 ‘틱틱붐’이 공연 중이다.
 
박명성/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스타였던 박칼린 감독이 ‘남자의 자격’을 통해 국민적 스타가 됐어요. TV를 잘 안 보는 저도 ‘남자의 자격’은 봤습니다. 저 같은 사람까지 봤으니 시청률이 30%가 넘었겠죠. 박 감독을 TV로 보니까 더 예뻐보이더라고요. 그동안 제게는 화장 안하고 부스스한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그런가 봐요. 등잔 밑이 어두웠던 거죠. 그건 그렇고 TV는 박 감독 능력을 조금밖에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박 감독은 TV에 나온 것보다 더 ‘고품질 인간’이에요. 그리고 칼린이가 유명해진 건 좋은데 박 감독 인터뷰 섭외가 안 되니까 저한테까지 연락이 많이 와요. 제가 칼린이 매니저도 아닌데 말입니다. (웃음) 아무튼 박 감독과 둘이서 인터뷰 코너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박칼린/ 박 대표님과는 2000년부터 뮤지컬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박 대표께서 제게 전화를 걸어 “잠깐 얼굴 볼 수 있을까요?”라며 다가오셨죠. ‘시카고’를 시작으로 이후 ‘렌트’ ‘사운드 오브 뮤직’ ‘아이다’ ‘댄싱 섀도우’ ‘틱틱붐’ 등을 함께 작업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박 대표님은 제게 ‘밥을 주시는 분’이세요.

박명성/ 박 감독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욕심 내는 스타일이 아니고, 자기와 마음이 맞는 제작사와 꾸준히 작업하는 ‘의리녀’예요. 저는 박 감독과 와인 마시면서 ‘한국 최초의 뮤지컬 음악감독’이고 ‘뮤지컬계의 인간문화재가 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죠. 박 감독과는 국내 무대에 올릴 해외 작품을 고르기 위해 외국에도 많이 같이 갔어요. 제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통역도 해줬죠.

박칼린/ 작품 문제로 박 대표님과 단 한 번도 부딪쳐 본 적이 없습니다. 음악에 대한 권한은 모두 제게 넘기세요. 배우 오디션장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무대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항상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죠. 수익만 생각했다면 차범석 선생님의 ‘산불’을 뮤지컬로 만든 ‘댄싱 섀도우’ 같은 대작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항상 돈이 목적이라면 일반 사업을 하는 게 낫다고 하시죠.

박명성/ 우리는 부딪칠 것 같으면 서로를 피했어요. 추구하는 곳은 같은데 방법이 잠시 다른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칼린이가 음악감독을 많이 했으니 뮤지컬 연출 쪽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해석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박 감독은 이미 김영하씨의 동명소설을 무대에 올린 ‘퀴즈쇼’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를 연출한 바 있고, 12월부터는 ‘아이다’를 연출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겸직을 했는데 내년부터는 진로를 아예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년에는 ‘렌트’도 맡기고 싶고, 본인만 수락한다면 2012년 무대에 올릴 대형 창작 뮤지컬을 박 감독에게 맡겨볼 생각입니다. 한 예술가의 일대기를 다룬 대작입니다. 원래 오늘 둘이서 저녁 먹으면서 할 얘기였는데 지금 해버렸네요.

박칼린/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얘기예요. 하지만 도전하고 싶은 욕구는 있어요. 박 대표님 아니면 대한민국의 어느 제작자가 저를 연출자로 쓰겠어요? 저를 연출자로 쓴다는 것은 모험이거든요. 뮤지컬은 음악, 안무, 연출이 함께 조화를 이뤄 움직이는 것인데, 저는 그중 음악을 주로 맡아왔죠.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같은 경우 음악 중심으로 이뤄진 작품이고, 워낙 여러 번 무대에 올리다 보니까 제가 연출을 하고 싶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 작품과 ‘노틀담의 꼽추’는 제가 꼭 연출을 해보고 싶었는데, 하나는 이미 했고 다른 하나도 언젠가 하겠죠. 그리고 또 욕심이 생길 겁니다. 저는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박명성/  도전정신이 강한 박 감독은 신인 발굴에도 적극적이에요. 그리고 박 감독의 장점은 배우들의 소리를 잘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남자의 자격’에서 배다해씨(대중가요 가수) 훈련시키는 것 보세요. 실제로 자기 속의 소리를 못 끌어내는 배우가 90%가 넘어요. 박 감독은 정서적으로 이들을 잘 요리해서 소리를 잘 끄집어내죠.

