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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2011.10.06 07:16

“이제는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

재미동포후원재단 홍명기 이사장 인터뷰

2011년 10월 06일(목)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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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제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미국사회의 성공한 CEO, 동포사회의 롤모델, 동포들을 위한 자선사업가 등등 재미동포후원재단 홍명기 이사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5일(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등 내외 귀빈 100여명과 전 세계서 모인 재외동포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홍 이사장은 故 조규훈 선생과 함께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홍 이사장은 “동포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고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세계한인의 날은 내국인에게는 재외동포의 소중함, 재외동포에게는 모국의 관심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07년 제정됐으며, 이날 동포사회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에게 훈포상을 시상하고 있다.

재외동포인 홍 이사장은 건축용 철근에 내구성을 높여주는 코팅제를 만드는 기업 ‘듀라코트’의 창업자로 현재 미국 내 시장점유율 1위, 한 해 매출 2억 달러(약 2400억원)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의 CEO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1년 밝은미래재단을 설립, 한인학교 및 단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교육기부를 시작해 지금까지 약 6백만달러(한화 약 72억원)를 기부했고, 향후 10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한 자선사업가다. 

이런 경력을 가진 홍 회장을 기업가 출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과학자이었다. 중앙고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미국 유학에 오른 그는 58년에 미국 UCLA 화학과를 졸업하고, 26년간 연구실에서 합성수지개발에 매달렸다. ‘듀라코트’는 퇴사 후 51세에 설립했다. 

유학생에서 과학자, 기업가 그리고 자선사업가로 인생 4막을 펼치고 있는 과학자 출신 기업가 홍 이사장으로부터 그 성공비결을 들어보았다.

▲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한 재미동포후원재단 홍명기 이사장 
- 자신의 소개를 해주세요.

나는 특수공업용 도료기업 ‘듀라코트’의 창업자다. 우리 회사 제품은 철이나 알루미늄에 코팅을 해서 그 내구성을 높여주는 건축용 도료다. 지붕, 벽, 바닥 등 대부분의 건축물에 모두 쓰이고, 세제, 아이스박스 등에도 사용된다. 일부 자동차 도료에 쓰이는 제품도 개발했다. 철이나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많이 사용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부식이다. 우리가 개발한 도료는 한 번 칠하면 무려 40년 이상을 보장하는 제품이다.

- R&D를 중시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모든 걸 개발하고 있다. 타사가 개발한 제품을 응용해 사용하지는 않는다. 5%를 R&D에 재투자하고 있으며, 특허도 내고, 경우에 따라선 특허 대신의 보장 방법도 일부 병용한다. 물론 애로사항이 따르지만 그래도 25년 동안이나 R&D에 중점을 둔 덕에 최대 라이벌인 PPG, 엑손 등을 능가하는 제품을 개발했다고 자부한다.

- 51세에 창업하기엔 늦지 않았나

요즘 한국에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실제로 내 경험에 비춰보아도 나이 먹었다고 해서 절대로 실망해선 안 된다. 51세의 나이면 한국에선 중년으로 회사에서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로 치부된다. 반면에 나는 미국의 큰 도료기업에서 51세까지 리서치 디렉터로 일했고 이후 듀라코트를 창업했다. 늦지 않은 것이다.

- 과학자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비결은

한국 속담에도 “우물을 파려면 한 우물을 파라!”란 말이 있듯이 나는 계속해서 한 우물만을 파고 살았다. 미국에 와서 미 UCLA 화학과를 졸업하고, 도료기업의 연구실에서 20년 이상  기술개발에 매달려 살았다. 그리고 창업도 도료기업으로 시작했다. 계속 화학 분야에만 집중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 현재는 기부자로 많이 알려졌다. 그 동기는

나 역시 미국에서 대학다닐 때, 기부에 의해 큰 도움을 받았다. 그렇듯이 미국은 기부문화가 잘 되어 있고 그것이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돈을 벌었으면 쓰는 방법도 중요하다. 동포사회나 모국을 위해 번 돈을 쓰면 그 위상이 크게 나아질 것이다. 지금 한국도 기부가 많이 늘고 있는데 더욱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중요한 3가지가 있다면

나도 지금까지 오는데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국에 처음 건너가서 크게 고생을 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하지만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열심히 일하기(Hard work), 불굴의 인내력(Perseverance), 자기 판단(Right jurdgement) 등의 3가지가 중요하다.

- 한국 과학 발전에 대해 조언한다면

지금 한국의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나로호 발사, 줄기세포 등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매우 역동적으로 나가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이제는 단순히 모방하는 과학이 아니라 오리지널리티(독창성)과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독창성과 창의성에 중점을 둬서 남의 나라가 우리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과학적 리더십을 키우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11.10.06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