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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1.26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인간성
  2. 2010.10.22 선생님 모습과 닮은꼴입니다
  3. 2010.10.08 광고, 노랑머리 한우와 아이폰4 (2)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인간성
충청논단
2010년 11월 25일 (목)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정규호 <문화콘텐츠 플래너>

나는 요즘 페이스북(Facebook)을 한다. 아니 그저 페이스북을 열어놓고 세상의 소식을 기다리는 낚시질 정도이니, 페이스북의 세계에 겨우 입문해 있는 정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페이스북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키백과에는 '소셜 네트워크 웹사이트이다. 사람들이 친구들과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004년 2월 4일에 당시 하버드대학교의 학생이었던 마크 주커버그가 설립하였다.'라고 짤막하게 정의돼 있다. 그렇다면 소셜 네트워크라는 건 또 무엇인가

위키백과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Social Graph)는 웹 사이언스의 연구 분야 중 하나로, 웹상에서 개인 또는 집단이 하나의 노드(node)가 되어 각 노드들 간의 상호의존적인 관계(tie)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관계 구조를 말한다

모든 노드들은 네트워크 안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주체들이고, 타이(tie)는 각 노드들 간의 관계를

뜻한다. 소셜 네트워크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은 수많은 노드들과 그 노드들 사이의

무수히 다양한 관계들로 인해 계산론적으로 접근하기에 매우 복잡한 분야이다.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서는 현재 인문, 경제,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어렵다. 그러나 이런 이론적인 지식이 없어도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의 열풍에 휩싸여 벌써 자연스럽게

 소셜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으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세계에

빠져 있다. SNS는 정보공유를 포괄한다. 참가자 서로가 친구를 소개하며, 친구 관계를 넓힐 것을

목적으로 개설된 커뮤니트 웹사이트를 통칭하여 SNS라 하는데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싸이월드나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이 대표적인 SNS 웹 사이트들이다. 아무튼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억제하고 침잠하던 내가 페이스북을 통해서라도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쯤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일종인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

현재 페이스북은 전 세계에서 5억명의 가입자와 2012년 런던 올림픽 참가 205개 나라보다 많은

211개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올해 미국 나이로 27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는 2008년 15억 달러의 자산으로 포브스지(誌)선정 세계 억만장자 785위에 올랐음은

물론 유산 상속이 아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등 최연소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러니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당연히 영화의 소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뿐이랴, 감독 역시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데이빗 핀처(그는 얼마 전 국내에서도 개봉돼 관심을 모았던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의 연출 외에도 마돈나 등 세계적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글쓴이 註)가

맡았다. 그래서 일까. 미국에서는 흥행에 꽤 성공을 거두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나는 영화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고 평가하기에 주저하지 않겠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다. 그리고

이야기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차분히 진행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치 SNS를 모

르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다는 식의 강요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러한 연출

기법이 현실에서의 시간이 불과 3년에 불과한 사건들의 의미를 냉소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하려는

감독의 숨긴 의도일 수 있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페이스북은, 그리고 마크 주커버그에게는 인간

개인에 대한 가치 존중이나 도덕은 찾아볼 수 없다.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명문가의

 쌍둥이 형제들과 벌이는 법적인 다툼은 차라리 '혁명에는 악역이 필요하다.'라는 영화 대사에서

 유추되는,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갈등의 양상으로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순진하기조차 한 초기 투자자이며 유일한 친구에 대한 몰인정에 이르면 친구 만들기라는 페이스북

본연의 기능조차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매트릭스일 따름이다. 그러니 웹 싸이트에서만

통하는 친구는 인간적인 면에서 과연 현실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가상의 존재일까.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비극인지 희망일지 모르는 사이 연평도 슬픈 섬이 울고 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선생님 모습과 닮은꼴입니다
충청논단
2010년 10월 21일 (목)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정규호 <문화콘텐츠플래너>

선생님! 살아남은 자들의 시간으로 벌써 며칠이 지난 오늘에서야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 스마트폰 전화번호부를 열어 저장돼 있는 선생님의 번호를 지우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접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날 새벽 저는 습관처럼 백화산을 올랐고, 그 산중턱에 있는 가족바위를 지나면서 때 아닌 가을비를, 서러운 통곡과도 같은 굵은 비를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살아있음과 죽음, 그리고 그 맑은 영혼을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주는 빗줄기의 비장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선한 죽음을 하늘도 애통해 하면서 내리는 빗줄기의 처연함에서 저는 선생님의 커다란 은혜와 남아 있는 제자의 애절함을 간신히 위로합니다.

김진기 선생님!

