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마켓 생태계/지식2010.06.20 06:40

[Weekly BIZ] '빛과 콘크리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 반전 드라마

       
그는 오사카(大阪) 변두리 출신의 권투선수였다. 열일곱 나이에 프로복싱에 뛰어들어, 대전료를 받아 생계에 보탰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고는 외할머니밖에 없는 결손 가정의 청년에게 권투는 희망이었다. 한 경기 3회전에서 4회전, 6회전까지 점점 실력이 늘어갔다. 언젠가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리라는 꿈도 커져갔다.

하지만 최고와의 수준 차이를 절감하는 순간, 모든 희망이 날아가 버렸다. 권투에 입문한 지 2년 만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당대 최고 복서의 스파링을 보고 기가 질려버렸다. 스피드, 파워, 회복력…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글러브를 벗고 취직을 했다. 공고를 졸업한 스무살 청년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별볼일이 없었다. 불 같은 성미에 답답한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며칠 밤낮을 고민하다 집 짓는 일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동네 목공소는 그의 놀이터였다. 문득 목수가 외할머니집 지붕에 만들어 준 창문을 통해 쏟아지던 새하얀 빛과 창문 너머로 펼쳐진 파란 하늘이 떠올랐다.

안도 다다오. /블룸버그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로 유명한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인생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 초반 뒤늦게 건축업에 뛰어든 그는 건축에 대한 모든 것을 현장에서 독학으로 익혔다. 동네 가게의 인테리어나 가구를 만드는 일로 기초를 닦았고, 유명 건축가의 책을 닳도록 반복해 읽었다. 도면 하나하나를 베껴 그리기도 했다. 스물네살 되던 해에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둘러봤다.

이렇게 성장한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기법(외장재 없이 건물의 콘크리트벽을 그대로 드러냄)과, 실내에서 자연광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건물이 자연환경과 지역적 특색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신선한 건축 양식을 내세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만의 독특한 건축 설계에 반대하는 정부 규제 당국이나 건축주와 잦은 승강이를 벌이면서 '투쟁하는 건축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1969년부터 최근까지 그가 휩쓴 세계적 건축상은 150여개.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Weekly BIZ는 지난 9일 그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 시내 우메다(梅田) 인근의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를 찾았다. 낡은 서민형 주택들 사이에 자리 잡은, 콘크리트 원통을 세로로 잘라놓은 것 같은 건물. 불과 100㎡(30평) 남짓한 대지에 5층으로 쌓아올린 건물은 사방 벽면에 빽빽이 꽂혀 있는 책들이 점령했다.

이렇게 좁은데도 건물의 3분의 1쯤은 1층부터 5층까지 천장이 뻥 뚫려 쭉 이어져 있는 구조다. 그 밑바닥에 안도 다다오의 책상이 있다. 이 툭 터진 공간을 통해 건물 전체가 완전히 통해 있다. 목소리를 조금만 높이면 1층에 있는 사람이 4층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오사카 외곽 이바라키(茨木)에 위치한 빛의 교회. 안도 다다오의 1990년 작품이다.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 제공

뒤따라 올라온 안도 다다오는 인터뷰가 무척 익숙해 보였다. "어디서 왔느냐"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뭐냐"며 역(逆)질문공세를 펼쳤다. 유심히 보니 그의 모습은 귀와 이마를 완전히 덮는 덥수룩한 머리에, 셔츠 위에 헐렁한 재킷을 걸친 것까지 평소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 외모에 신경 쓰는 시간이 아까워 똑같은 옷,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한다는 한 물리학자의 얘기가 생각났다.

안도 다다오의 사무실 구조는 자신의 일하는 철학과 조직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일례로 그의 책상은 건물 출입구 바로 앞에 있어서 직원 중 누가 외출을 하고, 어떤 손님이 찾아오는지를 모두 알 수 있다.

30여명의 스태프는 따로 업무용 전화가 없다. 5대의 공용 전화가 있는데, 모두 안도 다다오의 책상 위에 있다. 전화를 걸거나 받으려면 안도 다다오가 지켜보는 앞에서 해야 한다. 한 직원은 "가끔 전화 통화가 길어지면 안도씨가 전화기를 빼앗아 들고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 안에서는 개인적인 이메일이나 인터넷, 휴대폰 사용도 제한된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갤러리 레스토랑‘글라스 하우스’. 제주 서귀포시‘휘닉스 아일랜드’리조트 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변 언덕에 있다. 인간과 자연, 공간의 조화점을 찾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휘닉스아일랜드 제공

■나는 게릴라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것 같은데, 왜 이런 식으로 사무실을 운영하시나요.

"저 역시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직원들에게 노출되어 있으니까 사무실이 팍팍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창조적 예술가 조직으로서 계속 기능하려면 이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나름의 생각은, 우리처럼 창조하는 조직은 '게릴라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휘관 한 사람과 그의 명령을 따르는 병사로 이뤄진 군대 같은 조직이 아니라,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개인 하나하나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게릴라 집단 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저와 스태프들 사이에 인식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혼(魂)이 통해야 한달까요. 저는 우리 조직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도 게릴라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합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신속하게 실행하며, 돌발사태에도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 같은 것 말이죠."

개인이 조직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이 군대다. 일본과 한국의 회사 조직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래서 회사가 크면 클수록 개인이 부품화되기 쉽다. 안도 다다오는 자신의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진 게릴라처럼 움직이기를 바랐다.

―그래도 인터넷이나 이메일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요.

"해도 됩니다. 하지만 최대한 절제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이메일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자꾸 연락이 와 시간을 뺏기게 되죠. 제가 우리 스태프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자기 의견을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또 듣자는 것이죠. 그래서 서로의 의견을 확실하게 이해하자는 겁니다. 이 회사는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같이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인터넷과 컴퓨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사회가 소통의 부족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다들 상대의 의견을 안 듣고, 자기의 의견만 이야기하려고 하니까요."

그는 많은 일본인이 그런 것처럼 요즘도 편지나 엽서를 주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의 책상 위엔 세계 곳곳에서 온 엽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통역이 자신의 말을 통역해 주는 짧은 짬에도 엽서에 일일이 에펠탑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사인을 했다.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Fort Worth)의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든 5개의 직육면체 건물이 얕은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붕의 차양을 열면 빛이 쏟아진다.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제공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패배가 창조력의 원천

―독학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셨는데, 비결이 있나요.

