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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중국2010.08.23 14:56

[한우덕의 중국경제 콘서트](19) ‘13억 함수의 반전 드라마’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8-23 오전 9:24:10

자, 이제 휴가도 끝나고 야물딱지게 마음을 잡아야할 때입니다. 다시 컴퓨터 자판과의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오늘의 콘서트를 시작합니다.

********************

세계 경제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 아실 겁니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국가로 등장했다는 얘기 말입니다. 이 뉴스는 지난 주 세계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회자됐습니다.

중국의 제2위 경제대국 부상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우선 아래 사진을 보시지요.



총칭의 쪼그만 택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사진입니다. 비행장 손님 태우려고 기다리느냐고요? 아닙니다. 기름(액화가스)을 넣기 위해 장사진을 치지고 있습니다. 그냥 죽 늘어선 게 아니라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당시 총칭 등 일부 지역에 닥친 액화가스 공급난으로 인해 벌어진 현상입니다.

어쩌다 생긴 일이 아닙니다. 중국은 자주 자동차 주유에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석유 공급이 원할 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작년에 중국에서 팔린 자동차가 약 1365만대 대입니다. 대부분 내수용입니다. 한 달 100만 대 이상이 중국 시장에 쏟아진 겁니다.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보유대수가 약 1600만대정도더군요.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보유대수를 육박하는 물량이 중국에서 1년 사이에 뚝딱 만들어진 겁니다. 중국 언론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잡고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등장했다'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숨긴 무서운 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바로 석윱니다. 자원 차원에서 본다면 자동차는 석유 먹는 기계일뿐입니다. 한 해 1365만대가 새로 생긴다면, 그 만큼 석유 소비가 늘어날 게 뻔합니다. 중국은 1993년이후 석유 순 수입국이 됐습니다. 지금도 5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요. 2030년에 가면 석유의 80%를 수입에 의존해야할 판입니다. 자원이 중국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경제대국 중국의 등장이 세계 석유시장에 큰 충격을 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작년 새로 발생한 석유수요의 21%가 중국 몫이었습니다. 당연히 기름값이 오를 수 밖에요. 지난 수 년간 유가가 급등한 데에는 중국의 수요증가가 아주 큰 몫 했습니다.

이것의 이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13억의 함수'가 이제 거꾸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동안 세계는 중국의 13억 인구가 주는 '풍요'를 누려왔습니다. 무한한 저임 노동력이 제공하는 저가 제품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요. 쩌장(浙江)성의 허름한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재봉틀을 돌리는 '샤오제(小姐・소녀)가 있었기에 세계 소비자는 싼 값에 셔츠를 입을 수 있었던 겁니다. 중국이 지난 30년동안 연평균 10%가 넘는 성장세를 달려왔던 것은 수 많은 쩌장성의 샤오제의 '희생'이 있었기 가능했습니다. 세계인들은 중국경제의 부상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세계공장'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고요.

그러나 13억 중국인들은 이제 '노(No)'라고 말합니다. 더이상 싼 값에 노동력을 팔지 않겠답니다. 광둥성에서 파업이 일어나고, 한 해 임금이 20%안팎오르고 있습니다. 세계가 중국발 인플레를 우려해야할 판입니다.

똑 같은 일이 자원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13억 중국경제가 자원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입니다. 1365만대의 중국 자동차가 세계 석유를 먹어치우듯, 13억 중국경제는 이제 모든 분야에서 자원을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닙니다. 중국경제가 10%가 넘는 성장세를 달리며, 드디어 일본을 자빠트렸다는 말이 나왔기에 하는 얘깁니다.

중국이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나라라고요? 택도 없는 소립니다. 중국이야 말로 전형적인 자원빈국입니다. 경제규모와 비교해볼때 말입니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안팎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세계 시멘트의 50%, 철광석의 약 30%, 구리의 40%를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상하이에 건설되는 빌딩의 숫자에 따라 국제 철강 가격이 좌우된다는 말이 나올 정돕니다. 국제 철강가격이 출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에는 곡물 시장이 특히 심합니다. 잇단 자연재해 및 흉년으로 중국이 국제 곡물시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먹어야 사니까요. 상반기에 중국 곡물 수입은 약 248.4만 톤이었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7% 늘었더군요. 중국의 등장으로 가뜩이나 수요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곡물 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는 이제 13억 경제인들이 짓고, 먹고 마시는 것에 눈치를 봐야할 처지입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할 수록 세계 경제는 더 중국에 얽메이는 구조로 짜여지고 있습니다. 13억 함수가 거꾸로 작용하면서 나타는 현상입니다.

