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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체계/상상력'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8.09.19 반지의 제왕(1952) 저자 J.R.R 톨킨
  2. 2018.02.19 개인의 혁신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나라
  3. 2017.12.28 문화콘텐츠, 실학에서 길찾기
  4. 2017.11.07 지역문화콘텐츠에서 인문학의 가치 창출
  5. 2014.04.12 CJ, 영화 시나리오 작가 120여명 초청…문화콘텐츠 지원 나서
  6. 2013.12.02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독창적 지식체계로서 문화콘텐츠
  7. 2013.07.27 "창조경제, '돈' 말고 '인본주의'서 시작하자"
  8. 2013.06.21 인문학적 상상력이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라 생각하신 것 같아요 (1)
  9. 2011.09.19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을 사랑했다
  10. 2011.04.15 상상력 원천 인문학의 재발견…CEO 50여명 중국 시안 문화탐방기
  11. 2011.03.21 창의성 향상 위한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12. 2011.03.04 언어와 음악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
  13. 2011.01.13 왜곡 수입된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바로 세워야
  14. 2010.12.28 영화 ‘트론’으로 본 과학 소통의 중요성 영화와 과학이 소통할 때 모두에게 혜택 (1)
  15. 2010.11.07 펌/ 한국사 바로 읽기
  16. 2010.11.02 [CEO 특강] CEO에 인문학적 소양 꼭 필요
  17. 2010.10.20 가장 창의적인 조직은 ‘생각하는’ 조직
  18. 2010.10.01 문화로서의 과학
  19. 2010.09.28 [송호근 칼럼] 조상숭배의 나라 [중앙일보] (1)
  20. 2010.09.26 <조선불교통사> 우리말 출간
  21. 2010.09.20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창의력
  22. 2010.09.13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13~17일 인문주간 다채로운 행사 (3)
  23. 2010.09.10 영화로 살펴보는 자연재해와 과학 재난에 대처하는 끊임없는 노력
  24. 2010.09.01 역사의 큰 자랑, 귀주대첩 강한 비바람 등진 고려군 쾌승…애국심도 한몫 (1)
  25. 2010.08.21 “정치에 만족 못 하는 한국인들, 정의에 갈증 느끼고 있다” [중앙일보] (5)
  26. 2010.08.20 '정의란 무엇인가' 샌델 교수 신드롬
  27. 2010.08.06 지킬의 후예에 필요한 건 ‘창조적 다중인격’
  28. 2010.08.02 [신경진의 서핑차이나] 북학파 홍대용의 중국역사 삐딱하게 보기
  29. 2010.07.30 꿈과 현실, 과학적 상상력을 만나다 흥행질주 '인셉션'의 Inception은?
  30. 2010.07.23 과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까? 선호, 전통, 대화, 인간애가 비결 (4)
심층체계/상상력2018.09.19 19:50
한상영 님의 추천으로(7/10)
지난 열흘간 의미 있었던 책을 올립니다.(바빠서 좀 늦었네요;)

나윤서 님 추천합니다.

반지의 제왕(1952)  저자 J.R.R 톨킨

반지의 제왕 저자 톨킨,
현대 판타지의 아버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 선정

제 1 차 세계대전의 영향
나찌즘, 파시즘 등
전체주의적 사회에 대한 고발 담아내

호빗족의 모험 (1937)
'땅속 어느 작은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호빗의 성공에 이은 작품, 반지의 제왕

세계관:
북유럽 신화, 그리스 신화, 독일 신화적 요소
반영,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전반 구성

한국의 게임, 온라인게임, 스타크래프트 등 세계관 과 모티브 구성에 지대한 영향, 요정, 공성전 등
영감 제공

20세기 환타지 문학의 대표작
반지의 제왕은 감독 피터 잭슨에 의해
영화화, 2002.02.04 대한민국에 방영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작품

중간계(인간세계)의
암울한 종말론적 혈투를 통해 종국적으로
선의 승리

프로도 원정대의 구성
호빗 프로도와 그의 친구들
엘프 레골라스, 인간전사 아라곤,
마법사 간달프 등 목숨을 건 여정,
점점 세력을 넖혀온 사우론과의 최후의 일전

골룸, 고뇌하는 인간의 전형적 모습

간달프 ,종말론적 최후의 결전,
난장이 활, 칼, 지극히 힘없는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

간달프, 지옥불로 떨어져 신마법사로 부활,
기독교적 세계관 내포

샘, 평범한 농부,
샘의 자기의지로 고향도 지켜냄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8.02.19 18:20

1.개인의 혁신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나라

2.인재의 존중과 창발이 넘쳐나는 나라

3.시장이 자율과 책임으로 생동하는 나라

4.한류 문화콘텐츠가 글로벌 지속가능한 나라

5.세계의 자본과 기술과 기업이 몰려오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2017.2.18

전충헌 올림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창시자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7.12.28 12:02

이기상 교수님, 깊이 공감합니다.

교수님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신규장각 행사에서 "문화콘텐츠, 실학에서 길찾기" 기조강연을 하실 당시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한국외국어대 글로벌문화콘텐츠 콜로키움에서 뵙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이 후로도 시간이 적지 않게 지났네요.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십시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7.11.07 12:05

지역문화콘텐츠에서 인문학의 가치 창출

지역문화콘텐츠에서 인문학의 가치 창출은 지역학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지역문화콘텐츠의 시대 트렌드를 올바로 읽어 나가는 능력과 역사 자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통찰적 접근, 인문학의 콘텐츠화 과정에서의 '원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요구합니다.

이를 통해 무형의 핵심 가치로서 전국 지역마다의 '문화정체성'을 창조해 나갈 수 있으며, 독창성과 보편성을 지닌 양질의 지역문화콘텐츠의 창출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후 이에 기반한 개발 전략이 수립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111115일 중앙대학교 지역문화콘텐츠에서 인문학의 가치창출 전략주제 특강 중에서, 전충헌 콘텐츠 코리아 회장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4.04.12 11:23

 

CJ, 영화 시나리오 작가 120여명 초청…문화콘텐츠 지원 나서

기사입력 2014-04-11 13:21 | 최종수정 2014-04-11 13:21

CJ그룹은 지난 9일과 10일 이틀간 CJ인재원에서 신인 영화인 120여명을 초청,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역사 포럼을 개최했다. 9일 특강강연자로 나선 (왼쪽부터)최광희 영화평론가, 이준익 영화감독, 김기봉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이 역사 영화 제작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사진=CJ그룹 제공

CJ그룹이 한국의 콘텐츠 산업 부흥을 위해 예비 영화인들의 다양한 문화콘텐츠 창작을 지원하는 정기 포럼을 개최했다고 11일 밝혔다.

CJ그룹은 지난 9일과 10일 양일간 국내 예비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지망생 120여명을 CJ인재원으로 초청,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9일에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과 최광희 영화평론가, 김기봉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이 ‘역사와 영화, 영화와 역사’를 소재로 역사와 상상력을 결합한 역사 영화 제작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을 가졌다.

10일에는 ‘후궁’ ‘혈의누’ 김대승 감독, 前 한국정신대연구소장 고혜정 작가, 사단법인 물망초재단 박선영 이사장이 참여해 위안부, 탈북 청소년 등 '역사의 조난자'들의 영화소재 가치에 대해 강의했다.

포럼에 참여한 이준익 영화감독은 “소프트파워는 미래 인류의 성장 동력이며 가장 좋은 콘텐츠는 역사 스토리”라며 예비 영화 창작자들에게 강조했다.

특히 한국정신대연구소장을 역임한 바 있는 고혜정 작가는 “최근 독도와 함께 위안부 문제가 외교 문제로까지 악화되는 상황에서 위안부 할머니들 생존시에 다양한 역사 영화가 만들어져 더 많은 젊은이들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역사 포럼을 개최한 CJ문화재단은 콘텐츠 문화강국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대중문화인 후원 사업을 펼쳐오고 있으며, 예비 영화인들을 초청해 다양한 영화 콘텐츠 기획을 돕는 특강을 열고 있다.

CJ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CJ CSV 경영실 관계자는 “예비 영화인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이번 포럼이 우리 역사가 담긴 다양한 문화콘텐츠 창작에 힘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CJ그룹은 CJ나눔재단을 통해 교육격차 해소를, CJ문화재단을 통해 대중문화 예술인 후원 사업을 해 오고 있으며 특히 영화시나리오 작가를 후원하는 ‘프로젝트 S’를 통해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jhjh13@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3.12.02 08:30

디지털시대의 인문정신, 인문학의 지향점은 먼저 한국학의 정립, 한류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철학의 정립, 한국문화콘텐츠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확립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국가정책 차원에서의 전략적 관점은 우리 사회에서 깊고 탄탄한 인문학의 토대 위에 이제는 우리도 문명비평가, 비교문화사학자, 미래학자, 거대 과학사 전문가 등등 전 지구적 인문학의 확장을 위한 석학을 배출해 내고 핵심 인재를 육성하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간 대학의 창조적 열정의 산물로서, 인문학의 토대위에 쌓아온 문화콘텐츠 인재 양성의 성과와 평가, 디지털문명전환기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독창적 지식체계로서 문화콘텐츠학의 철학적 토대를 보다 굳건히 하는 일입니다.

