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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중국2011.01.04 17:28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39) “굴삭기, 지진 현장으로 집합 ! ”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12-24 오전 10:04:59

중국 내수시장 공략의 핵심은 유통망입니다. 당연하지요. 아무리 좋은 제품도 유통망이 부실하다면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내 제품 유통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기는 것과 같습니다. 중국 진출 기업 중 실패한 회사를 분석해보면 상당수 업체들이 중국 파트너에게 유통을 맡겼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한국 투자사는 생산을 담당하고, 유통은 중국 파트너가 맡는 식의 합작사업은 대부분 깨집니다. 어렵더라도 '내 제품은 내 손으로 소비자에게 전해준다'라는 생각이 절대 필요합니다.

10년을 내다본 유통망 수립 전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 사례를 보지요.

2008년 5월 쓰촨(四川)대지진 때 일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지진 피해 복구에 참여했습니다. 고마쓰 캐터필러 등 다른 나라 굴삭기 기업들은 '30대를 보내기로 했다', '50대를 지원한다'는 등의 보도자료를 경쟁적으로 내놨습니다. 굴삭기 한 대에 보통 1억 원. 30~50억 원을 지원한다는 얘깁니다.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이 '자선'에 나설 때는 이유가 있는 법, 이들은 중국정부에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만큼 중국 사회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라는 것을 선전하려고 한 것이지요.

두산인프라코어옌타이(延台)법인도 무엇인가 해야 했습니다.
한 100대를 지원할까? 그러면 저들이 '악~'소리 나겠지?

아닙니다. 10년 이상 중국사업을 해온 이 회사 영업 베테랑들은 다른 전략을 쓰기로 합니다. 복구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굴삭기 지진 현장으로 집합!'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굴삭기 주인은 그것으로 사업을 합니다. 제3자에게 임대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공사장에서 운전하며 돈을 벌지요. 두산인프라코어는 쓰촨지역에 있는 굴삭기 주인들에게 긴급 통보를 합니다.

"지금 당장 굴삭기를 지진 현장으로 투입하라. 그리고 복구에 참여해라. 그 비용은 모두 두산이 지원하겠다."

이 통보를 받은 굴삭기 주인들이 지진현장으로 모입니다. 200여 대에 이르렀습니다. '복구 현장에 두산굴삭기 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두산의 중국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김동철 부사장은 "굴삭기를 한 대도 공짜로 주지 않았으면서도 중국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남들은 50억 원을 써도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두산은 5000만 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생색을 낸 겁니다.

그것도 아주 '뽄때나게'말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했던 게 바로 유통망입니다. '거미줄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본사의 정책이 저 멀리 쓰촨 시골마을에 있는 굴삭기에까지 미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회사의 유통네트워크는 공장(본사)-지사(6개)-대리상(38개)-영업점(360개)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중 지사까지만 한국인이 맡고 그 이하는 모두 중국인들이 담당하지요. 대리상은 핵심 조직. 중국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동철 부사장(아래 사진)은 "각 대리상들은 지난 10년 이상 두산과 한 솥밥을 먹은 사이어어 끈끈한 연대의식이 형성되어 있다"며 "이들은 운영하고 있는 360개 영업점은 중국 건설시장에 퍼져있는 실핏줄과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본사의 판매정책은 지사-대리상-영업점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겁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중국에 공장을 세운 게 1996년이었습니다. 그 시장에는 이미 고마쓰 캐터필라 등 외국 업체들이 진출해 있었지요. 어떻게 이 시장을 빼앗을 수 있을까.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24시간 AS시스템입니다.

굴삭기는 흙을 파고, 흙을 트럭에 실는, 흙에서 일하는 장비입니다. 당연히 고장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고장이 났을 때 얼마나 빨리 복구를 해주느냐가 핵심입니다. 고장나도 걱정하지 않고, 빨리 고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굴삭기입니다.

두산은 수리주문을 받으면 기술자를 24시간 내 파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경쟁업체로서는 엄두도 못낼 속도입니다. 그만큼 시장 파고드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이 회사는 한 해 2만3000대의 굴삭기를 중국에서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시장점유율 15%. 고마쓰와 1,2위를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내 손 유통망'입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제품을 당신의 손으로 소비자에게 전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말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10년을 내다본 유통망 깔기에 나서라"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12.17 08:05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37) ‘할아버지 용돈 40위안의 힘’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12-16 오전 11:34:41

흔히 중국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게 '꽌시(關係)'라고 합니다. '퍼스널 네트워크'지요. 많은 기업이 중국 인사들과의 관씨를 트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중국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이제 꽌시의 범위를 개인이 아닌 '사회'로 확대해야 합니다. '퍼스널 네트워크'를 '소셜 네트워크'로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번 '한중 기업경영 대상' 수상업체들은 모두 '소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사회와 '상생(相生)의 틀'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지요.

텐진(天津)근교에 반피산춘(半壁山村)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행정구역 상 텐진시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시골 농촌입니다. 이 마을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삼성전기텐진(天津)법인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삼성전기 텐진법인은 반피산춘 마을을 대상으로 '일심일촌(一心一村)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매결연을 맺고 지원하고 있는 것이지요. 민경영 법인장(아래)는 "지난 2006년부터 130여명이 주거하는 이 마을에 마을회관을 지어주고, 도로포장·영농교육·자녀 취업 알선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며 "마을이 확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답니다.







마음이 가면 돈도 따라온다던가요?

이 사례가 현지 언론을 통해 퍼지면서 삼성전기는 중국 사회와 조화·화해하려고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갈 수 있었습니다. 중국 사회와 상생을 위해 노력한다는 이미지이지요. 이같은 현지 사회와의 꽌시가 삼성의 중국사업을 더욱 탄탄하게 하고 있습니다.

소박한 사례도 있습니다. 포스코가 장쑤(江蘇)성 쿤산(昆山)에 설립한 포스코자동차부품(CSPC)업체를 방문했습니다. 넓직한 공장부지, 그리고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잔디밭에서 노인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온경용 총경리(아래)는 '잡초 뽑기'라고 답합니다. 아무리 봐도 잡초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인들에게 잡초 뽑기 일을 시킨 겁니다. 주변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차원이었습니다. 한나절 일한 할머니에게는 30위안, 할아버지에게는 40위안 정도를 준다고 하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돈을 손자에게 용돈으로 주겠지요.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럴 겁니다. '포스코에서 일해 돈을 벌었다'고 말이지요.

그게 바로 포스코자동차부품 업체가 만들고 있는 '사회와의 꽌시'입니다.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돌아보면 주변 사회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대기업은 대기업 규모에 맞는 꽌시를 만들어 가면 되고, 중소기업은 그에 걸맞는 '소셜 네트워크'를 깔면 됩니다. 그렇게 주변 사회와의 꽌시를 만들어가면, 그게 바로 중국비즈니스의 힘이 될 겁니다.

한우덕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11.26 00:29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최고의 중국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라!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11-25 오전 11:13:46



최고의 중국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라!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에 본격 진출한 지 이제 20여 년.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갔고, 상당수가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대륙 시장 진출 행렬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앞으로, 앞으로...

비즈니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 시장에 뿌리를 내렸고, 그간 뿌렸던 고통의 씨앗에서 열매를 따내기 시작했습니다. 애니콜, 굴삭기, 초코파이, EXR 등 여러 브랜드가 만리장성을 넘어 대륙시장을 파고들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중국 주요 도시 도로를 다리고 있고, 대형 HDTV는 중국 고급 가정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이 거친 중국 대륙에서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요?

지식경제부와 저희 중앙일보가 '한-중 기업경영 대상'을 제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중국 비즈니스의 성공 모델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중국 비즈니스이 성공 모델을 추출해 전 기업이 공유하자는 취지지요.