"각자가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니까 '독학(獨學)'인 것입니다. 뭘 공부해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죠. 뭔가 의문이 생겨도 이를 물어볼 선생님이나 의견을 나눌 동료가 없습니다. 비결이란 게 있을 수가 없죠. 저는 한때 건축학과 교과서를 잔뜩 사다가 밤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책을 읽었고,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은 달달 외울 정도로 열심히 보기도 했죠. 일본 일주에 나서 일본 근대 건축의 영웅인 단게 겐조(丹下健三)의 건축과 일본의 전통 건축물을 둘러봤고, 유럽 여행을 하면서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건축물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저를 따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지금까지 150건이 넘는 수많은 건축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 마르지 않는 창조력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계속 도전하는 정신! 지난 40여년을 되돌아 보면, 제 생각과 현실의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항상 괴로워했죠. 건축 공모전에서도 대개 낙선을 하고, 돌이켜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패배를 체험했습니다. 연전연패(連戰連敗)였죠.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거듭해왔습니다. '이제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도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축적되어 나가는 것이죠. 이런 사고의 축적이야말로 창조를 가능케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조는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싸움, 즉 도전을 계속 하는 정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매번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작업마다 안간힘을 다했다"면서 "그런 역경 속에서 지속되는 긴장감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도 길러졌다"고도 했다.

요즘 그의 새로운 도전 대상은 지구 환경 개선이다. 지난 2007년부터 일본 도쿄만의 쓰레기 매립지에 나무를 심어 푸른 숲으로 재생하자는 우미노모리(海の森·바다의 숲)라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1인당 1000엔씩, 총 50만명에게 기부를 받아 비용을 댈 계획이다. "왜 건축가가 나무를 심느냐"고 묻자 그는 "건물 짓기도, 숲 가꾸기도 다 환경에 개입하여 그 장소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제주 서귀포시 섭지코지에 자리한 명상 갤러리‘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제주의 상징인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휘닉스아일랜드 제공

■자연과 역사를 포용하는 건축

치열했던 70년 인생만큼이나 그의 작품 세계도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는 점에서 게릴라적이었다.

―선생님의 건축을 '도시에 도전하는 건축'이라고 표현합니다.

"도미시마 주택이나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1976) 등 제 초기 작품은 출입구를 빼놓고는 사방을 콘크리트벽으로 에워싸 완전히 밀폐된 공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폐쇄된 벽 사이에서 풍부한 삶의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했습니다. 폭 3.6m, 길이 14.4m의 좁은 공간에 중정(中庭)을 만들어 햇빛과 바람, 빗물 같은 자연을 집안 깊숙이 끌어들였습니다. 저는 이 집을 과밀화에 허덕이는 각박한 도시 환경에서 자연과 하나 된 개개인이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산다는 의미를 담아 '도시 게릴라의 주거'라고 이름 붙였죠.

도쿄(東京)의 오모테산도힐즈(表參道ヒルズ·2006)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1927년 지어진 일본 최초의 아파트 단지 도준카이아오야마(同潤會靑山)를 재개발한 것인데, 이곳의 유서 깊은 풍경이 도쿄의 무자비한 재개발 붐에 맞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새로 짓는 건물의 높이를 이 거리의 상징인 느티나무 가로수보다 낮게 설계하고, 건물 남동쪽 끝에 있던 아파트 1개 동을 복원해 남겼죠. "

도쿄의 패션 거리인 오모테산도힐즈. 유서 깊은 아파트 단지를 허물고 재개발한 쇼핑센터로, 300m에 이르는 느티나무 가로수 등 예전 풍경을 보전하기 위해 낮고 길쭉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외형을 택했다./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 제공

―자연과 역사, 지역과의 조화를 유난히 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은 일체입니다. 이 세상엔 인간만이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 바람, 나무, 동물, 곤충…. 다양한 것들이 인간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죠. 서양의 문화는 그 모든 것 중에 인간만을 중시하는 문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만물이 함께 공생(共生)하는 공간이며, 인간이란 그중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와의 연속성도 마찬가지지요. 제 건축은, 그런 가치를 추구합니다."

이런 고집 때문에 상업적인 요구를 하는 건축주와도 자주 마찰을 빚었고, "건축주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오모테산도힐즈 건축 당시 100여명의 아파트 소유주들과 충돌하고, 설득하느라 4년이 걸렸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그저 기능만을 충족하려고 하면 따분한 짓밖에 하지 못한다. 예산 제약은 어쩔 수 없어도, 그 밖의 사항은 안이하게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건축주와 다투더라도 상대가 진저리를 내며 체념할 때까지 내 고집을 밀고 나갔다. 현장 시공팀에 대해서도 시공 결과가 나쁘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재시공을 요구했다."

기자는 그의 주름진 얼굴 위에서 여전히 링 위에서 펀치를 내뻗는 권투 선수의 모습을 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이미 40년 전에 끝난 경력이지만, 그는 여전히 매일 '건축'이라는 링에 올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승부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 안도 다다오에게 한국은…
"내향적으로 침잠한 일본 도전적인 한국을 배워야"


도전적인 삶을 살아온 그에게 도전 의식이 없고 내향적인 일본 사회는 강한 불만의 대상이다. 그는 일본이 외향적이고 도전적인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분위기가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세계화에 아주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아주 힘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반면 일본은 내향적으로 침잠하고 있죠. 일본은 2차 대전 후 경제적으로 풍요해지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지나치게 내부 지향적으로 되어 버렸어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을 찾은 외국인들은 '일본은 자연이 수려하고, 사람들이 감성적이며, 가족 중심적이고 지역사회를 중시한다'면서 매우 높게 평가했는데, 요즘은 가족이, 지역사회가, 자연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점점 개인의 책임감과 자립하겠다는 의식, 도전하겠다는 의식이 약해지고 있어요. 반면 한국은 외향적이고 도전적입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국가에 대한 애정과 충성의 의식이 여전히 강해요.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일본이 그동안 너무나 평화롭고 안정된 세월을 누려온 것이, 결국 국가와 사회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지은 미술관 덕분에 세계적 명소가 된 나오시마(直島)섬에 일본에서 활동 중인 작가 이우환(74)씨의 미술관을 지었다며 무척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우환씨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미국의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됩니다. 이를 보는 어린이나 젊은이들은 '일본 땅 위에 한국 사람의 미술관이 있고, 여기에 또 프랑스 사람이 작품을 전시하는구나'라며 지구는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chosunbiz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칼럼, 인터뷰2010.04.11 02:40

 

  비전 디자이너 2010. 04. 08 (1) Social IT |

1989년 11월9일은 서독과 동독,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나누던 경계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였다. 그것은 3년 뒤에 일어날 대변혁, 소비에트 연합(USSR)이 붕괴될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탈냉전 시대의 개막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거대한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된 두 세계의 경계를 이루고 있던 장벽인 ‘PC’(개인용 컴퓨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왜 PC가 비트(bit)와 원자(atom)의 세계를 나누는 경계였던가, 그 부분을 분명히 하자. 이유는 단순하다. PC가 원자의 세계에서 비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문’이 ‘한 명의 사용자에 의해서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문’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것이 개인용 컴퓨터로서의 ‘PC’의 정의다.