 

전충헌 콘텐츠코리아 회장, 문화콘텐츠 창시자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3.07.27 03:06

"창조경제, '돈' 말고 '인본주의'서 시작하자"

입력시간 : 2013.07.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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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 전경련 제주포럼서 강조
[제주=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창조경제는 돈을 좇는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25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하계포럼에서 “요새 창조경제 이야기가 많은데 단순히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기업인들이 인류의 가치와 진보를 위해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새로운 역사가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문학과 르네상스 운동이 태동한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1000년 동안 인간관, 우주관 등에 대해서 공고히 유지된 가치체계들이 르네상스 운동에 의해 타파됐는데, 그 바탕에는 피렌체 상공인들이 지원해서 꽃을 피운 인문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 거두들의 공통점은 상공인의 계약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의 자녀였다는 것과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피렌체의 신흥 상공인들이 당시 신학, 논리 중심 대학 교육의 모순을 직시하고 인문학을 가르쳤기에 이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고 스티브 잡스가 단순히 돈을 벌겠다고 애플을 만든 게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PC를 보급해 IBM의 독점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반 문명적’ 발상에서 시작했다”며 “결국 아이폰이라는 창조적인 성과물을 통해 스마트 시대를 열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기술이 창조경제를 이끌지 않는다. 패러다임 전환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된다”며 “이 자리의 경영자들도 안팎으로 어려운 우리나라 경제에 인문적인 통찰을 갖고 창조경제의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분들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상근 (왼쪽) 연세대 신학과 교수가 25일 제주 해비치 리조트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 에서 ‘인문학과 창조경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전경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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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3.06.21 01:21

인문학적 상상력이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라 생각하신 것 같아요"
19일 박 대통령이 책 구입한 '책세상' 이영희 부장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메시지 담긴 책들, 국민들과 나누고 싶으셨을 것"
 
김경산

 

▲ 지난 19일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5권의 책을 구입한 '책세상'코너. 출판사 관계자는 "대통령이 인간 중심의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고민이 담겨 있는 책을 고른신 것 같다"고 말했다.     © 김경산

 

[독서신문 김경산 기자]“‘인문학적 상상력이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다’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열린 ‘2013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책을 판매한 도서출판 ‘책세상’의 이영희 부장(43)은 대통령이 책 선정에 많은 고심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이 구입한 책은 『답성호원』(율곡 이이 지음), 『일러스트 이방인』(알베르 카뮈 원작), 『유럽의 교육』(로맹 가리 지음), 『철학과 마음의 치유』(김정현 지음),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지음) 등 모두 5권.

이 부장은 지난주 금요일 오후 서울국제도서전을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로부터 대통령이 개막식 행사에 참석한 뒤 업체 부스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직접 받았다. 월요일에는 ‘책세상’이 출판한 도서 중 10권의 목록도 알려주며 미리 준비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대통령이 오시는가 보다' 하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7년 출판사 경력의 이 부장은 책 목록을 보고 나서 간단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청와대쪽과는 인맥이 전혀 없는데도 누군가 꼼꼼히 책 내용을 검토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록에 적힌 책들은 최근 2년 사이에 출판사가 심혈을 기울여 발간한 책들로 그 내용과 저자들이 갖는 의미와 무게가 남달랐다.

박 대통령은 김승직 책세상 대표의 안내로 부스에 들어서면서 이 부장에게 "인문학서적을 내고 계신 출판사죠? 고생 많으십니다"라며 반갑게 인사한뒤 책을 둘러봤다.

“인간 중심의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고민이 담겨 있는 책들을 고르신 것 같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하고 그것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창조경제를 많이 말씀하시지만 그 바탕은 인문학적 소양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철학과 소설, 고전을 골고루 사 가신 것만 봐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를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그 책들을 다 읽어 주신다면 출판인의 한 사람으로 정말 감사한 일이죠”

대통령은 직접 7만6400원의 책값을 도서문화상품권으로 지불했다.

이 부장은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교육』에서 전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에 많은 공감을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감성 마사지’같은 ‘힐링’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해주는 책(『철학과 마음의 치유』)도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초 목록에는 없었지만 진열된 책 중에  『마음의 생태학』(그레고리 베이트슨 지음, 박대식 옮김)을 대통령이 손을 뻗어 펼쳐 보았다고 전했다. 780쪽이 넘는 두툼한 책으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자연을 포함해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중의 한 사람으로 주로 학자들이 찾는 책이라고 귀뜸했다. 책 내용을 알고 있는 이 부장은 대통령의 무거운 마음이 같은 여성인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많이 힘드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부장은 “대통령의 관심이 출판계 진흥과 독서분위기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며 “국민들이 좀 더 많이 책을 사서 읽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23일까지 계속된다.

 

 ■『답성호원』(율곡 이이 지음, 임헌규 옮김)

 

올바른 인간의 행위와 정당한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문제에 대해 당대의 석학인 우계 성혼이 묻고 율곡 이이가 답한 철학적 서신이다. 조선 3대 논쟁의 하나로 유명한 <인심도심논쟁>에 관한 책이다. 신체적 욕망인 ‘인심’과 보편적 본성인 ‘도심’의 문제를 이기론으로 해명함으로써 성리학의 이론적 완성을 꾀한 저작이다.

 

 

 

 

 

 

■『일러스트 이방인』(알베르 카뮈 원작,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이방인』출간 70주년과 카뮈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한 특별 에디션이다. 그래픽노블의 세계적 거장 호세 뮤노스가 작업한 이 책은 숨 막히는 부조리로 가득한 소설 속 현실을 최대한 완벽히 재현하기 위해 흑과 백 두 가지 색만 사용해 유명해졌다.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억압적 관습과 부조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카뮈가 보여준 인물들의 모습도 여전히 유효하다.

 

 

■『유럽의 교육』(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프랑스에서 오직 한번밖에 받을 수 없는 콩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작가인 로맹가리의 데뷔작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폴란드를 배경으로 빨치산들이 항독 투쟁 중인 숲에 들어간 열 네살 소년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진정한 용기와 사랑을 배우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철학과 마음의 치유』(김정현 지음)

 

원광대 김정현 교수의 ‘니체’철학 연구의 결실이다. 니체철학으로 보는 심층심리학의 철학적 기원과 철학치료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철학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혼란과 실존적 고통에 대해 우선 자신에 대한 내면적 대화와 성찰을 통해 자기 긍정과 자기존중의 태도를 갖도록 조언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해 스스로 삶을 긍정하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이를 가능케 하는 실천적 방법으로 니체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지음)

 

경연(經筵)이 왕의 공부라면 서연(書筵)은 왕세자의 공부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왕세자의 서연을 담당하는 계방(桂坊)의 시직(侍直)에 임명된 홍대용이 약 300일 동안 정조의 서연에 참석해 나눈 문답을 기록한 <계방일기>의 첫 완역본이다. 유교경전을 텍스트로 강론을 벌이며 조선 최고 지성들의 학문의 깊이와 사유의 폭을 보여준다.

관련기사
박근혜 대통령과 책읽기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1.09.19 06:57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을 사랑했다

애플에서 기술과 인문학 융합에 전념

2011년 09월 19일(월)

> 융합·문화 > 융합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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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이 있는 풍경   

세계 IT산업 관계자들은 그동안 IT산업의 수익률이 계속 줄어들어왔으며, 특별한 변화가 있지않는 한 수익률은 더 줄어들고, 산업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애플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 주도로 기존의 산업구조를 완전히 바꾸어놓는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맥(Mac) 컴퓨터를 포함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들은 과거 IT전문가들이 해오던 패턴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 여러 전문가들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 융합론자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IT업계의 화제는 이처럼 과감하게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능력이다. 놀라운 창의력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 세밀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이 그의 인문학적 식견이다. 올 1월 그는 아이패드를 처음 선보이는 발표장에서 "나는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누가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할 것인가?

주목할 점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이런 면모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한층 뜨고 있는 잡지 '와이어드(Wired)'는 애플관련 전문기고가 팀 카모디(Tim Carmody)를 통해 'Without Jobs as CEO, Who Speaks for the Arts at Apple?'란 글을 실었다.

"잡스는 애플 내에서 인문학과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를 옹호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나는 그가 애플 CEO로 계속 근무하면서 그의 철학을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철학은 인간을 위한 기술이다. 그는 기술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각과 가치, 인격적인 표현을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항상 펴고 있었다."

여기서 리버럴 아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자유교육(Liberal Ecucation)'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교육을 직업교육과 전문기술교육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자유민에게 적합한 교육이라 구분했다. 중세에는 문법·수사학·논리학 등 3학과  산술·기하·음악·천문학 등 4과를 묶어 자유학문(Liberal Arts)이라 불렀다.

팀 카모디는 향후 애플이 기술과 리버럴 아츠를 융합할 수 있는 기업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잡스는 이 일이 미래 어느 때고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이 융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는 것. 그는 이 목표를 위해 그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애플과 그의 전 생애를 함께 해왔다고 적었다.

그러나 잡스가 떠난 지금 애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제품이 멋지게 디자인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 기술과 리버럴 아츠의 융합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기술과 편리함만으로 애플천하 한계

팀 카모디는 아직까지 어떤 사람도 잡스의 관점에서 경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애플의 미래가 더욱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잡스가 CEO직에서 떠난 지금 우려할 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 사임 후에도 애플 제품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에 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15일 보도했다. 오히려 최근 연구결과들은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iPad)가 계속해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것.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체인지웨이브 리서치가 2천297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 사임으로 인해 애플 상품을 사는 것을 꺼리게 됐다는 사람은 4%에 불과했다. 반면 89%는 스티브 잡스로 인해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체인지웨이브의 조사결과는 언제까지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스티브 잡스 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애플천하'가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IT 관계자들은 스티브 잡스가 이사회 회장으로 계속 남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다 그가 주장했던 디자인과 제품 기능이 애플 시스템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애플 직원들 역시 스티브 잡스가 주도한 제품과 비즈니스 철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년 간 애플의 브랜드 가치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킴 카모디의 말대로 잡스가 일생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 중단될 경우 애플이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1.09.19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1.04.15 22:02

상상력 원천 인문학의 재발견…CEO 50여명 중국 시안 문화탐방기
문화콘텐츠 스토리로 `미래 먹을거리` 만든다
기사입력 2011.04.15 16:08:16 | 최종수정 2011.04.15 17:20:4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지난 4일 당현종과 양귀비가 처음 만났던 것으로 유명한 중국 시안 화칭츠에서 서울대 인문학 과정을 수강하는 CEO들이 박한제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엔 장안(長安ㆍ당나라 수도)이 있었습니다. 7~10세기 세계 모든 길은 장안을 향하고 있었으니까요. 돌궐ㆍ위구르 부족장과 무사들, 사마르칸트ㆍ인도ㆍ페르시아ㆍ아랍 상인들 등 `차이나 드림`을 좇아온 사람들로 넘쳐났던 장안은 당 왕조 수도이자 세계 최대 국제도시였습니다."