12월 7일 '제1회 한-중 기업경영 대상' 수상 기업이 공개됩니다. 아울러 이들 기업의 성공 요인에 대한 사례발표가 있습니다. 간단한 시상식이 열린 후 중국 비즈니스의 성공 모델이 제시됩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메가트랜드 차이나'의 저자 존 나이스비츠가 참석, 약 1시간에 걸쳐 강연(40분강연+20분 토론)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번 강연을 통해 '21세기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얘기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한국은 중국과 어떻게 상생구조를 짜 낼지를 제시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기다리겠습니다(무료).

주 최 : 지식경제부, 중앙일보, 한국무역협회
일 시 : 12월 7일(화) 오후 13:30~
장 소 : JW메리어트호텔(서울 강남 반포)
참가신청 : 사이트(www.intercom.co.kr/kcc2010/registration_form.doc)에서 양식을 만들어 12월 3일까지 kcc@intercorm.co.kr 또는 팩스 02-6254-8049로 보내시면 됩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11.08 20:34

[한우덕의 13억 경제학]중국경제 콘서트(32) `100년 동안 경제만 생각하라!`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11-08 오후 3:50:38

중국의 정치 경제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쁜 비즈니스 맨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이후의 중국 정치 경제 흐름은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큰 그림을 머리속에 그려놓는다면 현재 벌어지는 작은 움직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흐름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조그마한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게 되는 겁니다.
중국경제 흐름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지난 60여년 동안 중국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 까요?
우선 마오쩌둥시기를 보지요. 제1세대 정치 리더십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국을 추월하고 미국을 따라잡아라!'
이 시기 경제정책의 특징은 '영국을 추월하고 미국을 따라잡는다(超英간美)'는 말로 요약됩니다. 대약진 운동이 한창이던 1957년에 제기된 이 슬로건입니다. '15년만에 영국을 추월하고, 다시 2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구체적인 시간표도 정했지요. 당시 체제경쟁을 벌이던 옛 소련의 후루시초프가 '15년 만에 미국을 추월하겠다'고 나선 데 자극받아 제기됐습니다.
급진적 성장노선입니다. 이 정책에 따라 중국 곳곳에는 소규모 철강공장이 건설됐고, 중화학 공업이 집중 육성됐습니다. 농민들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희생해야 했습니다. 대약진 운동이 그래서 일어났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마오는 최고의 자리에서 한 발 내려와야 했고, 그가 권력을 되찾는 과정에서 광풍의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던 겁니다.






다음은 덩샤오핑 시대입니다. 제2세대 정치 리더십입니다.
덩은 "나라가 부강해지면 좋은 것이다!"라고 외칩니다.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덩샤오핑 시기의 경제정책은 '3개유리(三個有利)'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남부도시 순방 연설)에 나왔지요. 이 말은 '생산력·종합 국력·인민의 생활수준 등 3개 요소에 이롭다면 결국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장우선주의지요. 덩샤오핑은 특히 '먼저 부자가 되어도 좋다(先富起來)!'라고 선언해 불균형 성장을 용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을 보고 달려라(向前看)라는 말은 돈을 보고 달려라(向錢看)이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인들의 눈에 '돈독'이 올랐습니다. 모두 돈을 향해 움직였지요. 경기는 지나치게 과열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오의 강권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도 높았지요. 그래서 발생한 게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입니다.
장쩌민 시대입니다. 제3세대 정치 리더십이지요.
그는 "자본가도 이제 우리 편이다!"고 말하지요.
천안문사태 직후 권력에 오른 장쩌민 시기의 노선은 '3개대표(三個代表)'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 등을 대표한다'라는 뜻입니다.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마지막 항목이 중요합니다. 공산당 보호해야 할 계급이 기존 농민·노동자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확대된 겁니다. 당헌에 '사유재산 보장'조항이 삽입됐고, 많은 사영기업주가 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덩샤오핑 시기보다 자유주의 사조가 더 짙어진 것이다.
특징적인 사건이 바로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가입이었지요. 이로써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나라 중국은 서방세계가 구축해 놓은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편입하게 됩니다. 엄청난 양의 상품이 중국에서 세계 편의점으로 뿌려집니다. 중국을 '세계공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이때 쯤입니다.






후진타오 시기가 왔습니다. 제4세대 권력이지요.
그는 "성장도 이제 과학적으로 보라!"고 일갈합니다.
후진타오 시기는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으로 특징지워집니다. 성장을 이루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자는 게 핵심입니다. 덩샤오핑 시기와 장쩌민 시기를 지나오면서 추진된 성장 우선주의 정책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지역간 불균형·빈부격차·환경훼손 등이 대표적이었지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장을 이루자는 게 과학발전관의 골자입니다. 그러나 이 정책에도 불구하고 후 주석 시기 빈부격차는 더 넓어지고, 부패는 근절되지 않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고, 주식시장에는 거품이 더럭더럭 끼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벌어진 대표적인 사건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입니다.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은 크게 바뀝니다. '대국굴기', '부흥의 길' 등 중국인들의 자신감이 표출됩니다. 그간 이룬 경제 발전이 자연스럽게 대외정책에서의 힘의 외교로 표출되기 시작하지요. 특히 2007년 가을에 발생했던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쳐오면서 중국은 런민삐 국제화를 추진하는 등 국제 정치경제 무대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G2라는 말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진핑 시대가 시작됩니다. 제5세대 권력이지요.
시진핑은 2012년 가을 당총서기에 오르게 됩니다.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지요. 그 이듬해 5월 국가주석에 오르게 되지요. 행정권력을 쥐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2~3년 후 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르게 되면 권력이양 작업이 모두 끝나게 됩니다.
시진핑 체제는 후진타오 주석 체제에서 해결하지 못한 불균형·부패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산업 체질을 고도화할 수 있는 지도노선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17기5중전회에서 제기됐던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라는 정책을 집권 초기에 실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후진타오의 것이지 시진핑의 것이 아닙니다. 시진핑 역시 자기만의 정치경제적 슬로건을 내걸 것입니다. 그 시기는 중공중앙회 18기 3중전회가 열릴 2014년 가을이 유력해 보입니다.
제5세대 정치권력에 이르기까지 각 권력집단의 노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현실인식이 조금씩 달랐던 게지요. 그러나 이들에게 공통되는 '철학'이 하나 있습니다.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이라는 것이지요. 덩샤오핑의 유훈입니다. 이 것을 알아야 현재 중국의 갈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덩샤오핑의 현실인식은 명확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단계에서 내부 모순에 따라 계급투쟁이 발생하여 자본가 계급이 타도됨으로써 성립한다. 그런데 중국은 자본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사회주의로 진입했다. 자본주의라는 게 무엇인가. 바로 생산력 발전과 상품경제의 성숙 단계다. 중국이 자본주의를 뛰어넘었다고 해서 그 단계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최소한 100년 동안 그 단계를 경험해야 한다. 그 게 바로 사회주의 초급단계이다. 향후 100년 동안 중국은 생산력 발전과 성숙, 상품유통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역사발전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단계, 즉 자본의 고도화 단계를 이루자./
한마디로 말하자면 앞으로 100년 동안 경제만 생각하라는 외침입니다. 경제를 살리는데 자본주의면 어떻고 공산주의면 어떻습니까. 흰고양이던 검은고양이던 쥐만 잘 잡으면 최고 고양이라는 얘깁니다(不理是黑猫或是白猫,捉到老鼠的就是好猫). 이런 철학이 있었기에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전대미문의 체제를 실험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의 지금도 덩샤오핑이 깔아놓은 발전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 30년을 원고지 몇 장으로 정리한다는 게 어불성설입니다. 더 많이 공부하세요. 중국경제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이 있습니다. 솔즈베리가 쓴 '새로운 황제들'는 재미있어 좋고, 서강대 전성흥 교수 등이 엮은 '중국모델론'은 딱딱하지만 깊이가 있어 추천할 만 합니다. 저의 졸작 '중국의 13억 경제학(한경BP출판)'은 중국경제의 장점과 단점을 풍성한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내 읽기가 편합니다.
최소한 공산당 치하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쯤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랑스런 중국비즈니스맨이니까요.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10.25 20:26