불러도 불러도 그리움이 사무치기만 하는 선생님의 존함을 되뇌어보는 일도 이제는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월은 참으로 많이도 지났습니다.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쫓기듯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을 망설이고 있던 즈음 저는 선생님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살아남아 지구상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무리들과 정의와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아래 숭고한

 목숨을 기꺼이 바친 고운 넋들과의 간극에서 뜻을 알지 못하는 자괴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산을 사랑하시고, 그 산위에 올라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풍광을 사진에 담는 일을 좋아하시던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소백산을 그리고 어머니 산이라 일컬어지는 지리산 종주 산행을 거듭하며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겸허한 인간에 대한 가르침은 지금껏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세상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황망하고,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두려운 대상이라는 것쯤은

모질기만 한 살아가는 일을 겪으면서 이제는 제 스스로도 알아차릴 나이는 벌써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6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선생님의 삶이 그 많은 신문들의 그 흔한 부음소식

한 줄조차 없이 기억되지 않는 모습으로 남는 일은 참으로 원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 이 어찌 질곡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 어찌 처절한 시대의 모순이라고 울먹이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한국의 현대 교육현장에서, 그리고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갈등과 반목이 거듭되고 있는 사학의

 온갖 모순과 오욕에 대해 기꺼이 온몸을 다 바치신 선생님의 열정은 어쩌면 차라리 세상과 어울리지

 않은 순수함이었을까요.

자신들과 입장이 다르면 무조건 질시하는 짓에 그치지 않고 기어이 생채기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잔인함이 새삼 몸서리쳐지는데, 서러운 내 눈물은 선생님의 영정사진을 자꾸만

흐릿하게 합니다. 그런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여 선생님의 넓고도 깊기만 한 속내에 암덩어리로

커가고 있을 때, 그 고통을 살아남아 있는 제자의 용렬함으로는 차마 알아차리지 못했음이

서럽기만 합니다.

선생님! 저를 제외한 많은 선생님의 제자들은 이제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교육현장에서

훌륭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늘 생활에 찌들려 살면서도 올바른 사도(師道)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제자들은

 살아계실 때 선생님의 모습과 한결같은 닮은꼴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이제 한 줌 재가 되어 높은 산이 아닌 이 세상 사람들과 가까운 동산에 누우셨고,

 저는 선생님의 산과 사진을 추억하며 차마 저장된 번호를 지우지 못한 채 떨리는 손길로 스마트폰을

 로그아웃합니다. 혹시라도 하늘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기다리며 그리움을 가슴에 깊이 담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테니까요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광고, 노랑머리 한우와 아이폰4
충청논단
2010년 10월 07일 (목)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정규호 <문화콘텐츠 플래너>

인기 절정의 가수 이효리의 한우 광고가 느닷없이(?)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소속 김성수 의원은 "(한우 광고 모델인 이효리가)노랑머리 염색을 하고 나와 수입 쇠고기를 광고하는 것 같다"고 주장한 뒤 모델을 즉각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이어 "한우 광고 모델은 수입쇠고기와 차별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표절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는 이효리가 이런 효과를 낼지 의문점"이라는 지적도 했다.

국정감사장에서의 느닷없는 국회의원 지적의 이면에는 숨겨진 문화코드가 적지 않다. 거기엔 한우의 우월성이거나, 흑발의 순혈민족주의에서 기인하는 노랑머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우선 작용한 듯하다.

게다가 지적재산권시대에 표절시비라니, 이 역시 시대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도 했을 터.

그러니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적인 생각 역시 마땅치 않다.

다만 영상으로 전달되는 광고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중첩이 부지불식간에

소비자를 자극한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일안 렌즈 반사식 디지털 카메라(DSLR)는 하이브리드

신기술을 적용해 크기와 무게를 줄임으로써 편리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1위 업체 캐논은 자사 제품의 약점인 '무게'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을 아름답게 담아주는 감동의 무게에 비하면 무겁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내레이션을 통해 감성을 자극한다. 이 내레이션의 배경화면은 연약한 여성이 강아지와 클림트의

두꺼운 화집을 품에 안았다가 이어 어린이를 번쩍 들어 올린다.

그 영상의 내레이션은 "이들을 안을 때 우리는 무겁다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니까요."라는

내용이다.

출시 이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한 애플의 '아이폰4' 광고는 '말'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전혀 없다.

재즈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면서 집들이인지, 추석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나는 이 광고를 처음 본

 때가 추석 즈음이어서 추석 상차림으로 각인됐다) 음식상차림을 '아이폰4'를 통해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도움을 받는 모녀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이 시집간 딸과 친정엄마라는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점은 굳이 '말'로써 설명하지 않아도 광고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

'말'이라는 직접적이고도 정확한 메시지 전달의 수단을 통하지 않고 오로지 영상으로만 설득하는

'아이폰4'의 감성 광고는 생일인데도 출장을 가 있는 가장과 영상을 통해 "아빠, 생일 축하해."라는

의사를 말을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수화를 통해 영상으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등장하는 '아이폰4'의 광고 시리즈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훈훈한 감동으로 젖게 하는가.

물론 노랑머리 이효리와 한우 광고가 지극히 국내만을 시장의 한계로 고집하는 데다 1차 산업의

생산물이며, DSLR카메라와 아이폰4가 첨단 기술의 제품이라는 태생적 차이는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상품들은 우선 수입쇠고기의 위협에서 국내시장에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한우의)강박관념이 있거나, 이미 자국내 시장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밖에 없는 첨단제품의 철저한 기술적 자부심이 숨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국정감사장에서조차 노랑머리와 한우, 그리고 표절시비에 운운하며 안으로의 경계심만

 곧추세우고 있을 때, 아이폰과 디지털카메라는 사랑과 말이 필요 없는 영상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국경을 넘나들며 자꾸만 우리를 세뇌하고 있다.

그러니 어쩌랴. 감성은 인류가 공통으로 자극받는 통로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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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