지난 2일 짙은 구름으로 뒤덮인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장안성. 도시 곳곳의 공사 현장에서 내뿜는 희뿌연 먼지와 황사 때문에 봄의 흔적은 찾아 보기 어려웠지만 오랜만에 정장을 벗어던진 50여 명 얼굴엔 봄꽃이 피었다. 이들은 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마련된 서울대 인문학과정(AFP) 수강생들.

시안엔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류 가방 대신 배낭을 멘 CEO 수강생 53명은 박한제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에게 설명을 들으며 나흘 동안 시안의 문학ㆍ역사ㆍ철학을 되짚었다.

천년 고도(古都) 장안의 봄은 어땠을까.

"당대 장안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살았고 이들에겐 많은 자유가 제공됐습니다. 하지만 통제도 숨어 있었죠. 장안성의 질서정연한 바둑판형 구조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00여 개 방(坊)을 만들어 인민들을 가뒀고 교역행위도 방내에서만 허용했으며 황제가 치는 북소리에 따라 일상을 살았습니다. 자유와 속박이 교차된 장안의 봄은 화려했지만 그늘 또한 짙었던 셈이죠."

시안 유적지는 모두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진시황 병마용.

1호갱은 가로 239m, 세로 62m, 깊이 5m 크기인데 병사 6000여 명이 제각각 다른 표정으로 도열해 있다. 1974년 시안 외곽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1ㆍ2ㆍ3호갱이 전시돼 있고 현재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1.5㎞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진시황릉과 황제를 지키는 병마용을 만드는 데 인부 70만명과 장인 3000여 명이 동원됐지만 비밀 유지를 위해 한꺼번에 매장됐다.

수강생들은 과거를 둘러보며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이우석 코오롱제약 대표는 "유적들은 `국가`라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중국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한국 기업은 국가를 우선시하는 중국 패러다임과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교진 일성레저산업 대표는 역발상을 했다. 강 대표는 "화려하고 웅장한 것들을 보다 보니 반대로 큰 것에 가려져 외면하기 십상인 것들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며 "기초과학처럼 당장은 성과가 나오지 않지만 꾸준히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하는 분야들은 물론 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CEO들은 시안의 `스토리`에 주목했다. 인문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시안은 정부의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라 크고 작은 공사가 한창이다. 내륙에 산재해 있는 문화ㆍ역사ㆍ철학 등 `이야기`를 문화ㆍ관광 콘텐츠로 개발해 미래 먹을거리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중국 경제 발전축이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고 있으며 시안은 그 중심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시안에만 2015년까지 200조원을 투자해 문화 중심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당현종과 양귀비가 처음 만났던 화칭츠(華淸池)를 배경으로 두 사람 간 애틋한 사랑을 그려낸 장한가(長恨歌) 뮤지컬은 중국 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였다.

박상희 비룡소 대표는 "유적지와 산 등 주변 하드웨어와 역사라는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이야기를 재창조하고 상품화하는 중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응용력을 봤다"며 "한국도`안 되는 것`을 된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창구 서울대 인문대 학장은 "시안은 당나라가 한나라 문물을 자기 것으로 소화한 뒤 어떻게 세계적인 것으로 다시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변 학장은 "지금까지는 1등을 모방해왔지만 이제는 우리가 벤치마킹을 당해야 하고 지도자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과 창의성, 상상력의 원천인 인문학이 앞으로 더 필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안 =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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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1.03.21 03:41

창의성 향상 위한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스티브 잡스, 코페르니쿠스 등 창의적 인물 들여다보기 2011년 03월 21일(월)

▲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접목을 강조했다. 
스티븐 잡스는 최근 아이패드 2를 출시하면서 기술이 인문학과 접목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IT산업에서 선도적인 국가이지만 IT를 이용한 풍부한 콘텐츠가 담기지 않고서는 진정한 IT강국이 될 수 없다. 하얀 도화지는 있는데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으면 하얀 도화지는 그저 종이에 불과하다.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는 인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샹폴리옹 같은 획기적 창의성을 지닌 걸출한 인물들과 베토벤, 하이든,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작곡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바로 획일화된 교육 때문이다. 철학과 예술이 빈약한 획일적인 교과 과정이 다양한 사고력을 막고 있다. 이런 획일성에서 탈출해 창조적인 세계로 옮겨 가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익혀야 한다.

인문학과 과학의 조화

문학, 철학, 역사, 종교, 예술을 아우르는 인문학은 인간 행태와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므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필수이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류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지만 더불어 부작용 또한 떠안게 되었다. 물질문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인간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할 수 있는 방법은 인문학과 과학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특징은 사물을 보는 관점을 다양화시킨다는 점이다. 즉, 각각의 주관성을 중시한다. 보편성, 합리성, 상식 등은 주관적인 관점으로부터 형성된다. 반면, 과학은 객관성을 핵심으로 한다. 인문학의 가치는 인간과 그 관계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며, 과학의 가치는 사물 또는 현상의 원리를 법칙화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대상이 사람의 사고인 반면, 과학의 대상은 물체와 자연이다.

사회과학, 정책과학까지 아우르는 인문학에는 정치학, 심리학, 종교학, 국제관계학, 노사 관계학 등이 포함된다. 자연 과학에는 의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지질학, 해양학, 천문학 등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문학과 자연 과학이 서로 상반된 학문으로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주관적 관점을 인정하는 학문과 객관성을 핵심으로 하는 학문이 서로 유리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던 바탕은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지극히 주관적인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객관성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고전과 철학의 중요성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고전과 철학을 심오하게 공부했다. 
역사적 인물들도 철학과 관련된 서적이 자신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곤 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이자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나는 공식적인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저서가 지닌 심오한 가치를 깨닫고, 고전과 철학을 개인적으로 심도 있게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이작 뉴턴(1642~1727)은 “나는 초등학교 시절 지진아였다. 그런 나에게 교장 선생님은 철학과 고전을 중심으로 독서 교육을 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두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후일 케임브리지 대학생이 된 나는 노트의 첫 장에 아리스토텔레스를 필사했다. 그리고 노트 위에 이렇게 적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친구이다’라고”라고 고백했다.

대영 제국의 번성기인 빅토리아 시대의 첫 유대계 수상으로 두 번이나 수상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소설가인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는 “10대에 내가 온 정열을 기울여 읽은 책은 고전 철학서이다. 나는 플라톤, 키케로, 루키아노스, 테렌티우스, 볼테르 등이 쓴 철학서를 열광적으로 읽었다. 바로 이 책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1929년 시카고대 총장으로 새로 부임한 로버트 허친스 총장은 학생들에게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을 의무적으로 시행했다. 그는 시카고대학을 세계 명문 대학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품고 ‘시카고 플랜’을 도입했다. 시카고 플랜이란 고전 철학서 비롯한 각종 고전 100권을 읽어야 졸업할 수 있는 제도였다.

석유 재벌 존 록펠러가 세운 시카고대는 설립된 해인 1892년부터 1929년까지 삼류 학교였다. 그런데 이 학교가 1929년을 기점으로 변화했다. 바로 시카고 플랜의 결과로 이 대학 출신이 노벨상을 대거 수상하게 된 것이다. 1929년 이래로 지금까지 시카고대 출신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82명이나 된다.

예술적 통합으로 시너지 효과

“나라가 흥하려면 문학이 살아야 한다”고 괴테는 말했다.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기에 걸친 고전파 시대는 계몽주의적 사상의 기초 위에 모든 장르의 문화가 풍미한 기간이다. 칸트와 헤겔 같은 철학가와 괴테, 실러 같은 시인들, 그리고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걸출한 작곡가들이 동시대에 살면서, 정신과 육체, 자연과 인간, 그리고 형식과 내용, 예술성과 대중성이 위대한 조화와 통일을 이룬 시대였다. 한 예로 베토벤은 괴테의 극시로 ‘에흐몬트’를 작곡했고, ‘제9번 교향곡’의 합창 부분은 실러의 ‘환희에 붙여서’에 곡을 붙였다.

19세기 중엽에서 말기에 프랑스에 풍미했던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미술에서 시작하여 음악, 문학 등 모든 예술 분야로 펴져갔다. 대표적 인상파 화가는 모네, 마네, 피사로,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고흐 등을 들 수 있다. 인상주의 기법을 응용한 작곡가는 드뷔시,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이다. 이처럼 문화는 음악과 문학과 철학이 함께 서로 어우러지며 공유할 때 더 큰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낭만주의 작곡가인 멘델스존(1809~1847)은 음악 이외에 역사, 지리, 문학, 철학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8세 때 베를린 훔볼트대에서 헤겔의 미학 강의를 들으며 지적 세계를 넓혔다.

뿐만 아니라 멘델스존은 회화에까지 재질을 보였던 인물이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음악가라면 라파엘로의 그림을 연구하고 화가라면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슈만의 이러한 주장은 고대 철학자들이 ‘화성은 다양한 색채적인 것들의 연합’이라는 접근에 근거한다. 음악이 언어처럼 논리를 중요시 여기는 반면, 미술은 영상에 초점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이다. 즉, 논리 기능이 있는 왼쪽 뇌와 창의성 기능이 있는 오른 쪽 뇌가 서로 유기적으로 교류하는 방법이 음악과 미술의 동시 습득을 통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음악이 발전한 시대에 문학도 발전하고, 미술이 발전한 시대에 음악도 발전했다. 우리는 흔히 경제적 번영이 있을 때 문화적 풍요로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란 경제적 여건에서가 아니라 창의적 예술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풍성해진다.

한편, 과학적 재능이 음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다빈치(1452-1519)와 아인슈타인(1879-1955)을 통해서 본다. 다재다능한 르네상스의 상징 인물인 다빈치는 통합의 천재였다. 이탈리아 궁정에서 열리는 여흥이나 즉흥연주회에 참여할 만큼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발명기제를 시각적으로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사용했다.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은 6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좋아했다. 연구 활동을 하면서 바이올린을 틈틈이 연습했고, 1934년 망명 독일과학자들을 돕기 위한 연주회를 가졌을 정도의 연주력을 갖추고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과거를 다시 보는 것, 즉 고전을 이해할 때 나온다. 고전을 이해하는 자가 새로운 예술도 만들어내는 법이다. 결론적으로 위에 열거한 음악가, 예술가, 과학자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과학, 언어,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으로 습득할 때 창의성을 발휘하고 문제해결능력을 키울 수 있다.

