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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랑스인이 막걸리 들이켜자 다들 토끼눈 됐다
  • 기 마르시아 AXA손해보험 사장

입력 : 2010.03.19 23:36

기 마르시아 AXA손해보험 사장

추운 날씨에 감기에 걸렸을 때
한국인 친구가'약주'라며 막걸리를 권했다
이제는 한국인 직원보다 내가 더 잘 마신다…
막걸리와 한국인은 여로모로 닮았다
언제나 잘 어울리고 나눌 줄 아는 넉넉함
나는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한국의 情에 취한다

프랑스인인 내가 한국에 온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프랑스와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부터 솔직하고 매사에 열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파리와 서울의 날씨 또한 비슷하지만, 한국의 겨울이 좀 더 시리고, 바람이 매서운 날들이 많다. 내가 한국에 처음 온 2007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때 나는 회사를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시기였다.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배우고 싶었던, 그야말로 한국에 대한 학습 의욕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도 내가 프랑스 본사에 직접 건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웃나라인 한국에 대해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내 눈에 비친 한국은 작지만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였다.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망설이는 본사 경영진을 설득하여 결국 한국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나는 이왕 한국에 온 김에 한국 문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한국의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한국의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집도 일부러 전통이 살아 있는 인사동으로 정했다. 주말에는 서울의 거리를 혼자 하루 종일 걷기도 했다.

평소처럼 서울의 이곳저곳을 거닐고, 저녁에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파리의 날씨를 생각하며 옷을 얇게 입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감기 기운까지 겹쳐, 만나자마자 오들오들 떠는 내 모습을 본 한국인 친구는 나를 집에 보내는 대신 감기를 한 번에 떨어뜨릴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바로 한국의 전통주였다. 감기에 걸렸는데 술을 마신다? 당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친구는 한국인들은 때론 술을 약으로 마실 때가 있다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가진 한국어 사전에 '약주'라는 단어가 정말로 있었다. 놀랍게도!) 같이 가자고 계속 종용했다. 결국 나는 친구의 꾐에 빠져 인사동 근처 한 전통주점에 들어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금방이라도 옹기가 넘칠 만큼, 한가득 담겨 나온 막걸리를 처음 보며 나는 우선 그 하얀 색깔에 매료되었다. 하얗게 보이면서도 때론 투명해 보이는, 진하지도 않고 옅지도 않은 그 색깔은 마치 어렸을 때 수채화를 그릴 때, 물감이 가장 이상적으로 배합되었을 때 도화지에 펼쳐지던 바로 그 색깔이었다.

먹는 방식도 아주 독특했다. 한국의 전통 옹기에 국자가 둥둥 떠있어서,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사발에 떠먹는 식이었다. 술이란 당연히 병에 담겨 있고, 잔에 따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이 특이한 한국 전통주의 맛은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사발을 들어 한 모금을 넘겼다. 이럴 수가! 입에 댄 순간 톡 쏘는 느낌이 너무나 입에 맞는 것이 아닌가.

와인의 천국인 프랑스에서도 이런 독특한 느낌을 주는 술은 경험한 적이 없다. 내친김에 석 잔을 연거푸 마셨다. 어느새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추위에 얼었던 몸이 금세 녹는 것을 느꼈다. 한 잔, 또 한 잔. 어느새 나를 괴롭혔던 감기 기운도 느낄 수 없다. 몇 시까지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열렬한 막걸리 예찬론자가 되었다.

나는 한국 음식 중에서 족발을 즐겨 먹는데, 족발에 가장 어울리는 술이 막걸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도 서울 장충동에 있는 나의 단골집을 찾아가 막걸리와 족발을 시켜 먹곤 한다. 회사 직원들과 저녁에 회식 자리를 가질 때,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하는 술 역시 막걸리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나는 이 하얀 색깔의 전통주가 한국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막걸리는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술이다. 도수가 높지 않아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나 여성과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막걸리는 그 자체로도 맛이 좋지만 김치·파전·보쌈 등 다른 한국 음식과 아주 잘 어울린다. 막걸리는 주변의 다른 음식들과 한바탕 어우러질 때 더욱 맛을 내는 그런 술이다.

여러모로 한국 사람들과 닮았다. 개인을 생각하기에 앞서 공동체를 우선하고,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즐길 줄 아는 사람들. 항상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작은 것 하나도 나눌 줄 아는 넉넉함이 있는 사람들.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실 때마다 나는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한국의 정에 취한다.