박칼린/  지인들 중에는 TV 보다가 “어쩌면 실생활에서처럼 똑같이 해요?”라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어요. 사실 배우들 훈련시킬 때는 TV에서보다 더 심하게 합니다. ‘남자의 자격’ 촬영 때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뮤지컬 연습 때는 대부분 제가 아는 사람이니까 한마디를 해도 빨리 알아들을 수 있게 하죠. 어떨 때에는 독설처럼 들릴 거예요. 그래서인지 초창기에는 ‘마녀’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박명성/ 마녀라는 말은 박 감독에게 사사하고 성공하지 못한 배우들이 만들어낸 것일 겁니다. 박 감독은 일을 즐기면서 합리적으로 배우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스타일이지 무조건 윽박지르진 않아요.

박칼린/ 가끔 제가 조금 심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한적으로 약속된 시간과 공간에서 연습하기도 바쁜데 흐트러지게 되면 참을 수 없어서입니다. 적어도 연습실 안에서 흐트러지는 꼴은 잘 못 봐요. 그리고 무섭기는 저보다 박 대표님이 더 무서워요. 내내 참다가 한 방에 날려버리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박칼린 리더십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됐다. ‘여자 히딩크’ ‘칼마에(제2의 강마에-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 감독은 엄격하면서 공정했고, 신뢰와 소통을 중시했다. 긴장을 풀어줄 때는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안아주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9월 3일 거제에서 열린 전국합창대회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긴장한 단원들에게 ‘I 믿 You(나는 너를 믿는다)’라며 따뜻한 포옹을 해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따뜻한 카리스마’다. 박 감독은 신뢰할 만한 리더십으로 구성원을 차별하거나 핍박하거나 배제하지 않았고, 그것이 합창단과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신경민 MBC 전 앵커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박칼린은 매력적인 지도자”라며 “두 달 만에 오합지졸을 근사한 합창단으로 승격시킨 요소는 실력, 열정, 피, 땀이었죠. 혈연, 지연, 학연, 근무연, 술 실력이 아니었죠. 바로 이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감독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항상 반대로 생각해요. 제가 리더가 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에요. 구성원들에게 올바른 언행을 보여줬을 때 비로소 믿음이 생깁니다. 그랬을 때 리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박 대표님 리더십의 경우는 ‘믿음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을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죠. 또 한번 믿은 사람에게는 잔소리도 안 해요. 그야말로 ‘대인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이 무척 깊고 크세요.”
 
박칼린/  ‘남자의 자격’도 믿음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구성 자체가 없었어요. 담당 PD와 미팅할 때 저는 ‘진짜 목적이 9월 3일 거제도 합창대회가 맞냐’고 거듭 물었죠. 그러자 PD는 ‘사전 구성도 없고, 아무 요구도 않겠다. 이건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고 하더라고요. 첫 미팅 세 시간 중 두 시간은 그에 대한 확답을 듣는 거였습니다. 촬영 중 ‘이쪽으로 서주세요’ ‘웃겨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고, 촬영 현장에서 대본을 본 적도 없어요. 강요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더 큰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박명성/ 스포츠 명승부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었어요.

박칼린/  방송이 나간 후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서 좋지만 사실 방송으로 얻은 인기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지금 경기도 성남 산골마을에서 애완견 해태와 둘이 살고 있어요. 버스도 안 들어오는 곳입니다. 그만큼 조용히 살고 싶어한다는 거죠. 방송이 나간 후 인터뷰 요청이 수백 건은 들어왔을 거예요. 하지만 했던 얘기를 또 해야 하는 인터뷰는 이제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박 대표님과 함께 해서 신선한 것 같아요. 저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명성/  저희에게는 강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어요. 대부분의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오디션장에 들어갑니다. 저는 박 감독을 믿기 때문에 안 들어가요. 2배수 정도 뽑아 놓고 저와 상의하지만 그때도 박 감독이 추천한 사람을 다 뽑아요. 나는 칼린이를 믿으니까. 그리고 신시컴퍼니는 대중스타 기용률이 낮습니다. 실력 위주로 뽑기 때문입니다. 대표가 관여하다 보면 대중스타를 더 많이 뽑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스타 마케팅을 통한 홍보가 되니까요.