조명진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

저작권자 2011.03.21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1.03.04 06:56

언어와 음악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 듣기와 창의성의 상관관계 2011년 03월 04일(금)

대문호 괴테는 “사람은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 듣는다(A person hears only what they understand)”고 말했다. 모르는 얘기는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창의성 향상의 한 구체적 방법으로 먼저 오감 중 청각을 통한 듣기의 중요성과 향상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임신 4개월 경, 태아는 오감 중 미각과 청각이 먼저 형성된다. 임신 5개월부터는 자궁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나머지 감각인 후각, 촉각, 시각은 임신 6개월경에 형성된다. 즉, 생명체는 보는 것보다 듣는 기능을 먼저 갖추는 것이다. 두뇌가 발달하고 기억력을 갖게 되는 세 살 때까지 아이들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수많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출생 후,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라고 불러보라”는 주문을 수없이 듣는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를 정도로 수차례 듣고 난 후에야 아이는 어설프게 “엄마”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시작한다. 엄마라는 호칭을 듣고자 해서 들은 것(인지)이 아니고 듣다 보니 인식된 것(감지)이다.

욕이 나쁜 이유

▲ 어린 아이가 욕을 한다면,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반복적 학습은 사람의 버릇이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욕을 한다고 치자. 사람들이 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젠가 한 번이라도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는 사용하지 못한다. 어린 아이가 욕을 한다면,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욕을 의식적으로 기억하고자 해서 아이의 뇌리에 입력된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이지만 반복해 들었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서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 식물도 욕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50개의 양파를 각각 두 방에 나누어 기른 연구 결과를 보여준 적이 있다. 온도, 습도, 빛 등 두 방의 조건을 똑같이 하고 한 가지 조건만 다르게 했다. 바로 소리이다. 한쪽 방에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또 다른 방에는 녹음한 욕을 15일간 틀어주었다. 15일 후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양파는 싹이 모두 20센티미터 이상 고르게 자란 반면, 욕을 들려준 양파 50개 중에는 전혀 싹이 트지 못한 것이 5개, 싹이 자라도 5센티미터 이하인 것이 6개였다.

식물은 청각 기능이 없지만, 거친 음성의 욕에서 나오는 고주파가 식물의 성장을 방해한 것이다. 식물도 욕에 영향을 받는데, 하물며 청각 기능이 매우 발달한 만물의 영장 인간에게 욕이 독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흥분한 상태에서 튀어나오는 욕을 들으면 창의성이 퇴보된다는 사실에서 욕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 고주파의 날카로운 어조가 교감신경을 자극,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들고 흥분시키므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상적인 말투는 1천 헤르츠(hz) 미만이지만, 욕은 3천~6천 헤르츠의 고주파이다. 이와는 반대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인체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안정감을 찾도록 도와준다.

욕을 하는 습관은 영화나 드라마의 언어폭력에서 비롯된다. 조직 폭력배를 주제로 다룬 영화나 형사들의 활동을 담은 영화들은 여과 없이 욕을 내뱉는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이 욕을 하는 배역을 맡았을 때, 관람자가 그것을 멋있는 행동이라고 잘못 받아들여 욕을 모방하는 경우도 있다. 담배 연기에 의한 간접흡연처럼 욕은 듣는 사람에게 ‘간접 폭력’을 휘두른다. 나쁜 표현을 듣는 ‘간접 경험’도 간접적인 상처가 된다. 다시 말해, 직접 나를 겨냥한 욕이 아니어도, 그것을 듣는 자체가 해롭다는 의미이다.

특히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는 상대방을 볼 수 없으므로 많은 욕설들이 난무하기 쉽다. 이런 환경에 놓이면 좋은 감성을 키울 수 없게 되고, 격한 감정만이 커져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언어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통제하지 못한다.

의문(question)은 갖되, 의심(doubt)하지 않는다

▲ 음악이 언어라는 측면에서 멜로디를 인지하면 그것이 언어적 뇌 기능을 활발하게 해준다. 
의심하는 것이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라는 주장은 잘못이다. 친구나 부모의 말까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삶은 더 복잡해진다. 의심(doubt)이 아니라 의문(question)을 바탕으로 할 때만 사고가 발달한다. 믿으려 하지 않으면서 듣는 습관은 공동체의 틀을 깨뜨리는 불건전한 요소이다. 정부에서 어떠한 정책이나 입장 등을 발표하면 무조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는 풍토가 만연하고, 개인적인 의심이 눈덩이처럼 부풀면 국가적 의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신뢰를 갖고 듣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음악치료법(music therapy)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음악치료법은 음악을 통해 심리 치료를 돕는 분야를 말한다. 음악(예술)의 효과를 심리학(사회과학)과 접목해 의학(자연과학)의 한 부류인 신경정신과에 적용한 것이다. 음악 치료의 효능이 언제 나타나는지 관찰해보면, 음악치료를 시행하는 전문가가 그 효능을 확신하고 치료 대상자를 대하고, 동시에 치료 대상자가 그 효능을 믿을 때이다. 집중해서 인지하건, 집중이 흐트러져 감지하건 효능을 믿고 들을 때 효과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태교 음악으로서 마스네(1842~1912)가 작곡한 ‘타이스의 명상곡(Meditation de Thais)’이 평온한 느낌을 준다거나, 바흐(1685~1750)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 2번(BWV. 1041, 1042)’,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BWV. 1043)’ 등이 활기찬 느낌을 불어넣어주며,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5, 8, 10, 11, 16, 17번(K. 283, 310, 330, 331, 570, 576)’ 등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믿고 들으면 그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한때 모차르트의 작품을 비롯한 고전 음악이 단기적으로 시공간 지각력과 추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해 클래식 음악 붐이 인 적이 있다. 이를 ‘모차르트 효과’라고 한다. 많은 의학적 발표가 과학적으로 100퍼센트 입증되기 힘든 사실을 감안하면 심리 효과는 더욱 그렇다.

분명한 것은 음악이 언어라는 측면에서 멜로디를 인지하면 그것이 언어적 뇌 기능을 활발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믿고 듣는다면 어떤 음악이든 지각력과 추리력을 키워줄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청각을 자극하자

▲ 음악의 주제가 무엇인지 알고 들을 때 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음악회에서 직접 음악을 들으면 공기의 떨림을 통해 전해져 오므로 실질 접촉(tangible contact)의 효과가 있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현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져 화음을 만들어내는 경우, 마치 거대한 움직이는 화폭을 그려내는 듯하다. 당연히 솔로 연주나 실내악 연주보다도 더욱 많은 베리에이션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오케스트라의 향연은 더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로 여행하도록 도와준다.

축음기나 라디오조차 없던 바로크 시대와 고전주의, 낭만주의 시대에는 직접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어야 했다. 당시의 많은 시인, 소설가, 철학가들이 세기를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인정받는 뛰어난 창작품과 사상을 탄생시킨 것은 이처럼 현장에서 직접 연주하는 음악을 들음으로써 그들의 창의성을 더욱 북돋울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미를 묘사하는 음악 작품을 감상하는데 제목은 충분한 안내자가 된다. 자연이 주는 영감이 작곡가의 상상력을 통해 음악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의 시대적 배경, 작곡가의 작품 창작시의 상황, 심리 상태까지 안다면 그 이해의 깊이는 한 층 더해 질 것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 ‘보다 듣다 읽다’에서 “주제란 예술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푸는 방식이며, 일관된 의미적 체계를 위해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강요된’ 사항들을 풀어가는 방식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음악의 주제가 무엇인지 알고 들을 때 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조명진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

저작권자 2011.03.04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1.01.13 13:45

왜곡 수입된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바로 세워야
이정모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죽었다 깨어나도 애플 못 따라잡는다
■ 한겨레 과학마당 <사이언스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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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융합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미국 과학재단의 자료에 나오는 그림. 출처/ www.nsf.gov
미래 융합과학기술 틀: 서구와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요즈음 대학에서도, 과학기술계에서도, 기업에서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영역 간, 분야 간의 융합이 하나의 화두이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에도, 또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서울대학교 미래학문 콜로키움 모임의 논의에 의하면, 미래 학문 체계에서는 현재 대학 학문체제나 국가기관의 학문 분류 체계를 넘어서서 학문 간, 분야 간의 새로운 융합과 재구성이 멀지 않아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융합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미래 국가 발전 일반과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하여 중요한 주제로 계속 남을 것 같다.

미래 과학기술의 화두 ‘융합’… 한국만의 ‘다른 길’

미래 과학기술은 어떠한 과학기술이어야 하고 어떤 목표를 지녀야 하는가? 미래 과학기술의 특징은 인간의 삶, 사회, 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국내 과학기술계, 사회, 대학, 기업은 어떻게 이에 대비하고 생각을 재구성하여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과학기술의 앞날과 미래 인류사회를 생각하는, 깨어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 융합 과학기술(converging technologies)의 논의에는 서구의 융합 과학기술 논의와는 크게 다른 면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과학기술은 상당히 발전한 듯하지만, 최근에 국내 일부 기업 지도자들이 부각하였듯이 지난 몇 년 동안에 보여준 한국적 융합 과학기술의 틀은 미래 한국에서 과학기술의 긍정적 발전의 틀로는 부적절하다. 왜 그럴까?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21세기의 융합 과학기술 논의에 불을 붙인 개념 틀인, 미국 과학재단(NSF)이 2003년에 제시한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의 핵심을 한국은 곡해하여 수입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점이 한국의 과학기술이 비록 메모리 칩 같은 일부 제품의 개발과 생산에서는 서구 국가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서구의 과학기술을 넘어서지 못하는 까닭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면 21세기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의 핵심을 한국은 어떻게, 왜 왜곡하여 수입하여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그 대안은 무엇인가?