13억 함수를 적용해야 할 또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지난 2/4분기 일본의 GDP는 1조2880억 달러였습니다. 이에 비해 중국은 1조3370억 달러였습니다. 차부두어(差不多), 그러나 중국이 일본을 웃돈 것은 확실합니다. 1일당 GDP를 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중국 인구는 13억으로 일본 인구(1억3000만)의 10배입니다. 결국 13억 인구의 함수를 적용해 본다면 중국의 1인당 GDP규모(약 3600달러)는 여전히 일본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중국이 경제규모로는 세계 2등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의 생활수준으로 치자면 여전히 100등에도 끼지 못합니다.

13억 함수의 조화는 참으로 요지경입니다.

한우덕
Woody Han(無敵漢)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는 '차이나 인사이트'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2회 중국 관련 다양한 뉴스와 이야기, 칼럼 등을 묶어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때 성함, 하시는 일,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보내주세요.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08.09 18:36

[한우덕의 중국경제 콘서트](15) ‘패자(覇者)독식의 경제’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8-09 오전 9:39:29

지난 주 CEO 대상 강연을 한 곳 다녀왔습니다. '중국 금융/자본시장 변화와 우리 기업의 대응'이 주제였지요. 얘기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려는 데 한 참석자가 묻습니다.

"다 좋은데, 그렇다면 중국 경제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저의 강연 내용이 대체적으로 중국 경제를 낙관했기에, 그 반발로 나온 질문인 듯 했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중 대표적인 게 '빈부격차'입니다. 중국을 방문해 보신 분이라면 그 실상을 잘 아실겁니다. 개혁개방 초기 농촌과 도시 주민 소득비율은 1대 1.9였습니다만, 지금은 1대 3.3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발전할 수록 소득격차가 벌어집니다. '부정부패'도 심각합니다. 중앙-지방 가릴 것 없이 터지는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로 중국 법정이 복잡합니다. 중국 신문 떠들어보세요. 부패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기후도 문제고, 턱없이 부족한 자원도 중국경제 성장을 잡을 아킬레스건입니다. 제도 미비 역시 중국경제의 문제점을 얘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입니다./

이 정도 답했다고 칩시다.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노(NO)! 요즘 청중 똑똑합니다. 게다가 CEO라면 웃을 겁니다. 그건 50점 짜리 강사의 답변일 뿐이니까요. 좀더 크리티컬(Critical)한 것을 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중국경제에 내공이 있는 강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시작해보겠습니다.



중국 경제는 '패자(覇者) 독식의 구조'입니다. 센놈이 약한 놈의 것을 끊임없이 빼앗아 갈 수 있는 제도적 틀이 자리잡고 있지요. 약자는 죽어라 일해 번 부(富)를 자기도 모르게 빼앗깁니다. '빈부격차의 제도적 고착화'라고나 할까요. 하나하나 따져보지요.

우선 은행.

중국은 금리 자유화가 안 된 나라입니다. 정부가 틀어 쥐고 있지요. 1996년만 하더라도 예금이자는 10%안팎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1999년 말 2%대로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계속 그 수준입니다. 지금 기준금리로 통하는 1년만기 예금금리는 2.25%, 대출금리는 5.31%입니다.

중국에 돈 무작 많습니다. 걸핏하면 버블이요, 그 버블을 끄겠다고 긴축 조치를 내립니다. 돈이 많으니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고, 증시는 출렁입니다. 2000년대 들어 특히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금리는 턱없이 낮습니다.

누가 덕보겠습니까?

기업입니다. 싼 값으로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까요. 4대 상업은행(중국, 농업, 건설, 공상)이 금융권 대출 자산의 70%를 차지합니다. 이들 은행은 주로 국유기업을 상대합니다. 민영기업은 안중에도 없지요. 내부 거래도 있습니다. 국유은행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국유기업에 턱없이 낮은 금리로 돈을 내주기도 합니다. 국유기업과 국유은행, 그리고 국가의 '3각 결탁'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누가 피해보겠습니까?

개인입니다. 돈 값을 재대로 받지 못하니까요. 그래도 그들은 돈이 생기면 은행으로 갑니다. 인플레로 인해 실질 예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는데도 은행에 돈을 맞깁니다. 그래도 믿은 것은 은행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죠.

