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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다른 한옥…조선시대 ‘타운하우스’에 가다
여기가 진짜 부자 동네인 이유
블로그 구본준 기자기자블로그
어딘가 다른 한옥, 왜?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마을 말고, 인흥마을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제는 대구광역시로 포함된 달성군 화원읍 본리라는 곳인데, 이곳에 잘 지은 한옥들이 몰려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옥마을이라도 다른 한옥마을과는 좀 다른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근사한 솟을대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옆으로는 뒤쪽에서 나오는 골목 입구가 따로

있습니다. 이 고샅 부근이 아주 멋집니다.  

 이 골목길이 이 마을의 진짜 볼거리입니다.

 정성껏 쌓은 전통 담장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이 마을의 담장은 돌로 쌓은

돌담이나 무늬로 멋을 낸 꽃담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흙과 돌로 정성스럽게 쌓은 모습이 바로

눈을 잡아끌고, 통일된 분위기가 그윽합니다.



 신목으로 보이는 큰 나무가 있는 어귀 쪽 골목입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여서 물기에 젖은
담장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왕유의 시 구절 ‘객사청청류색신’이 떠오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 담장은 사진으로 보면 다른 전통 마을 담장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보여도

실제로 가보면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높이’입니다. 이 마을 담장은 높습니다.

보통 우리 전통 담은 바깥에서 보면 마당 안 집들의 지붕이 어느 정도 보이면서 사람은 대충

가려집니다. 도둑을 막겠다거나 자기 집을 외부와 차단하겠다는 의미보다는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공간을 나누는 것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이 마을 담장은 도저히 담 너머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큽니다.

 그리고 다른 동네와 달리 담장과 골목이 모두 직선입니다.
 우리 전통 가옥이나 마을은 기본적으로 구획이 직선으로 나누어지지만 지형에 따라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기도 하고, 또 집과 집 사이도 이렇게 도심 골목처럼 붙어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은 담장이 만들어내는 길이 자로 잰 것처럼 직선이고 길게 만들어졌습니다.

담장만 시멘트나 벽돌로 바꾸면 도시 중산층 단독주택 지역 골목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인흥마을 골목길은 다른 전통 마을에서 볼 수 없는 시원하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주 근사하죠?

 그런데 왜 이 마을 골목은 이렇게 다른 걸까요?
 그건 이 마을이 아주 오래된 마을이 아니라 1840년대 들어선 마을이고, 집들은 대부분 조선후기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옥으로 지은 ‘근대의 마을’인 거죠.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나라 도시의 모습은 크게 바뀝니다. 일본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들어와 새로운 주거단지를 형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변화에 맞게 한옥 마을도 나름

근대적인 변화를 보여준 곳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전통적이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마을이 된 것입니다. 동네 입지도 다른 마을과 다릅니다. 보통 기와집 마을은 산기슭 완만한 경사

짓는 편인데, 이 마을은 완전히 평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네모 반듯하게 땅을 나눠 집을 지었습니다.

 그럼 이 마을은 어떤 곳이냐, 바로 목화씨를 들여와 한반도의 옷 문화를 바꾼 문익점의 후손들인

 남평 문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그래서 보통 ‘남평 문씨세거지’라고 부릅니다. 현재 9가구가

 살고 있다고 안내판에는 쓰여 있는데 문희갑 전 대구시장도 공직을 마친 뒤 이 동네에 들어와 살고

 있다고 들었으니 10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잘 지은 한옥들이 있는 근대화된 마을이란 점에서 조선시대판 향린동산이라고 할까, 일종의

타운하우스처럼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마을이 자랑하는 건물들을 보겠습니다. 맨 먼저 본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잘 꾸민 정원이 나오고, 딱 보기만 해도 풍채가 당당한 큰 건물이 등장합니다. 인흥 문씨 마을의

간판스타 건물인 ‘수봉정사’ 또는 ‘수백당’이라고 부르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마을 담장이 다른 곳보다 높고 크듯이 우리 전통 건물들의 기본 규격보다 더 크게

지었습니다. 툇마루에 앉으면 발이 기단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고, 기둥들도 아주 큼직큼직

시원시원합니다. 마을 공동의 배움터이자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하는 건물인데, 몇 집 되지 않는

마을에서 이 정도 건물을 지었다는 점에서 마을의 당시 경제력과 스케일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은 1930년대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계급과 직위에 따라 지을 수 있는 규격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조선 왕조가 망한

 뒤에는 이런 기준들이 사라져 돈 있는 집들은 예전에는 지을 수 없었던 크고 화려한 집들을 많이

지었습니다.
 이 건물도 그 중 하나인데, 우리 전통 한옥이면서도 일본 목수가 참여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색다른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변화와 시도가 재미있는 것이겠죠.