나아가, 이 온·오프라인 경계를 이루는 ‘PC’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그 경계로서 ‘한 명의 사용자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무효함을 뜻한다. 그 사실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

현재 웹 생태계에 불고 있는 가장 큰 바람인 ‘클라우드 컴퓨팅’과 ‘휴대용 디지털 기기 혁명’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먼저,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무엇인가? 클라우드 컴퓨팅의 입문서로 꼽히는 IT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의 <빅 스위치>(The Big Switch)를 보자. 그것은 이전의 ‘전기’가 개별 소유자가 발전소를 소유하는 방식에서 중앙 공급자에 의해 전력이 충원되는 방식으로 ‘에디슨의 시대’가 변화했던 것처럼, 지금의 ‘컴퓨팅’이 개인 사용자가 컴퓨터를, 운영체제를, 소프트웨어를, 데이터를 ‘소유’하는 방식에서 중앙 공급자에 의해 모든 것이 공급되고 관리되는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방향으로 ‘구글의 시대’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클라우드 컴퓨팅은 데이터를 공유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방식의 우수성 때문에 웹 생태계에 PC가 만들었던 장벽들을 허물고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시적 흐름이라면 그에 맞물려 일어나는, 눈에 보이는 작지만 큰 움직임이 바로 ‘휴대용 디지털 기기’다. 아이폰 등 좀 더 ‘스마트’해진 휴대용 디지털 기기의 등장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만들어내는 지구적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의 형성·확장·진화와 연관이 있다. 이 휴대용 디지털 기기들은 사실 그 보이지 않는 ‘비트의 바다’에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애플 앱스토어의 인기 무료 앱 중 하나였던 고교생 프로그래머 유주완의 ‘서울 버스’를 생각해보자. 그 같은 웹 애플리케이션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은 데이터가 공개되고, 공유되고, 진화하고 있는 변화에 기반한 것이고, 그것이 인기를 끈다는 것은 그것을 접속하고,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기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 클라우드 컴퓨팅이 PC 컴퓨팅 시대의 내부 한계인 비트와 비트간 벽을 붕괴시키고 전세계 지식과 정보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다면, 아이폰 등이 이끄는 모바일 혁명과 휴대용 디지털 기기의 보편화, 대중화는 PC 컴퓨팅 시대의 외부적 한계인 비트와 원자간 벽을, 책상 위(desktop), 무릎 위(laptop) 컴퓨터를 손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있다. 즉, 클라우드 컴퓨팅은 우리가 공유하고,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폭을, 모바일 혁명은 그러한 데이터베이스에 우리가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의 휴대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이 PC 이후의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 차원 이상에서 중요하다. 첫째, 현대 사회에서 IT란 하나의 산업 분야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둘째, IT 인프라에서의 변혁은 사회 전체 인프라의 재정의를 뜻하고, 사회 전체 인프라가 재정의된다는 것은 그 사회의 발전 가능성, 방향성에 큰 도전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IT에서만의 지각 변동이 아니다. PC 이후의 시대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 때에 변화의 맥을 잡는 방법 중 하나는 경영구루 피터 드러커가 생전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했던 ‘앞으로의 길’(The Way Ahead)이라는 논설에서 말한 것처럼, 기술 그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그 것이 인간과 조직,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지를 주목하는 것이다.

그 것은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산업화 초기 온갖 기술 발전이 약속한 미래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한참 후, 그 기술들이 사회 전체의 인프라가 되었을 때, 그것을 응용하여 새로운 인간, 조직,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세력이 성장한 후에야 진정한 시대적 변화가 됐다. 예컨대 전구가 등장해 밤에 빛을 보였을 때 그것이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그 비전이 통신·방송산업 등으로 구체화된 것은 그 혜택을 누리고 자란 세대가 그것을 창조적으로 응용하기 시작한 후였다.

그래서 드러커는 지난 산업화가 급진하는 시대에서, 역사 속에서 언제나 변화의 주체가 ‘인간’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는 국가와 교회 이외에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조직인 ‘회사’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회사의 실제적 운영 원리와 사회적 기능, 역할 등에 대해 관심을 두고 ‘경영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체계를 만들었다. 아시다시피, 그 새로운 조직체의 결정력과 실행력을 다루는 학문인 ‘경영’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현대 사회 자체를 정의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의심할 여지 없이 경영의 논리가 사회의 이념이 된 시대, 경영의 세기다.

그렇다면 PC 이후의 시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드러커가 20세기에 했던 것처럼 미래를 정의함으로써 미래를 창조할 것인가? 그 방법은 이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혁명을 통해 IT가 사회 전체의 기반 시설이 되어가는 시대,  이 기술의 눈부신 진화가 아니라, 그 눈에 보이는 기술의 진화가 유도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조직, 문화의 변화에 다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산업화 시대에 ‘회사’가 있었다면 지금의 시대에는 ‘온라인 이용자 커뮤니티’가 있다. 그 변화의 상징이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다. 이용자들이 재미로, 호기심으로 만든 리눅스 오픈소스 운영체제가 2007년 2분기를 기준으로 전체 서버 시장의 12.7%를 장악했다. 이용자들이 여가 시간에 지식을 덧붙여서 만들어낸 온라인 무료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고가 전문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와 경쟁을 하고 있다.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가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과학적 사실에 대한 기술의 오류결과를 놓고 비교해볼 때, 브리태니커와 위키피디아의 오류발생율은 2.92대 3.86이다. 살짝 오류발생률이 높긴 해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에 비해 ‘무료’로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용자의, 이용자들에 의한, 이용자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장과 그들의 정부, 기업 등 기존 조직에 지속적인 영향력 확대, 그’오픈’과 ‘소셜’의 트렌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전시대의 ‘회사의 등장’과 같은 변화의 맥이다.

