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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의 가슴 꿰뚫은 건 성난 민족의 불길이었네

오마이뉴스 | 입력 2010.11.06 12:45 |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기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100년을 앞두고,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인 러시아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중국 쑤이펀허, 하얼빈,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장춘, 다롄, 뤼순 등지를 지난해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흐레간 답사하였습니다. 귀국한 뒤 안중근 의사 순국날인 2010년 3월 26일에 맞춰 눈빛출판사에서 < 영웅 안중근 > 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습니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에 즈음하여 < 영웅 안중근 > 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져, 이미 출판된 원고를 다소 손보아 재편집하고, 한정된 책의 지면 사정상 미처 넣지 못한 숱한 자료사진을 다양하게 넣어 2010년 11월말까지 48회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기자말





옛 뤼순일아감옥

ⓒ 박도

뤼순 일아감옥(日俄監獄)

10: 30, 뤼순감옥은 뤼순법원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안중근은 1909년 11월 3일부터 1910년 3월 26일까지 145일간 이 감옥에 수감되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다. 거기다가 안중근 의사의 숱한 유묵이 '庚戌二月(또는 三月) 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이라는 글을 쓴 때와 장소를 남겼기에 우리의 눈과 귀에 매우 익은 장소이기도 하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나라에서 빼앗은 요동반도를 러시아가 일본 세력을 밀어내고 이곳 뤼순에다가 1902년부터 감옥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1905년 러일전쟁으로 패전한 뒤 일본이 1907년에 완공하여 관동도독부 감옥으로 문을 열었다.





뤼순 감옥 건물, 붉은 벽돌이 있는 곳은 일본이 증축한 곳이라고 한다.

ⓒ 박도

감옥 벽을 보면 러시아가 짓던 부분은 검은 벽돌이고, 일본이 증축한 부분은 붉은 벽돌이라 두 나라가 지은 흔적이 뚜렷했다. 뤼순 항이 굽어보이는 뤼순 시가지 뒤쪽 산 아래 지어진 이 감옥은 대지 22만 평방미터에 건평 1만 1천여 평방미터로 동북지방 감옥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감옥 중앙에 선 간수가 한 눈에 감방을 모두 감시할 수 있도록 방사형으로 지었다는데 지금도 그 구조 원형 그대로 있었다. 이는 적은 인원으로 죄수를 감시하는 형태요, 죄수들은 늘 간수가 바라보고 있다는 이중의 효과를 노린 설계라고 했다.





죄수들의 수의

ⓒ 박도

피의자가 일단 이 감방에 들어오면 먼저 검신실(檢身室)을 거치는데 일반 잡범은 푸른 옷, 사상범은 붉은 색 수의를 입혔다고 한다. 지금도 감방 안에는 그 무렵에 죄수들이 쓰던 식수통 변기들이 그대로 있었고, 죄수들의 밥그릇도 진열되어 있었다.

죄수들은 감방 규칙에 따라 매끼 7등급으로 배식을 받았다는데 7급 밥그릇이 가장 적고 1급 밥그릇이 가장 컸다. 감옥 안에서도 밥그릇이 같지 않았으니 밥그릇을 사이에 둔 죄수들의 갈등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나 자신 군사교육을 받을 때 똑같은 식기에 배식을 받고도 남의 식기 밥이 더 많아 보여 부러워한 적도 있었는데 한 감방 속에서 밥그릇이 다른 식기로 배식 받은 죄수들의 갈등은 오늘 배부른 우리는 도저히 상상치 못할 것이다.





죄수들의 7등분된 밥그릇

ⓒ 박도

안중근 의사의 감방





안 의사 감방

ⓒ 박도

감옥 내부를 관람하는 가운데 마침내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을 구금했던 방'이라는 안내판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감방이 있었다. 쇠창살 틈으로 들여다 본 안 의사의 감방은 특별실로 왼편에는 딱딱한 나무 침대 위에 담요가 깔려있고 오른편 책상에는 의자와 함께 안 의사가 쓰던 필기도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치 글씨를 쓰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나들이 간 듯 감방 주인은 곧 돌아올 듯이 보였다. 안중근은 이 감방에서 자서전인 < 안응칠 역사 > 를 탈고했고, 유묵 이백여 점을 남겼다. 동양평화론은 일제의 약속 위반으로 끝내 탈고하지 못했다. 안 의사의 옆방이 간수부장 방으로, 안 의사는 수감 내내 특별 감호대상자였다.





신채호 선생 감방

ⓒ 박도

몇 발자국 떼지 않자 단재 신채호 선생의 감방도 있었다. 감옥 여기저기에 고문기구와 일제 때 간수들이 중국 해방 후에 쓴 참회록 따위가 도배를 하다시피 걸려 있고 죄수 가운데 항일혁명가들이 쓴 피를 토하듯 쓴 시들이 세월을 초월하여 전시되고 있다. 대체로 공산 혁명이 성공한 날을 기리는 내용이 많았다.

감옥 한 모퉁이에는 '絞刑場(교형장, 사형 집행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후기 교형장으로 안 의사가 순국한 교형장은 새로 고증해서 딴 장소에 복원했다고 박용근씨가 설명해서 긴장감이 덜했다. 교수형에 처형된 죄수는 8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 나무통에 시신을 구겨 넣다시피 눌러 넣고는 뒷산 죄수묘지에다가 매장한 모양으로, 그 모든 것을 죄수들이 사역하고 간수들은 총칼을 들고 감시하는 모형이 전시되고 있었다.