[한우덕의 13억 경제학]중국경제 콘서트(31) ‘골 넣을 줄 아는 정치인’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10-25 오전 9:46:42

일반적으로 국가가 있고 그 다음에 당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민국이 있고, 그 다음에 한나라당이 생겼듯 말입니다. 국가 안에 당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국은 반댑니다. 당이 먼저 생기고 국가가 생겼습니다. 공산당이 생긴게 1921년 이었고, 그 공산당이 혁명을 통해 1949년 세운 나라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공산당이 낳은 자식이 바로 현대 중국이라는 얘깁니다. 당 안에 국가가 있는 것이지요. 그 게 바로 중국 이해의 첫 걸음입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중국 경제발전은 국가가 주도합니다. 그 국가를 움직이는 게 '파워 하우스' 공산당이지요. 그러기에 그 공산당을 누가 이끌어가고, 또 리더들의 성향이 어떤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 공산당 리더십의 성향은 이제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에서도 핵심적인 사안이 됐습니다. G2의 나라이니까요.

크게 볼 필요도 없습니다. 중국 비즈니스에서 '정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중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그 큰 물결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중국에서 주재하고 계신분들은 이 점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리더십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지난 5일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중국 리더십 분야 권위자인 리청(李成.Cheng, Lee)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썬톤차이나센터 연구주임을 초청해 강연을 들었습니다. 300여 명이 참석해 강연을 들었는데요, 아주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중국 리더십 분야 까막눈이었던 저가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리청은 2012년 등장할 제5세대 리더십 구성을 크게 2부류로 나눕니다. '대중(Populist)그룹'과 '엘리트(Elite)그룹'이 그것입니다.

리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두 그룹은 경제를 보는 관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엘리트 그룹은 주로 동부연안 경제개발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둔 정치인이 많다. 시진핑(習近平)등 태자당 출신이 핵심 구성원이다. 그들은 경제발전을 경험했기에 분배보다는 성장에 관심이 많다.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자유주의적 성향의 경제정책을 선호한다.
반면 대중그룹은 내륙에서 성장했거나, 중앙권력 주변에서 맴돈 정치인이 많다. 리커창(李克强)부총리 등 공청단 출신의 '퇀파이(團派)'인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성장일변도 정책 보다는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방점을 둔다. 후진타오 주석이 그렇듯 이들은 성장을 중시하면서도 조화를 강조하고, 노동자의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중국의 정치구조는 집단지도체제입니다. 9명의 정치국 상임위원들이 나라를 관리하는 구조이지요. 그들은 서로 견재하고, 협조하면서 나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위 리더들의 성향 분석이 중요하고, 리청 박사의 '대중그룹 vs.엘리트그룹' 주장은 효용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그룹을 리더는 누굴까요. 지금 대중그룹의 리더는 후진타오입니다. 후 주석은 권력을 '정치적 수제자'인 리커창 부총리에게 주고싶어 했지요. 엘리트 그룹의 리더는 시진핑 부주석입니다. 리청 박사는 둘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진핑은 군부와의 연계가 강하고, 정치 캠페인에도 유능하다. 그러나 태자당 출신으로 강력한 추종자가 없다는 게 약점이다. 리커창은 겸손하고 오랫동안 지방(허난성·랴오닝성)에서 근무해 민간의 인기가 높다. 그러나 큰 문제를 해결한 업적이 없고, 외교적 경력이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둘은 그동안 권력을 향한 치열한 레이스를 펼쳐왔습니다. 리커창은 후진타오 주석의 후광을 업고 달려왔지요. 공청단 계파의 제5세대 대표 주자입니다. 시진핑은 태자당이자 상하이방의 핵심 인사였던 쩡칭홍(曾慶紅)전 부주석이 적극 밀었습니다. 그 덕택에 9명의 리더그룹인 정치국 상임위원회에 들어올 수 있었지요.

여기에서 재미있는 얘기 한 토막. 시진핑과 리커창이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에 잡혀 먹힐 위험한 상황. 그 와중에서 시진핑이 신발끈을 고쳐 맵니다. 이를 보고 리커창이 웃었습니다. '야, 니가 신발끈 조인다고 호랑이보다 빨리 달리 수 있게냐?' 이 말을 들은 시진핑이 한 마디 합니다. '그래도 너보다는 빠를 수 있잖아'

둘의 경쟁관계를 풍자한 말입니다.

그 게임은 이제 끝났습니다. 지난 18일 끝난 17기5중전회에서 시진핑이 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승진했기 때문입니다. 군사위원회 부주석 자리는 당 총서기-국가 주석으로 가는 길입니다. 시진핑이 이제 그 길을 걷게 된 겁니다. 별일이 없는 한 시진핑은 2012년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제5세대 최고지도자로 등장할 겁니다.

리커창 현 부총리는 총리로의 승진이 유력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 체제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엘리트그룹과 대중그룹의 권력 분점입니다. 다만 변수가 없지 않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리커창 대신 왕치산(王岐山)부총리의 총리 승진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어떤 인물일까요? 이미 그의 정치적 배경과 이력, 성향 등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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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당당하되 자만에 빠지지 않고(自豪不自滿)
드높게 일을 추진하되 떠벌리지 않고(昻揚不張昻)
실질에 힘쓰되 조급해하지 않는다(務實不浮躁)

중국의 차세대 리더 시진핑(習近平·57)부주석의 좌우명이다. '겸손한 태자당(太子黨·고위 관리의 자제)'이라는 별명에 어울린다. 그는 다른 태자당이 권력의 중심을 고집할 때 지방으로 내려갔고, 다른 고위 간부 자제들이 허세를 부릴때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표현도 나온다. G2 중국의 후계자(接班人)시진핑, 그가 펼쳐갈 정책에 세계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골 넣는 정치인'

2006년 9월 19일. 쩌장(浙江)성 당서기 시진핑은 특별 손님을 맞는다. 헨리 폴슨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다. 그 해 골드만 삭스에서 자리를 옮긴 그는 중국을 70여 차례나 드나든 '중국 통'. 장관 취임 후 첫 중국 방문 도시로 베이징이 아닌 항저우를 선택했다. 그들은 항저우의 아름다운 호수 시후(西湖)주변을 거닐며 한담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박장대소를 하는 사진이 미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덕택에 여럿 제5세대 지도자 후보에 불과했던 시진핑은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도대체 무슨 사이이기에….' 시진핑과 폴슨은 5년 여 전 투자 문제로 만나 관계를 유지해 온 라오펑요(老朋友)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폴슨이 미국 재무부 관리들에게 차세대 지도자 시진핑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항저우로 달렸다"고 설명했다. 시진핑이 세계 각지에 구축하고 있는 '인맥 쌓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해외에 폭넓게 구축된 인맥은 G2시대 그의 정치적 자산이다.

헨리 폴슨 장관은 시진핑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 질문에 당시 이렇게 답했다.

'골 넣은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The kind of guy who knows how to get things over the goalline)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일을 적절히 저리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시진핑은 지난 18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17기 5중전회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승진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는 선수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다. 그는 별 이변이 없는한 2012~2022년 동안 중국을 이끌게 된다. 골드만 삭스가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 바로 그 시기다.

◆'두 마리 새를 키워라'

시진핑 부주석의 경제정책 성향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그의 주 정치무대였던 푸젠과 쩌장성에서의 활동에서 가늠할 수 있다. 그 중 '양조론(兩鳥論·두 마리 새 이론)이라는 게 있다.