그렇다면 이 ‘맥’을 가지고 PC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 정확한 답을 말한다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사기에 가깝다.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 뿐이다. 그러나 변화의 기준을 말하자면, 결국 그것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IT여야 하고 컴퓨팅어야 하므로,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모바일 혁명도 결코 그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기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틀의 변화에 관심을 놓치지는 말아야 하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관계의 역학 변화가 진정한 열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PC 이후의 시대 주목해야 할, 클라우드 컴퓨팅과 휴대용 디지털 기기 혁명 이상의 것은 웹의 ‘오픈’과 ‘소셜’ 성격이 창조해낸 새로운 인간, 조직, 문화의 중심에 있는 저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의 논리와 영향력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위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의 유행의 근거도 이용자가 부가가치 생산을 주도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짜로 공유되는 지식과 정보의 가치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힘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PC 이후의 시대를 정의할 인간, 조직, 문화 그 변화의 주역이, 그 성격이 무엇일 지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PC 이후의 시대는 르네상스가 될 것이다. 르네상스란 프랑스말로 ‘다시 태어난다’를 의미했다. 고대 인문주의의 부흥이었다. 본래 IT의 정신, 웹의 사명이 ‘개방, 공유, 창조’였다. 월드 와이드 웹, e메일, 오픈소스 운영체제, 각종 프리웨어 등 웹의 주요한 기능들이 그 정신과 사명, 문화에 의해 ‘그냥 재미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지금의 ‘웹 2.0′ 같은 마케팅 용어는 다시 그 고유의 정신과 사명으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발전을 통해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웹 생태계가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흐름에서 보았을 때, PC 이후의 시대는 ‘소셜 웹 르네상스’가 될 것이다. 중세의 틀이 깨지고 근대와 현대의 문명이 태동한 것처럼, IT에서도, PC의 벽이 무너진 이후, 그 후의 비전은 다시 인간으로, 조직으로, 문화로 되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2010년 우리는 PC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그 벽 너머 세계인 사회와 웹이 궁극적으로 융합된 시대, ‘소셜 웹’의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다.

당신은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다.

 파이핑하기  

[AD]

트랙백 : http://www.bloter.net/archives/28888/trackback

비전 디자이너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 2007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에 MIT Open Course Ware(공개강의운동)를 런칭하는 프로젝트에 서비스 기획과 관련해 참여. 현재는 공익NGO '세계화와 빈곤문제 공공인식 프로젝트'(http://globalizationandpoverty.org/)에서 영문번역 프로젝트 디렉터를 거쳐 온라인 아카이브 구축 작업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웹과 사회가 융합되는 미래의 가능성과 문제점, 비전을 그린 '소셜 웹이다: 리눅스의 신화와 위키피디아의 전설을 넘어서'(4월 출판 예정)가 있다. visiondesigner21@gmail.com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칼럼, 인터뷰2010.03.23 07:04

오세훈 "당심, 더블 스코어 이상 압도적 우세"
[창간10주년 특별대담]"견습 시장에게 맡겨서는 안돼"
대담 정종오 경제시사부장, 정리 채송무기자, 사진 정소희기자


6.2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심과 민심을 통틀어 앞서가고 있다는 대세론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나경원, 김충환 의원의 4파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오 시장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일반 지지율과 한나라당 당원의 지지율을 묻는 조사의 차이가 커 경선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 시장은 이에 대해 "당내에서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 당내 여론조사에는 어느 쪽에서 여론조사를 했는가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가 파악하기에는 당내에서도 거의 '더불 스코어' 이상 차이가 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특정 계파의 지원으로 경선을 뚫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말은 범정파적으로 저를 지지한다는 말"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와 함께 오 시장은 "서울을 초일류 도시로 바꾸기 위한 시기에 서울 시정을 '견습시장'에게 맡길 수는 없다"며 지난 4년 동안의 서울 시정 경험을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그는 "지금 서울 시장에 나서겠다는 분들은 앞으로 견습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밥을 한 번 짓더라도 지어보던 사람이 짓는 밥이 맛있다. 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시 행정을 보는 철학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대담은 지난 18일 오전 11시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오세훈 시장하면 디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창조, 혁신, 경쟁력을 통해 일자리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디자인측면에서 4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먼저 전임시장님이 청계천으로 유명하다 해서 청계천만 하신 것 아니죠. 버스중앙차선이 유명하다 해서 그것만 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들에게는 그런 착각이 있는 거죠. 먼저 그점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구요.

또 기존에 없던 행정의 패러다임이었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오는 거죠. 묘하게도 선거 때가 되면 전시 행정과 연결시키기 편하니까 경쟁자들은 전략적으로 흡짐내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경쟁후보들이 이를 두고 '이미지 정치'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과거로 되돌아가 봅시다. 10년 전의 서울을 되돌아보면 우리 스스로 회색도시라고 했습니다. 아파트 전부 똑같이 생겼습니다. 전 세계 이런 도시 없어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정이 갔었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자부심이 느껴졌습니까? 거기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발견하는 겁니다. 이제 성냥갑 아파트들이 퇴출되고 있죠. 또 도시 거리 풍경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많은 서울시민들이 얘기합니다. 예전에는 외국같다 오면서 속상했는데, 이제는 갔다오면 오히려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디자인은 삶의 질과 도시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전체적으로 서울이 안전해지고 쾌적해지고, 왠지 멋스러워졌다...그것이 디자인 시정의 결과물입니다. 도시행정에 있어 디자인 행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 세계 모든 도시가 디자인 행정을 하고 있어요. 그 도시들은 진작부터 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구호화하지 않을 뿐이지...좋은 디자인 없이 좋은 도시 없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또한 많습니다. 어느 시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출산율이 낮습니다. 시민들은 내가 살 집을 구하기 참 힘든 것 같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출산율이 낮은 것, 국가적인 문제죠. 젊은 층이 경제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아이들을 마음 놓고 낳을 수 있는데...아시다시피 청년 실업, 전체적 실업률이 높은 경제위기의 상황이라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회 경제적 원인이 바탕에 깔려있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죠. 열심히. 그래서 서울형 어린이집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양육환경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정책이죠.

점점 더 양육환경은 좋아질 겁니다. 양육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분들의 숫자가 많고...이런 점에서 정부는 충분히 양육, 보육의 지원책을 계속해서 늘여갈 수 밖에 없어요.

