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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0 한국의 '연줄 생태계'와 애플의 혁신

한국의 '연줄 생태계'와 애플의 혁신
[같이 가면 더 멀리, IT생태계를 살리자]

입력 : 2011.03.20, 일 18:25 댓글 (0)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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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의 힘, 지금 확인하세요 IBM, 서버&스토리지를 생각하다: 3월 이벤트 실시
#지난해 8월 인천 남동구 고잔동 남동공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협력업체 대표들과 만났다. 그 중 대화 한 토막. "엔화 차입을 했는데
 환율이 올라 자금난을 겪고 있습니다."(김흥곤 제일정밀 대표).
 "그렇다면 (원화로 따진) 차입금 증가분에 대해 무이자·무보증
융자를 지원하겠습니다."(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지난해 철판 등 차에 들어가는 원자재
약 3조1천억원 어치를 구입했다. 현대·기아차가 직접 쓸 용도가
아니라, 부품 협력업체들이 사용할 원자재였다. 협력업체들이 각각
 사지 않고 현대·기아차가 한꺼번에 구매를 하면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일종의 공동·대행 구매다.

#삼성전자 직원 16명은 경기도 안성의 '신흥정밀'로 매일 출근한다.
 이 회사의 제품 개발을 돕기 위해서다. 신흥정밀은 TV 테두리 등을
만드는 회사. 삼성전자 신제품 디자인에 맞는 테두리 등을 개발하기
 위해 기술 인력을 직접 파견한 것이다. 협력사의 연구개발(R&D)을
 돕는, 삼성전자 '동반성장 경영'의 하나다.

#구본무 LG 회장은 이달 초 그룹 임원 300여 명이 참석한 세미나
에서 "협력사와 동반성장 없이는 LG의 경쟁력 향상도 불가능하다"며
 "협력회사와 갑·을 관계라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파트너로서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해 9월
 협력사 최고경영자 86명을 초청해 점심 자리를 갖고 테이블을 돌며
 "SK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언론 보도로 보면 중소 벤처기업의 천국

최근 언론에 난 상생 경영의 사례들이다. 만약 이런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이미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천국'이 됐어야 했다.
대기업이 협력 업체를 위해 금융 지원을 대신해주고, 기술을 전수
하며, 제조원가까지 절감해주니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사업하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도 중소기업 하기가
어렵다면 아예 사업을 하지는 않는 게 낫다. 더 이상 어떻게 해줘야
한단 말인가.

#지난 14일 오후.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구로 지역 중소기업들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 CEO들이 지적한 대기업의 반(反)
상생 정책의 문제점들은 ▲대기업 계열사를 통한 재하도급 관행
▲최저가 낙찰 후 단가 인하 ▲장기어음 교부 ▲중소기업 우수
기술인력 빼가기 ▲비현실적인 소프트웨어 대가 기준 등이었다.

금융 지원은커녕 현금을 쌓아놓고도 협력 업체에는 장기 어음
끊어주고 제품 가격을 후려치며, 기술 전수는커녕 중소기업 원천
기술을 가로채기에 바쁘고, 제조원가를 줄여주기는커녕 납품 전에
계열 '관문기업'을 둠으로써 납품에 필요한 비용구조를 높이고 있는
 게 지금 우리 대기업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인 셈이다.

◆현장에 가서 보면 중소 벤처기업의 지옥

어느 쪽이 진실인가. 그것을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모두
한 쪽으로 치우쳐 바라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나라에서 '상생(相生, win-win,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동반성장'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이란 말을 유독 더 많이
쓴다는 사실이다. 그 말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고, 노력도
 꽤 많이 하지만, 개선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 말과
노력이 외려 공허해 보일 정도다.

왜 그런가. 상생을 보는 기본적인 관점이 잘못됐기 때문일 것이다.
상생은 건강한 생태계(ecosystem)를 만들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된 상생은 뒤틀린 생태계를
그대로 두고 미시적인 부문만 거론해왔던 것 같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접어줘야 비로소
공평해진다. 지금까지 상생 논의는 이와 비슷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대기업이 양보하고 시혜를 베풀어야만 그게 상생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왜 제조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금융지원까지 해줘야
하는가. 물론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고, 그게 착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장려하고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기형이다. 그러나 정부도 언론도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기업으로선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적당한 정도로 생색을 내기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사진을 찍고
홍보하고 그럴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풀 길 없는 상생

그리고…, 그 뿐이다. 사진 찍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그런데 모두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쌍심지를 켜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운동장이 비뚤어져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게끔 우리 운동장은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상생은 아무리 외쳐도 이루어질 수 없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상생이라는 추상적 어휘를 버리고
생태계(ecosystem)라는 좀 더 현실적인 말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경제 구조의 거시적인 수정과 혁신만이 비뚤어진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가끔 한 번씩 베푸는
대기업의 시혜가 아니라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바로 선 운동장이다.
독점적 시장 지배력, 정부의 특혜, 편법적 반칙을 발굴해 없애는
 것이다.

상생이 혁신의 문제인 까닭은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 정부의 특혜,
 편법적 반칙으로 커온 대기업 재벌 중심의 한국 경제 구조를
새롭게 바꿔야 비로소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상생 논의는 모두 공염불이며, 오히려 적당한
대증 치료를 통해 비뚤어진 마당을 더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애플이 많은 IT 중소기업들로부터 찬양을 받는 건 협력업체와 금전적
 계약관계가 다른 기업에 비해 더 우호적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애플이 부품 단가나 수수료 정책에서 더 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은 특혜나 반칙이 아니라 혁신적 사고로 없던 시장을
만들어냈다고 IT 벤처기업 관계자들은 믿고 있다. 기술이 좋아 부품
납품 업체로 선정된 곳은 말할 나위도 없고,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앱이라는 새 장(場)이 선 것만으로도
 벤처기업들은 충분히 반길 일이다.

◆특혜, 독점, 반칙 통하지 않는 운동장

모름지기 생태계는 그렇게 만들고 변화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땠나. 로비를 통한 정부의 특혜와 편법적 반칙으로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혹시 기존 투자분을 회수하는 데만
급급해 새 시장을 창출하는 데 의도적으로 지연정책을 썼던 게
아닌가. IT 생태계의 혁신을 갈구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다 대기업
문턱에서 여러 번 가로막힌 이 분야 중소 벤처기업 전문가라면
다들 알 일이다.

이런 의심이 만약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는 겉으로 상생을 추구하면
서도 결과적으로는 독점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생태계의 성장을 억제함으로써 상생의 터를 좁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2009년 말 아이폰이 처음 한국에 들어오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IT 강국이라던 우리의 생태계는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허약하고 볼 품 없다는 사실이 숨길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2007년 말 정권이 바뀐 뒤 잔뜩 주눅 들었던 IT 기업인들이 다시
기운을 회복한 것은 정부의 상생 정책도 아니고 대기업의 간헐적인
시혜도 아니며 애플이 통째로 흔들어놓은 시장이라는 사실에
모두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그 시장이란 어떤 것인가. 정부와 대기업의 연줄을 찾아 로비하지
않아도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공정하게 겨룰 수 있는
마당이다. 그들을 기뻐 춤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직접 소비자로부터 평가받게 할 수 있는 구조다.
애플 앱스토어는 비록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그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이고 상생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수많은 IT 기업가들이 그 마당에서
 춤추고 있다.

이 글 또한 독점적 시장 지배력, 정부의 특혜, 편법적 반칙을 구체적
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쓸 데 없는 공염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자는 그 해법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 다만 정책 입안자들이 진실로 이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상생이 공염불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