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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관심이 기술을 완성한다
페이스북 성공비결은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
저커버그가 괴짜? 인문학 조예 깊고 EQ 높아
한겨레 구본권 기자기자블로그
» 미국 페이스북 본사 사무실 복도에 붙어 있는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라는 문구는 상상력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온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IT기업의 또다른 성장동력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Is this a technology company?)”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를 방문했을 때 맞닥뜨린 표어다.

기자를 안내한 직원은 사무실을 오가다가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곳에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

고민을 담은 문구를 걸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물음의 배경이 된 게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라는 점은 이채롭다.

벨기에 출신인 마그리트는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즐겨 표현한 대표적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이처럼 페이스북을 기존의 유사 서비스 업체들과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로 논리를 넘어선 ‘상상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기술 회사라는 정체성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에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페이스북은 ‘프로그래밍 천재’ 마크 저커버그(26)가 2004년 설립한 세계 최대의

사회관계망 사이트다. 사용자들의 친구와 관심사를 찾아 연결해주는 뛰어난 추천 기능으로 인해,

앞서 나온 서비스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이트가 됐다.

그 비결은 이용자들의 관계 데이터와 콘텐츠를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놀랄 정도로 뛰어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주는 데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차별성은 단지 알고리즘의 우수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그들이 맺는 관계에 대한 깊은 관심이야말로 페이스북의 성공을 가져온 진짜 비밀이다.

구글이 여느 업체보다도 많은 데이터와 뛰어난 수학적 알고리즘 능력을 보유했음에도,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좀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6월 아이폰4 출시 행사에서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있어 왔다”며 “우리는 단지 기술기업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그 뿌리임을 보여주는 사례 한 토막.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고 성장시킨

이야기를 실명 인물들을 등장시켜 영화화한 <소셜 네트워크>가 최근 국내에서도 상영돼 인기를

끌었다. 직원이 10명뿐이던 초창기부터 일해온 나오미 글라이트 제품관리 총괄책임자에게 “영화가

사실과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봤다.

글라이트가 기자에게 들려준 답은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개설한 동기로 그려진, 여자친구인

에리카와의 결별”이었다. 실제로 저커버그에겐 페이스북 창립 이전부터 사귀어온 중국계 여자친구가

 있으며 지금도 긴밀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페이스북은 잘못 알려져 있듯이 “연애에 쓴맛을 본, 사회성이라곤 거의 없는 컴퓨터 천재가

홧김에 만든 서비스”가 아니다. 저커버그가 어려서부터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을 보여온 건

틀림없지만, 그건 페이스북의 성공을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저커버그는 지난해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심리학도 함께 전공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2006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는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갖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사회성이 부족한 괴짜 컴퓨터 천재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저커버그는 인문학에

조예가 깊고 감성지수(EQ)가 높은 사람이다.

특히 정신과 의사였던 어머니, 세 명의 누이와 함께 자라면서, ‘복잡미묘’한 인간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타임>은 설명했다.

이처럼 페이스북이 기술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하는 모습은 마치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은 단지 기술기업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기업이다”(Apple is not just a technology company. It’s more than that)라고

강조하는 것과도 한데 겹쳐진다.

정보기술 산업의 선두주자들이 한결같이 혁신의 비결로 내세우는 건 바로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정보기술 분야를 함께 연구하는 통합적 연구에 있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특정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탐구하는 에스노그래픽 연구도

그중의 하나다.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야말로 혁신의 씨앗인 셈이다.

팰로앨토(미 캘리포니아)/ 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한겨레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 이후…

출판계 “어려워서 인문학 관심 멀어질라”
서점가 “무거운 주제의 독자관심 늘어나”

경향신문 | 김재중 기자 | 입력 2010.10.25 21:50 |

인문서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종합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올랐던 <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김영사)(사진)가 총 50만권(출고 기준)이 판매됐다. 출간된 지 5개월 만이다. 웬만해선 초판 2000~3000권조차도 쉽게 소화되지 않는 한국의 인문서 소비 현실에서 지극히 이례적이다.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은 형국이다.

지난 5월24일 출간된 < 정의란 무엇인가 > 는 7월 첫째주에 처음으로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이하 교보문고 기준). 7월 마지막주~8월 둘째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 1Q84 > (문학동네) 제3권에 자리를 내줬지만, 8월 셋째주부터 다시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책은 10월 셋째주에 조정래의 소설 < 허수아비춤 > (문학의문학)에 자리를 내주기까지 총 12주 동안 1위 자리에 있었다.

