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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입력: 2011-04-17 18:04 / 수정: 2011-04-17 18:04

 

일본 동북부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 한 달도 더 지났다. 방사능 유출까지 겹치면서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타격이 큰 곳은 여행업계다. 한국을 찾는 외래관광객의 30% 이상을 차지해온 일본인들의 한국 방문이 급감했다. 하지만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57)은 올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을 유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지난해 천안함 사태,연평도 피격 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88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 데 이어 올해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들어 봤다.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외래 관광객 감소가 어느 정도인가요.

"올해 외래 관광객을 1000만명으로 볼 때 일본에서 330만명쯤 들어와야 하는데 50만명 정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진 후 일본인 관광객이 12%가량 줄었어요. 하지만 지진 피해 지역인 동일본에서 오는 관광객만 그렇고,서일본 지역에선 개별 자유여행객(FIT)을 중심으로 방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작년 수준을 회복하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40%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 경주에서 열린 제20회 벚꽃마라톤만 해도 원래 예약한 1000명보다 더 왔거든요. "

▼상황이 심각하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일본 대지진 자체가 국내 관광업계에 큰 악재입니다. 방사능 공포로 인해 세계인들이 한국의 안전성까지 우려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번 사태로 일본 경기가 나빠지고 일본인들의 외국여행이 더 줄어들 수도 있겠죠.하지만 이런 기회에 한국이 좋은 이웃이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일본에 심어준다면 그 이상의 홍보가 없습니다. 또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한국이 일본 옆에 있지만 안전하다는 걸 잘 알리면 일본의 대체시장으로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중국 대만 동남아 국가들이 우리와 경쟁하고 있지만 도시 · 문화 · 쇼핑 등의 관광자원으로 일본과 견줄 만한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기업 회의와 인센티브 여행,컨벤션,전시회,단체여행을 위한 준비도 다 돼 있고요. 마케팅만 잘하면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사람을 유치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

<"올해 외국인 1000만명 옵니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일본 대지진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올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유치 목표는 무난히 달성 할 수 있을 것”이라며“숙박시설 확충, 우리 고유의 스토리텔링 강화 등으로 관광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했다./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올해 목표가 1000만명 유치인데요.

"1000만명 목표는 분명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권으로 핵심 대체시장을 다변화해 난관을 극복할 계획입니다. 최근 베트남에 한국관광공사 하노이 지사를 개설했는데,이를 통해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지역을 공략할 것입니다. 현지에서 인기 있는 스키 · 단풍 등의 계절별 방한 상품을 개발해 단체 관광객 및 다국적 기업의 인센티브 관광지로 홍보해야죠.지난 1일부터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11개국을 대상으로 관광비자 발급제도를 대폭 간소화한 것도 효과를 낼 겁니다. "

▼중화권을 공략할 묘안은 있습니까.

"지난해 비자발급 간소화 이후 중국 관광객이 전년보다 40%나 늘어 189만명에 달했습니다. 올해 목표는 290만명이죠.이를 위해 청소년 · 노인층의 단체 방한을 유치하는 등 전략상품 마케팅을 강화하고 20~30대를 대상으로 개별 자유여행 프로모션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중국 은련(銀聯)카드와 제휴해 '한국여행카드'를 발급,고소득층을 대거 유치하고 명품쇼핑 · 휴양상품 · 해상크루즈 등 고품격 하이엔드(high-end) 상품도 개발하고 있고요. 한 · 일 간의 연간 1000만명 교류시대도 빨리 열어야 합니다. 지난해 550만명이었던 양국 간 교류 규모를 대폭 늘려 파이를 키워야죠.지난 20년간 일본인들이 경주 벚꽃마라톤에 참가해준 데 대한 보답으로 올 가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열리는 사과마라톤에 한국인 수백 명이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

▼외래관광객 1000만명을 맞으려면 준비가 잘 돼 있어야 할 텐데요.

"맞습니다. 인프라가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예요. 그중에서도 숙박시설 확대가 시급합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중 80%는 수도권에 머물고 싶어하는데 우리 수도권 호텔 객실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주말,방학,공휴일 등 피크 시즌에는 평소보다 몇 배의 관광객이 오는데 방이 없어요. 수도권에서만 10만실 이상 부족합니다.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

▼최근 독일 스위스 등을 가보니 사소한 것까지도 스토리로 개발해 상품화해 놓았더군요. 부러웠습니다.