  부분 부분 모두 넓고 시원합니다.

 이 수봉정사와 함께 이 마을을 대표하는 또 다른 건물로 가보겠습니다. 이 집을 나와 뒤편으로 가는

 골목 끝에 있는 ‘광거당’이란 집입니다.

 다시 인상적인 흙돌담 골목을 가로질러갑니다. 역시 좋습니다.

 이제 광거당입니다. 키 작은 굴뚝이 줄지어 행랑 담에 붙어 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꽃담 하나가 떡 하니 가로막고 서 있습니다.
 정원 풍경과 바로 마주치지 않게 경치를 숨기는 ‘장경’ 기법이네요.
 양쪽으로 사~알짝 집안 모습이 조금 보입니다.
 당연히 눈길은 저 담장 벽에 기왓장으로 만든 꽃에 꽂힙니다.
 툭툭 꽂아넣어 소박하게 한 꽃 한 송이. 꽃을 여러 송이 만들었다면 오히려 꽃의 존재감이 적었을

겁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 시선을 끌어모으는 저 감각. 쉬워 보여도 쉽지 않은 전통 디자인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꽃담 왼쪽으론 장독대입니다. 여기서도 우리 전통 벽의 기능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가로막기보다는

 공간에 변화를 주고, 또는 저렇게 장독대나 다른 시설을 만들기 위한 지지대 역할도 합니다.
 저 장독대는 그냥 담장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다시 기와로 키 작은 둘레담을 쳤습니다. 평범한

기와로 저렇게 온갖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제 광거당입니다. 사진으로는 역시 티가 안 나지만 상당히 큰 건물입니다. 마을 맨 가장자리에

 호젓하게 자리 잡아 넓은 마당을 굽어보는 주인장의 풍모가 절로 흘러나옵니다.

 건물 오른쪽 누마루 편액이 아주 강렬합니다. 추사의 글씨로 새긴 현판인데, ‘壽石老苔池館’,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이 있는 집’이란 뜻입니다.

 건물 안은 크게 다를 것이 없겠죠. 그런데 이 작은 부분 하나가 재미있습니다.

 기둥에 덧댄 작은 선반입니다. 인테리어란 참 다양한 아이디어가 만들어내는 예술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 수봉정사와 광거당보다도 마을 입구에 있는

이 건물이었습니다.

 마치 창고처럼 보이는 저 건물은 ‘인수문고’란 곳입니다. 저렇게 건물에 빛이 들어오는 부분이 없고

 벽만으로 이뤄진 건물은 한옥에선 대부분 서고입니다. 저 인수문고도 서고입니다. 이곳 문씨 문중의

 도서관이자 책창고인 것입니다.
 이 작은 씨족마을에서 이렇게 자체 도서관과 문고를 지니고 있다는 것, 그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수문고는 소장하는 책들의 수준도 높기로 유명합니다.

 문씨세거지가 폼이 나는 이유는, 멋지고 근사한 잘 지은 집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한집안

전용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점일 겁니다. 집이 부자가 아니라 책이 부자인 마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 인수문고 옛건물만으로 모자라 새로 지은 건물 두 채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 만든 모양새가 좀 거시기하죠?
 아무래도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이다 보니 나무로 지은 건물에 품격과 느낌이 견줄 바가 못됩니다.

그래도 저 정도 정성을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들겠죠.

 한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 이렇게 잘 꾸민 전통가옥 밀집 마을들이 많았습니다.

불과 한 세대만인 지금 이 정도 마을은 이제 아주 드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저 문씨 마을이 그리

대단할 것이 없더라도 이렇게 남아 존재하는 것, 그리고 전통가옥에서 후손들이 옛 문화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고 소중하다 하겠습니다.

