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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전문가와 술집이 말하는 막걸리잔의 이상적인 용량·재질·모양
한겨레 김아리 기자 메일보내기
» 막걸리잔, 최적의 조건을 찾아라
 
 
 
 
 
 
 
“막걸리맛의 화룡점정, 최적의 잔을 찾아라.” 요즘 막걸리 애호가들 사이에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화제다. 실제로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3월 ‘막거리잔’을 공모했더니 총 539종의 아이디어가 제출돼 67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시장통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주로 먹던 값싼 술이 홍대나 압구정동 젊은이들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맛뿐만 아니라 ‘잔’까지 덤으로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막걸리 동호회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이대별로 선호하는 막걸리잔이 확연히 다르다. 네이버 카페 ‘막걸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지기 ‘탁주가’는 “50~60대는 사발이나 옹기를 선호하고 젊은이들은 와인잔에 먹는 걸 좋아한다”며 “특히 막걸리 칵테일이 인기를 끌면서 색을 보는 재미에 와인잔이 인기”라고 말했다.

대충 좀 먹으면 안되냐

와인잔이 그렇게 생긴 데에도 다 이유가 있고 소주잔이 그렇게 생긴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 잡는 방법만 틀려도 맛이 다르다고 호들갑이다. 게다가 맛만 문제가 아니다. 분위기도 좌우한다. 와인을 사발에 마시면서 우아한 분위기를 잡긴 어려울 것이다.

또 경제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막걸리 전용잔 개발에 뛰어든 이유를 들어보자. 농식품부 쪽은 “소주나 맥주, 위스키 하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잔이 있는데, 막거리는 다들 제각각이라 한잔의 평균 용량이 얼마인지도 모른다”며 “적정 음주량을 측정하고 알리는 데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막걸리 수출과 함께 잔 수출도 늘어날 텐데 용량이나 모양을 표준화해놓으면 민간 기업들이 잔을 만드는 데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막걸리가 뜬 김에 잔도 같이 띄워 더 큰 부가가치 창출을 해보자는 이야기다.

막사발 vs 글라스 혹은 전통 vs 퓨전

» 막걸리잔, 최적의 조건을 찾아라

막걸리잔을 둘러싼 고수들의 입장은 대략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막걸리는 후루룩 단숨에 들이켜며 막사발로 마셔야 제맛이라는 쪽과 새로운 막걸리 음주문화를 창조해야 한다며 다양한 잔을 시도하는 쪽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전통을 고수하거나 전통에서 약간의 개선을 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쪽은 “막걸리의 특성은 도수가 낮고 청량감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원함을 보존하는 재질에 한번에 들이켜기에 알맞은 크기로 제작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론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발 정도의 크기면 한번에 들이켜기에 부담도 없고 적당하며, 재질의 경우 양푼은 너무 쉽게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져 시원함이 유지되기 어렵고 플라스틱 또한 시원함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도자기가 가장 낫다”고 지적했다.

신라대 막걸리세계화연구소 배송자 소장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막걸리는 숨을 쉬는 옹기로 만든 사발에 마시는 게 제맛”이라며 “소박하고 투박한 모양의 사발이 막걸리의 전통과도 맥락이 같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순당 쪽은 “막걸리는 소주나 와인과 달리 벌컥벌컥 마셔야 맛있기 때문에 일반 술보단 상대적으로 용기가 커야 하고 단맛·신맛 등 오미를 한번에 느낄 수 있게 잔의 표면이 넓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백세주마을과 우리술상 등의 전통주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국순당은 사기 재질의 ‘막사발’을 쓰고 있다. 크기는 밥공기와 국그릇 중간 정도 된다. 단 걸쭉하고 도수가 12.5도로 상대적으로 독한 고급 막걸리인 이화주는 용량이 작은 자기에 서빙하고 있다.