"유럽의 훌륭한 관광 인프라는 원래 있던 게 아니라 대부분 만들어 낸 겁니다.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걸 복구한 게 대부분입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철학자의 길'이라고 있어요. 하이델베르크는 워낙 대학의 전통이 강한 도시여서 웬만한 철학자들이 한두 번은 이 도시를 다녀갔겠지만 실제로 그 길에서 산책한 기록이 있는 사람은 3명뿐입니다. 그걸 스토리로 만들어 '철학자의 길'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경북 안동에 가면 퇴계 선생이 사색하며 걷던 '퇴계 녀든길(옛길)'이라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걸었던 선비들이 남긴 기록이 250여건이나 돼요. 누가 언제 어디부터 어디까지 걸었는지 다 기록돼 있죠.그리고 20~30㎞나 되는 길을 걸으며 곳곳의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시로 남긴 게 1만수 이상 있어요. 그야말로 세계적인 '철학자의 길'이죠.이걸 다 스토리텔링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에겐 그런 콘텐츠가 얼마든지 있거든요. "

▼그 차이가 뭘까요.

"자신들이 가진 것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봐요. 우리는 문화적 자원을 보존 · 개발하는 데 상당히 인색했고,지금도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고택을 활용하자며 올해 한옥스테이를 좀 더 고급화기로 한 건 좋은데 예산이 겨우 3억원이에요. 베트남 하롱베이만한 자원이 우리한테는 없을까요. 한려수도,다도해,신안군의 1004개 섬….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러나 멀고 불편하다며 외면해왔습니다. 가치가 있다,세계적인 멋이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먼저 우리 자연과 문화유산을 알고 많이 찾아가야 합니다. "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 못지않게 수익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고부가가치,고품격 관광상품 수요를 파악해 시장별로 차별화된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가령 일본 중 · 장년층에 인기가 많은 '33관음성지 탐방 코스'는 체제 일수가 길어 일반 단체 패키지 상품보다 3배 이상 비싼데도 작년에만 약 1만5000여명이 참가했죠.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 달빛기행' 상품은 1인당 10만원인데 지난해 주한 외교사절,내외국인 등 1700명이 참여했고요. "

▼관광지에 가면 살 만한 기념품이 없다는 것도 문제 아닐까요.

"사실 스토리 개발도 과제이지만 상품으로 만드는 머천다이징이 더 중요합니다. 세계유산인 경주 양동마을을 봅시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경쟁과 협력,엄청난 교육열과 인재 배출 등의 이야기를 개발하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그 마을에 가면 배움의 기(氣)를 듬뿍 받을 수 있다고 해보세요. 정말 매력적이죠."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평창과 뮌헨이 경쟁 중입니다.

"독일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에는 뮌헨이 안 될 겁니다. 독일은 전에도 몇 차례 동계올림픽을 열었기 때문에 동계올림픽으로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별로 없어요. 이에 비해 동계스포츠 관광객이 매년 20~30%씩 늘고 있는 한국에서 개최하면 관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죠.한국은 준비 상태도 훨씬 훌륭해서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

이참사장은
이름 뜻 '한국사회 참여'…귀화인 첫 공기업 CEO


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주(州) 바트크로이츠나흐에서 태어나 구텐베르크대를 졸업한 그는 1978년 국제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가 한국사람이 됐다. 1986년 귀화,독일 이씨의 시조(始祖)가 됐다.

그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독일문화원과 여러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다. 해성엔지니어링과 참스마트,빅웰 등의 경영자로도 일했다. 유명해진 건 방송 덕분이다. 주한 외국인 노래자랑을 필두로 각종 프로그램과 드라마,영화 등에 출연했다. 196㎝의 큰 키에 한국말이 유창한 이방인은 금세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을 돕는다'는 뜻에서 이한우(李韓佑)로 지었던 한국 이름을 2000년 한국 사회에 적극 참여한다는 뜻의 '이참(李參)'으로 개명했고,2009년 귀화인 최초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돼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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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칼럼, 인터뷰/CEO2010.09.28 03:13

[ESSAY] 제 이름이 왜 '참(參)'인지 아세요

  •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 입력 : 2010.09.27 23:30 / 수정 : 2010.09.27 23:51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내 첫 한국 이름은 '韓佑'였다 한국을 돕는다는 뜻이다 한국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參'으로 고쳤다 가야의 허황옥은 인도 출신 발명가 장영실은 혼혈 '파란 눈'의 나도 새로운 개방 역사를 쓰고 싶다

한국에 온 지 32년의 세월이 지났다. 또 귀화인 최초로 공기업 수장이 된 지도 어느새 1년이 흘렀다. 돌이켜 보면, 독일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모국어인 독일어가 다소 불편할 때도 있어 민망하다. 내 외모 속에 가려진 몸속 DNA는 어느새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다.