그 사이에 낀 은행도 짭잘하게 돈을 챙깁니다. 상업은행의 예대마진율은 1~2%포인트선입니다. 선진국일수록 낮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3%가 넘습니다. 이는 공식 예대마진율일 뿐, 일부 지방 중소은행은 6%에 이르는 곳도 있습니다. 돈놓고 돈먹기 식입니다. 인중리(尹中立)사회과학원 금융시장연구실 부실장은 "2009년 상장기업의 연간보고서를 보면 14개 상장은행의 이윤이 전체 상장기업 총 이윤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결국 민간의 부가 국유기업, 국유은행, 그리고 국가로 몰리고 있는 겁니다.

둘째 주식시장.

중국경제의 '양심'이라는 우징롄(吳敬璉)교수는 중국증시를 '거대한 도박장'이라고 했습니다. 내부자거래, 허위 공시 등이 판을 치는 부패의 온상이라는 것이지요. 애매한 개미들만 당하는 구조입니다.



중국이 1990년 말 증시를 설립한 첫 이유는 국유기업 개혁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국가-기업의 소유형태를 기존 '국영(국가경영)'체제에서 '국유(국가소유)'형태로 바꾸게 됩니다. 국가는 지분의 형태로 기업을 소유했고, 그래서 주식이 생겼습니다. 국가가 갖고 있던 주식 중 약 30%를 풀어 민간에 풀기로 했습니다. 주식시장을 만든 이윱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증시는 국가가 민간의 돈을 빨아들이는 합법적인 통로'였지요.

주식시장 설립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요? 아닙니다. 지금도 그 구조는 변한 게 없습니다. 지금도 주식개혁이 한창입니다. 비(非)유통주 개혁 말입니다. 그 논리는 간단합니다. '설립 초기 풀지 않았던 국유기업 주식 70%를 이제 시장에 내놓겠다'는 겁니다.그게 2005년 시작된 주식개혁(股改)입니다. 지금도 주가가 오를만 하면 비유통주가 시장에 쏟아져 나와 자금을 걷어갑니다. 그 걷어가는 주체가 국가의 위임을 받은 국유기업입니다. 국가가 증시를 통해 민간의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중국증시와 관련해서는 최근 출판된 '중국증시 콘서트(올림출판, 한우덕 지음)'를 참고하십시요. 중국증시의 설립에서부터 비유통주 개혁, 부정부패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증시의 내막을 들여다 본 책입니다. '중국인도 모르는 상하이 증시 얘기'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중국증시는 국유기업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전시장을 중심으로 민영기업의 상장이 늘고 있긴 합니다만, 아직도 중국 주식시장의 80%(시가총액)이상은 국유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면 오를 수록 국유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중국증시의 상장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장회사의 발행가격은 PER의 10배가 적정합니다. 그러나 2000년이후 중국 주식 발행값은 가장 낮을 경우가 PER의 20배 였고, 2009년이후에는 40배에 달하기도 했습니다(인중리 실장). 중국은 지난 7월 농업은행 상장으로 220억 달러를 조달했다고 자랑합니다. 해외자금도 있었고, 기관투자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국가가 시장에서 민간의 자금을 쓸어간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증시는 민간자금이 국유기업으로 향하는 합법적인 통로입니다.

셋째 부동산시장.



저는 최근 발간된 책 '중국증시 콘서트'에서 중국 부동산시장에 '봉이 김선달'이 많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폭리구조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동산시장이야 말로 중국에서 '승자들이 벌이는 파티장'입니다. 약자들은 그 파티 장 옆 쓰레기 장을 뒤져야 하는 신세지요.

중국에 주택거래제도가 도입된 게 1998년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국가나 기업이 주택을 제공했지요. 주택거래를 허용하니 부동산시장이 형성됐고, 또 건설붐이 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富)는 다시 국가와 기업에게 쏠리게 됩니다.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정부는 땅을 팔아 부를 챙깁니다. 특히 지방정부가 심했지요. 원래 국가 소유던 땅을 부동산개발 명목으로 기업에 판 겁니다. 전국 토지의 민간(주로 기업)양도 규모를 보면 1998년 68억 위안, 2000년 595억 위안, 2003년 5421억 위안, 1009년 1조5000억 위안 등으로 급속하게 늘어났습니다. 거의 매년 2배 늘었지요. 각급 정부 예산외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정부가 땅 장사로 돈을 모은 겁니다.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만들어 정부로부터 토지(사용권)를 삽니다. 주로 돈을 꾸지요. 일단 땅을 사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입니다. 그 땅은 개발용지로 변하면서 시장가치가 크게 뜁니다. 물론 정부가 '개발용지 전용'을 도와주지요. 기업은 그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땅 살 때 빌린 돈을 값습니다. 그래도 돈이 남습니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건설하지요. 아파트를 3분1정도 지으면 분양에 들어갑니다.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아파트 값이 오르면서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해 아파트를 사게 되지요.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아파트를 사는 겁니다. 주민은 아파트 한 채 산 죄로 평생 '아파트 노예(房奴)'로 살아가야 할 처지입니다.