정치철학을 다루는 책이 이토록 오랫동안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신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당연히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데 간추리자면 일단 지적 호기심 또는 지적 허영 등이 지적된다. 책이 한번 종합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하면 입소문과 독자들의 호기심이 일으키는 상승작용 때문에 자체 동력으로 얼마간 판매가 지속된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론', 김태호 총리 지명자의 인사청문회 거짓말 논란과 낙마,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파문 등이 이 책이 계속 회자될 수 있는 소재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실이 정의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제 관심은 < 정의란 무엇인가 > 이후로 쏠린다. <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동녘), < 왜 도덕인가 > (한국경제신문사) 등 샌델 교수의 다른 저작들이 추가로 소개됐거나 소개될 예정인데, 샌델에게 모아졌던 독자들의 관심이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도 확산될 것인가란 질문이 제기된다.

출판계는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장재경 김영사 홍보팀장은 "다른 인문서들이 조금 같이 움직이는 것 같긴 하지만 시장 자체가 워낙 위축돼 있다 보니 아직 피부로는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미정 책세상출판사 편집과장은 "한 권의 책이 넓은 의미의 인문서 시장 자체를 키우거나 독자들의 인문서 독서 욕구 진작에까지 실효성 있는 영향력을 끼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어느 출판사 대표는 "워낙 쉽다고 해서 < 정의란 무엇인가 > 를 집어들었던 독자가 어려움을 느끼고 포기함으로써 다른 인문서에 대한 관심마저 차단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점 쪽 얘기는 다르다. 인문서 시장이 지난해에 워낙 크게 위축됐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인문서 판매량은 다소 늘었으며, 하반기에도 무거운 주제와 두꺼운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온 제러미 리프킨의 < 공감의 시대 > (민음사), 조지 레이코프의 < 도덕, 정치를 말하다 > (김영사), 발간 예정인 장하준의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부키)와 같은 책들이다.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 집계를 담당하고 있는 김현정씨는 "과거 같으면 독자층이 매우 협소했을 이런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배경에 < 정의란 무엇인가 > 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자기계발서대로 한다고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된 마당에 인간과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1980년대 같은 수준은 아니어도 인문시장이 커질 것으로 본다"면서 "암울한 현실이 그런 책을 읽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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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서비스/기획 2010.06.14 20:55

디지털 패러다임 바꾼 애플·트위터…IT 성공신화뒤 ‘인문학’이 뛴다
한겨레 구본권 기자기자블로그
» 디지털 패러다임 바꾼 애플·트위터…IT 성공신화뒤 ‘인문학’이 뛴다
“애플은 인문학-기술 교차로”
트위터는 다양한 전공 ‘융합

“애플은 단지 기술기업이 아닙니다. 그 너머에 있는 기업입니다.”(Apple is not just a technology company: it’s more than that.)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지난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아이폰4’ 출시행사에서 한 말이다. 그는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에서 애플과 다른 회사는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기술주 시가총액 순위에서 수십년간 1위이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친 애플이 스스로 “우린 기술기업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다니.

인문학은 지난 1월 잡스가 태블릿 피시(PC)인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도 등장했다. 당시 잡스는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고 정체성을 밝혔다. 인문학은 기술보다 훨씬 멀리 있다. 애플은 기술기업에 더 가깝지만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는 시구처럼 인문학은 어려운 여정에도 도달해야 할 목표라는 것이다.

애플의 인문학 추구는, 홍보 목적도 있지만 애플의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열쇳말로 볼 수도 있다. 인문학은 전문 기술과 거리가 멀지만 인간과 지식에 대한 근원적이면서 보편적인 통찰과 호기심에서 비롯한 학문으로, 국내 대학에서는 흔히 ‘돈벌이에 도움 안 되는 학문’으로 여긴다.

스티브 잡스는 진보적 인문학의 전통이 강한 리즈대학을 다니다 첫해에 중퇴한 바 있다. 잡스는 중퇴 뒤에도 리즈대학의 다양한 인문학 강좌들을 청강했는데, 특히 붓글씨 강의에 매혹됐다.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잡스는 “붓글씨는 멋지고 역사성을 담고 있는데다 과학으로 분석할 수 없는 미묘한 아름다움이다”라며, 쓸데없어 보였던 청년 시절의 탐구가 훗날 맥컴퓨터를 만드는 데 요긴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인문학을 중시하는 문화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단문블로그 업체 트위터 사무실을 방문해 보니, 컴퓨터 전공자만이 아닌 다양한 경력의 직원들이 모여서 일하고 있었다.