"전설상의 불사조(봉황)가 불에 뛰어들어 더 화려하게 재생하듯(鳳凰涅槃 欲火重生), 산업체질을 환골탈태해야 한다. 새 장을 들어 참새를 바꾸듯(騰籠換鳥),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이뤄내야 한다. 장수가 독사에 물린 팔뚝을 잘라내듯 과단성있게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가 상하이 당서기로 자리를 옮기기 1년 전인 2006년 3월 중국관영 CCTV의 '중국경제 대강단'프로그램에 나와 한 말이다. 산업 체질 강화와 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새를 키우라는 얘기였다. 중국 언론은 "시 부주석이 겉으로는 온화하고, 신중한 모습이지만 특정 사안과 부딪치면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특히 경제 개혁에 대해서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시 부주석이 후 주석의 중앙권력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앙 정책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추진한 지방 관리로 평가받고 있다. "당의 통치를 유지하고, 당의 단결을 보호하는 것이 내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정치관이다. 그는 2004년 후 주석이 균형성장·빈부격차 축소 등을 핵심으로 한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화해사회(和諧社會)를 주창하자 '절강화해(浙江和諧)'구호로 화답했다. 중앙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선언이다. 후 주석이 시진핑을 상하이 당서기로 끌어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의 정치분석가 우밍은 "후 주석이 장쩌민의 지도노선을 충실히 따르며 때를 기다렸듯, 시진핑 역시 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이라며 "남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시 부주석의 생리에 맞지도 않다"고 분석했다.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

17기 5중전회에서는 12차 5개년 계획(2011~2016년)의 밑그림도 제시했다. 시진핑 시대의 경제정책 청사진이다.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가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중국은 지난 30여년 동안 '부강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성장에 촛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국가(정부)-국유기업-국유은행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삼각편대'가 형성됐다. 특히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진민퇴(國進民退·국가의 역할 증대와 민간의 퇴출)현상이 심화됐다. 국가가 자원을 장악하는 구조에서 국유기업은 더욱더 강해졌고, 고용의 70%를 담당하는 민영기업은 상대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배부르고 국민은 헐벗은 꼴이다.

그러나 이같은 국가 주도 성장 시스템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당 지도부의 생각이다. '민부(民富)'가 나온 배경이다. 자유주의 성향의 천즈우(陳志武)교수는 "국유체제가 전체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고, 재부의 4분의3을 국가가 관리하는 이 상황은 시장경제에 근본적인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부(富)의 독점은 부패를 낳고, 국가-국유기업-국유은행은 '부패의 트라이앵글'로 변했다.

이제부터는 성장의 혜택을 민간이 누릴 수 있도록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게 민부(民富)의 핵심이다. 성장 동력을 기존의 투자·수출 위주에서 내수시장 중심으로 바꾸고, 친환경·고기술 분야 등의 개발을 통해 지속발전 가능한 체제를 갖추자는 취지다. 노동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저 임금도 크게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후 주석의 정치·경제 지도노선인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을 구체화했다.

시진핑 부주석은 '민부'에 대해 이견이 없다. 다만 추진 방법에 미묘한 차이가 발견된다. 그가 주장하는 '민부'는 복지확충이라기 보다는 민간의 자율성 확대를 뜻한다. 민간기업과 민간자본에 대한 규제를 풀어 부의 균형추를 민간 쪽으로 돌리자는 차원이다. 차기 체제로 유력시되면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이 문제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중국 리더십 전문가들은 그러나 "시진핑 부주석은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완전히 물려받기 전까지 자신의 색깔을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후 주석이 자신의 지도노선인 과학발전관을 집권 2년이 지나서야 제시했듯 말이다.

후 주석이나 시 부주석 모두 '나무가 수풀보다 빼어나면 반드시 바람에 꺾인다(木秀於林,風必최之)'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고 있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10.01 07:07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28)‘중국,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9-30 오후 3:32:15

천안함 사건, 댜오위다오 사건, 그리고 북한의 3대세습...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중국이 있습니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으로의 권력이양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리더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21세기 중국 리더십의 향방'을 주제로 포럼을 여는 이유입니다. 중국 리더십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썬톤차이나센터의 연구주임 리청(李成)박사가 강연하게 됩니다. 몇 자리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신청하십시요.
-주제: 21세기 중국의 리더십을 묻는다(한영 동시통역)
-일시: 2010년 10월 5일 오후 2~5시(오후1시30분 등록), 장소: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주최: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후원:㈜한국인삼공사, 동북아역사재단
-참가 신청: 성함( ), 희망 도서: 2010~2011 차이나 트렌드( ) or 공자는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 )
-신청 메일 주소: jci@joongang.co.kr (문의) (02)751-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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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칼럼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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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팡(東方)CJ라고 아시지요? 한국 CJ홈쇼핑이 상하이미디어그룹(SMG)과 설립한 홈쇼핑체널입니다.

최근 이 체널에서 자동차 BMW를 팔았습니다. 한 대 40만 위안(약 7000만 원)하는 고급 세단이었습니다. 잘 팔릴까? 모험이었습니다. 45분 방영을 했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61대를 계약했지요. 약 42억 원이 거래된 겁니다.

'어, 되네' 이번에는 더 큰 모험을 합니다. 상하이 외곽에 짓고 있는 타운하우스(고급 빌라)였지요. 300만 위안(약 5억2500만 원)에 달하는 타운하우스를 TV홈쇼핑으로 팔겠다고? 영업 담당 직원들조차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였지요. 밑져야 본전, 하기로 했습니다.

타운하우스의 구조, 건설 현장 등을 설명하는 프로가 30분간 이어졌습니다.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의 전화에 불이 난 겁니다. 48채의 주문이 접수됐고, 이 중 27채가 최종 계약됐습니다. 30분 홈쇼핑 방영으로 142억 원 정도가 거래된 셈입니다.

둥팡CJ의 설립에 참여했고, 지금도 CEO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흥수 대표입니다. 중국 홈쇼핑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지요. 그는 이같은 현상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상하이 구매력의 폭발이다. 그동안 축적됐던 부(富)가 최근 수년 사이 시장에서 분출하고 있다. 소비 욕구만 만족시킨다면 팔 물건은 얼마든지 있다."


다른 얘깁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취재길, 시내 IT 제품 전문매장인 로얏에 들렀습니다. 델(Dell) 노트북컴퓨터를 가슴에 안고 나오는 웡치우멍(28)에게 “어느 나라에서 만든 컴퓨터냐”고 물었지요. “당연히 말레이시아 페낭이지”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델 컴퓨터의 60% 이상이 페낭에서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랍니다. 컴퓨터 뒷면 라벨을 보자고 했지요. 그는 깜짝 놀랍니다. ‘Made in China’라는 원산지 표시를 발견한 것이지요. “페낭이 아니라고?” 실망감이 얼굴에 역력합니다.

페낭이 아니라면 어디란 말인가?

답은 상하이입니다. 시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쑹장(松江) 개발구. 이곳에 자리잡은 컴퓨터업체 광다(廣達)에 들어가니 하적장에 델 컴퓨터가 가득합니다. “오늘 오후 동남아로 갈 수출 물량입니다.” 배송 담당 리즈량(李志良)의 설명입니다. 그 중에 쿠알라룸푸르 로얏 매장으로 가는 컴퓨터도 있을 터, 웡치우멍이 샀던 컴퓨터는 바로 상하이에서 만들어졌던 겁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쿤산・쑤저우・항저우 일대에서 생산되는 컴퓨터는 전 세계 생산량의 80%에 달합니다. 전세계 노트북의 중 십중팔구는 'Made in Shanghai'인 셈이지요.