양육, 보육, 지원에 들어가는 사업들이 민선 5기 공약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용산참사 사건은 정말 안타까운 사태였는데, 아무래도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대책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용산사건을 비롯해서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서 크고 작은 충돌들이 있어 왔어요. 그러나 기존의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이 망설였지만, 용산사태를 계기로 공공관리자 제도를 적용하는 것으로 해법을 찾았죠.

그동안 주택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 사업은 기존의 주택이나 건물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재산증식수단으로 활용된 측면이 컸습니다. 민간 자본이 들어가서 기존 지주들과 주택 소유자들과 이해관계가 결합한 것이죠.

공공에서 그런 일이 반복되다 용산참사 사건이 계기가 돼서 더 이상 그런 큰 틀에서의 구조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겁니다. 그 결단의 결과 나오게 된 것이 공공관리자 제도죠.

그동안 민간 업자와 조합 손에 의해 주도되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이제 공공에서 일부 권한을 회수해 온 겁니다.

단계별로 구청장을 비롯한 공공이 개입해 지나치게 수익구조 창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프로세스들을 투명화하했습니다. 부풀려져 있는 원가를 절감해서 그 절감된 원가의 혜택이 저소득층, 다시 말해서 세입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 공공관리자 제도의 본래의 취지입니다."

-시장께서는 당권이나 대권보다는 재선에 도전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일에 미쳐 있었다'는 이런 표현을 하는데, 저는 일 하려고 정치합니다. 뭐가 되려고 정치하는 게 아니라 일하려고 정치해요. 지난 4년 동안 안 바꾼 것이 없어요. 주거, 복지, 환경, 교통, 도시경쟁력 안 바꿔놓은 게 없습니다.

이 거대도시 서울을 초일류도시 서울, 글로벌 톱10 서울로 바꿔 놓으려면 지금까지 만들었던 변화를 적어도 한 텀 정도 더 지속을 시켜야 글로벌 도시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 책임감의 발로라고 보시면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다 앞으로 견습시장이 될 수밖에 없는 분들이에요. 당내 경쟁자들도 그렇고, 당 밖에서 하겠다는 분들도 그렇고 도시행정에 관한한 다 견습생들입니다.

4년 동안 시정을 펼치면서 닦은 경험이, 정말 소중한 이 경험을 시민들에게 재선시장으로서 돌려드리는 것이 서울시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할 겁니다."

-여론조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당내 경선 추세는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여론조사에 차이가 좀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여론조사는 하나의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전반적인 추세를 보면, 일반 시민 상대로 한 조사를 보면, 아시다시피 많은 차이가 나죠.

지난 몇 달동안의 트랜드를 보면 조금씩 오르락내리락 하긴 하지만 많이 차이 납니다. 차이가 나도 많이 납니다. 당내 여론조사의 경우는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서 자기 한테 유리한 결과가 나오곤 하는데,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당내에서도 거의 더블 스코어 이상 차이가 나요. 그 정도의 트랜드로 보고 있는 거죠."

-특히 당에서 지지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당 기반이 약하다는 것인데요.

"당심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습니다. 아까도 잠깐 말했지만 자신 없는 후보가 자꾸 사람을 팝니다. 나는 누구누구가 등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하는 뉘앙스가 많더군요.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신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기대서 뭔가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특정 계파의 지원으로 경선을 뚫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뒤집으면 범 정파적으로 저를 지지한다는 말입니다. 정치권적 분류 방식에 따르면 친이가 있고, 친박도 있고, 친이도 또 몇 개로 세분화됐습니다.

직계부터 시작해서 대리인이 중간에 몇 분이 있죠.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내 뒤에는 누가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지지하는 분들은 모든 계파에 골고루 분포돼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해왔던 서울시정의 큰 틀이 민선 5기에도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죠. 아마 집에서 밥을 지어도, 밥을 지어본 사람이 더 잘 지을 것예요. 제가 앞서 말씀드렸지만 서울시 조직은 그렇게 만만한 조직이 아닙니다. 소정부라고 하잖아요. 국방 빼고 다 있다고 하잖아요.

4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시 행정을 바라보는 관이 다릅니다. 4년 정도 하면 관이 생기거든요. 서울시민들이 이 중대한 서울시의 미래를 늘 견습시장에게만 맡길 것이냐, 경험이 풍부한 경륜있는 시장에게 맡길 것이냐 그 의사표시를 여론조사에서 표현하고 계시는 거죠.

지금 여론조사 결과는 선호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대한 고려를 바탕에 깔고 답변을 하시는 거죠. 늘 서울시를 연습의 대상에게, 실험의 대상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여론으로 표출되는 거죠."

-민선 5기에는 어떤 정책에 중점을 둘 것입니까.

"일자리 창출이죠. 그 앞에 붙어야 할 말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입니다. 흔히 말하는 공공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는 겁니다. 세금으로 억지로 창출하는 그런 퍼주기식 일자리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 안정적으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그런 의미의 일자리 창출, 그런 의미의 일자리창출이 진정한 복지입니다."



-아이뉴스24 창간 10주년을 맞아서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면

"축하드립니다. 아이뉴스24가 인터넷 매체에서 상당히 상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10년동안 공정하게, 일부 매체의 경우에는 상당히 성향을 드러내는 매체가 있는데,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 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결국 그러한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생각하구요.

저 역시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시정의 좋은 의견을 수혈 받을 수 있는 창구로 아이뉴스24를 활용하겠습니다. 보다 바람직하게 형성된 여론들이 정치권을 통해서 서울시 행정으로 잘 흡입될 수 있도록 객관적 통로 역할을 계속 수행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IT는 아이뉴스24, 연예ㆍ스포츠는 조이뉴스24
메일로 보는 뉴스 클리핑 아이뉴스24 뉴스레터
(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놀아야 산다!
 
업무 중 개인연구 보장, 회사 돈으로 배낭여행 하기도
호모루덴스, 창조경영과 놀이는 하나
 
‘창조와 혁신이 미래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경영학계에서 이론으로 통하는 이 명제가 이미 현실에서 증명됐다. 구글과 애플이 대표적이지만 이 외에도 많은 기업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 번성하고 있다. 그런 기업의 특징은 직원들에게 놀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만 열심히 해서는 창조가 불가능하다. 소위 호모루덴스(Homo Ludens·유희하는 인간)라고 하지 않는가? 놀이와 일이 구분되지 않는 이유다. 놀면서 일하지 않으면 일하면서 놀 시간도 없어지는 것이 21세기 경영환경이다.