기술이 압도하는 시대에
숫자 숨기고 인간 내세워

사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애플의 히트작은 음악재생기(MP3플레이어), 휴대전화, 태블릿 피시 분야에서 처음 나온 제품들이 아니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시장에서 애플이 이뤄낸 성공은 사용자의 직관을 충족시켜주는 기능과 종전과 구조를 달리하는 산업생태계를 통한 가치 제공에 기인한다. 공급자 관점과 전통적 접근법을 버리고 사용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낸 제품들이다.

잡스는 아이폰4 출시행사에서 화상통화를 선보였다. 새로울 게 없는 서비스이지만 현장 참석자들은 영상을 보며 감탄했다. 군인은 병원에 누워 있는 아내랑 통화를 한다. 곧이어 아내의 뱃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화상전화로 보고는 감격한다. 연인인 두 청각장애인이 말이 없는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표정과 눈빛으로, 손말로 나누는 사랑의 대화였다. 화상전화가 왜 필요한지를 간단히 이해시키는 방법이었다.

모든 것을 숫자로 바꿔 기계가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디지털 기술은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전에 생각지 못하던 혁신을 이뤄내며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에 다니던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디지털 기술 진화의 선두에 서 있다. 수학적 알고리듬을 신봉하는 이들은 “과거의 업무 방식이 과학적이지 않고 비효율적이다”라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구글을 디지털 변혁의 중심이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사회현상은 숫자로 측정하기 힘들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의 사는 모습이 있다. 혁신이 일상화한 디지털 기술일수록 더디게 변화하는 사람의 특성을 고려하고, 인문학적 성찰을 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구글드>의 저자 켄 올레타는 ‘구글의 장점은 곧 약점’이라는 지적을 했다. 그는 “구글의 엔지니어 위주 문화는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며 “애국심, 자존심, 두려움, 사생활 등은 측정될 수 없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칼럼, 인터뷰2010.05.01 19:29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뉴미디어기획 9] 아이폰-아이패드 충격과 창의성의 근원
10.05.01 18:16 ㅣ최종 업데이트 10.05.01 18:16 강인규 (foucault)

대학에서 뉴미디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기술이나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하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살펴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우선 "우린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보자. 최근 들어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닌텐도의 게임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윗분들'의 훈계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기 시작한 '유행어'기도 하다.

 

당사자가 의도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점에서 '우린 이런 거 왜 못만드냐'는 물음은 상당히 전복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왜 이 꼴이냐'고 묻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는 그가 몸담은 조직과 그 조직을 포함하고 국가 모두를 의미한다.

 

  
애플 사의 오랜 모토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평가 받는 애플의 저력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훈이다. 위계적인 기업의 문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윗사람'의 생각이라면 특히 더.
ⓒ Apple
애플
 

못 만드는 이유?

 

결론부터 말해 보자. 흔히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 상황에 정확히 부합하는 말이다. '이런 거 왜 못 만드느냐'고 묻는 것은 질문자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만들자'고 말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모두 지도자들이다. 조직에서 가장 강한 권력과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 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묻는 지도자가 많을수록 그걸 만들어 낼 가능성은 낮아진다.

 

두 번째는 이런 질문을 태연히 던질 수 있게 하는 위계적 사회구조다. 위계 사회에서 '왜 못 만드냐'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질타이고 추궁이며 명령이다. 여기서 자신의 책임은 빠져있다. (자기는 방법을 모르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소통은 막혀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직된 소통구조 속에서 창의력이 꽃 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린 왜 못 만드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조직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을만큼 위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게 두 번째 답이다.  

 

봉건적 위계사회의 비극

 

애플이 동기가 된,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은 사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물음은 반성과 각성에 가까웠다. 왜 애플같은 회사가 일본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혁신과 첨단기술의 대명사가 된 나라에서 말이다. 그 쟁쟁했던 소니, 도코모, 토요타의 일본에서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주목할만한 답변마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나왔다. 2008년 2월 25일자 <뉴스위크>가 '애플이 일제가 아닌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것이다. 크리스찬 캐릴 기자는 "창의력의 빈곤은 일본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수직통합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위계적 경제환경에서는 융통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계적 조직에서는 반대가 불가능하다. 반대가 불가능한 곳에서 창의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창의성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위계적 기업문화가 재계를 넘어 정치, 교육, 문화의 모든 영역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사회 전체가 단일 기업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로 전락한 것이다.