» 나노기술, 생명공학, 정보기술, 인지과학의 융합 테크놀로지를 형상화한 그림. 출처/ www.nsf.gov

개인의 능력 향상에 초점 맞춘 ‘융합 과학기술의 틀’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미국에서는 국립과학기술원 나노과학공학기술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과학재단과 상무성이 공동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미래 과학기술의 틀을 개발하였다. 이것이 2003년에 미국 과학재단이 “21세기 미래 과학기술의 틀”로 제시한 “NBIC 융합 과학기술의 틀”이고, 이로부터 캐나다, 유럽연합 등의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융합’ 논의가 과학기술계, 학계, 산업계에 널리 퍼졌다.

이 틀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미래 과학기술(특히 테크놀로지)의 핵심이 4대 축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즉 N(나노과학기술), B(생명과학기술), I(정보과학기술), C(인지과학기술)라는 4대 핵심 축의 수렴적 연결에 의하여 미래 과학기술이 발전될 것이며, 혁신적, 창의적 발견과 발명은 이 네 영역의 변두리와 접점에서 주로 나온다는 것이다.

둘째 핵심은 미래 테크놀로지의 궁극적 목표가, 신물질이나 기계의 생산에 있지 않고 인간 개개인의 지적, 활동적 퍼포먼스(performanc: 수행 능력)의 향상에 있다는 것이다. 시민 개개인의 인지적, 직무적, 그리고 일상적인 활동 퍼포먼스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고 할까. 유럽언합은 이러한 미국의 틀에 ‘인문사회 테크놀로지’를 추가하고 생태적 환경 개선 측면을 가미한 틀을 제안하였다.

곡해되어 수입된, 한국의 ‘융합 과학기술’ 논의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과학기술 융합에 관한 논의가 시작하였고, 2005년의 최재천, 장대익 교수가 제시한 ‘통섭’ 개념에 힘입어 융합 논의는 이제 우리 사회의, 특히 과학기술계, 대학, 산업체의 구도를 지배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국내 융합 과학기술의 틀에 문제점이 있다. 서구의 융합 틀에서 강조된 두 측면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즉, 서구에서는 미래 과학기술 틀의 핵심 축이 나노과학, 생명과학, 정보과학, 인지과학인 ‘4륜구동’의 미래 테크놀로지 틀이라면, 한국 틀은 아직도 나노, 생명, 정보(NT, BT .IT)라는 ’3륜구동’의 미래 테크놀로지 틀이라는 것이다. 인지과학에 의해 연결되는 인문-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소프트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이 미래 과학기술에서 무시된 틀이다.

서구의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을 한국이 왜곡한 또 다른 측면은, 서구는 개개인의 퍼포먼스 향상이라는 소프트적 목표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데, 한국은 컴퓨터 칩 같은 하드 기기의 생산에서 앞서가려 하는 20세기 식의 목표를 궁극 목표로 추구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소프트 테크놀로지를 무시한 3륜차가 4륜차를 따라가거나 흉내낼 수는 있지만 앞서가지는 못한다. 애플의 스마트 기기의 성공과 같은 변혁을 과거의 한국적 틀의 3륜차가 내어 놓을 수는 없다. 한계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인간 삶에 눈 돌리는 테크놀로지를

21세기에 미국 과학재단이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내어 놓으면서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의 궁극적 목표 개념은 크게 변화하였다. 20세기까지 추구해온 물질과 기계 중심의 ‘하드’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이제 ‘소프트’ 과학, ‘소프트’ 테크놀로지로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유의할 점이 있다. 과거의 ‘하드’ 과학, 테크놀로지는 쓸데없거나 중단하거나 버리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드’ 테크놀로지는, 우리 인간의 일상 삶에서 중요한 물이나 공기처럼, 이미 삶의 조건의 하나가 되어 삶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비탕을 이루고 있기에 그 자체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계속 연구 발전시켜야 함을 인정하되, 궁극 목표로 삼거나 하는 것을 넘어서자는 의미이다.

그것을 넘어서서 인간 삶의 본질적 측면에, 인간 중심으로, 인간-인공물 상호작용의 본질 중심으로 눈을 돌리자는 의미이다. 바로 이것이 ‘소프트’ 과학기술. ‘소프트’ 테크놀로지의 핵심 아이디어이며(이런 아이디어는 국내에서도 1996년에 과학기술부 프로젝트로 제시되었으나 빛을 보지는 못하였다), 서구는 그런 궁극 목표를 향하여 2003년 이래로 저만큼 달려가고 있고, 2010 년에 비로소 한국에서는 삼성 등이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며 궤도를 수정하고 있다.

‘소프트 과학’ ‘소프트 공학’의 중요성

물질, 기계 중심의 과거 과학기술관, 테크놀로지관의 낡은 껍질을 벗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신묘년의 토끼가 털갈이를 하듯이, 아시아 용의 하나가 껍질을 벗고 승천하듯이,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낡은 틀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PC), 앱,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빠져들어간 소셜네트워크… 이러한 하드, 소프트 인공물들, 그리고 이 모두를 수렴, 통합, 융합하여 이를 넘어서 미래에 창출될 새로운 창의적 테크놀로지를 위하여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소프트 과학’, ‘소트트 공학’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 중요성은 나노과학, 생명과학, 정보과학, 인지과학이 핵심 축이 된 미국 과학재단의 ‘NBIC 융합 과학기술 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당시 미국 하원의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은 뉴트 깅리치 의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표현된다.

“이러한 큰 변화의 본질과 양상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무시하는 자들보다 드라마틱하게 더 잘 살 것이다. (…중략…) 이러한 변화의 본질(패턴)을 무시하는 국가들은 변화를 지향하는 더 현명한 이웃 국가보다 더 뒤떨어지며, 더욱 약하고, 가난하며, 쇠퇴하며, 결국은 망각될 것이다.”

이정모 /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인지과학). 여러 인지과학 관련 포럼과 세미나 운영 또는 참여 중. 홈페이지 http://cogpsy.skku.ac.kr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12.28 03:46

영화 ‘트론’으로 본 과학 소통의 중요성 영화와 과학이 소통할 때 모두에게 혜택 2010년 12월 28일(화)

영화의 흥행조건으로 많은 감독들이 ‘관객의 몰입’을 꼽는다. 관객의 몰입이란 쉽게 말하면 ‘얼마나 현실에서 있을법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느냐’이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면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너무 현실과 똑같은 이야기면 진부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를 감독의 상상력으로 독창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영화 흥행의 관건이란 얘기다.

첨단 과학기술을 소재로 다루는 SF영화의 경우에도 이 ‘있을법한 이야기’는 고스란히 적용된다. 쥬라기 시대의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을 스크린으로 옮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과학적으로 있을법한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다.

영화 흥행 조건, 있을법한 이야기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학적으로 있을법한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룡을 재현할 수 있었던 과학적 배경은 쥬라기 시대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에 있다.
 
그 모기는 수십 억 년의 세월동안 공룡의 DNA를 보관한 채 호박이라는 보석 속에 갇혔다.

영화에서는 이 호박을 찾아 모기를 끄집어내고 모기에서 공룡의 DNA를 뽑아내 쥬라기 공룡을 재현했다. 유전공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얼핏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기실 쥬라기 공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SF영화가 제작될 때 영화제작진과 과학자들 사이의 소통은 영화 제작의 중요한 과정이다. 제작자들은 과학에 대해 잘 모르고 과학자들은 영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들 두 그룹간의 대화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저널리스트 수잔 칼린은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최신호를 통해 “30일 개봉 예정인 ‘트론, 새로운 시작’이 제작자와 과학자 사이의 소통을 통해 전작인 ‘트론’을 뛰어넘는 영상혁명과 잘 짜여진 스토리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은 1982년 디즈니가 제작한 ‘트론’의 속편으로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갇힌 아버지(케빈 플린)를 찾아 나선 아들(샘 플린)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컴퓨터 속 가상세계는 그리드(Grid)라고 불린다. 그리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 ‘엔컴’의 창시자 케빈 플린이 만든 게임 속 가상 세계이다.

이 그리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프로그램이 인간 형상을 한 채 목숨을 건 게임을 펼치는 공간이다. 마치 로마시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결투를 벌이는 것처럼 샘은 가상 세계의 가상 캐릭터들과 승부를 벌인다. 아버지인 케빈 플린이 자신을 형상화해 만든 클루가 창조자인 아버지를 배신하고 그리드를 지배하는 트론의 세계에서 샘은 클루와 클루의 부하들에 맞서 한 판 승부를 펼친다.

영화 트론 제작진, 있을법한 이야기 위해 과학계와 소통

영화의 감독을 맡은 조 코진스키는 “우리는 과학기술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SF영화이지만 새로운 법칙이 통용되는 영화로 그려내려 했다”고 덧붙였다. 코진스키 감독이 말한 새로운 법칙이란 다름 아닌 ‘있을법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코진스키 감독과 제작자 숀 베일리는 영화 촬영에 앞서 물리학자, 신경과학자, 로봇공학자 등 일련의 과학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캘리포니아공과대 물리학자 숀 캐럴과 전 제트 프로펄젼 연구소 물리학자 존 딕은 이들이 만난 과학자들의 한 사람들이다.

코진스키 감독은 “우리는 영화의 핵심 장면을 강력한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할 수 있기를 원했다”며 “일련의 과학자들과의 토론은 영화의 이야기를 향상시키고 영화를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도약대가 됐다”고 술회했다.

제작진과 과학자들이 고민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영화 트론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그리드라는 가상세계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어떻게 인공지능을 인간의 형태로 묘사할 것인가’, ‘어떻게 인간을 컴퓨터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표현할 것인가’, ‘과거 실적을 기반으로 스스로 진화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은 어떻게 그릴 것인가’, 그리고 ‘퀀텀 공간이동은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이다.

퀀텀 공간이동은 순간적으로 어떤 물체가 매우 긴 거리를 이동하는 기술로 객체를 분해한 뒤 공간이동 이후 객체를 다시 재건하는 기술이다. 트론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 속으로 인간이 들어가는 기술에 퀀텀 공간이동이 응용됐다.