박칼린/ 가요계에서 온 옥주현의 경우는 노래도 잘하고 머리도 좋아서 뮤지컬 배우로 잘 정착한 케이스입니다. 연말부터 8개월간 무대에 올릴 ‘아이다’에서도 주인공 역을 맡았어요. 요즘은 더블 캐스팅(2인), 트리플 캐스팅(3인)은 물론 쿼드러플 캐스팅(4인)까지 하지만 옥주현은 8개월간 혼자 공연할 겁니다.

박명성/ 주현이를 발탁할 때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그녀는 성실함으로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소화시킬 줄 아는 배우예요. 저와 박 감독은 인성을 중시해요.

카리스마, 리더십, 무대 사랑 외에도 두 사람의 닮은점이 너무나 많다. 무용으로 예술을 시작했고, 도전 정신이 투철하며, 신체적으로 큰 위기도 겪었다.

박명성 대표는 2005년 위암선고를 받았다. 박 대표는 ‘갬블러’ 일본 초청공연과 ‘아이다’ 국내 초연을 앞둔 시점에 스태프와 직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해서 40일간의 ‘갬블러’ 공연을 마칠 때까지 수술을 받지 않고 끝까지 그의 임무를 다했다. 이후 10개월 지난 뒤 우연하게 그의 위암수술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이다’ 쫑파티는 눈물의 파티가 됐다고 한다.

박명성/ 2005년에 위암수술을 했는데 다 나았습니다. 그때 아무에게도 말 안 했어요. 2주 동안 영국에 갔다 온다고 해놓고 수술을 받았죠. 지금은 폭탄주 30잔까지 마실 수 있어요.

박칼린/ 당시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제게도 말씀을 안 하셨어요. 큰 공연을 앞두고 우리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이야기를 안 하신 거죠. 제 건강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에서 관까지 짜주셨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끄떡없습니다. 신장이 조금 안 좋지만 아픈 사람 치고는 매우 건강해요. 박 대표님과 제 체력을 배우들이 못 따라갈 정도입니다.

박명성/ 전 서울예대 무용과를 나와 배우를 잠시 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빨리 접었어요. 무용은 배우가 되기 위해 시작했죠. 그러다가 극단 신시의 김상열 대표님을 만났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제가 극단을 맡게 됐고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제가 쓴 책 ‘뮤지컬 드림’에 모두 담았습니다.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항상 메모를 해두는 습관이 있어요. 술을 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가도 잊어버릴까봐 꼭 노트에 메모를 해두죠. 그 메모들이 모여서 책이 됐습니다.

박칼린/ 저는 어릴 적에 한국 무용을 했어요. 뮤지컬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공부했어요. 부산 초량초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미국으로 갔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경남여고에 다녔어요. 대학은 미국에서 나왔고, 대학원은 한국에서 다녔어요. 대학교 때 잠시 항공기 조종을 배우기도 했어요. 어려서부터 우주를 탐험하고 싶었고, 첫 단계로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자들만 다니는 파일럿 학교에 들어갔고, 혼자서 비행기를 조종해서 하늘을 날아봤어요. 요즘에 뮤지컬 작품을 올리는 것처럼 짜릿했어요.
 
박 감독은 1967년 미국 LA서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아이렌)에게서 언니들(킴벌리, 캘리)과 함께 첼로와 피아노를 배웠다. 칼린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칼린은 ‘아일랜드 소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고 서울대 대학원(국악 작곡)에서 명창 박동진으로부터 판소리를 사사했다. 지금은 ‘킥 뮤지컬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호원대 방송연예학부 뮤지컬학과 교수이다.
 