 

기업 내부에서 반대가 불가능하면 밖에서 반대를 해 주어야 한다. 국민이, 언론이, 대학이, 정부가 말이다. 그러나 이들마저 기업조직의 일부가 되고 나면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회장님' 좋아하는 언론이나,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는 사회와 기업 모두에 해가 될 뿐이다.

 

하물며 정치 지도자가 '국가 CEO'를 자임하거나, 기업이 대학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기업으로서의 애플이 갖는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애플은 변함 없이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 공개자료
애플

 

애플과 인문학의 관계

 

현재 한국 교육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는 '통폐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예컨대 음악과 미술 수업을 '통폐합'하고 (이런 '창의적 발상'이 가능한 나라에서 아이폰이 안 나온 게 놀라울 뿐이다),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5분으로 '통폐합'하고, 대학 전공을 "사회 변화의 요구에 따라" 절반 수준으로 '통폐합' 하겠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노는 시간'을 없애고, '돈 안 되는 전공,' 즉 인문학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승인과 지지가 있다. 정부는 이런 '교육개혁'을 주도하면서 '창의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야심찬 "한국형 스티브 잡스 양성계획"도 나왔다. "탈락시스템에 따라 3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쳐" 10명 안팎의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선발할지 모르지만, 대단한 '스펙'을 갖춘 실력자들이 몰려들 게 틀림 없다(조롱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지원해도 탈락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쩌나. 스티브 잡스는 한국 정부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하는 두 골칫거리의 산물이니 말이다. 바로 '인문학'과 '노는 시간'이다.

 

지난 1월,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아이패드'를 선보인 날이었다. 그는 애플 사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대형 스크린으로 표지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판이었지만, '길 이름'이 독특했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의미를 설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미국의 대학에서 인문학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인문/예술/사회과학 프로그램 웹사이트. "위대한 사상이 세계를 바꾼다"는 표어가 보인다. 하프를 연주하는 사진 오른쪽에 "컴퓨터는 음악이론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음악과 컴퓨터 기술을 접목시킨 최신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 MIT
MIT

 

'미국식 교육'의 중심은 인문학

 

'미국식 교육'을 잘 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식 교육을 '돈 되는 실용교육'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역과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뛰어난 인문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첨단 기술연구로 알려진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훌륭한 철학, 언어학, 문학, 예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

 

미국 대학의 전통은 크게 두 축이 있다. 연구중심 종합대학과 학부 중심의 인문대학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종합 연구대학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라 불리는 학부 중심 인문대학에서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오바마 대통령도 콜럼비아 대학으로 옮기기 전 '옥시덴탈 칼리지'라는 학부 인문대학을 다녔다. 비록 한 학기만에 그만 두기는 했으나,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 칼리지'도 학부 중심 인문대학이었다. 그는 청강으로 들었던 서예수업을 '생애 최고의 수업'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는 '학교를 때려 치운 것'를 꼽았지만 말이다(게다가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 말을 했다).

 

미국 대학이 '리버럴 아츠'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커뮤니케이션(소통) 능력, 비판적이고 윤리적 사고,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교양.

 

미국에서 인문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무 지식이나 실용적 기술'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싫어하는 것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인 셈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온 교육'을 성공 비결로 내세운 것이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리드 칼리지. 학부 중심으로 인문학적 교양을 가르치는 미국적 전통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 가운데 하나다. 스티브 잡스는 이 학교를 한 학기 동안 다닌 후 자퇴했다.
ⓒ 공개자료
잡스

인문학, 왜 중요한가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실용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왜 '돈 안 되는' 교육이 대접을 받는 것일까?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저 돈만 되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은 '고전 교육'이다. 고전(classic)이란 세월이 흘러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인류의 성과물을 말한다. 실무용 지식과 기술은 하루가 멀다고 변하지만,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의 가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적 기초가 있는 사람은 실무 지식도 쉽게 배운다. 쉽게 배울 뿐 아니라, 제대로 배운다. 제대로 배울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올바로 쓸 줄 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교육을 투자에 비유한다고 하자.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지금 한국의 기업과 정부와 대학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실무적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장하는 '대안'은 죽어가는 인문학을 뿌리까지 없애고 그 자리에 단편적인 실용지식과 기술을 채워 넣는 것이다.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인문학에 존경심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미래 경쟁력의 토대인 창의력까지 죽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비판 능력은 '남과는 다른 생각,' 즉 창의력의 토대가 된다. 인문학이 강조하는 윤리의식은 배려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애플이 나올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다. 