“차장님! 거기서 두 칸 가서 행성카드를 획득해야죠. 그전에 영어 문제를 맞히셔야 해요. 이제 다음 차례는 과장님이네요. 이번에 6이 나오면 스페이스 칩을 얻을 수 있어요.” 보드게임 카페에서나 들릴 법한 대화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한 기업의 업무시간 중에 벌어지는 광경이다.

웅진씽크빅의 모든 직원은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놀 준비를 한다. 보드게임을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논다. 그렇게 놀면서 상상하고 토론하며 연구한다. 영어학습이 가능한 보드게임, 스마트폰을 활용한 새 서비스 등 자신의 현 업무를 제외한 모든 것이 탐구 대상이다.

웅진씽크빅은 지난 2월 10일부터 업무시간 중 직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 활동을 보장하는 혁신 프로그램 ‘이노홀릭(Inno-Holic)’을 시행하고 있다. 전 임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체험하고 연구하는 개인 혁신 활동이다. 웅진씽크빅은 매주 수요일을 ‘홀릭데이(Holic Day)’로 정해 오후 4시부터 6시30분까지 전 직원에게 이노홀릭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웅진씽크빅 공미선 경영혁신팀장은 “직원들이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사고할수록 직원들 스스로가 회사의 변화와 혁신을 이끈다고 믿는다”며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노홀릭은 가급적 다른 소속 팀 직원들과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전문성과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때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칠 수 있다는 취지다. 연구의 주제와 범위는 완전 자유이며, 현재 본인이 맡고 있는 업무를 제외한 모든 주제가 가능하다. 사실상 동아리 활동 같은 셈이다.

업무와 무관해야 여행 지원

우수작에는 포상금을 주고, 사내 벤처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사내 벤처’로 채택될 수 있으며, 그 경우 최대 10억원까지 사업 지원금이 제공된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직원 3명은 지난 2월 8박9일 일정으로 유럽을 다녀왔다. 회사에서 이들에게 지원한 금액은 총 1200만원.

여기에 여행기간은 휴가가 아니라 근무시간으로 처리됐다. 그렇다고 출장은 아니다. 이들은 이 회사에서 2003년부터 실시한 글로벌 배낭여행 프로그램에 당선돼 행운을 누린 것이다. 이들의 여행 주제는 기업의 사회공헌. 회사 측은 “금융산업이나 카드, 캐피털 회사 관련 주제만 아니라면 어떤 여행 주제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57기를 보낸 글로벌 배낭여행의 주제는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 유럽 자전거 문화체험, 실크로드 탐방에서 미국 테마파크 기행, 와인 기행, 온천 탐방, 북유럽 대학 탐방 등 실로 다양하다. 글로벌 배낭여행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매달 여행 계획서를 공모해 그 가운데 여행의 취지가 분명하고 열정이 뛰어난 한 팀을 뽑아 지원한다.

최소 2명에서 최다 4명까지 한 팀이 될 수 있다. 선발팀은 최장 9일, 최고 1200만원의 여행 경비를 지원받지만 모든 일정은 자율적으로 정한다. 이 회사 김훈태 기업문화팀장은 “글로벌 배낭여행은 업무와 무관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고 새로운 시각을 얻은 직원들이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을 만들기 때문에 회사에도 활력을 준다”고 설명했다.

딱딱한 철강회사도 사고는 “유연하게”

이 밖에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은 각종 사내 동호회 활동 지원을 비롯해 직원과 배우자를 위한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직원과 배우자를 대상으로 요가 및 명상, 자연체험을 하게 하는 ‘힐링 프로그램’,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를 이해하고 깊이를 더하기 위한 ‘컬처 콘서트’ 프로그램이 이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10일 포스코센터 동관 4층에 위치한 창의 놀이방 ‘포레카(POREKA)’에서는 오픈 100일을 축하하는 ‘POREKA Film Award’ 행사가 열렸다. 이날 포레카에서는 지난 11월 한 달간 포스코 임직원들이 창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한 단편영화들이 상영되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이날 직접 행사에 참석해 임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본 후 심사에 참가해 우수작 3편을 선정해 시상했다. 포레카는 ‘포스코(POSCO)’와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유레카(EUREKA)’를 합친 말로 지난해 9월 임직원들의 창의력 향상과 창의문화 조성을 위해 만든 포스코의 사내 놀이공간이다.

놀아야 산다!
업무 중 개인연구 보장, 회사 돈으로 배낭여행 하기도
호모루덴스, 창조경영과 놀이는 하나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1. 웅진씽크빅 직원들이 업무시간 중 ‘이노홀릭’ 활동을 하고 있다.2. 포스코의 놀이방 ‘포레카’의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직원들.

이 공간은 공기업적인 기업문화와 중후장대한 산업의 특성상 창의성보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포스코에 새로운 시도였다. 포스코센터 동관 4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은 1190㎡(약 360평) 규모로 직원들에게 휴식과 놀이,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여기엔 정원도 있으며, 1000여 권의 책을 비치한 ‘북카페’, 방바닥에 드러누워 쉬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한 ‘사랑방’과 ‘다락방’도 마련되어 있다.

포스코는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이 놀이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별도 이용시간을 부여, 하루 300여 명의 직원이 창의놀이방을 이용하고 있다. 주말에는 임직원뿐 아니라 가족도 이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 주말에도 평균 200여 명이 찾는다.

이런 변화는 정 회장이 ‘잘 노는 포스코인’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년 365일 일만 한다고 해서 업무 효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면서 휴가와 여가를 적극적으로 즐길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 사이에 ‘놀아야 산다’는 분위기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CEO마저 ‘잘 놀아야 일도 잘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중후장대의 대표 격인 장치산업인 철강회사마저 효율이나 생산성 못지않게 놀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기업 외에도 많은 기업이 사원 복지를 늘리고 여가를 지원하며 일의 연장선상에서 놀이를 장려하고 있다.

보수적 기업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전자에서도 지난해부터 심심찮게 출근시간대에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난해부터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 ‘비즈니스 캐주얼’도 도입됐다.

밖에서 보기엔 별것 아니지만 삼성전자에서는 큰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이미 벤처기업 중에는 리프레시 휴가 명목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오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 사내에 카페테리아나 게임공간 같은 직원 휴게실도 적잖이 있다.