이렇게 막걸리를 즐겨 마시다 보니 이제는 한국 직원들 가운데서도 나보다 막걸리를 잘 마시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한번은 직원들과 막걸리 많이 마시기 대회를 했는데 내가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서양인인 내가 거침없이 막걸리를 들이켜는 것을 바라보던 우리 직원들의 놀란 토끼 눈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이 글은 필자가 프랑스어로 쓴 것을 한국인 비서가 번역한 것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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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무늬만 '한국'…국적 불명의 거리, 인사동

    노컷뉴스 | 입력 2010.03.01 09:33 |

    [노컷뉴스 신경은 대학생 인턴기자]

    세계적인 여행 잡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 소개된 인사동은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전통문화 1번지 인사동에는 '한국의 전통'이 없다. 인사동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잡다한 전통들만 넘쳐나고 있다. 한국 사람들조차 해외여행에서 구입하지 못한 기념품을 사기 위해 인사동을 찾는다. 이미 인사동은 한국의 문화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국적 불명의 문화 상품을 파는 곳이 됐다.

    ◆ 인사동 전통거리에는 '한국의 전통이 없다'
    인사동의 한 기념품 가게, 기모노를 입은 일본 인형이 팔리고 있다. 중국 청나라 사신 도자기 인형과 상아 조각도 나란히 줄을 서 있다. 진열되어 있는 각종 불상들 역시 인도네시아와 중국, 일본의 색채가 짙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 목각 인형이 달마상 옆에 버젓이 놓여 있고, 아프리카의 전통 탈은 입구에서 큰 입을 드러내고 웃고 있다. 각국에서 들여온 기념품들이 비좁은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 기념품들의 국적을 분간해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영국에서 온 제임스(38)씨는 "인사동에 있으니 모두 한국기념품으로 생각 한다"며 "한국의 것과 다른 나라 것을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인사동을 전통의 거리로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고유의 색채를 잃은 인사동에 쓴 소리를 남겼다. 기하영(24)씨는 "최근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전통 기념품을 선물하기 위해 인사동을 찾았다가 크게 실망했다"며 "선물할 만한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그나마 인사동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 전통을 판다는 사명감 뒷전 … 경쟁 치열한 현실
    전통을 판다는 남다른 사명감은 퇴색된 지 오래다.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굳이 현지에서 기념품을 사려고 해도 원하는 물건을 찾기도 어렵고 비싸니까 인사동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외국상품을 한국 전통상품인 것처럼 팔아도 되냐고 묻자 "어차피 같은 동양권 기념품이라 괜찮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15년 동안 꾸려온 가게를 이어오고 있는 김민호(32)씨는 "판매 경쟁이 치열한 인사동 거리에서 전통 기념품만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와서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 공예품을 찾는다"며 "예전에는 몇 가게 없었는데 요즘에는 보편화 된 실정"이라며 하소연했다.

    ◆ '메이드 인 차이나' 꼬리표 불은 반쪽짜리 인사동
    인근 한 기념품점에서는 한국에서 만든 물건만 판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가게 구석에 진시황 병마 용갱이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진열장에 놓인 인형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기념품 가게 상인은 "우리나라에서 만들면 돈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동에 중국산 제품이 넘쳐나게 된 이유가 있다. 인사동이 문화 보존 지구로 지정되자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여기에 높은 인건비까지 가세해 인사동 상인들의 목을 조여 왔다. 이에 따라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상품이 인사동에 들어온 것이다.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수입된 제품도 많아졌다. 인사동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상진(40)씨는 "판매 경쟁이 치열해 다른 가게에서 파는 저가 중국제품을 안 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인사동을 찾은 외국인들은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다. 인사동을 찾은 키야(28)씨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하면 질이 떨어지고 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메이드 인 코리아 물건을 사려고 한국에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종로구청 문화공보과 담당자는 "국산 공예품을 팔도록 설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비싼 상가 임대료와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조항이 없는 등 현실적인 문제점이 많다는 것.

    ◆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전통 기념품 판매점 '아리랑'은 10년 째 인사동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판매하는 제품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을 고집하는 편이다. 점원 서미영(38)씨는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OEM상품의 경우 원가가 싸기 때문에 이득 보는 면이 있겠지만 인사동은 한국 전통의 거리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그녀는 "가격이 싼 제품을 찾는 고객도 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가치를 두는 고객들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사동은 걷고 싶은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남인사마당'에는 전통문양의 야외무대가 설치됐고 공중편의시설도 확대됐다. 시민들이 찾고 싶은 인사동을 만드는 동시에 전통색을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색깔 없는 전통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문화를 올바로 소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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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