 

  
<와이어드>지는 2009년 6월호 표지기사를 통해 소셜 미디어 혁명을 다루면서 '신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협력과 공유 운동이 경제모델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와이어드>는 이 새 경제모델을 "신 신경제(New New Economy)"라고 이름 붙였다.
ⓒ Wired
신 사회주의

 

경쟁교육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유치원생이 영어공부 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진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자본주의는 경쟁체제이고, 경쟁을 권장해야 '선진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런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국가 지도자가 '선진 인류국가'와 '선진국 문턱'을 말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이런 무엄한 소리가 흘러 나온다.

 

"젠장, 그 문턱은 길기도 하다…."

 

유치원 시절에 듣던 '선진국 문턱' 이야기를 중년이 다 되어서까지 듣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장담컨대, 내 생전에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비관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 정부가 말하는 '선진국'은 다가서면 사라지는 신기루다. 당나귀 머리 앞에 달아놓은 당근. 주인을 태운 당나귀는 당근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걷지만, 죽는 날까지 당근을 입에 대지 못한다. 그 당근은 새 당나귀의 머리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 비관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가 말하는 '경쟁교육'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경쟁 교육은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을 배출하지 못한다. 한국식 경쟁 교육에서 앞서가는 '비결'은 빼앗고 감추는 것이다.

 

그러나 리눅스, 위키피디아, 플리커, 앱스토어, 트위터, 페이스북의 성공에서 보듯, 뉴미디어 시대에서는 '나눔'과 '배려'가 새로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와이어드>는 이처럼 협력에 기반한 미래의 공동체 경제를 '신사회주의(New Socialism)'라 부른다. 내가 나누면 남도 나눌 것이고, 공동체는 번영하게 된다.

 

모든 것을 떠나서, 서로 밟고 밟히는 곳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고,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아이폰을 왜 못 만드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다간 '한국형 잡스'나 '선진 일류국가'보다 사회 붕괴가 먼저 찾아올 것 같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애플과 구글의 창의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구체적으로 살필 예정이다. 실리콘 밸리의 탈위계적 전통이 어떻게 뉴미디어 기업들 특유의 '장난기(playfulness)'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 유희 문화가 어떻게 소비자들을 사로잡는지 다룬다. 이 맥락에서 '잘 노는 것'이 왜 국가 경쟁력을 위해 중요한지를 말할 생각이다. 이와 더불어 '그래픽 인터페이스'처럼 쉽고 대중 친화적 기술과 '사악해지지 말자'는 윤리적 접근이 미국 뉴미디어 산업을 지배하게 된 배경을 살펴 본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와 기업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다룰 계획이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이 아름다운 길 걸으며 사유(思惟)했다니… 부러울 뿐"

  • 입력 : 2010.03.28 23:28

[길위의 인문학] 두 번째 탐방 '인문학, 퇴계의 길을 따라 걷다'
낙동강 끼고 청량산까지… 기암괴석 절벽아래 '예던길'
"山처럼 어질게 살라"는 퇴계의 가르침 절로 새겨

"한 차례 꽃이 피면 또 한 차례 새로워, 차례차례 하늘이 내 가난을 위로하네. 자연의 조화는 무심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우주의 이치는 말도 없이 절로 봄을 머금었네…."

성우 배한성씨가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 앞에서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시 '꽃구경'을 읊었다.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고자 동행했다"는 배씨는 "이곳에 오니 물질에 찌들었던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문학을 일상생활 속에 심자는 취지로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주최하고 문학사랑·한국도서관협회·대산문화재단·한국연극협회가 후원하는 '길 위의 인문학' 캠페인의 두 번째 탐방인 '인문학, 퇴계의 길을 따라 걷다'가 26~27일 경북 안동에서 펼쳐졌다. 퇴계는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이곳에 도산서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눈 녹고 얼음 풀려 맑은 물 흐르는데 살랑살랑 실바람에 버들가지 휘날리누나….”26일 오후‘퇴계의 길을 따라 걷다’탐방단이 퇴계가 걸으며 사유했던 오솔길인 예던길을 따라 걷고 있다. /안동=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이번 탐방에는 1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참가자 35명과 함께 소설가 김주영씨, 최근 퇴계의 마음공부법을 고찰한 '함양과 체찰'을 펴낸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가 초빙강사로 함께했다. 첫째 날 코스는 안동시립도서관~도산서원~퇴계종택~퇴계묘소~예던길(단천교), 둘째 날 코스는 예던길(농암종택)~청량정사~예던길(청량산)로 이어졌다.