박칼린/  딸만 셋인데 집에서는 차별이라는 게 없었어요. 모든 게 실력 순이었죠. 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잘못도 이야기할 수 있게 하셨고, 어떤 일이든 충분히 설명해주셨어요. 충분한 설명을 들으니 매사 불평이 없었고, 세상에 말로 해서 안 될 일이 없다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진심 어린 말로 소통해서 안 되는 일은 없죠.

박명성/  박 감독은 모험정신이 무척 강합니다. 저는 박 감독이 앞으로 연극 연출도 하길 바라요. 저희 회사는 연극도 많이 제작하기 위해 2009년 이름을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신시컴퍼니로 바꿨어요. 작년에는 최정원의 ‘피아프’, 손숙·추상미의 ‘가을 소나타’ 등을 올렸고, 올해는 ‘대학살의 신’ ‘33변주곡’ ‘엄마를 부탁해’ 등을 올립니다.

박칼린/ 제 좌우명은 ‘어제처럼 살지 말자’입니다. 그리고 ‘일할 때는 열심히, 놀 때도 열심히’가 삶의 모토예요. 놀 때는 확실히 놀아요. 지난 6월에는 2주 동안 완전히 사라졌었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나라의 섬에 가서 2주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수영하고, 먹고 잔 게 전부였죠.

박명성/ 앞으로 박 감독은 연출자로 진로를 바꿨으면 좋겠고, 나중에는 뮤지컬 배우도 했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잘하니까 전혀 문제 없을 겁니다.

박칼린/ 오늘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았어요. 저도 무용으로 시작했고 대표님도 무용으로 시작했네요. 우리는 정말 여러모로 비슷한 게 많아요. 저도 최근 배우로 무대에서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네요.

박명성/ 박 감독은 뭐든지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에요. 음식도 참 잘해요. 빵도 맛있게 굽고. 

박칼린/ 요리를 좋아해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리고 마트에서 식품 살 때 뒤에 적힌 재료를 보는 걸 좋아해요.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는지를 보는게 재미있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제게 나이도 꽉 찼는데 왜 결혼 안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주변에 남자가 없어요. 심지어 키우는 개도 암컷이에요. 하지만 저는 외로웠던 적이 없어요. 제 군단(킥 뮤지컬 스튜디오 직원들)이 있어서 항상 행복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왜 브로드웨이에 가지 사서 고생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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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칼럼, 인터뷰/명사2010.10.02 21:33

TV ‘남자의 자격’ 합창단 기적 이끈 박칼린 인터뷰 [중앙일보]

2010.10.02 01:58 입력 / 2010.10.02 02:14 수정

“사람이 안 돼 있으면 실력 있어도 결과 나빠”
칼같은 카리스마, 인자한 리더십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신드롬이 일고 있다. 그의 부드러우면서 강한 리더십이 화제다. KBS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기폭제가 됐다. [조용철 기자]
이 여자,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다. 지난 주말 그와 오합지졸 아마추어 합창단이 만든 작은 기적은, 오랜만에 TV 시청자들을 흠뻑 울렸다. KBS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 합창단을 지휘한 음악감독 박칼린(43)이다. 소통과 신뢰 속에 남격 합창단은 마침내 ‘하모니’를 이뤘고, 대회가 열린 마지막 방송은 눈물바다가 됐다. ‘칼린쌤’이 보여준 강한 카리스마와 엄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은 ‘박칼린’ 학습 열풍으로까지 이어졌다.

박칼린은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세대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랐다. 1995년 28세에 뮤지컬 ‘명성황후’ 음악감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이후 국내 뮤지컬 산업의 시스템 구축에 일조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청담동 킥뮤지컬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강의하는 뮤지컬 아카데미다. 인터뷰 당일은 그가 음악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뮤지컬 ‘틱틱붐’ 개막일이기도 했다.

-박칼린 신드롬이 일고 있다.

“뮤지컬을 20년 했는데 다른 것으로 알려지니 다소 아이러니하다. 나는 늘 똑같다. 다만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간 간직해온 몇 가지 철학이 살아남은 걸 확인하게 돼 기쁘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는 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진심은 언제든 통한다 같은 것들 등등.”

-예능프로 출연에 망설임은 없었나.