1978년 학술 세미나차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아는 지식이라곤 분단국가, 김치, 불고기 정도였다. 식당에서 스테인리스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는 것을 보고 이게 식기인지 용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유럽의 식당에선 스테인리스 그릇을 좀처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생소한 나라였지만 신비로운 한국 문화에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 젖듯' 끌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196㎝의 장신이라 버스의 낮은 지붕에 키를 맞추기 위해 환기구에 머리를 내밀기도 했다. 좌식 생활 문화이기에 내 긴 다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불편한 것은 언어와 사고방식의 차이였다. 독일어 외에 다른 유럽 언어는 6개월 정도만 지나면 쉽게 배울 수 있었지만 한국어는 구조나 발음이 전혀 달라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었다. "아가씨, 불고기 계세요?" 꽤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식당에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써 사람들을 웃기게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한글의 과학성과 조직적 짜임새에 감탄했다.

일단 말이 통하니까 사람을 사귀고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는 더없이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낯선 외국인과 결혼을 반대하는 장인에게 결혼 승낙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장모의 환심을 사 내 편으로 만들었다. 그런 뒤 처가에 한복을 입고 무작정 찾아가 장인·장모에게 한국식으로 넙죽 큰절을 하고 가까스로 결혼 승낙을 받기도 했다. 가정을 꾸미고 나니 아예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져 1986년 귀화를 결심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생활인으로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일이 필요했다. 교육방송의 독일어 강의를 시작으로 방송의 고정 게스트와 리포터, '딸 부잣집'같은 TV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고 경영 컨설턴트, 대기업 고문 등의 일도 했다. 그럼에도 늘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엄연한 한국인이 됐지만 나는 주연은 아니고 늘 조연이었다. 조력 혹은 조언이란 것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마음에 들면 쓰고, 아니면 버리지 않는가. '기회만 주면 잘할 수 있을 텐데'란 생각만 켜켜이 쌓았다가 허물곤 하는 시절을 보냈다.

사실 처음 내 한국 이름도 '한국을 돕는 사람'이란 뜻의 한우(韓佑)였는데 아예 한국인으로 한국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이름을 참(參)으로 고쳤다. 그런 이름이 효험을 본 것일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작년 7월 말, 내 인생에 최고의 일이 생겼다. 옆자리에만 익숙했던 내게, 조언을 하는 데에만 익숙한 내게, 조직의 수장 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마치 잠에서 깨보니 하룻밤 만에 모든 게 변해 있었다. 오르지 못하기에 넘보기를 포기했던 나무에 올려져 있는 느낌이랄까. 외국인 출신이 공기업에, 그것도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 '파격'에 나 자신도 놀랐다.

지난달 일본의 교통성 장관, 관광공사 사장 등 관광 수뇌부와 회의를 마친 뒤 그들은 나를 보면서 이제는 한국의 개방이 일본보다 앞섰다며 벤치마킹할 만한 '대단한 발상'이라고 할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나를 구한말 고종황제의 외교고문인 독일출신 묄렌도르프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호기심이 발동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한 외국인 '최초'들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예전 가야시대의 허황옥은 인도출신으로 금관가야의 집권층이 되었고 신라시대의 처용은 아라비아인으로 추정된다. 또 고려시대 과거제를 도입한 쌍기는 중국 후주 출신이고 조선의 발명가 장영실은 아버지가 원나라 후예로 혼혈이었다. 외국계 인재를 흡수하여 활용하는 개방의 역사가 이리도 길었고 다양한 출신의 '최초'들이 이렇게 많았던 것에 새삼 놀랐다. 이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뿌리를 깊게 내렸는지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큰 편견 없이 한국사회에 동화되었기에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작년 이맘때 공사 직원들과의 첫 대면이 생각난다. 나를 '파란 눈의 낙하산'으로 여기던 직원들에게 앞으로의 포부와 계획을 말했다. 오랜 세월 근무한 직원들 앞에 내가 던진 첫 말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아 미안하다"였다. 처음엔 직원들이 나를 배려하려고 각종 행사의 인사말이나 보고서를 쓸 때면 쉬운 우리 말을 찾아 쓰려고 노력하고 때론 영어를 섞어 쓰곤 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요즘, 직원들은 한국의 말과 문화에 대한 나의 내공을 믿어서인지, 이젠 한문까지 섞어 보고를 한다. 직원들도, 노조도 모두 협조적이다. 내가 직원들과 융화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면 한국사회가 이방인을 배척하는 사회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나도 성공한 CEO가 되기위해 더 열심히 일하려고 애쓴다.

최근에 경찰관 등 사회 각 분야의 크고 작은 자리에 귀화 외국인 혹은 다문화가정의 일원을 등용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32년 동안 내가 체험한 우리 사회의 감동적인 포용력은, 이들이 자기만의 색깔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기여하도록 따듯하게 독려할 것이다. 이참에, 나 이참처럼 무수한 이방인 출신 '최초'들이 배출되어 신라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기록을 넘어서는 새로운 개방의 역사가 쓰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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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