서울에서 4시간 차를 달려온 탐방단이 굽이굽이 산길을 한참 휘돌아 들어가니 아담한 산속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도산서원이 눈에 들어왔다. 신창호 교수가 "추울 땐 밖에 나가지 않고 공부만 하고, 더울 땐 산을 오르며 시를 쓸 수 있도록 깊은 골짜기에 서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탐방단은 퇴계를 모시는 사당인 서원 내 상덕사에 들어가 위패를 배알하는 알묘(謁廟) 의식을 거행했다. 퇴계의 14대손(孫)인 이원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이 "도산서원 알묘는 여성에게 거의 허용되지 않는데 '길 위의 인문학' 캠페인을 위해 특별히 허가했다"고 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퇴계의 길을 따라 걷다’탐방단이 도산서원에서 퇴계의 위패를 배알하는 알묘(謁廟) 의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유생들이 착용했던 도포를 입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안동=이태경 기자
이번 탐방의 압권은 퇴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예던길' 걷기였다. 도산서원 근처 단천교에서 시작해 낙동강을 끼고 봉화 근처 청량산까지 죽 올라가다 보면 병풍처럼 둘러싼 산줄기 아래로 오솔길이 펼쳐져 있다. 찾는 사람이 드물어 조용히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신창호 교수는 전망대에 올라 "현명한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며 "앞을 막는 바위가 있으면 물처럼 돌아서 가되 옳다고 생각한 것은 절대 바꾸지 않는 산처럼 현명하고 어질게 살라는 퇴계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자"고 말했다.

둘째 날 찾은 농암종택에서 옹달샘까지 예던길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벽이 수려한 절경을 자랑했다. 김주영씨는 절벽 사이에 매달린 벌집을 가리키며 "퇴계 집안에 200년 동안 꿀을 제공한 말벌 집안"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고, 여행작가 이해선씨는 "퇴계 선생이 이토록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사유를 했다니 그저 부러울 뿐"이라고 감탄했다. 옹달샘부터 5㎞ 정도는 사유지(私有地)로 출입이 금지돼 있어 탐방단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1박2일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김건수(56·경기도 성남)씨는 "30년 넘게 줄곧 일만 하다가 내 삶의 좌표가 어디쯤 와 있는지 되새겨보고 싶어 휴가를 내고 왔는데 제일 잘한 일 같다"며 "전문가 교수님과 상상력 풍부한 소설가가 가는 곳마다 설명을 곁들여주니 더욱 맛깔 나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온 김태영(48·서울 상암동)씨는 "1000원권 지폐에서 봤던 퇴계 선생에게 끊임없이 수양하고 반성하던 삶의 자세를 배우고 간다"며 "아들이 아빠랑 이번 탐방에 참여한 걸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탐방의 마무리는 청량산 아래에서 이뤄졌다. 탐방단은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되느냐"고 진행팀을 졸랐다. "만남과 이별이 길 위에 있더라"고 말해 박수 세례를 받은 홍성자(56·서울 삼성동)씨는 "'길 위의 인문학'을 함께하니 평범한 가정주부인 내가 이런 유식한 말도 다 하게 됐다"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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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콘텐츠코리아2010.04.26 12:19

    창조적 대안, 문화콘텐츠 지식체계

    지난 20여 년 동안 미래 사회에 대해 통찰력있는 저술활동을 전개해 온 석학을 꼽는다면 앨빈토플러 박사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세월동안 독서 체험과정에서 앨빈토플러 박사의 책을 접하면서 많은 영감과 통찰을 얻었습니다. 특히 그 분의 저서 “부의 미래”는 저에게 큰 자극이 되었으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문화콘텐츠 지식체계의 확립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토플러 박사는 부의 미래에서 무용지식(Obsoledge)의 오류에 대해 적시하고 있으며 무용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길이 부의 미래를 창조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무용지식의 오류는 각 경제주체간 디지털 경제환경의 빠른 지식의 변화의 수용 속도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 각 경제 주체의 지식 수용 속도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인용한 바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 융합 환경의 본질적 특성으로 지식의 창출, 지식의 창조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이로 인해 과거의 무용 지식의 양산, 지식에도 수명이 있다는 토플러 박사의 무용지식론에 공감하였으며 한 사회가 무용지식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대응하여 왔는가를 관찰하였습니다.