“PD에게 진짜 목적이 9월 3일 거제도 합창대회 맞느냐고 거듭 물었다. ‘사전 구성도 없고 아무 요구도 않겠다. 이건 예능이 아니고 다큐’라고 답하더라. 첫 미팅 3시간 중 2시간은 그에 대한 확답을 듣는 거였다. ”

-개인적으로 ‘남격’ 합창단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이런 아마추어를 데리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사람들을 잘 살폈다. 어떻게 짝을 맺어주면 분위기를 흐리지 않으면서 전체를 잡을 수 있을지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코미디 때문에, 아니면 자기를 알리려 튀고 까부는 모습이 사라졌다. 내가 못하면 남에게 피해가 가는구나, 상대가 연습을 많이 해오니까 나도 열심히 해와야겠다, 이런 믿음이 생긴 거다. 내게 ‘남격’은 그저 방송프로가 아니다. 내가 감독한 하나의 작품이다.”

-‘박칼린 리더십’이 화제다. 소통과 신뢰, 자율을 강조하는 동시에 각자의 책임감을 일깨우고, 엄격했다가 ‘사랑합니다’ ‘I 믿 You(나는 너를 믿는다)’라며 끌어안기도 하고.

“평소 뮤지컬을 하면서 소통과 신뢰, 사람 사이에 위아래 없다는 걸 강조해왔다. 뮤지컬은 모든 것을 최소로 압축한 장르다. 연주자 수만 해도 오케스트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빠져도 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 배우들에게 늘 스태프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나도 직원들을 직원이라고 안 부르고 군단이라고 부른다. 평소 선생님, 이러면서 굽실거리는 사람들은 잘 안 쓴다.”

-좋은 리더의 역할은 뭘까.

“리더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따라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남이 만들어주는 자리다. 리더의 역할은 사람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사람들을 잘 배분하는 거다. 20년 일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오디션도 3분이면 끝이다. ‘남격’에서도 그랬지만 실제 오디션 때도 기술보다 인격·인성을 본다. 사람이 안 돼 있으면 아무리 실력 있어도 결과가 안 좋다. 나는 목표를 정하면 밖에서 어떤 게 날아와도 무시한다. 필요 없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힘이 있다.”(웃음)

-리더십의 모델이 있나.

“어려서 부모님께 받은 영향이 크다. 딸만 셋이고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지만 어려서 집에서는 차별이라는 게 없었다. 여자여서, 어려서 안 되는 게 없었다. 모든 게 실력대로, 실력순이었다. 부모님이지만 틀렸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얘기하게 하셨고, 어떤 일이든 충분히 미리 설명해주셨다. 충분한 설명을 들으니 매사 불평이 없었고, 세상에 말로 해서 안 될 일이 없다는 믿음도 생겼다. 그렇지 않은가. 진심으로 말로 소통해서 안 되는 일이 있는가.”

-‘명성황후’ 이후 국내 뮤지컬 음악 감독의 계보는 대부분 여성이다. 해외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라는데.

“역사의 단추를 잘 못 끼운 탓이 아닐까(웃음). ‘명성황후’ 때 20대였는데, (자)존심 때문에 20대 여자 밑으로 들어와 배울 남자들이 없었던 거다. 여자들이 줄을 이으면서 남자는 뮤지컬 음악감독 안 하는 것 같은 풍토가 돼버렸다. 물론 최근에는 바뀌었지만.”

-당시로는 파격적인 등장이었다.

“그전엔 음악감독이라는 인식이 아예 없었으니까. 오디션 제도도 처음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이 많은 배우들이 ‘어린 여자 앞에서 오디션 보라니 말이 되냐’며 화내기도 했다. 그땐 뮤지컬 배우들이 노래 레슨 받는 것도 없었다. 그저 끼 있고 노래 좀 한다 싶으면 뮤지컬 배우 하는 줄 알던 시절이니까. 어린 여자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려 하니까 반발이 심했다. 난 차별 같은 건 전혀 경험 못하고 자랐는데 그때 한국사회에서 나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값어치인지 절감했다.”

-마녀라는 별명도 있었다.