최고의 중국 투자기업을 찾습니다!
저희 중앙일보와 지식경제부가 공동으로 ‘한・중 기업경영 대상’을 제정합니다. 중국 투자사업의 바람직한 사업모델을 발굴, 성공 노하우를 공유하자는 차원입니다. 비즈니스모델의 창신성, 중국과의 상생정도, 재무 성장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선정된 업체에는 지식경제부장관상, 주한 중국대사상, 중앙일보 사장상 등이 주어집니다. 성공사례는 저희 중앙일보와 중국 경제일보 등에 소개됩니다. 언론에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관련 서류를 다운받아 작성해 보내시면 됩니다. 1시간이면 모두 작성할 수 있도록 가급적 서류를 간소화했습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많은 응모와 참여 기다립니다.
◆신청 자격 : 중국 진출 한국 기업(법인단위)
◆신청 마감 : 10월 7일 (시상식 12월 7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
◆접수 문의 : ‘한・중 기업경영 대상’사무국(www.kita.net, 02-6000-5394)참조
중앙일보 중국연구소(http://china.joins.com, 02-751-5242)

제가 오늘 두 얘기를 통해 뽑아낸 키워드는 '통합'입니다.우리는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목이 갈라지도록 얘기합니다.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닙니다. 제조업 환경 역시 새롭게 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일관 생산해서 중국 내수시장에 공급하는 체제가 형성되고 있는 겁니다.

현대자동차에서 답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이 회사가 중국에서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게 2003년 초였습니다. 당시 베이징 순이(順義)공장에서 생산되는 쏘나타 부품 중 중국 내 조달 비율은 40%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부품은 한국에서 가져와야 했지요. 지금은 거꾸롭니다. 전체 부품 중 91%를 중국에서 공급받고, 나머지 10%를 한국에서 들여옵니다.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중국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완제품을 중국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진정한 의미의 ‘현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통합(統合)'의 흐름을 탔기에 가능했던 얘기입니다. 변화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기존 중국 산업은 ‘분절(分節)’된 구조였습니다.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부품은 주로 일본・한국・대만 등에서 수입하고, 중국에서는 조립만 담당했지요.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임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산업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부품업체들이 서서히 기술력을 갖추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중국은 이제 ‘부품도 내 나라 안에서 만들어야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지요. 모든 생산공정을 자국 내에서 맡겠다는 ‘풀셋(Full-set・완비된)’ 공업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겁니다.

제조업내 통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까지 중국의 기업(외국투자기업 포함)은 생산제품을 주로 해외시장에 수출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수출비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의 내수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내수매출 비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중국 내수시장에 뿌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공장과 시장의 통합입니다.

현대자동차는 그 흐름의 물결을 탔습니다. 제조기반이 튼튼하니 시장 진출도 탄력을 받았습니다. 2003년 5만 대 판매에 그쳤던 중국 판매량은 2009년 57만 대에 달했습니다. 업계 4위자리. 지금은 국내 판매보다 중국 판매가 많은 실정입니다.

노재만 베이징현대법인 사장은 성공 요인을 묻는 질문에 ‘생산과 시장의 대통합이라는 중국 경제의 흐름에 한 발 앞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노트북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하이 쑹장의 노트북컴퓨터 업체는 주변에서 부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습니다. 노트북 클러스터지요. 노트북 업체라면 당연시 상하이로 가야하는 겁니다. 상하이에서 생산된 노트북은 수출도 해야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중국 내수시장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중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는 나라이니까요. 이미 삼성이 그렇게 하고 있고, 또 도시바가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츠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면 그 성장에 합류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한국 경제는 중국의 성장에 합류할 것이냐, 아니면 외톨이가 될 것이냐의 분기점에 와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사이에 FTA가 체결된다면 그 흐름은 더욱 빨라질 겁니다.

한우덕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woodyhan@joongang.co.kr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는 '차이나 인사이트'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2회 중국 관련 다양한 뉴스와 이야기, 칼럼 등을 묶어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때 성함, 하시는 일,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보내주세요.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09.16 19:40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24) “최고의 중국 투자기업을 찾습니다!”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9-16 오후 2:11:50

최고의 중국 투자기업을 찾습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 기업가 여러분. 여러분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이 땅의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여러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 한-중 경협이 있었습니다. 한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저희 중앙일보와 지식경제부가 공동으로 ‘한・중 기업경영 대상’을 제정합니다. 중국에 진출한 우수 투자기업을 발굴해 시상함으로써 한・중 경협의 바람직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비즈니스모델의 창신성, 중국과의 상생정도, 재무 성장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선정된 업체에는 지식경제부장관상, 주한 중국대사상, 중앙일보 사장상 등이 주어집니다. 아울러 12월 7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시상식 및 성공사례 발표 세미나가 열립니다. 시상식은 중국진출 기업의 축제가 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관련 서류를 다운받아 작성해 보내시면 됩니다. 1시간이면 모두 작성할 수 있도록 가급적 서류를 단순화했습니다.
중국 투자사업에 성공한 기업은 자신있게 응모해 주십시요. 주변 성공기업을 추천해 주십시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많은 응모와 참여 기다립니다.
◆신청 자격 : 중국 진출 한국 기업(법인단위)
◆신청 마감 : 10월 7일
◆접수 문의 : ‘한・중 기업경영 대상’사무국(www.kita.net, 02-6000-5394)참조
중앙일보 중국연구소(http://china.joins.com, 02-751-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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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을 시작합니다. 앞 칼럼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혹 읽지 않으신분들은 여기를 클릭하시거 꼭 읽고 오세요.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18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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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새벽 근무 출근길 노동자들은 피로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그 버스에 탄즈칭도 타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하루, 그러나 그의 인생을 건 하루가 시작된 겁니다.

07:50.

변속기 조립공장의 일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탄즈칭(譚志淸)역시 생산 라인에 섰습니다. 그가 첫번재 해야할 일은 작업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그러나 이날 그는 비상벨을 눌렀습니다. 싸이렌 소리가 났겠지요. 라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탄즈칭과 샤오샤오(小宵)가 외칩니다.

"급여가 너무 작다. 모두 일하지 말자."

그들이 외치자 변속기 조립공장의 직원 10여명이 호응했습니다. 모두 같은 후난(湖南)성 출신이었지요. 파업 시위대는 변속기 조립공장 직원 5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옆 압연라인으로 옮겨 파업 구호를 외쳤고, 시위대 규합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호응은 높지 않았습니다. '재들 왜저래?'라는 반응이었지요.

09:00

시위대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농구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였지요. 관리자들이 출근하다가 그 광경을 봅니다. 총경리는 작업에 복귀해 문제가 있으면 부서내에서 해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시위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2:00

100여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식당으로 몰려갔습니다. 회사에서는 '요구가 무엇인지를 적으라'며 화이트보드 6개를 준비했습니다. 시위대 중 일부가 그 곳에 요구사항을 썼습니다. 대략 700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조직력이 약했다는 얘기입니다.

15:00

회사 측의 공식 입장이 나왔습니다. 5월21일까지 만족할 만한 답을 줄 테니 시위대는 작업에 복귀하라는 요구였지요. 탄즈칭은 회사측이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 파업을 풀었습니다.

5월20일

노사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노측은 조립, 주조, 주물 등 5개 과에서 각각 2명씩 대표를 뽑았습니다. 사측은 총경리를 포함해 4명으로 구성했고, 공회측도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노동자 측 요구는 간명했습니다. '기본급 800위안 인상, 향후 매년 15% 인상'이었지요.

5월21일

사측이 임금인상안을 제시합니다. 모든 정식 직원에게 55위안 임금 인상.