    결론은 무용지식 오류의 극복의 창조적 대안으로 먼저 이번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열풍,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3D 아바타 영화에서 입증되었듯, 글로벌 시장 지향, 공정 경쟁, 창조적 기업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문화콘텐츠기획자, 전문가 중심, 콘텐츠 생태계 환경 조성이라는 사회적 합의와 원칙의 확립, 실천이었습니다.

    앨빈토플러 박사는 기업 현장에서 시장에서 창출되는 지식의 속도는 100km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른 경제 주체들은 이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무용 지식의 오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이 부의 미래를 창조하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미국 사회가 무용지식의 오류 함정에서 벗어나 부의 미래에 도달하고자 선택한 창조적 대안은 바로 애플 스티브 잡스 CEO와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같은 창조적 기업가, 콘텐츠 크리에이터였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창조적 열정, 창의성, 창조적 역량과 글로벌 마켓을 창출하는 유용한 지식었으며, 이러한 원칙과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데 이 분들의 학력은( 스티브 잡스, 빌게이츠 등  대학 중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사회는 바로 이러한 원칙을 유지하면서 무용지식의 함정의 오류에 빠지는 것을 지혜롭게 극복하여 온 것입니다.

    그리고 애플과 같은 글로벌 성장 기업, 구글과 같은, MS와 같은 글로벌 기업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왔으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같은 걸출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배출해 냄으로서 양질의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무용지식이 아닌, 진정 가치있는 유용한 지식과 기술이 전 사회에 축적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미국의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어떤 상황일까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는 무용 지식의 오류의 함정를 지혜롭게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와 원칙의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일까요?

    저는 솔직히 우리 사회가 오늘 이 순간까지도 심각한 무용 지식의 함정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우려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의 원인과 배경을 들자면 매우 많이 들 수 있습니다만, 먼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적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 온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무용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빠른 지식과 정보의 변화 홍수 속에 양질의 지식과 콘텐츠를 창출하도록 하기 위한 지식체계로서 문화콘텐츠 지식체계를 확립해 왔다고 하겠습니다.

    문화콘텐츠는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만 지난 2000년 전후 제가 약 5년 동안 민간 차원에서 창발적으로, 당시 국가 IMF 위기극복, 인터넷벤처 버블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전개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문화콘텐츠를 창안하고 지식 랠리를 전개한 바 있습니다.

    이것도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가 당시 무용 지식의 오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던 셈입니다. 이미 당시에도 우리 사회가 특히 산학간 지식의 변화 속도의 차이, 지역간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 심화, 글로벌 시장의 트렌드 흐름과 정책 지식의 차이 등 무용지식의 오류 함정에 깊이 빠져들 위험에 있었던 것입니다.