“초기에 뮤지컬 배우들한테 보컬 레슨 받아라, 춤도 배워라, 공부해라 하도 닦달하고 다녀서 얻은 별명이다. 한동안 나는 ‘필요하기는 하지만, 껄끄럽고, 그렇다고 자를 수도 없는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남격’ 마지막 회에 단원들과 함께 울 때 자막으로 나갔던 ‘그간 이방인으로 느꼈던 설움’이라는 게 그런 뜻이다. 혼혈이란 점은 특별한 한계가 되지 않았다.”

-뮤지컬과는 언제 인연을 맺었나.

“미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오케스트라를 하고 뮤지컬 배우를 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첼로주자였는데 지휘자 선생님은 잠깐 자리를 비우면 꼭 내게 지휘봉을 맡기시곤 했다. 어려서 농구·승마도 했다. 팀을 짜서 소 500마리를 몰아본 적도 있다.”(그는 캘리포니아 종합예술대학을 거쳐 서울대 국악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다음 작품 계획이 있다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왜 브로드웨이에 가지, 불모지에서 사서 고생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게 좋다. 차기작으로는 정말 맘 맞는 사람들끼리, 남의 돈 안 쓰고, 아주 작은 규모로, 일 하는 게 곧 노는 것인, 그런 휴식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새로 맡은 뮤지컬 ‘틱틱붐’을 소개해 달라.

“파격적 형식과 음악으로 뮤지컬의 틀을 깨며 반향을 불러일으킨 ‘렌트’의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이다. 작은 무대에 젊음의 폭발력을 담은 록음악, 주연배우 세 명의 동등한 역할분배 등이 흥미로울 것이다.”

◆뮤지컬 ‘틱틱붐’=서른을 앞둔 젊은이들의 꿈과 패기를 소재로 한 록뮤지컬. 11월 7일까지. 충무아트홀. 1544-1555

글=양성희·최민우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마켓 생태계/지식2010.10.02 03:43

박칼린, 고현정… 카리스마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 고현정 = SBS제공
카리스마로 무장한 여성이 대세다.

KBS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서 불꽃같은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합창단을 진두지휘한 박칼린. 미션이었던 합창대회가 끝났지만 가히 ‘박칼린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트위터를 팔로잉 하고 있으며, 경제계에서는 그녀가 보여준 탁월한 카리스마를 리더들이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 작년, 이례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역할을 맡았던 고현정은 10월 초 방송 예정인 SBS수목드라마 대물에서 ‘첫 여성대통령’의 역할을 맡아 또한번 특유의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데뷔 후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아온 고현정은 특히 카리스마가 있는 배역을 맡아 연기할 때 더욱 돋보인다는 평가.

그녀들의 카리스마가 입맛 까다로운 요즘의 대중들에게 시쳇말로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리스마(charisma)의 사전적 의미는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이다. 카리스마가 보편적으로 리더십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는 이유는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가 절대적인 신앙을 근거로 맺어지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카리스마적 지배’라고 부른 데에 있다. 즉, 믿음을 심어주고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리더에게서 카리스마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카리스마를 논할 때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aura)’도 무시할 수 없다.
리더십에 관한 책 <결단의 기술>에서는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CEO중 약 85%가 평균이상의 신장과 준수한 외모를 지녔다”고 서술하고 있다.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외모와 리더십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타고난 성격도 있어야 한다. 김정택 서강대 성격심리학 교수는 “칼융의 이론에서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특정한 성격유형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한다”다며 “그러나 선천적으로 카리스마적 성격을 갖고 태어났다 해도 후천적으로 개발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들이 같은 곡조를 연주해도 콩쿠르에서 일등과 꼴등으로 나뉘는 이유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드럽기도 하고, 때론 강력하기도 한 카리스마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결단의 기술>에서는 그 이유를 ‘신비스러움’으로 보고 있다. 신비스러움은 카리스마의 본질로 사람들은 자신과 흡사하면서도 자신이 갖지 못한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카리스마를 느낀다고 서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갖지 못한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경과 신뢰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카리스마 있는 사람 대부분이 리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리더에게서 방향성과 본보기를 찾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김정택 교수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을 보며 ‘갈구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 또한 카리스마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2004년 발간된 책 <따뜻한 카리스마>를 통해 카리스마에 대해 재조명했던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이사는 “예전에는 상명하복식의 카리스마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맡은 일에 애정을 갖고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모습에서 대중들은 카리스마를 발견한다”며 “박칼린씨나 고현정씨 또한 그런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 박칼린 = KBS ‘남자의 자격’ 방송화면 캡처
/ 이현주 헬스조선 기자 jooya@chosun.com
한희준 헬스조선 인턴기자(서울여대 경영학과 4년)
  • 2010.10.01 09:08 입력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남격' 하모니로 이룬 감동..박칼린 "영화 같았다" 눈물