이 협상안을 통보받은 노동자측은 분개하게 됩니다. 사측이 무성의한 협상 태도에 반발한 것입니다. 여기에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해야할 공회는 협상과정에서 아무런 입장을 발표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줄 알았던 공회에 실망한 겁니다. 다시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탄즈칭의 조직으로 30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5월22일

이날 12시 기름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회사측이 사내 방송을 통해 탄즈칭과 샤오샤오를 해고한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시위했다고 해고해? 더이상 못참겠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전 사원이 파업에 가담하게 됩니다.

회사측은 '작업에 복귀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사진촬영을 통한 시위대 가담자 채증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시위대들이 모자와 마스크를 쓴 게 바로 이 때입니다.

파업은 계속됐습니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2000여 명의 직원 중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실업계공등학교 실습생들을 따로 불러 회유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학교 교장이 학생들을 직접 만나 설득했지요. 그러나 실습생들의 불만은 더 높았습니다. 그들의 월급은 900위안에 불과했으니까요. 게다가 이들 대부분 90년대 이후 출생한 '소황제'였던 지라 당당하게 요구하고,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5월 26일

혼다자동차의 중국 내 생산라인이 대부분 멈추게 됩니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언론에 크게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식인들의 논평도 많이 나왔구요.

5월28일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와 평론이 사라졌습니다. 정부의 통제가 시작된 겁니다. 경찰은 공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봉쇄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매체가 등장합니다. 바로 핸드폰 문자였습니다. 노동자들은 파업, 시위 상황을 문자를 통해 시시각각 외부로 전하게 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자기들의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문화대혁명 때 대자보가 학생들의 뜻을 전하는 매체였다면, 지금 핸드폰 문자가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임금인상에서 시작됐던 파업은 이제 그 정점을 향해 치닫게 됩니다. 이를 촉발한 중요한 사건이 5월31일 벌어집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한우덕
Woody Han(無敵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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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09.13 22:38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23) “현미경으로 본 혼다 파업”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9-13 오전 9:23:52

중국 진출 업체에 노무관리 비상이 걸렸습니다. 파업을 걱정해야 하고, 임금 인상에 골치를 썪습니다. 그러나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하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현장에서 배워야 합니다. 분규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타산지석입니다.
저는 오늘 현미경을 가져옵니다. 현미경을 통해 '난하이(南海)혼다'의 파업을 보고자 합니다. 왜냐고요? 지난 5월 17일 터져 6월 4일 끝난 이 회사 노동자들의 파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노동파업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닙니까? 난하이혼다를 통해 내일 중국 투자사업의 노사관계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5월 광둥(廣東)성 노동계는 뒤숭숭했습니다. 올해들어 대만 계 전자부품 업체인 폭스콘에서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따랐던 때문입니다. 신문에 보도된 것 만 벌써 1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함께 근무했던 친구가 죽어나가고 있는데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삼삼오오 오오 모여앉아 수근거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은 공산당이 만든 나라입니다. 누가 그 당을 만들었지요? 노동자와 농민이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정책 최우선 순위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노동자와 농민에 둔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농민공(農民工・농촌출신 도시근로자)이 거대 산업군단으로 등장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노동자'개념이 모호해진 겁니다.
농민공들은 공장에서 일하니까 분명 노동자 계급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은 농촌 후코우(戶口・주민등록)를 가진 농민일뿐입니다. 도시 주민이 누리는 각종 혜택도 받지 받지 합니다.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민도 아닌 어정쩡한 계급이지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은 본인 스스로를 '농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벌면 농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돈을 벌면 모두 시골로 보냅니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부모가 맡아 키우고 있지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본인 스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억3000만 명의 농민공들이 '계급 실어증'에 빠졌던 겁니다.
그들은 굴종을 강요받았습니다. 노동조합이라는 공회도 그들을 대변하지 못했습니다. 성장을 외쳐대는 정부는 그들을 외면했고, 법은 멀리 있었습니다. 근무환경이 열악할 수밖에요. 저항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와 같은 대체 가능 노동력은 얼마든지 널려있으니까요. 이같은 무기력이 폭스콘 근로자 12명을 자살로 몰아넣은 원인입니다.
그러나 난하이혼다 근로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죽음보다는 저항을 선택했습니다. 파업을 벌였고, 시위를 했던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파업을 주동했던 한 청년을 주시하게 됩니다. 이름은 탄즈칭(譚志淸). 24세 후난(湖南)성 출신입니다.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중국언론은 그렇게 가명을 쓰고 있습니다.
탄즈칭이 난하이혼다에 근무한 것은 2년 4개월 쯤 됩니다. 대학교 시험에서 낙방한 뒤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이 가난했기에 달리 선택이 없었지요. 일자리를 찾아 광둥행 기차를 탔고, 난하이혼다로 오게 됐습니다.
2년 반동안 3차례 임금이 올랐답니다. 19위안, 29위안, 48위안. 그래서 그가 한 달 받는 급여는 1300위안이었습니다. 이 마져 세금을 제외하면 1100위안, 우리 돈 20만원 정도 합니다. 중국 농민공의 현실입니다.
죽어라 모았지요. 방값으로 200위안, 식비로 200위안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모두 고향 부모님에게 부쳤습니다. 돈을 쓴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 그는 중국신문주간이라는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혹 시내 번화가를 가게 되면 가급적 빨리 걸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보게 되면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 테니까요.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식청년'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그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에 대한 회의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후난성 출신인 마오쩌둥의 혁명 열기를 가졌던 것일까요? 그는 무엇인가를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탄즈칭은 지난 3월 '거사'계획을 같은 후난성 친구인 샤오샤오(小宵)에게 털어놓습니다.
"난 퇴직하기로 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동료의 복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샤오샤오가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미 지난 3월부터 이 회사의 파업은 준비되고 있었던 겁니다. 같은 지방 친구끼리 잘 뭉치는 성향이 있습니다. '동향출신의 직원들끼리 모아놓으면 꼭 일이 생긴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4월 29일. 탄즈칭은 사표를 냅니다. 그러나 금방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사표 제출일부터 한 달 후 사표가 수리된다는 회사 규정 때문입니다. 사표를 냈지만 회사는 출근하는 상황, 그 속에서 그는 '동료의 복지 향상을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5월 17일.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새벽 근무 출근길 노동자들은 피로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그 버스에 탄즈칭도 타고 있었습니가. 평범한 하루, 그러나 그의 인생을 건 하루가 시작된 겁니다.
그 날 난하이혼다 공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다음 칼럼으로 이어집니다.

한우덕
Woody Han(無敵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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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마켓 생태계/지식2010.08.02 16:56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13)‘스무살 청년과의 대화’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8-02 오전 9:19:49

앞의 두 콘서트에서 금융 발전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관점을 들여다 봤습니다. 무더위만큼이나 뜨겁게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좋습니다. 열기를 잠시 식혀보도록 하지요.

오늘은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보도록 하지요. 중국 자본시장을 얘기한 책입니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주제입니다만, 아주 쉽게 썼습니다. '소설보다 재미있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모든 글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글쓰기 원칙이라더군요.

자, 연주 시작합니다. 핸드폰 끄세요.

**************

2007년, 차이나펀드 열풍이 한국을 강타했습니다. 넣었다하면 돈이 됐지요. 상하이 주가가 무작 올랐으니까요. 그 해만 약 130%가 올랐습니다. 지수가 130%라는 얘기지, 개별종목으로 치면 서 너 배 오른 주식도 많았습니다. 중국의 주식투자 붐은 한국에 까지 지어져 '차이나펀드'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2008년 들면서 상하이 주가가 급락합니다. '악'소리가 나지요. 낙폭은 더 커졌습니다.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가 폭락하고 있는데 국내 증권사들은 '차이나 펀드 펌프질'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하락세 끝나면 또 오른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증권사의 유혹에 끌려 또 차이나펀드에 가입했습니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십니다. '쪽박이었지요. 대부분 반토막 났고요. 그 쪽박의 아픔은 지금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리가 중국증시 투자에서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증시 콘서트(한우덕 지음)'는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쓰여진 책입니다. 지난 4월 출판됐지요.