물론 집값이 오르면 얘기는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그 분야는 또 다른 투기의 영역입니다. 달리 볼 문제지요. 어쨌든 이런 구조를 통해 부동산시장의 개인 자금은 폭리구조를 통해 기업에 들어가고, 다시 정부로 몰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민간은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지고있는 광란의 투기 파티에 마음을 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경제가 성장할 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겁니다.

오늘 여기까지 입니다. 한 호흡입니다만, 너무 길었네요. 더 깊이 보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곧 설립될 '중국팀장 클럽'에서 관련 토론을 이어가도록 하지요.

다음 칼럼에서는 부정부패 문제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디
Woody Han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는 '차이나 인사이트'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2회 중국 관련 다양한 뉴스와 이야기, 칼럼 등을 묶어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때 성함, 하시는 일,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보내주세요.
많은 분들이 '중국팀장 클럽'에 대해 관심을 표하고 계십니다. 오프라인 모임으로 꾸려질 이 모임은 '각 분야 중국관련 실무 담당자'로 구성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세미나, 제가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공부', 중국식으로는 '集體學習'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있으시거나,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jci@joongang.co.kr로 의견 보내주십시요. 곧 개봉합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08.07 00:00

[한우덕의 중국경제 콘서트](14) ‘당신은 혹 阿Q가 아닌가?’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8-05 오전 11:30:54

휴가철 잘 보내고 계신지요. 저야 지난 4월 휴가를 다 쓴 관계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휴가 보내시길 바랍니다. 가벼운 글 하나 올립니다. 옛날에 썼던 글을 다시 각색했습니다. 중국경제 콘서트는 장르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

1906년 청년 루쉰(魯迅)은 일본 센다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서양 의학을 배워 병자를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그 학교에서 중국인이라고는 루쉰 한 명뿐이었다.

어느 날 생물시간, 슬라이드 교육이 있었다. 여러 사진이 자막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슬라이드 상영이 끝나갈 무렵, 수업과는 관련 없는 사진이 한 장 떠올랐다. 처형 장면이었다. 한 군인이 장도를 높이 쳐들고 있었고, 그 칼 아래에는 무릎 꿇은 죄인이 목을 길게 뽑은 채 단두(断头)를 기다리고 있다.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죄수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생물 선생이 사진을 설명했다.

“일본군인이 스파이 혐의로 잡힌 중국인을 처형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주위에는 중국인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루쉰은 넌더리를 친다. 동포가 일본인에게 처형당하는 조국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정작 그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다른데 있었다. 루쉰은 동포가 이민족에게 죽어 가는 장면을 아무런 생각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진 속의 중국인에게서 충격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동포가 처형당하는 게 한 갓 심심풀이에 불과했던 거다. 지독한 노예근성이었다.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관객밖에 될 수 없다”.

루쉰은 메스를 던진다. 그리고는 붓을 잡았다. 수술용 칼로 환자 한 명을 구할지 몰라도 저들 마음 깊숙한 곳까지 퍼진 마음의 병은 고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그는 문학으로 중국인들의 병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그 것은 혁명의 길이었다. 루쉰의 붓은 날카로운 메스보다 더 깊고 예리하게 중국인들의 가슴을 파고들게 된다.

현대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 루쉰은 그렇게 탄생했다.

루쉰이 본 중국인의 첫 번째 병은 노예근성이었다. 동포의 죽음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바로 그 속성이다. 루쉰의 눈에 비친 중국인들은 거짓으로 속이고도 부끄러운 모른다. 서로를 도둑으로 의심하는 못된 습관에 젖어있다.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합리화 핑계대기 등을 좋아한다.

그 대표적인 노예가 바로 '아(阿)Q정전'의 주인공 阿Q다.