스타뉴스 | 문완식 | 입력 2010.09.26 18:22 | 수정 2010.09.26 18:24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문완식 기자]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남격합창단'이 하모니를 이뤄내며 감동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26일 오후 '남자의 자격'에서는 거제합창대회 본 무대에 오른 합창단의 모습이 방송됐다.

본 무대를 앞둔 최종리허설. 하지만 합창단원들은 긴장한 탓인지 박자를 잃고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에 박칼린 음악감독은 "박자가 너무 빨라져 누르기가 벅찰 정도"라며 "좀 더 집중해달라"고 부탁했다.

본 대회를 앞두고 합창단의 긴장감은 더해갔다. 김태원은 "우리 콘서트 하는 것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칼린 감독은 박은영 아나운서에게 "I meet you가 뭔지 아냐"고 물은 뒤 박 아나운서가 "나는 너를 만난다"고 답하자 "나는 너를 믿는다. I 믿 you"라고 말해 웃음으로 합창단의 긴장감을 덜어주기도 했다.

드디어 본 무대. 합창단원들은 지난 두 달여간 연습한 '넬라 판타지아'를 통해 최상의 하모니를 이뤄냈다. 단원들 하나, 하나의 진지한 표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하모니'라는 꿈을 이루고 싶었는지 짐작케 했다.

'넬라 판타지아'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박칼린 감독은 흡족해했고, 박은영 아나운서 등 일부 단원들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고였다.

이어진 만화주제가 메들리에서도 합창단은 연습한 그래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성량, 빠르기, 율동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무대였다.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고, 단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그간의 고생에 대해 서로 격려했다.

박칼린 감독은 "모두 너무 고생했다"며 "할 수 있는 것 다 했다. 사랑한다"고 감사를 전했다.

드디어 결과 발표. '남격합창단'은 장려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합창단원들은 그 동안 고생한 박칼린 감독에 단원들을 상징하는 32개의 초를 꽂은 케이크와 함께 박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인 '캡틴, 오 마이 캡틴'을 새긴 티셔츠를 입고 또 다른 하모니로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박 감독은 "지난 두 달은 영화 같았다"며 "제가 20년 동안 한국에서 작업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공연이 끝나면 헤어짐이 섭섭하고 공허함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없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생판 모로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이 믿고 따라와 줘서 한 거다"라며 "감사하고 고맙다. 어떤 추억보다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너무 좋은 추억거리였다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이다.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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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 "모두 좋아한다는데 왜 저는 혼자인가요?"

스타뉴스 | 전형화 | 입력 2010.09.24 16:28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전형화 기자]





KBS 2TV '남자의 자격'에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박칼린 뮤지컬 음악감독이 솔로의 외로움을 토로했다.

박칼린은 24일 방송된 KBS 쿨FM '옥주현의 가요광장'에 출연, 이 같은 사연을 밝혔다. 박칼린은 이날 '남자의 자격' 멤버인 윤형빈과의 전화연결에서 "모든 멤버들이 다 선생님의 매력에 빠져있다"고 하자 "그런데 왜 저는 혼자인가요?"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박칼린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난 싱글이고 삽살개와 살고 있다"고 올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박칼린은 "'남자의 자격' 덕분에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면서도 "마트에서 우유팩을 구경하고 있을 때는 모른 척 해주셔도 된다"고 당부했다. 박칼린은 마트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우유팩에 써있는 글자를 읽는 게 휴식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칼린은 이날 이미자의 '비오는 양산도'를 좋아하는 노래라며 "진정한 R & B"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옥주현을 뮤지컬 '아이다'에 출연시킨 바 있는 박칼린은 이날 "옥주현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DJ도 잘 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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