반면 젊은이들이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막걸리집에서 쓰는 잔들은 이런 전통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서울 홍대 앞 막걸리집 ‘친친’에선 소주잔보다도 더 작은 백자(흰색 자기)에 술을 내놓고 있다. 기존의 막걸리 음주문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벌컥벌컥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경향이 강해 천천히 음미하면서 맛있게 마시라는 의도란다. 술잔을 받은 대부분의 손님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단다. 친친 쪽은 “술집의 취지를 잘 설명하면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간혹 더 큰 잔을 요구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큰 유리잔과 밥공기 크기의 사기그릇도 준비해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잘나가는 카페 ‘무이무이’에선 자체 제작한 파란빛이 감도는 유리잔을 내놓고 있다. 이 술집의 콘셉트가 ‘모던 갤러리’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 맞게 유리공예가가 잔과 병을 세련되게 디자인한 것이다. 용량은 밥공기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잔 윗부분의 일부가 돌출돼 그쪽으로 입을 대어 먹을 수도 있고 손잡이로 써도 되게 만들었다.

전용잔 주도권을 잡아라…업체들 경쟁 치열

» 젠한국이 내놓은 전용잔. 젠한국 제공

가장 발빠르게 시판 전용잔을 내놓은 도자기업체는 젠한국. 지난 1월 샘플을 출시한 데 이어 4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젠한국이 내놓은 전용잔(오른쪽 사진)의 특징은 용기 아래에 손잡이가 달렸다는 점. 기존 막걸리잔들이 손잡이가 없어서 건배할 때 불편한 점과 손이 잔에 닿아 술의 제 온도가 유지되지 않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행남자기는 분청을 소재로 한 전용잔을 개발중이며, 국순당 역시 산학협력으로 개발중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이란다.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
사진〈한겨레〉자료


술과 술잔의 궁합

술과 술잔에도 궁합이 있다. 와인잔이 봉긋한 볼과 가냘픈 다리로 만들어진 건 그냥 예쁘자고 그런 게 아니다. 화이트와인잔은 레드와인잔보다 볼(술을 담는 부분)의 크기가 작고 좁다. 이는 술이 공기와 닿는 면적을 줄여 화이트와인에 중요한 신선함과 청량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기포를 오래 유지되게 만드는 게 중요한 샴페인잔은 볼의 모양이 좁고 길게 빠졌다. 따뜻하게 마셔야 하는 코냑잔은 손이 잔에 닿게 하기 위해 유난히 다리가 짧다.

» 소믈리에 블랙 타이. 리델 제공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선 와인의 브랜드만큼이나 와인잔의 브랜드도 중요하다. 와인잔의 최고 명품으로 꼽히는 브랜드는 독일의 ‘리델’ 제품. 리델에서 내놓는 공장산 와인잔은 비교적 싼 반면, 장인들이 유리를 직접 불고 25단계의 공정을 거친 수공예품은 상당히 비싸다. 가장 비싼 라인은 2008년 출시된 ‘소믈리에 블랙 타이’(사진)로 잔 하나에 15만5000원에 달한다. 수공예품은 유리를 불어서 한번에 볼부터 받침까지 만들고, 공장 제품의 대부분은 볼과 다리를 따로 만들어서 붙인단다.

맥주잔도 와인잔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복잡하다. 독일이나 벨기에 등 맥주가 발달한 나라에선 대부분의 맥주회사들이 맥주마다 다른 전용잔을 함께 내놓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밀맥주인 바이첸은 발포성이 좋아 거품이 치솟아 넘치기가 쉽다. 그래서 잔 윗부분이 살짝 안으로 휜 형태인 ‘플루트잔’에 마신다.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은 대부분의 라거 맥주가 쓰이는 잔. 시원한 온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맥주잔도 두껍고 손잡이도 따로 뒀다. 와인잔처럼 볼 아래 손잡이용 대가 있는 ‘고블릿’은 벨기에의 레페와 같은 고급 에일에 즐겨 사용된다. 그 이유는 손으로 잔의 온도를 높여 향의 발산을 자극해 오랫동안 향을 즐기게 하기 위해서다.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ESSAY] 프랑스인이 막걸리 들이켜자 다들 토끼눈 됐다
  • 기 마르시아 AXA손해보험 사장

입력 : 2010.03.19 23:36

기 마르시아 AXA손해보험 사장

추운 날씨에 감기에 걸렸을 때
한국인 친구가'약주'라며 막걸리를 권했다
이제는 한국인 직원보다 내가 더 잘 마신다…
막걸리와 한국인은 여로모로 닮았다
언제나 잘 어울리고 나눌 줄 아는 넉넉함
나는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한국의 情에 취한다