 마을을 돌아보고 다시 입구로 나오는 길, 재미있는 힌트 하나가 밭 속에 숨어 있습니다.
 저 키 작은 돌탑입니다.

 밭 한가운데 웬 돌탑일까요?
 우리나라에서 돌탑이 있는 곳은 당연히 절 뿐입니다. 이 인흥마을도 원래 절터였습니다.
 13세기 인흥사란 절이 있던 곳이었고, 마을 이름도 이 절에서 나왔습니다. 절은 언제인가

없어졌고, 지금은 저 작은 탑 하나만 오도카니 남았습니다.

 마을 입구 문화해설사가 계시는 간이 건물입니다. 참 친절한 분이셨는데, 문제는 저 간이집

꼬락서니입니다. 대충대충 전통 디자인으로 만든 저런 허접하고 조악한 건물들이 문화유적지마다

버티고 있습니다. 기왕 지을 것 전통을 잘 따라 짓든지, 전통 디자인을 따르지 않을 것이면 제대로

 현대식으로 짓든지, 꼭 저 모양으로 동네 풍광과 분위기를 깨 드립니다.

 디자인 명품 도시니, 창의도시니 지자체들이 떠들어대지만 실제 공무원들의 문화적 마인드는

박정희 시절보다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저런 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진짜 사람을 사로잡고 감동시키는 도시와 지역의 아름다움은 ‘조화와 변화의 조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쓰지도 못할 저따위 싸구려 디자인이 사라지는 것이 랜드마크를 짓는 것보다

훨씬 중요할 겁니다.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 모습도 왠지 눈길이 갔습니다.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 집집마다 쓰고

남은 의자들을 가져다 놨습니다.

 누구나 유리와 스테인리스로 지은 저 운치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버스정류장보다 저 정자나무 아래

 소파들에 앉고 싶을 겁니다. 돈 들여 지은 전시성 디자인과 자연스럽게 주민이 만들어낸 디자인,

 무엇이 더 훌륭한 것인지 저 사소한 풍경 하나가 보여줍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Young Power] "수백년 손맛 스민 한옥, 유럽에 보여줄 겁니다"

  • 입력 : 2010.08.05 02:58 / 수정 : 2010.08.05 07:22

베니스 건축전 참가 조정구씨
"아무리 훌륭하게 설계해도 목수·미장이 없으면 안돼… 한옥 만들며 겸손 배웠죠
도심의 옛집 답사 10년… 살 냄새 그득한 풍경 좋아"

오는 29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하는 제12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서울의 '도시 한옥'이 등장한다. 역사도시 서울이 변모해온 과정을 보여줄 한국관에서다. 이 한옥은 널찍한 누마루와 卍(만)자 모양의 문 창살, 천장의 굴곡진 서까래가 드러나는 안방 등으로 이뤄져 있다. 기둥 사이 간격은 3.6m, 크기는 36㎡(11평)여서 관람객들이 신발 벗고 들어가 쉴 수도 있다.

건축가 조정구(44·구가도시건축 대표)씨가 유럽에 이 한옥을 소개한다. 베니스 건축전에 참가하는 한국 건축가는 5명인데, 주제관인 한옥의 소개를 조씨가 맡았다. 그는 "관람객들이 정자처럼 꾸민 한옥에서 편히 쉬면 좋겠다"고 했다. "유럽인은 수백년 된 집에서, 그 집을 거쳐 간 사람과 삶의 기억을 공유하며 삽니다. 우리도 역사가 숨 쉬는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조정구씨가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선보일 ‘도시한옥’의 모형을 공개했다. 그의 한옥을 똑 닮았다. 그는 “전시장 천장이 유리이기 때문에 기와를 얹지 않은 한옥 내부로 베니스의 자연광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조씨는 현대식 한옥으로 주목받는 젊은 건축가다. 2002년 서울 가회동 북촌(北村) 한옥마을 재개발에 참여했고, 2005년 경주 신평동에 국내 최초 한옥호텔 '라궁(羅宮)'을 설계해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받았다.

"제가 짓는 한옥은 엄밀히 말해 '도시 한옥'입니다. 대청에 유리문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 챙을 달죠. 전통 한옥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근대 도시에 적응해 새로운 주택 유형으로 진화한 한옥이죠."