“창의성은 재미있게 놀아야 나와”

한때 상사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에게 “회사가 노는 곳이야?”라고 쏘아붙였다. 적어도 위의 기업에 다니는 직원이라면 “그럴 수도 있죠”라는 대답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경영환경이 작용했다. CEO들이 인심이 좋아서 직원들을 놀게 해 줄 리는 없다. 그럼 왜 ‘놀아야 산다’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할까?

신동엽(경영학) 연세대 교수는 “열심히, 잘 만들면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이제는 새 시장을 창조하는 기업만 성공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놀이와 일이 혼합되는 것은 새로운 생각,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만이 창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운(문화심리학) 명지대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재미와 창의성은 동의어”라며 “재미있게 노는 가운데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굳이 학자들의 이런 이론적 설명이 없어도 이미 실증적인 증거가 있다. 세계 최고 IT기업인 구글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각 직원들의 자리에 다양한 게임기, 미니 농구대, 로봇 등이 놓여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만다.

게다가 전동 안마의자와 마사지 프로그램까지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이 모든 장난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회사가 보조금까지 지급해 가며 장려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세계적 의약품 개발회사인 제넨테크(Genentech) 역시 창의력 넘치는 조직문화로 유명하다. 연구원들이 탈진하지 않도록 6년마다 안식휴가를 주고 있고, 업무시간의 20%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120년 역사의 닌텐도 역시 직원들에게 변함없이 요구하는 것은 바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닌텐도는 자유로운 발상에 의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윤을 창출하는 전통을 매우 중시했다. 이처럼 무언가 새로운 물건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는 기업은 기업문화가 창의적이고 자율적이다.

여기에 다른 의견과 실패에 관대하다. 물론 애플처럼 편집광적인 천재 한 명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업도 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독단적인 천재형에 기댈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조직문화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런 추세를 간파한 한국 기업들도 창의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놀이’는 아직까지 사원 복지 차원에 머무른다는 지적이 있다. 놀이가 일과 절묘하게 섞여야 창조적인 활동의 촉매로 작용하는데 한국 기업은 일과 놀이가 엄격히 구분돼 있다는 것이다.

업무 환경 자체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구글, 실패에 대해 관대하고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는 닌텐도, 업무시간의 일부를 개인적 관심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제넨텍 등은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절묘하게 섞여 있다.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놀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여전히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자’는 주의다. 신 교수는 “한국 기업이 단순히 노는 겉모습만 도입한다면 창의적인 기업문화는 불가능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놀아야 산다’는 말은 직원들이 일 안 하고 놀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경제 전쟁 최전선에 서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채택하는 경영방식이다.

한국에서도 상대적으로 앞선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에서 이제 막 도입하고 있다. 호화시설이나 고급 요리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노는 행위가 아니고 그런 것을 용인하는 관대함과 자율성, 다양성이다. 이런 문화를 갖춘 기업이 21세기에 혜성처럼 떠 오르는 건 세계적 추세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뉴스/세미나/2010.03.01 17:48

아우내 장터의 망국세대 밴쿠버의 쾌속세대 대한민국 100년의 드라마 [중앙일보]

2010.03.01 02:34 입력 / 2010.03.01 07:45 수정

오늘이 삼일절만 아니었더라도, 올해가 한·일 강제합병 100주년이 되는 해만 아니었더라도, 그냥 너희들을 향해 박수 치고 웃고 울며 이 감동의 순간들을 함께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금메달을 걸고 시상대에 오른 너희들의 자랑스러운 모습 위로 어쩔 수 없이 떠오른 것은 김연아보다도 어린 열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난 유관순 소녀의 얼굴이다. 밴쿠버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함성과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을 절규하는 만세 소리가 함께 메아리치는 곳에 우리가 있다.

나라 잃은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차갑고 위태로운 역사의 빙판 위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고 지금 88 서울 올림픽 때 태어난 너희들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의 빙판 위에서 올림픽 경기의 운동을 즐긴다. 같은 젊음이요 같은 운동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독립운동을 한 유관순의 피와 피겨 스케이팅 운동을 한 김연아의 땀을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라 잃은 유관순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탄생한다면 김연아가 되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김연아가 100년 전 망국의 땅에 태어났더라면 유관순의 이름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삼일운동의 영웅들이 있었기에 오늘 밴쿠버의 영웅이 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그렇다. 나라라고 하는 것은 분명 추우면 주워 입고 더우면 벗어 던지는 그런 옷가지(衣裳)가 아니다. 그것은 피부와도 같은 것이어서 어디를 가나 몸처럼 따라다닌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겨울올림픽은 기후와 그 경제조건으로 북방에 몰려 있는 유럽 선진국의 독무대였다. 그런데 오늘 너희들이 금메달을 따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개인의 기량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너희들 나라가 독립해 있었기에, 서구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 발전했기에 가능했다.

너희들이 5000m와 아시아 선수들이 넘을 수 없다던 1만m 스피드 종목의 벽을 넘어 금메달을 움켜쥘 때 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벽을 넘어서’의 대본을 만들던 일을 상기했다. 20년 뒤 너희들이 정말 벽을 넘어 세계의 한복판에 설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김연아를 보라. 피겨 스케이팅의 피겨란 그림(圖形)을 뜻하는 말이다. 영국 귀족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빙판 위에 하트 모양이나 글자들을 그리며 즐기던 운동이었다. 김연아가 세계의 빙판 위에 그린 꿈과 메시지도 ‘벽을 넘어서’였다. 김연아가 세운 세계 신기록을 남자의 채점 방식으로 옮기면 168.00점. 남자 피겨 우승자인 라이사첵의 167.37점을 넘어서는 득점이다. 피겨 여왕이 아니라 피겨 제왕이라고 불러야 옳다.

또 김연아는 라이벌 일본의 벽을 넘는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로 즐겨야 한다. 그러나 우연히도 강제합병 100주년이 되는 해에 김연아는 그녀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를 시원하게 이겼다. 데뷔할 무렵 연아는 주니어전에서도 시니어전에서도 패배를 당하고 일기장에 “왜 하필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는가”라며 마오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느 여자 선수도 기록하지 못한 3.5회전의 트리플 악셀을 연속 성공시킨 마오를 20점 차로 꺾은 것은 한국인다운 끈기였다. 쇼트에서는 007 본드 걸의 하드와 다이내믹한 힘을 보여주고, 프리에서는 경쾌하고 청초한 매력으로 조화를 이룬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과 ‘끼’가 일본의 가다(型=틀)를 압도한 것이다.