프랑스인인 내가 한국에 온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프랑스와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부터 솔직하고 매사에 열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파리와 서울의 날씨 또한 비슷하지만, 한국의 겨울이 좀 더 시리고, 바람이 매서운 날들이 많다. 내가 한국에 처음 온 2007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때 나는 회사를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시기였다.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배우고 싶었던, 그야말로 한국에 대한 학습 의욕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도 내가 프랑스 본사에 직접 건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웃나라인 한국에 대해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내 눈에 비친 한국은 작지만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였다.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망설이는 본사 경영진을 설득하여 결국 한국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나는 이왕 한국에 온 김에 한국 문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한국의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한국의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집도 일부러 전통이 살아 있는 인사동으로 정했다. 주말에는 서울의 거리를 혼자 하루 종일 걷기도 했다.

평소처럼 서울의 이곳저곳을 거닐고, 저녁에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파리의 날씨를 생각하며 옷을 얇게 입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감기 기운까지 겹쳐, 만나자마자 오들오들 떠는 내 모습을 본 한국인 친구는 나를 집에 보내는 대신 감기를 한 번에 떨어뜨릴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바로 한국의 전통주였다. 감기에 걸렸는데 술을 마신다? 당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친구는 한국인들은 때론 술을 약으로 마실 때가 있다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가진 한국어 사전에 '약주'라는 단어가 정말로 있었다. 놀랍게도!) 같이 가자고 계속 종용했다. 결국 나는 친구의 꾐에 빠져 인사동 근처 한 전통주점에 들어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금방이라도 옹기가 넘칠 만큼, 한가득 담겨 나온 막걸리를 처음 보며 나는 우선 그 하얀 색깔에 매료되었다. 하얗게 보이면서도 때론 투명해 보이는, 진하지도 않고 옅지도 않은 그 색깔은 마치 어렸을 때 수채화를 그릴 때, 물감이 가장 이상적으로 배합되었을 때 도화지에 펼쳐지던 바로 그 색깔이었다.

먹는 방식도 아주 독특했다. 한국의 전통 옹기에 국자가 둥둥 떠있어서,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사발에 떠먹는 식이었다. 술이란 당연히 병에 담겨 있고, 잔에 따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이 특이한 한국 전통주의 맛은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사발을 들어 한 모금을 넘겼다. 이럴 수가! 입에 댄 순간 톡 쏘는 느낌이 너무나 입에 맞는 것이 아닌가.

와인의 천국인 프랑스에서도 이런 독특한 느낌을 주는 술은 경험한 적이 없다. 내친김에 석 잔을 연거푸 마셨다. 어느새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추위에 얼었던 몸이 금세 녹는 것을 느꼈다. 한 잔, 또 한 잔. 어느새 나를 괴롭혔던 감기 기운도 느낄 수 없다. 몇 시까지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열렬한 막걸리 예찬론자가 되었다.

나는 한국 음식 중에서 족발을 즐겨 먹는데, 족발에 가장 어울리는 술이 막걸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도 서울 장충동에 있는 나의 단골집을 찾아가 막걸리와 족발을 시켜 먹곤 한다. 회사 직원들과 저녁에 회식 자리를 가질 때,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하는 술 역시 막걸리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나는 이 하얀 색깔의 전통주가 한국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막걸리는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술이다. 도수가 높지 않아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나 여성과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막걸리는 그 자체로도 맛이 좋지만 김치·파전·보쌈 등 다른 한국 음식과 아주 잘 어울린다. 막걸리는 주변의 다른 음식들과 한바탕 어우러질 때 더욱 맛을 내는 그런 술이다.

여러모로 한국 사람들과 닮았다. 개인을 생각하기에 앞서 공동체를 우선하고,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즐길 줄 아는 사람들. 항상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작은 것 하나도 나눌 줄 아는 넉넉함이 있는 사람들.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실 때마다 나는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한국의 정에 취한다.

이렇게 막걸리를 즐겨 마시다 보니 이제는 한국 직원들 가운데서도 나보다 막걸리를 잘 마시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한번은 직원들과 막걸리 많이 마시기 대회를 했는데 내가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서양인인 내가 거침없이 막걸리를 들이켜는 것을 바라보던 우리 직원들의 놀란 토끼 눈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이 글은 필자가 프랑스어로 쓴 것을 한국인 비서가 번역한 것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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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