저자는 증시 구조에서 그 문제점을 찾습니다. 비(非)유통주였지요. 중국 증권당국이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인 비유통주 개혁에 나섰고, 그 여파로 주가가 급락했음을 밝혀 냅니다. 국내에서 비유통주 개혁을 전면적으로 분석한 첫 번째 책이었지요. 독자들은 개혁 과정을 통해 중국증시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2008년 비유통주 굴레에서 해제된 물량은 약 3조 위안(약 417조 원)이 넘는다. 이는 2007년 말 중국 A주 유통주 시가총액의 약 3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2009년에는 다시 7조 위안, 2010년에는 9조 위안의 주식이 유통주로 전환된다. 생각해 보자. 아무리 중국경제가 잘 나간다 하더라도 이 물량을 감당할 증시는 없다."

저자는 이 땅의 차이나펀드 운영자들에게 외칩니다.

"그래프를 버려라. 중국증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워게임, 더 나가 중국경제를 잃을 수 있는 혜안을 길러라."

비유통주 문제는 책의 일부일 뿐입니다. 중국증시의 설립 과정, 부정부패, 증권체제를 둘러싼 지식인들의 논쟁 등이 재미있게 펼쳐집니다. 그런가하면 투자자, 기업, 증권사, 감독기구 등 증시를 구성하는 플레이어들의 활동을 스케치하기도 합니다. 이제 설립 20년에 불과한 중국증시가 어떻게 세계 제2위 규모(시가총액 기준)로 성장했는 지를 설명하지요.

'스무살 청년과의 대화'라고나 할까요.

"1986년 11월 뉴욕증권거래소 펜란 회장이 베이징에서 덩샤오핑을 만난다. 펠란은 자리를 뜨기 전 작은 선물을 하나 내놓는다. 뉴욕증권거래소 입장 허용 명찰과 주식 샘플이었다. 덩도 선물이라며 주섬주섬 무엇을 하나 꺼낸다. 중국의 제1호 주식회사인 '상하이페이러(飛樂)음향'주식이었다.

'중국에도 주식이 있다고?' 펠란 회장은 놀랐다.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주식을 들고 당시 중국에서 유일하게 증권거래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공상은행신탁투자 상하이영업점을 찾았다. 사실이었다. 현장에서 바로 주식양도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펠란이 '상하이페이러(飛樂)음향'의 주주가 된 것이다.

덩샤오핑이 펠란에게 주었던 그 주식은 지금도 뉴욕증권거래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저자에게 주식시장은 중국경제를 이해하는 창구입니다. 증시라는 구멍을 통해 중국 거시경제/금융/부동산 등이 다각적으로 봅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을 놓고는 '봉이 김선달식 비즈니스'라고 했습니다. 베이징대학 린이푸 교수(세계은행 부총재)의 '활(活)-난(亂)'주기 이론을 들이대며 중국경제 사이클을 읽어 냈습니다. 핫머니가 중국증시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도 봤습니다.

저자는 중국주식 시장에 대해 기본적으로 낙관합니다. 왜냐고요?증시는 어쨌거나 경제상황을 반영하게 될 테니까요. 제조업 생산능력과 내수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과 내수가 통합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생산하고, 중국 소비자에게 팔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은 풀셋(Full-set)공업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자기 완결형 구조다. 그동안 주변국에 의존했던 부품을 이제 자국 내에서 생산한다. 중국에는 그럴 만한 기술이 없다고? 옛 말이다. 중국은 2000년들어 '자주창신(自主創新)'을 외쳐왔다. 교묘하게 외국 기술을 빼앗아가고 있고, 그래도 안 되는 기술은 기업을 통채로 사들인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중국에 진출해서 제품을 생산하는 시대는 갔다. 내수시장을 공략해야 할 때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이제 중국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 시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한다. 많은 국내 IB가 중국 IPO/M&A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기업을 국내 증권시장에 상장시키는 것도 주요 비즈니스다. 중국진출 기업도 이제 중국증시(홍콩포함)상장을 노려야 한다. 자본시장 교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 가공생산에서 시작한 한중 경협의 패러다임이 상품교류(내수시장 진출)단계를 넘어 자본시장 교류로 확대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흐름을 어떻게 이끌고, 동참하느냐는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습니다.

Woody Han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는 '차이나 인사이트'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2회 중국 관련 다양한 뉴스와 이야기, 칼럼 등을 묶어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때 성함, 하시는 일,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보내주세요.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마켓 생태계/지식2010.07.26 18:49

[한우덕의 13억 경제학]중국경제 콘서트(11) ‘지식전쟁의 최후 승자’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7-26 오전 11:01:16

언제부턴가 중국 책이 인기입니다. 중국의 철학이나 역사, 인문 분야라면 수긍이 가는 얘깁니다. 그러나 경제/경영 분야에서도 중국 번역서가 베스트셀러 상위 권에 오르고 있습니다. '화폐전쟁', '자본의 전략' 등이 대표적인 책입니다. 모두 20위 안에 들었더군요.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사회과학 분야 중국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중국 지성이 서방의 학문을 접한 게 이제 30년입니다. 대학교에서 '서방경제학'이 교과커리큘럼으로 들어온 게 20년 남짓입니다.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죠. 한국의 미국 배우기는 60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미국에서 경제학을 배웠고, 그들이 대학 강당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한국 독자들은 중국인들이 쓴 금융/화폐/자본시장 책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의 경제 석학이라는 분들은 접시물에 코박아야 할 일이다.'
'이 땅의 글쟁이들은 챙피한 줄 알아라. 특히 너, 한 기자.'

제가 답합니다.

'아마 서방을 보는 시각이 달랐을 것이다. 중국 저자들은 어떻게 하면 미국을 밟고 넘을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야. 반면에 우리나라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미국을 모방할 것인지를 궁리했겠지...그들의 탈(脫)서방 의지가 한국의 독자들을 자극한 게 아닐까?'

어쨌든, 책 읽기를 게을리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인이 쓴 책이건, 중국인이 쓴 책이건 가리지 않고 마구 읽어대는 우리나라 독자들의 학구열은 대단합니다.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책을 통해 미국을 이해하고, 중국의 속셈을 간파하고, 우리의 대응책을 고민한다면 우리는 이 '지식의 전쟁'에서 최고의 승자가 될 겁니다.

공부하는 사람 못당하는 법입니다.

저와 함께 최근 서점가를 달구고 있는 '화폐전쟁'과 '자본의 전략'을 읽어보시지요.

****************


화폐전쟁(송홍빙 지음)과 자본의 전략(천즈우 지음)은 서로 대치를 이루는 책입니다. 두 저자가 보는 시각이 극과 극을 이룹니다.

화폐전쟁은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했습니다. '서방 자본이 중국을 공격한다, 중국은 담을 높이 쌓아놓고 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음모'의 시각에서 관찰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테마입니다.

그가 예상한 서방의 공격은 이랬습니다. 국제 금융재벌이 중국에 진출해 신용을 창출하고, 공급합니다. 각종 금융 상품을 중국에서 파는 것이지요. 금융상품의 판매는 곧 유동성 증가로 이어집니다. 버블이 끼죠. 금융재버은 버블이 극에 달했다고 판단되면 일시에 자금을 빼 경제를 초토화시킵니다. 매물이 쏟아지고 자산가격이 폭락하면 돈 되는 것을 훑어 가는 겁니다.