서울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2000년 회사를 세웠고, '북촌 가꾸기'에 참여하면서 한옥에 매료됐다. 외벽과 처마선을 살리고 실내 화장실과 입식 주방을 설치하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겸손도 배웠다고 한다. "한옥이 가진 기품과 역사, 그건 건축가 혼자는 손댈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아무리 훌륭하게 설계해도 솜씨 좋은 목수와 미장이가 없으면 제대로 지을 수 없어요."

조씨는 2003년 아예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옥으로 이사했다. 그는 "아내가 50년 된 다락을 보고 탄성을 질렀고, 아이 넷이 햇빛 가득한 마당에서 뛰어놀았다"며 "그때 '좋은 집이란 이런 거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했다. 그 뒤 한옥은 그의 '스승'이 됐다. 한옥을 기본 틀로, 그 안에 스민 시간의 정수를 건축에 녹이려 애썼다. 여백의 미를 살린 권진규아뜰리에(동선동), 내부는 한옥이고 외부는 현대건축인 K갤러리(삼청동)가 그렇게 해서 나왔다.

조씨는 10년째 수요일이면 카메라를 들고 도심의 허름한 동네를 찾아간다. 슬레이트집 17채가 붙은 왕십리 봉제공장, 가파른 산 중턱을 깎아 집을 올린 이화동과 명륜동, 옛 기찻길 변에 일렬로 붙은 서교동 365번지,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쪽문이 50㎝ 간격으로 이어진 돈의동 쪽방촌…. 답사 내용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고, 재개발 예정지는 실측을 해서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제작했다. 이렇게 발품을 판 '수요 답사'가 500회를 넘겼다.

작년부터는 수요 답사와 별도로 경복궁 서쪽인 '서촌(西村)'을 실측하고 있다. 화분·자전거·도시가스관 등 골목 전체를 모눈종이에 그려넣는다. 한옥 한 채의 스케치에 반나절 걸린다. 그는 "살 냄새 그득한 풍경에서 느껴지는 애잔함이 좋다"고 했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이 작업의 결과물인 그림(4×5m)도 한 점 내건다. 재개발 전의 내수·내자·사직동 골목을 재현한 것이다. 펜으로 그린 한옥 682채가 다닥다닥 붙었는데, 집 한 채가 손바닥 크기다.

"사람들은 1950~60년대에 지은 한옥을 '집장수 집'이라며 폄하해요. 전통 한옥과 다르다는 거죠. 하지만 집장수가 지은 집들에도 목수나 미장이 같은 전문가의 수백년 손맛과 기술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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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Money & Riches] 다시보는 한옥의 매력
한옥 접목한 명품아파트

한옥은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유산이다.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은 우리 민족과도 교묘하게 닮아 있다. 날렵한 기와는 수줍은 여인네의 가냘픈 옷소매를 떠올리게 하고 넓은 대청마루는 주변을 포용하는 넉넉한 인심을 연상시킨다.

요즘 한옥의 재발견이 화두다. 한옥의 기능적 특징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고, 북촌한옥마을 등 한옥이 모여 있는 곳은 `신(新)관광명소`로 도심 속 고즈넉함을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한옥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회동ㆍ계동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에 한옥 구입을 문의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30ㆍ40대다. 회색빛 아파트 생활에 염증을 느낀 젊은 계층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느린 삶`을 동경해 한옥 입주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한옥을 접목시킨 아파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림산업이 한옥스타일 격자무늬로 꾸며진 슬라이딩 도어와 파티션을 적용한 아파트를 선보이고 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거실을 한옥의 마당 모습인 ㄱㆍㄷ자 형태로 조성한 한국형 아파트를 내놨다. 사랑방과 대청마루가 설치돼 한옥 한 채가 고스란히 담긴 아파트도 등장했다. 한옥을 우리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한옥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가격도 많이 올랐다. 2000년대 초반 3.3㎡당 700만~1000만원 선이던 가회동ㆍ계동 한옥 시세는 현재 2000만원을 훌쩍 넘기고 있다. 7~8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오른 것이다. 규모가 크고 전통미를 살린 한옥이 즐비한 가회동 11ㆍ31번가 일대는 3.3㎡당 평균 시세가 3500만원 선으로 웬만한 강남 아파트를 능가하고 있다.

[이명진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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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