셋째로 김연아는 한국 문화의 벽마저 뛰어넘어 글로벌한 새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상대에서 흘리는 눈물은 이미 보릿고개에 자란 선수들이 흘렸던 한의 눈물이 아니었다. 식민지인의 그늘이나 열등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김연아의 성공 뒤에는 그녀의 가족만이 아니라 코치를 비롯한 외국인 스태프의 드림팀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너희들은 물질적 풍요를 위한 ‘산업화의 경제원리’와 평등을 추구해 온 ‘민주화의 정치원리’ 사이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다. 이제는 이 두 벽마저 넘어 사랑과 소통을 추구하는 ‘생명화의 문화원리’를 창조해 내게 될 것이다.

밴쿠버의 젊은이들아. 너희들 때문에 처음으로 지역차별의 분열도 좌우의 이념대결도 그리고 여야의 갈등도 없이 대한민국은 하나가 되어 모처럼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고맙구나. 장하구나.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공지사항2009.02.08 17:01

 
콘텐츠 코리아 블로그 개설 취지문

문화콘텐츠는 우리 사회가  지난 1990년대 후반 디지털 융합이 본격화되고 " 창조적 상상력 "이 가장 역동적으로 펼쳐지던 시기에 창안되었습니다. 

문화콘텐츠는 디지털 융합과 창조라는  창조 경제 시대의 핵심 개념으로  창조산업 클러스터에서도 창조섹터에 위치합니다.

이후 문화콘텐츠는 지난 10여 년 동안 지식체계 확립에 이어 학문 분류 체계가 정립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저는 문화콘텐츠 창안 이래 우리 사회 최초로 문화콘텐츠 대학 순회강연 수행, 최초의 콘텐츠 관련 학회 주도적 설립에의 참여와 20여 개 관련 학회 단체 포럼 활동을 통해 산학연 콘텐츠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왔습니다.

지난 2003년에는 문화콘텐츠 인력양성 종합계획(문화부 공식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1년 동안 연구프로젝트 기획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 해 대학원 강연을 통해 문화콘텐츠 대학원 과정 최초 설립에도 기여하였으며, 2007년에는 대학원 콜로키움 발제를 통해 문화콘텐츠학의 지식 분류 체계에 대한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 문화콘텐츠는 문화콘텐츠학문 체계로 지식 체계가 확립되고 고도화,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습니다. 문화콘텐츠학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증대되고 있으며, 지난 2009년 학진(현재 한국연구재단)에 콘텐츠학 학문체계로 공식 채택되었습니다.  

문화콘텐츠학은 디지털 융합, 디지털 삶(LIFE), 감성, 문화, 창조, 통합, 협업, 글로벌, 스토리텔링,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테크놀로지 등  지식 창조 시대의 융합 창조 지식 체계, 학문 체계이며 인문학, 미디어, 아트, 테크놀로지, 매니지먼트 창조경영의 다 학제적 융복합학이자 융합 창조학이라 하겠습니다.  

즉, 문화콘텐츠 지식 체계는 본질적으로 제조업이 획정하는 산업화 패러다임과 IT가 내재화 하고 있는 기술중심 패러다임을 융합 포용하면서도, 디지털 융합이 몰고온 사회 현상을 규명하고 21세기 지식 기반 서비스 경제, 창조경제 시대로 나아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독창적인 지식 체계로 포지셔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문화콘텐츠 지식체계의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의미는 바로 디지털융합이 가장 먼저 일어난 한국사회에서 미국, 영국, 일본 등 글로벌 선진 문화와 과학기술, 지식의 적극적이고도 폭넓은 수용과 이의 창조적 융합을 통하여 독창적 지식체계로 창조되고 진화 발전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니다.

문화콘텐츠 지식 체계의 핵심 기술 개념으로서 콘텐츠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융합, 디지털 삶(LIFE), 예술적 감성, 디자인크리에이티브, 인문학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과학기술 소프트웨어, 매니지먼트  창조경영 등의 총합적 기술체계, 융합 지식 네트워크 방법 체계로서 글로벌 시장 트렌드를 통찰, 플랫폼 네트워크 서비스 기반에서 진화하는 IT(정보기술)과 지식(Knowledge), 창조경제시대의 문화콘텐츠 전략 고도화를 목표로 하는 테크놀로지 인사이트 체계입니다.

전충헌의 콘텐츠 코리아는 이러한 지식 창조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콘텐츠 지식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으며, 앞으로도 지식 네트워크와 함께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콘텐츠 코리아의 궁극적 비전과 목표는 진정한 콘텐츠 크리에이터, 전문가들이 글로벌 문화콘텐츠를 창출하고 글로벌 미디어 기업 등 글로벌 강소기업을 다수 창출 함으로서 대한민국이 글로벌 미디어 허브, 문화콘텐츠 중심 국가가 되도록 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콘텐츠 클러스터, 트러스트, 지식 네트워크, 매니지먼트 체계로 이루어 지는 문화콘텐츠 지식 체계를 통해 한국경제의 선진화, 양극화해소, 일자리 창출, 내수경제 활성화에 기여 함으로서 현재의 난관을 돌파하는 대안을 다수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과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아울러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각 분야의 콘텐츠 현장 전문가, 다학제적 산학연관 지식 네트워크가 함께 문화콘텐츠 R&BD, 기획, 제작,상품화, 마케팅, 유통배급, 관리 등 콘텐츠 가치사슬 파이프라인 네트워크를 창출하며 BM(비즈니스 모델)과 프로젝트의 완성리스크와 흥행리스크, 투자리스크에 대응하여  “함께 협업”을 통한 콘텐츠 생태계의 선 순환 체계를 실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충헌 Dream 코리아디지털콘텐츠연합 회장,  코리아디지털콘텐츠 대표이사, 문화콘텐츠 창시자, 전충헌의 콘텐츠 코리아 칼럼니스트 www.inews24.com/칼럼 문화콘텐츠전략기획론 저자 (글누림출판사) www.kodic.com  www.contentskorea.or.kr  인문콘텐츠학회 감사 한국문화산업학회 이사 전국문화콘텐츠학과협의회 부회장  kodic@kodic.com  

2010년 3월 16일 업데이트 ^.^

'공지사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텐츠 코리아 블로그 개설 취지문  (2) 2009.02.08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