송홍빙은 이를 '양털 깍기'라고 표현했습니다. 1997년에 발생했던 아시아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였지요. 그 위기의 당사자 중 하나가 한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화폐전쟁에 열광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 겁니다. 속 시원했거든요.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이 보기에 이번 위기야 말로 한국 경제의 빗장을 열어젖힐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구원을 청하는 옛 맹방인 한국을 과거보다 훨씬 더 가혹한 조건으로 대하라고 지시했다...미국의 금융재벌들은 한국 기업에 진작부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한국이 협의를 체결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물려들어 사냥감을 물어뜯을 판이었다."

송홍빙은 한국 독자를 배려합니다.

"그러나 국제 금융재벌들은 한국의 강한 민족정신을 너무 얕잡아봤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한국인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너도나도 금오으기 운동에 나서 정부를 도았다"

한국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흐믓합니다.

송홍빙은 서방 금융재벌의 음모를 설명하기 위해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시작되는 서방 금융 역사를 거꾸로 봅니다. 금융재벌이 어떻게 세계 정치/경제를 농단했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인데 좀더 자극적으로, 중국인의 시각을 곁들여 놓으니 드라마틱해졌습니다.

그는 화폐의 역사를 얘기하며 "달러 체계가 결국 붕괴로 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말합니다. 금(金)과의 태환고리가 끊어진, '채무화된 달러'가 더이상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지요. 미국의 국채 말입니다. 그는 "미국 정부는 끊임없이 신규채권을 발행해 기존 채권을 교체할 뿐"이라며 "미국인들은 늘어가는 채무에 의지해 영원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는 없다"고 일갈합니다. 여기에 복잡해진 금융 파생상품으로 인해 창조된 '천문학적 숫자의 유동성'이 경제를 어지럽힌다고 말하지요. 미국 경제가 완연한 망조에 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올 화폐전쟁의 패권국은 누구일까요. 송홍빙은 중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알고있지요.

그는 언젠가 서방 자본이 중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기축통화 얘기를 부각시킵니다. 중국은 이미 미국과 기축통화를 장악하기 위한 화폐전쟁에 들어갔다는 얘기지요. '금(金)'이 주요 해결책입니다. 금보유량을 높여 위안화의 금 태환 화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패권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작년 3월 저우샤오촨(周小川)중국인민은행장이 제기한 '기축통화 논쟁'과 맞물려 이 책이 크게 각광을 받게 됩니다.

"상상해보라. 달러가 세계화폐에서 물러난 후에도 F22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는 여전히 굳건하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송홍빙은 미국을 끌어내립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끝을 맺지요.

"황금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위안화는 과도한 채무의 욕심으로 무너진 국제 금융의 폐허를 딛고 우뚝 설 것이며 중화문명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구구절절 중국인들이 환호할 내용이지요. 중국 개혁개방 30년, 휘황찬란한 경제실적이 오늘 '화폐전쟁'을 낳은 겁니다. '오만'하다 느낄 정도입니다. 이 책에서 중화주의의 망령을 떠올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학계 한편에서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새로운 책이 나오지요.
무슨 책일까요?

목요일 이어집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글로컬 /중국2010.07.19 21:55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9) ‘중국에 호구잡힌 한국’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7-19 오전 9:17:27

여러분, 혹시 '호구잡혔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제가 어릴 적 시골(충북 청원)에서 흔히 썼던 말입니다. 사전에는 없으니 사투리겠지요. '남에게 약점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것', 그 게 바로 호구잡힌 겁니다. 팽팽하게 맞서던 두 사람이 결국 한 판 싸움을 벌입니다. 그 중 이긴 사람은 기세가 등등하고, 진 사람은 꼬리를 내리게 되지요. 진 사람이 바로 호구 잡힌 겁니다. 승자의 눈치를 봐야하고, 비실비실 피해다녀야 합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후 중국과 한국의 역학관계를 보면서 '호구잡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북한을 싸고도는 중국의 반발에 막혀 안보리는 어정쩡한 성명을 내야 했고, 중국은 이제 한미 연합훈련도 하지 마라고 위협합니다. 중국 언론은 '한국이 경제는 중국에, 군사력은 미국에 의존하는 전략분열증을 보이고 있다'며 분명한 노선을 선택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미국도 그들의 눈치를 봅니다. 참으로 역같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중국과 수교한 게 1992년입니다. 수교 초기 우리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가 중국을 앞서는 관계'를 만끽했습니다. 기업인들은 중국에 가 돈자랑을 했고, 누구누구 만나고 싶다면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한반도 정세를 우리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지요(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역전된 상징적인 사건이 이었습니다. 중국에 호구 잡힌 것이지요. 그 '호구'의 기억을 더음어 봅니다.

제가 베이징특파원 생활을 하던 2000년 5월 말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중국 산 마늘에 대해 최고 315%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을 발동될 것 같으니 중국의 대응을 주시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마늘파동'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6월 1일 세이프가드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중국 농산물 가격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315%관세를 물고는 한국시장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중국 산 마늘의 수입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린 것이지요. 당연히 중국이 반발했습니다. 꼭 일 주일 후 중국이 대응조치를 발표합니다. '한국산 폴리에틸렌과 핸드폰 수입을 금지한다'는 것이었지요.

'홧~?'.

한국은 '아뜨거!'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오는 마늘 다 합쳐봐야 1천만 달러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막아버린 시장 규모는 5억 달러를 넘는 규모였지요. 게다가 중국 핸드폰 시장은 'CDMA강국'이라는 한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였습니다. 업계에서 난리가 났지요. 언론에서도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다며 정부를 질타했습니다.

정부가 다급해졌습니다. 부랴부랴 중국에 협상을 제안했지요. 6월29일 베이징에서 협상이 시작됩니다. 중국은 급할 게 없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와서 따져보자'는 식이었지요. 한국 협상 대표단만 본국에서 훈령을 받아가며 애가 탈 뿐이었어요. 국내에서는 '산업 피해가 늘어가고 있다'며 조속한 타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중국 대표들은 그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오늘 합의 해 놓고는 다음 날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호구잡힌 겁니다. 취재하는 내 스스로가 챙피할 정도로 농락당하고 있었습니다.

7월15일 협상이 끝났습니다. 3만2000t을 50%이하의 저율 관세로 수입해주기로 했지요. 당시 수출입 상황으로 볼 때 중국 수출물량을 소화하고 남을 물량입니다. 핸드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한 중국의 수입금지 역시 풀렸지요. 40여일 만에 마늘 세이프가드는 없던 일이 됐던 겁니다. 온 나라를 확 뒤집어 놓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4월 중국이 한국 외교부에 공식 문서를 한 건 보냅니다. '약속한 마늘을 사가라'는 것이었지요.

'왠 마늘?'
'작년에 너희들이 사가기로 했던 3만2000t에서 덜 수입한 부분 1만t'

협상문이 문제였습니다. 중국은 '협정문에 명시된 물량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밀어붙였습니다. 한국 측은 '정부가 수입해주기로 한 물량(1만t)은 모두 수입해 줬으니, 나머지는 민간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민간이 가격을 이유로 수입하지 않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는 식이었지요. 제2차 마늘파동이 일어난 겁니다.

협상문문을 놓고 서로 이견이 있다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영어 협정서를 보면 됩니다. 당연히 언론에서 '영어 협정문을 보여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외교부 답이 걸작입니다. '그냥 중국어와 한국어로만 작성했다'.

여론이 들끓습니다.

'세상에 외교협상을 하면서 영문 협정서를 안만들어? 너희들 외교관 맞아?'

결국 한국은 1만t을 다시 사줘야 했습니다. 한번 호구가 잡히면 헤어나기 어려운 겁니다. 2차 마늘파동 역시 한국의 완패였지요.

그게 끝이냐구요?

아닙니다. 다시 이듬해 6월 중국 산 마늘이 다시 언론에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이면합의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옷을 벗어야 하는 대형 사건이었지요.

다음 얘기는 목요일 콘서트에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