“1982년 첫 번째 트론 이후의 과학적 변화는 퀀텀 컴퓨팅과 공간이동”이라며 “우리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영화제작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딕 박사는 말했다. ‘당신이 어느 날 어떤 조각을 퀀텀 컴퓨터 속으로 공간 이동시키는 것’은 현재 현실세계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공간이동은 수소와 산소가 현실세계에 남아있는 동안 조각의 정보를 컴퓨터로 보내는 과정과 매우 흡사할 수 있다”고 딕 박사는 설명했다.

프로그램의 인간 형상화, 퀀텀 공간이동 등 논의

▲ 30일 개봉 예정인 ‘트론, 새로운 시작’이 제작자와 과학자 사이의 소통을 통해 전작인 ‘트론’을 뛰어넘는 영상혁명과 잘 짜여진 스토리를 선보일 수 있었다. 
과학자들과의 일련의 정보교류는 코진스키 감독이 트론 세계를 상상하는 데 또 다른 활력소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현실세계와 트론의 가상세계를 구별하기 위해 물리학의 법칙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캐럴 박사는 “과학자들로부터의 정보는 스토리를 보다 일관성 있게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현저하게 지능적으로 변했을 때 그리고 알고리즘이 프로그램 그 자체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때 프로그래머들이 배우고 변하고 그들이 처음에 했던 것을 뛰어 넘어 무엇을 할지에 대해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과연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처럼 지능을 갖추며 열정과 개성이라는 인간 특유의 특성을 가질 수 있을까’ 또는 ‘당신이 만약에 컴퓨터 속으로 업로드가 된다면 당신은 그 전의 당신과 똑같은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고 캐럴 박사는 덧붙였다.

과학자들이 이른바 컴퓨터 프로그램의 인간화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코진스키 감독은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사용한 3D 카메라 시스템을 활용했다. 그의 CG 기술팀은 케빈 플린의 젊은 시절을 형상화한 프로그램인 클루를 묘사하기 위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적용됐던 노화기술보다 한 차원 진보된 기술을 사용했다.

제작진은 케빈 플린역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의 얼굴에 모션 캡처 센서를 달았다. 이 센서는 디지털 얼굴을 그려내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얼굴은 이후 젊은 케빈의 몸에 디지털로 합성된다. 코진스키 감독은 “배우가 그 자신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영화가 과학을 이해할 때

과학자들과 트론 제작팀 사이의 모임은 국립과학아카데미의 과학과 오락의 교환 프로그램(Science and Entertainment Exchange)으로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 또는 TV 프로그램의 과학적 원리를 보다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도록 과학자와 제작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나서 자란 많은 관객들과 떠오르는 신예 감독들을 엮어줌으로써 영화작품이 보다 과학기술적으로 정교해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캐럴 박사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사람들은 과학자들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둘 사이에는 문화적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가 어떻게 과학이 작동하는지에 충실해지면 질수록 과학은 그에 따라 혜택을 입고 과학을 보다 심도있게 다룰 때 영화 역시 그에 따른 혜택을 입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12.28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11.07 00:07

펌/ 한국사 바로 읽기

작성: 나태영 2010년 11월 5일 금요일 오전 11:42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이다.

 

꼭 읽어볼만 하다. 강추!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우리 역사 다시 보기|작성자 제포짱

- 위 글은 동아리 후배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글을 써서 SNS 및 얼리어댑터로 유명한 @Dylan Ko 고영혁 후배님이 찾아서 올려준 글로서, 제포짱이라는 블로그 명을 가지고 계신 김장욱님의 블로그에 실린 내용입니다. (http://jeffjwk.blog.me/70091807457). 웹주소만으로도 좋지만, 제가 가지고 있고 싶은 글이기에 노트로 옮겼습니다.. (혹여 너무 길어서 나눠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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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명이 좋아합니다.
    • 나태영 많은 얼숲 여러분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많이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목요일 오후 9:48 · 1명로딩중...
    • 나태영 최락준님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목요일 오후 9:49 · 1명로딩중...
    • 나태영 위 자료는 김효소선생님 한겨레 블로그에서 퍼 나른겁니다. 김효소선생님도 다른 블로그에서 구하신 자료라고 하시더군요.
      목요일 오후 9:51 · 1명로딩중...
    • 강효중 온통 첨듣는 소식들입니다. 자긍심 가져도 되겠네요. 이글을 달달외야 겠는데... 어쩜 좋죠???
    • Tong Shin Rafati
      태영님,제가 얼숲에 들어온후 정말로 수많은 좋은글들을 읽었읍니다. 그러나 오늘 이글은그어떤글들과 비교를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훌륭한 그리고 재미있게 우리선조들의 기록을 올리셨어요. 저는 글자 한자도 빠뜨리지 않고 아까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저는 외국에서 30여년을 넘게 살고 있읍니다. 그동안 단한번도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기죽고 위축된적이 한번도 없읍니다. 항상 우리의 오랜역사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때대로... 한국학생들과 한자리에 모이면 한국사람들의 남나른 나라사랑,부모사랑,친구사랑,마냥정이 많고, 많은 인재들이 있음을 깨우처 줍니다. 남한에 한국은,이곳미국주 제가 살고 있는 Ohio주보다도 적은 나리입니다.
      이런 조그만 나라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음악이면음악,운동이면운동,기술이면 기술을 한국인들이 해내고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한국인이 라는 당당한 마음으로 오늘도 이곳에서 이들과 살고 있읍니다. 고맙습니다,친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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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시간 전 · 1명로딩중...
    • 나태영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허성도 교수님 글을 강연 들으신 분이 쓴 글입니다. 저는 퍼 날리기만 했습니다. 강효중님 동신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짝 짝 짝
      14시간 전 · 1명로딩중...
    • Tong Shin Rafati 알고 있어요^^ 그러나 이글을 이곳에 올렸기 대문에 제가 읽었으니, 친구님께 고맙죠^^고맙습니다.
      11시간 전
    • 임재해
      우리가 글을 읽거나 말을 들어서 공부하려 하는 까닭은 모르는 것을 알려하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르게 알려고 하는 까닭입니다. 이 글은 모르는 사실도 일깨워주고 잘못 알고 있는 사실도 바로잡아주는 내용으로 충만해 있어서, 적어도 제게는 엄청난 공부가 되었습니다. 노트에 올려두어서 늦게라도 읽게 되어 큰 다행입니다.
      이 강연을 한 허교수님은 한문공부를 강조하기 위해 하는 말씀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한문에 능통해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수많은 한문학자가 있었지만 지금껏 이런 연구를 한 분은 아주 드물어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문을 알아서 경전을 외우고 유학자들의 훌륭한 문장이나 사상을 기리는 수준에 머물기 일쑤였지요. 따라서 한문 전문가 양성 못지않게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연구하는 문제의식을 갖춘 교육과 연구활동이 함께 강성해야 합니다.
      허교수님은 한문학과 이러한 역사적 문제의식에 다 밝기 때문에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문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민족사와 민족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면 번역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이러한 연구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한문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한문학을 하고 있는 분들은 한문의 해독능력 자체에만 몰입하지 말고 허교수께서 제기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역대 사서들을 주목하여 과학적, 정치경제적, 문화적 연구로 나아가는 비약을 시도해야 합니다. 한문학이 한갓 중국 경전 중심의 성리학 수준에 머물지 않고, 현대학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문학이 곧 현대 역사철학이자 수학이며 과학이고 물리학이자 정치경제학이며, 문화학이자 지리학이며 사회학이라는 실학적 문제의식을 갖춘 현대 종합학이라는 자각을 해야 한문학이 현대학문의 중심으로서 거듭 날 수 있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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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시간 전 · 1명로딩중...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11.02 22:57

[CEO 특강] CEO에 인문학적 소양 꼭 필요
이장규 하이트진로 부회장 성균관대 강연
기사입력 2010.11.01 17:24:00 | 최종수정 2010.11.01 17:56:05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이장규 하이트진로그룹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매경CEO 특강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주가는 애널리스트의 분석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너무도 불확실한 것이 많죠. 어떤 것이 불확실한 것인지도 모르기에 불확실성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합니다. 이 같은 변화의 구심점이 되고 이를 리드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표현을 최고경영자(CEO)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장규 하이트진로그룹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매경CEO특강에서 130여 명의 경영학도에게 이 같은 `CEO론`을 소개했다. 이날 아침 출장지인 태국 방콕에서 돌아온 이 부회장은 피곤한 가운데서도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학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CEO의 모델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강조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CEO를 보면 시대의 특징이 묻어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창 주가가 올라갔던 CEO는 재무능력이 강조된 CEO였다"며 "김우중 전 회장 같은 CEO는 상인형의 CEO였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CEO지만 지금 시대에도 당시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CEO의 역할은 나라마다, 회사마다, 회사의 지배구조마다 다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CEO 사이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문학적 소양은 현대의 CEO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 강조했다.

그는 "역사, 그림, 음악과 같은 인문학을 공부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대차대조표 읽는 것만으로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CEO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31년간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던 그는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부회장은 "기자에겐 `상품이 왜 안 팔리느냐`가 기사가 되지만, 기업인에게는 `안 팔리는 상품을 어떻게 팔 것이냐` 하는 궁극적인 문제가 관심"이라며 "저널리스트적인 회로에서 기업인의 회로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인이든 기업인이든 업종에 따라 환경이 천차만별인데, 환경이 변하면 인간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심각하게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술산업의 글로벌화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태국 방콕 출장길에 둘러보니 현지의 한류 열풍이 거세 국내 술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본 사케가 사케 하나만 세계화된 것이 아니고 전자제품이나 문화가 함께 세계화된 결과물이라고 본다면 우리 술도 세계화를 추진해볼 만한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최승진 기자 / 사진 = 김성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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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10.20 02:45

가장 창의적인 조직은 ‘생각하는’ 조직 LG경제연, 생각의 힘이 곧 기업과 국가경쟁력 2010년 10월 20일(수)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전 세계 사람들은 하루에 몇 판의 피자를 먹을까?”, “골프공에는 몇 개의 구멍이 있을까?”, “후지산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다소 황당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비롯한 주요 회사들은 최근 신입사원 면접에서 이 같은 질문들을 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질문들을 통해 회사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잘 대답하느냐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다. 가능한 한 순발력 있는 신입사원을 채용, 조직 전반에 걸쳐 ‘생각의 힘’을 키우자는 것이다.