阿Q는 미장(未庄)이라는 마을에 사는 날품팔이 일꾼이다. 집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남들이 불러주면 아무 일이고 마구 해댄다. 일이 없으면 빈둥빈둥 할 일없이 마을을 어슬렁대며 남 일에 참견하기를 즐긴다. 남의 괄시를 받고 있는 그는 언제나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우리 조상은 말이야…'라며 으스대곤 했다.

阿Q는 동네 사람들에게 자주 얻어맞는다. 그래도 그는 승리한다. 그에게는 독특한 정신치료법이 있었다.

/건달패들은 阿Q의 누런 변발을 잡아채서 담벼락에 너 댓 번 쿵쿵 박아주고는 가버렸다. 阿Q는 한참동안이나 서서 생각했다.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거나 다름없어. 이 놈의 세상은 정말이지 돼먹지 않았거든.”
그리고 阿Q는 승리를 얻은 양 득의만만해서 가버렸다./

노예는 언제나 주인에게 비굴하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오면 주인을 공격한다. 阿Q가 바로 그런 노예였다. 그런데 阿Q에게 기회가 온다. 혁명(신해혁명)이 일어난 거다. 그에게 혁명은 오직 복수와 출세를 위한 기회일 뿐이다.

/阿Q는 신이 났다. "혁명이라는 것도 괜찮은데" "개 같은 이 놈의 세상, 뒤집어엎어라! 빌어먹을, 나도 혁명당이 돼야지".

미장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걸 보자 그는 오뉴월에 빙수나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더욱 신이 나서 걸어가며 외쳐댔다."좋았어!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다. 얼씨구 절씨구!

미장 놈들이 무릎을 꿇고 애걸하겠지. 누가 들어주기나 한다지? 첫 번째로 요절을 낼 놈은 조영감, 또 있지, 수재 가짜양놈, 왕 털보는 살려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쓸데없어. 물건은? 곧장 쳐들어가서 궤짝을 열어야지…/

이는 阿Q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중국인 대부분 신해혁명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가짜 혁명에 휩쓸린 거다. 루쉰은 阿Q를 통해 이를 고발했을 뿐이다.

阿Q의 공상은 금방 깨지고 만다. 그는 혁명당에 가입하지 못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혁명당이 돼 阿Q를 구박했다. 한 발 늦었던 거다. 阿Q는 혁명당에 가입하려고 기회를 엿봤으나 혁명당은 그를 외면했다.

/阿Q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막다니, 네 놈만 혁명하냐?/

阿Q는 조영감 약탈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게 된다. 혁명당 우두머리는 자신이 혁명을 했는데도 약탈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을 엄중히 다루겠다고 한다. 그 일벌백계(一罚百戒)본보기로 阿Q가 선정됐다. 아무 죄가 없었던 阿Q는 결국 형장을 끌려가게 된다.

/달구지는 곧 움직였다. 앞에는 총을 멘 병정과 지위대원이 있었고 양옆에는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阿Q는 문득 깨달았다. '이거 목이 잘리러 가는 것이 아닌가?' 그는 급해졌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어떤 때에는 초연해지기도 했다. 그의 생각에는 살다 보면 목이 잘리는 것을 면할 수는 없을 것도 같았다/

阿Q는 총살당하게 된다. 그 주위에는 여전히 구경꾼들이 모여있었다. 청년 루쉰이 의학도 시절 슬라이드에서 보고 환멸을 느꼈던 그 구경꾼들이 阿Q의 죽음에 등장하는 거다.

/모두들 阿Q가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 총살당한 게 그 증거라는 것이다.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을 당하겠는가? 그들 대부분은 불만이었다.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헛걸음만 쳤다고 생각했다/

阿Q정전은 이렇게 끝을 맺다. 루쉰은 阿Q라는 인물을 통해 중국인들의 노예근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신해혁명의 속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총살당했기 때문에 나쁜 놈'이라는 말로 권력에 아부하는 신(新)노예의 속성을 까발리게 되는 거다.

阿Q정전이 중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阿Q가 아직도 곁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핑계대기 좋아하고, 자기반성보다는 합리화에 더 밝고, 그릇된 공권력에도 아부하는 속성이 아직도 중국인들에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살고 계신 독자라면 이 말에 쉽게 동감할 수 있을 거다.

어찌 중국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사회에도 阿Q는 존재한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꼼짝못하는, 그런 阿Q가 우리 옆에 있을지 모른다.

주위를 돌아보자.
혹 내 곁에 阿Q가 있는지,
나는 阿Q와 닮은 사람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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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