    즉,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던 당시 최초로 시장지향적으로 기획한 해리포터의 서사구조 스토리텔링 분석 등 집중적이고도 창발적인 지식 컨퍼런스 랠리의 전개, 최초의 문화콘텐츠 대학 순회 강연 행사 전개.. 등등은 많은 사회적 반향이 있었으며, 이후 전개한 콘텐츠 지식 랠리가 이미 글로벌 한류 열풍 확산의 지식 기반 구축에 기여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글로벌 한류의 성공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킬러콘텐츠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창출된 시기가 당시 시장 지향으로 지식 랠리를 전개한 시점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 보람을 갖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에 문화부, 정통부 등 정부에서도 호응을 해 주셨으며, 공식적인 후원을 해 주셨습니다만 오늘날까지 초창기 시장을 헌신적으로 개척하고 국가적으로나 공익적으로 명백히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 이로 인하여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사업에 커다란 피해가 초래되었음에도 이에대해 어떠한 보상이나 정당한 평가도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그 후 정부 주도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이 설립되고 (2001년 9월) 이후 관 주도의 정책으로 바뀌어 전개되었으며 정부 차원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지원 정책을 전개해 왔으며, 최근까지 1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만, 우리 사회가 콘텐츠 정책에서 진정한 성과를 창출하고 무용지식의 오류 함정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지난 10년 세월 동안 이미 민간 차원에서 창발적으로 전개하던 일들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는 상황과 구조가 한편 무용지식의 함정의 오류와 리스크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이러한 우려로 그 동안 문화콘텐츠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자문, 강연,심사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디지털 지식 노마디언으로서 적지 않은 세월동안 헌신적으로 수 십 개 학회, 단체 활동을 통해 지식 공유와 지식 네트워크 활동을 전개하고 실천하여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문화콘텐츠 지식 체계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고 토플러 박사가 부의 미래에서 강조한 심층지식체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이제 각계에서, 다방면에서 여러 분들이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이제는 우리 사회도 문화콘텐츠 지식체계, 크리에이티브 파이프라인 체계의 흐름을 잘 탄다면 콘텐츠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회와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제가 문화콘텐츠 지식체계가 중요하다고 인식한 것은 이러한 지식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 사회가 창조경제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산업 분류체계, 학문 분류 체계의 확립이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나아가 지속 가능한 양질의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파이프라인 체계, 콘텐츠 정책 지원 체계의 확립에도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콘텐츠 지식 체계는 콘텐츠 지식 네트워크, 콘텐츠 생태계 환경에서의 양질의 콘텐츠 창출 체계, 융합 크리에이티브 지식 창출 체계입니다.

    콘텐츠 산업구조, 비즈니스 모델 창출 지식 기반, 가치사슬 선순환 체계이며,  콘텐츠 테크놀로지 인사이트 체계, 창조산업 클러스터 체계라 할 것입니다.

    이는 창조경제 시대를 여는 핵심 지식 체계입니다.

    앨빈토플러박사는 "불황을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한국민은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 등 제반 어려움을 창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라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 바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화콘텐츠 지식 체계를 확립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세월이 걸린 것 같습니다.

    심층지식체계로서 인문학, IT, 미디어, 아트, 창조경영 분야에 걸쳐 지식과 경험의 축적의 시간대가 사실상 3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저는 지금 시점에 이러한 문화콘텐츠 지식체계를 통해 글로벌 킬러콘텐츠가 창출되고, 수 많은 명품,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될 수 있음을 주목합니다.

    아이폰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지 않았듯이 콘텐츠 지식 체계 역시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저는 그 동안 수 많은 모임, 학회, 포럼, 등 행사를 참여하면서 지식 공유 축적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만 지난 90년 대 초반부터 2000년 대 초반까지 한국의 IT, 멀티미디어, 콘텐츠 전환기의 한 복판에서 시장의 흐름, 트렌드를 현장에서 체험한  기간이 매우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고 시간대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라도  미국이 시장 지향, 공정경쟁, 콘텐츠 크리에이터, 창조적 기업가 중심 정책으로 무용지식의 함정을 극복하고 부의 미래를 창조해 나가듯 우리도 시장 지향, 공정 경쟁, 창발성 유도, 콘텐츠 크리에이터, 창조적기업가, 문화콘텐츠기획자 중심으로 정책의 전환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창조경제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기에 생존 번영할 수 있으며 부의 미래의 길을 찾아 선진화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콘텐츠 소프트웨어 분야의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강조되고 있습니다. 국가의 정책과 예산이 콘텐츠 소프트웨어 산업 정책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디바이스 제조 분야와 통신 네트워크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한 기업들이 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콘텐츠 소프트웨어 분야가 열악한 데 대해 많은 분들이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지금까지 콘텐츠 소프트웨어 분야가 열악한지, 그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실질적 대안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지난 세월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노력해 온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콘텐츠 전문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사실상 소외 배제시킴으로서 문제가 풀리지 않고 시간만 흐르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현재의 직면한 제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창조적 대안으로서 수 십 년의 세월 동안 확립된 문화콘텐츠 지식 체계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문화콘텐츠 지식체계를 확립한 핵심 주체는 문화콘텐츠 기획자,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며, 지식 창조자,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우리 사회에도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해 왔으며, 이들이 현재의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창조적 대안이자 핵심 인재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도 미국과 같이 부의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며 선진화의 목표와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지식창조자가 창조적 대안이자 콘텐츠 지식 네트워크의 플랫폼이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전충헌 올림  
    코리아디지털콘텐츠연합 회장
    코리아디지털콘텐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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