생각의 힘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분출되는 샘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의성은 어느 날 문득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깊이있게 고민하고 생각을 해야만 나타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창의성은 개인보다 집단일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GSK 경영자들의 임무는 의사소통 중개

‘Group Genius’의 저자인 키스 소여(Keith Sawyer) 씨는 “창의성은 천재적인 개인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협력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생각의 힘이 강한 기업일수록 그 조직의 생각의 힘도 질적으로 높아져,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 직원이 업무 시간 중에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회사인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은 기업 내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한 독특한 인사배치 방식을 선보였다.

경영자들로 하여금 기업 내에서 지식 중개인 역할을 맡긴 후 이들을 계열사나 다른 근무지에 교차 발령하는 것이다. 이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공통된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타 분야의 지식을 소스로 적용할 수 있도록 생각의 힘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조성해나가고 있다.

독일 지멘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순환배치를 통해 경영자들은 재무와 마케팅처럼 전혀 다른 종류의 업무를 번갈아 수행하게 된다. 경영진부터 생각을 확장하고 다양화해야 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른 것이다.

최근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 중에는 전공과 관계없이 컨설턴트를 뽑는 회사도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경영학이라는 관점에서 보지만 음악, 공학, 교육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믹피어스(Mick Pearce)는 이 원리를 너무 잘 아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최고 기온이 섭씨 38도에 이르고, 최저 기온이 섭씨 5도까지 내려가는 호주 멜버른에 에어컨 없는 건물을 설계해 가장 창의적이고 친환경적인 건축가로 이름을 날린 건축가다. 멜버른 제2청사인 이 건물은 에어컨이 없어도 실내 온도는 24도를 유지하고, 같은 규모의 건물에 비해 냉방용 전력이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흰개미와 사람피부에서 얻은 건축 아이디어

흥미로운 것은 이런 아이디어를 흰개미와 인간 피부에서 얻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나 생태학 등을 공부하면서 흰개미가 집을 어떻게 짓는지, 그리고 사람의 피부가 어떻게 체온을 유지하는지 그 원리를 파악한 후 그 원리들을 자신의 건축물에 적용했다. 종전의 건축가들처럼 건축만 생각했다면 멜버른의 놀라운 건축물은 아직까지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 건축가 믹피어스(Mick Pearce) 
최근 교육계에서는 ‘자기주도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이 부각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급속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능동적인 학습 역량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인 역시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 속에서 능동적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은 소수의 리더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일본에는 ‘생각 없는 인간’이 놀랄 만큼 증가했으며, 그 결과 집단으로서의 일본인의 지능은 현저히 떨어졌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는 곧 상명하달식의 기업 풍토가 계속 이어진 결과다.

LG경제연구원 박지원 책임연구원은 “조직에 있어 ‘생각의 힘’이 약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조직원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받지 못했거나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거나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을 받은 경우 사고능력은 곧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환경 역시 금물이다. 개인의 머리 속에서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하더라도 정작 이를 표출하지 않는다면, 이는 조직 차원에서 생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생각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는 무기력감을 학습하게 돼, 점차 생각조차 안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생각의 힘이 위축되는 또 다른 원인은 근본적으로 생각을 확장시키는 힘이 부족한 경우다. 지금과 같이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 속에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즉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낼 수 있는 생각들이 필요하다. 조직은 항상 “뭐 새로운 생각 없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경쟁력 있는 새로운 생각은 잘 창조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는 자신의 주위 밖에 보지 않는 현대인들의 좁은 시야 때문에 사고의 정지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기업 내 구성원들의 업무 형태를 보면 대개의 구성원들은 관련 업무 영역 내에서,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전혀 다른 지식 기반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기회도 부족하거니와 그런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비슷한 지식이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게 되면 동질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생각이 확장되기 어렵다.

CEO 묻고 기다리며 열심히 들어야

새로운 생각에 대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태도도 생각의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새로운 생각은 첫 시도라는 점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안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면 기존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각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결국 조직은 창조적이고 확장된 사고를 하기보다 틀에 박힌 사고에 갇혀 의사결정을 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 마이크로소프트 구인 사이트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고 어떤 의미에서 다소 황당한 수량에 대해 추정 논법을 사용해 단시간에 대략적인 개수를 산출하는 방법을 ‘페르미 추정’이라고 한다. ‘페르미 추정’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페르미 추정도 반복적 연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강화시켜나갈 수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조직에 있어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리더에서부터 끊임없이 구성원들의 생각을 자극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업무의 방향을 지시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제시하기에 앞서 구성원들에게 생각할 문제를 던져줘야 한다는 것. 실제로 GE의 리더들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구성원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하고 있다.

질문을 던진 후에는 구성원들이 충분히 생각할 만큼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 혁신적 발명품을 개발한 AT&T의 벨연구소는 “위대한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식적인 기업 철학을 갖고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독촉하거나 업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마지막으로 “생각의 소통이 자유롭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리더가 말하기보다 주로 듣는 역할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책임연구원은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발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리더도 함께 논의에 참여해 구성원들의 생각을 계속 자극시켜나가야 한다며 이때 리더가 가르치려고 한다든지, 윗사람으로서 지적하고 비판하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10.20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10.01 06:47

문화로서의 과학, 그리고  과학사는 창의성을 증진하는가? 2010년 09월 30일(목)

미르(miR) 이야기 과학사는 과학이 반드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 쿤이 물리학의 예를 들어 설명했던 것처럼, ‘톰슨-러더포드-보어’로 이어지는 원자모형의 발전과정은 직선적이지 않다.

현대진화론의 발전과정에서 경제학의 게임이론이 받아들여진 역사는, ‘협동’이라는 진화론의 난제를 해결하는 문제풀이 과정 속에서 학문간의 협업이 이뤄진 경우다.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이 하나로 통합되는 역사는 수많은 논쟁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분자생물학의 급속한 발전은 개체를 중심으로 연구되던 진화론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유전자 수준에서 위협받던 자연선택의 보편성 문제는 통계학자, 고생물학자, 지리학자, 생화학자, 분자생물학자 등이 참여한 지루한 논쟁과 협력을 통해 해결돼 왔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증거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 동안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단백질을 강력한 유전물질 후보로 간주했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유전물질이 단백질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그의 강의에 큰 영감을 받았던 왓슨과 크릭은 결국 DNA가 유전물질이며 이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대발견을 이끌었다. 과학의 발전과정은 하나의 이론으로 포섭하기 힘든 다양성의 총체다.

과학사가 발견의 다양한 경로들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자의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기술된 과학자들 중 과학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거의 없다.

그들의 발견이 과학의 실제모습과 과학사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 토마스 쿤이 반대했던 왜곡된 과학교과서의 학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과학사가 과학자들의 창의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희망에 불과하다.

과학과 타학문의 연결고리로서의 과학사

일반적으로 인문학은 ‘문/사/철’,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고 한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특성상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윤리학을 전공하는 인문학자에게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고려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10년이 지난 논문은 잘 펼쳐보지도 않으며, 기념비적인 논문들만 가끔 언급하고 읽을 뿐이다. 과학은 태생적으로 비역사적인 특성을 지녔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과학이 아닌, 문화로서의 과학을 이야기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대화하는 방식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과학이 다른 학문에 영향을 주는 경우다.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자연과학의 성공적인 방법론은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과학의 발견들이 철학에 미친 영향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둘째, 과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일은 17~18세기 자연철학과 과학이 크게 구분되지 않던 시기에 자주 등장했고, 19~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측정량이 이론을 제한하는 과학의 세속화 여정과 관계된다. 다른 학문에서 이론의 영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론은 재확인 가능한 측정량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사이비과학과 과학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다른 학문이 과학의 외부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메타과학 혹은 과학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공간에서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구조를 탐구하거나(과학철학), 과학의 역사를 통해 과학의 본질을 알아가거나(과학사), 과학자사회의 특성을 인류학적으로 탐구(과학사회학)해나갈 수 있다.

과학은 독특한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어떤 학문들에도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스며들어 그 학문 자체의 성격을 논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미학사회학’이라는 분야도, ‘사회학철학’이라는 분야도, ‘윤리학사회학’이라는 분야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과학학은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를 소재로 삼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과학학은 본질적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과학학은 과학이 아니다1.

과학이 보여주는 강력한 특성 때문에, 종종 과학은 제어할 수 없는 도구로 여겨진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성과물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과학의 모든 성과물들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공학과 기술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과학의 발견은 실생활에 응용된다는 것이 증명돼 왔다2.

바로 이 측면 때문에 과학과 다른 학문들의 대화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철학자들은 도대체 과학이라는 괴물 같은 학문체계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하고 싶어하고, 역사학자들은 과학의 역사를 통해 그 비밀을 벗기고 싶어한다. 사회학자들은 과학자사회라는 독특한 성격의 집단을 해부하고 싶어하고, 윤리학자들은 과학의 성과물들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윤리적 성격을 진단하고 때로는 과학의 발전을 제어하려고 애쓴다.

바로 이 공간에서 과학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과학학의 주제들은 다양하고, 그 공간에서 과학과 다른 학문들이 맺는 관계도 천차만별이지만, 과학학이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인 이상, 역사적 탐구는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의 한 축이 되기 때문이다3.

그리고 실제로 과학이 다른 학문과 상호작용하는 마지막 방법이야말로, 과학이 대중과 사회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영역이 된다. 과학에 종사하지 않는 학자들과 대중들은 바로 이 공간을 통해 과학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과 문화의 연결고리로서의 과학사

과학은 유럽에서 탄생했다. 과학이 바로 그러한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문화도 유럽에 종속적이다. 유럽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오랫동안 배양돼온 과학은, 그 문화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유토피아’ 등을 비롯한 유럽의 문학작품들 속에서 과학이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방식으로 과학은 문화의 일부로 흡수된다. 과학이 문화의 일부가 된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유럽과 유럽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 그리고 일찍부터 과학을 수입했던 일본 정도가 과학과 다른 학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로서의 과학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과학을 일종의 도구로 수입했다.