'極樂(극락)'





전사불망후사지사

ⓒ 박도

다음 전시장은 일제강점기 뤼순다롄지구 물증을 진열하는 장소로 어귀에는 '前事不忘後事之師(전사불망후사지사, 지난 일을 잊지 말고 후세에 교훈으로 삼자)'라는 중국 역사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글귀가 새겨있었다.

이곳에는 각종 무기와 그 당시 세웠던 주로 일제 관리들의 공덕비가 쇠망치를 맞고는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새삼 비석은 함부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어 뤼순에서 순국한 국제전사 특별전시장은 20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개관했다고 하는데, 안중근 의사, 단재 신채호 선생, 우당 이회영 선생의 흉상과 유품 그리고 최흥식, 유상근의 흉상도 진열돼 있었고, 주은래를 비롯한 한·중 저명인사들의 안 의사 추모 글도 액자에 담겨 있었다.

"중일갑오전쟁(청일전쟁) 후 중조(中朝) 인민의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은 본 세기 초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주은래





감옥 내 특별전시장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흉상

ⓒ 박도

마지막 발길이 멈춘 곳은 안중근 추모의 방으로 흉상 앞에는 하얼빈 의거 100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김양 보훈처장을 비롯한 광복회장 등 여러 곳에서 보낸 꽃들이 쌓였다. 다른 쪽 벽에는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쓰신 유묵(복사본)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수많은 작품 가운데 유독 '極樂(극락)'이라고 쓴 작품에 감동을 받았다.

글씨를 쓴 때가 경술 3월인 것으로 미루어 1910년 3월 순국 직전에 남기신 작품이다. 일제는 당신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당신은 '극락'에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겼을 것이다. 나는 그 유묵 앞에서 잠시 묵상했다. 마침내 이른 교형장 앞에서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은사 조동탁 선생의 시 한 수를 뇌이었다.

쏜 것은 권총이었지만 그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은

당신의 손가락이었지만

원수의 가슴을 꿰뚫은 것은

성낸 민족의 불길이었네.

온 세계를 뒤흔든 그 총소리는

노한 하늘의 벼락이었네.

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차라리 홍모(鴻毛)와 같이

가슴에 불을 품고 원수를 찾아

광야를 헤매기 얼마이던고.

그 날 하얼빈 역두(驛頭)의

추상같은 소식

나뭇잎도 우수수

한때에 다 떨렸어라.

당신이 아니더면 민족의 의기를

누가 천하에 드러냈을까

당신이 아니더면 하늘의 뜻을

누가 대신하여 갚아 줬을까

세월은 말이 없지만

망각의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서 가지만

그 뜻은 겨레의

핏줄 속에 살아 있네.

그 외침은 강산의 바람 속에 남아 있네.

―조지훈〈安重根 義士讚〉

반장하지 못한 유해

한쪽 벽에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이 순국한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고향에서 어머니가 지어 보내주신 하얀 명주 한복을 입고서 형리에 이끌려 당당하게 형장으로 가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걸려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안중근 의사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안중근은 사형 집행 전에 유언을 남겼다.





순국 직전의 안중근 의사

ⓒ 눈빛 < 대한국인 안중근 >

내가 죽은 뒤에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나라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냄)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백성이 된 의무를 다하여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의 유해는 여태 찾지 못해 고국으로 반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각계에서 여러 차례 안중근 유해를 모셔오기 위해 유해발굴단을 현지에 보내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2008년 대한민국 정부의 주선으로 박선주 충북대박물관장을 단장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단'을 편성하여 두 차례에 걸쳐 현지 발굴 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쳤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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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젊은 세대에 6·25 상처와 아픔 보여줘야” [중앙일보]

2010.06.19 00:22 입력 / 2010.06.19 00:22 수정

김성환·박기정·신문수씨 등 전쟁 겪은 만화가 29명
한국전, 광복, 안중근 의사 소재로 그린 카툰 52점 기증

김성환 화백, 박기정 화백, 신문수 화백(왼쪽부터)
‘고바우’ 김성환 화백, 중앙일보 박기정 고문을 비롯해 신문수·권영섭·김기백 등 원로 만화가 29명이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카툰을 그려 전시한다.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원장 임형택)이 22∼30일 부천시 청사 로비에서 여는 ‘60년의 기억, 그 6·25의 상처’ 전이다. 전시되는 52점은 소재별로 한국전쟁 27점, 광복 10점, 안중근 의사 15점이다.

피란열차(左), 아! 6·25(右)

이승만과 김일성
김성환 화백은 특별히 판화로 만든 ‘피란열차’(왼쪽 위 그림)에서 등짐을 진 채 증기기관차가 끄는 기차를 타고 피란을 떠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박기정 화백은 아웅산 참사·KAL기 격추·천안함 침몰 등의 사건을 ‘이승만과 김일성’에 담았다. 신문수 화백은 ‘아! 6·25’(오른쪽 위)에 참호 속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군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번 전시는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해 전쟁을 겪었던 원로 작가들이 젊은 세대에게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광복 기념과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 추도도 겸한다. 임형택 진흥원장은 “참여한 작가들은 대부분 60~70대로 과거 한국 만화계를 이끌었던 분들인데, 나라와 젊은 세대들을 위해 흔쾌히 작품을 내줬다”고 말했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진흥원에 기증됐다. 부천 전시 뒤에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인천 자유공원 등을 돌며 순회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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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