서구열강들이 과학을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도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였다. 서구인들이 강한 이유는 과학 때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으며,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과학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식이 논의됐다. ‘동도서기론’을 비롯한 다양한 부국강병론에는 당대 지식인들의 이러한 고민이 반영돼 있다.

제국주의 정당화의 도구로서 수입된 과학이었지만, 과학이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과학을 제도화하는 방법에 따라 국가별로 과학의 모습은 상이해졌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관계가 모호하게 인식되면서 문화로서의 과학이 들어설 여지는 좁아졌다.

과학을 통한 기술, 기술을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논리는 상당히 강력한 이념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지금까지도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과학기술이라는 이념은 문화로서의 과학을 정착하는데 여전히 방해가 되고 있다.

결국, 도구로 수입된 과학이 제도적으로, 이념적으로 강화될 경우 과학기술강국과 같은 실용성의 측면에서만 과학이 다뤄지게 된다. 문화로서의 과학이라는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가 겪는 다양한 모순들의 축소판이다. 압축성장을 겪으면서 우리가 얻은 것들 못지 않게, 우리에겐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있다.

한국엔 도구로서의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서의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도구로서의 과학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도구로서의 과학만을 강화하면서 우리가 잃은 것, 그것이 바로 문화로서의 과학이라는 측면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공계 기피와 인문학의 위기, 청소년들 모두가 변호사와 의사만을 꿈꾸는 기형적인 한국사회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인문학의 위기와 이공계 기피현상은 같은 뿌리에서 기원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의 기준을 부자가 되는 것에서 구할 때, 자본주의의 가장 잔인한 모습이 구현될 때, 과학도 인문학도 번창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만든 유럽에서도, 자본주의를 극한까지 발전시킨 미국에서도 과학의 문화적 모습이 남아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의 잔재를 목도할 수 있다. 문화로서의 과학은 사회의 건강성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그것은 청소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인가의 문제이며, 사회의 구성원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곳에서 과학은 문화가 된다. 과학이 문화가 된 곳에서 그 문화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은 이렇게 형성된 문화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또한 문화는 과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고리 속에서 인문사회과학이 언제나 한 축을 담당한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는 절반쯤은 학문적 자폐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공계 기피현상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문화로서의 과학은 언제나 역사를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역사를 내팽개치고서는 과학의 문화적 속성을 거론할 수조차 없다. 그 과정을 건너뛴 채 현재 서구열강의 제도적 측면만을 분석해봐야 과학문화는 정착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자가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과학사에 무지할 수 없다.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된 곳에서는, 자신의 학문이 가진 역사에 무지한 과학자가 과학자사회를 이끌 수조차 없다. 허버트 스펜서, 반네바 부쉬, 제임스 코넌트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이자 과학정책의 입안자들이 과학사를 깊이 공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학사는 과학이 문화로 정착하는 곳에서 필수적인 단계가 되고, 그렇게 형성된 문화가 곧 과학과 과학사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로서의 과학, 그 곳에서 과학사는 곧 그 나라의 역사다.

1. 따라서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과학학 전공자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방식과, 과학자들이 현장에서 경험한 방식에는 언제나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과학자가 아닌 과학학 전공자들이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대부분의 역할을 맡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2. 이는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의 일부분일 뿐이다. 과학과 기술 모두 자체적인 발달의 역사와 동력을 지니고 있으며 둘의 종속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지 바살라의 ‘기술의 진화’를 보라.

3. 이상욱, “역사적 과학철학과 철학적 과학사,” 한국과학사학회지, 24 (2002).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저작권자 2010.09.30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9.28 03:44

[송호근 칼럼] 조상숭배의 나라 [중앙일보]

2010.09.27 19:46 입력 / 2010.09.28 00:25 수정

지난 추석 명절을 잘 쇠셨는지, 부모와 일가친척은 평안하신지, 조상은 만나뵈었는지, 그리고 청명해진 가을밤 그윽한 달빛을 맞으셨는지. 우리 정서엔 꼭 들어맞는 이런 인사의 뒤편에는 앞앞이 말 못하는 갑갑증과 파열음이 꿈틀대고 있다. 부모, 친지와의 만남이 항상 저 환한 달빛과 같으면 좋으련만, 가족사엔 언제나 기대와 원망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서로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게 명절이다. 말이 명절(名節)이지 수백 년 대물림된 행사를 치러야 하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뭇한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한국만큼 명절이 제례(祭禮), 특히 조상 제사로 일관되는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말 개화기 선교사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미몽의 백성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자의 나라’로 뭉뚱그려 묘사했는데, 세계에서 유례없는 조상숭배 열기만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유교 문명의 종주국인 중국은 물론 주변국인 일본과 월남에서도 조상 제사를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교문화권, 아니 세계에서 한국이 조상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나라가 된 까닭,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위패 앞에 은덕을 비는 나라가 된 까닭을 정작 우리도 잘 알지 못한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풍경인가라고 어른들은 짐짓 위엄스러운 표정을 짓겠지만, 남녀 간 불합리한 역할, 가족 간 불공평한 노력봉사와 비용조달에 가슴앓이하고 시간을 쪼개 품앗이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소소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게 요즘의 추세다. 아마 귀경길에서 언쟁깨나 했을 부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의례에 쏟아붓고 허둥지둥 돌아설 때 그런 회의가 들지 않겠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유별난 ‘조상숭배의 나라’가 되었을까?

1894년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는 오백 년 도읍지 한양에 종교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종교 없는 제국은 없다는 문명사적 시선으로 보면, 사찰은커녕 공자 사당 하나 없는 유교국가의 수도가 이상했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무속과 민간신앙에 푹 빠져 있는 조선인들을 목격했다. 콜레라가 습격한 마을엔 고양이 그림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 무당이 있었고, 으슥한 곳마다 귀신이 살았다. 귀신 종류도 다양해 그녀는 36가지 귀신 이름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이 과도한 무속과 민간신앙을 조상제례로 전격 대치한 계기가 바로 조선 건국이다. 고려 말까지도 명절은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는 집단축제였다.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한 조선은 민간신앙을 일소할 방법을 주자학에서 찾았다. 제천(祭天)과 제사(祭祀)가 그것이다. 경복궁 우측에 사직단을 지어 하늘신과 토지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좌측에 종묘를 지어 제사의 기원을 마련했다. 15세기 말 성종은 아예 『경국대전』을 편찬해 국법으로 반포했다. 예제(禮制)에 이런 조항이 있다. ‘6품 이상 문관이나 무관은 3대까지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일반 서민은 부모에게만 제사 지낸다.’ 잡신을 섬기는 자는 처벌되었다. 빈곤한 서민은 위패를 모시고, 명절 땐 두어 가지 음식으로 족했다. 굶는 판에 더 차릴 것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양반이 향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봉제사는 충군효친의 규율 수단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격식과 요란한 상차림이 강제됐다. 조상숭배가 통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이자 봉제사는 곧 가문의 위세경쟁으로 변했다.

유교는 내세관이 없는 게 특징이다. ‘조상숭배의 나라’에서 불교와 주술신앙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다. 미국 선교사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기』에서 ‘코레아인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에, 사고방식은 불교에 속하며, 곤경에 빠지면 귀신을 믿는다’고 썼다. 21세기 대명천지에 귀신을 믿는 사람은 이제 없어졌고, 외래종교가 유입되자 한국은 다종교사회로 변했다. 그런 와중에 유교는 제천(祭天) 기능을 다른 종교에 넘겨주고 주로 생활의례, 특히 제례(祭禮)로 살아남았다. 명절이라는 축제의 시간을 제사로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조상숭배의 나라’가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런 내력을 알았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조상을 기리는 방식은 여럿인데 왜 반드시 상차림 형식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조상숭배가 왜 자기 가문(家門)에만 국한돼야 하는가. 전자는 덮어두고라도 후자는 의미심장하다. 탁월한 학자와 선비, 그리고 민족 영웅과 구국의 정치가들이 가득한 오천 년 역사에서 국민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할 선현들을 기리는 데는 인색했다. 명절마다 천여만 명이 이동하고, 집집마다 족보 하나쯤은 갖춘 세계 유일의 ‘조상숭배의 나라’에서 다 같이 숭배할 조상이 이처럼 없는 것도 너무 특이하지 않은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9.26 00:51

<조선불교통사> 우리말 출간 
2010년 09월 25일 (토) 14:18:56 이길상 기자 bohwa@newscj.com

 

   
▲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서 역주하고 동국대 출판부에서 간행한 <역주 조선불교통사>(동국대 출판부 제공)
“한국불교사 통해 우리 문화전통의 자긍심 드러내”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조선불교통사(불교통사)>가 우리말로 번역됐다. <불교통사>는 이능화

거사가 편찬 저술하고 육당 최남선이 교열한 한국불교 최초의 종합역사서이자 불교백과전서이며,

선사들의 저작물을 담고 있는 불교전집이다. 순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372년) 이래로

<불교통사> 원고가 마무리되는 1916년까지 1544년에 이르는 한국불교사를 총결한 역사의

보고이다.

이 책은 순 한문으로 기술돼 있어 한글세대가 자료를 활용해 연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을 인식한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원장 박인성)은 2002년에 역주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이후 역주사업을 진행한 지 8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역주사업은 2002년에 한국연구재단(구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국학 분야 기초학문육성지원

사업으로 선정됐다. 역주에는 이법산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을 연구책임자로 해

효탄스님(조계종 문화부장), 김진무(동국대 불교문화원) 교수, 한상길(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한상길 교수는 <불교통사> 간행에 대해 “이 책은 일제하의 어려웠던 시기에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룩한 작업으로서 당시의 학계와 문화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특히 한국의 불교사를 통해

우리 문화전통의 자긍심을 펼쳐냈던 사실은 13세기 고려 말 몽고의 압제 하에서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스님의 업적에도 비견된다”며 “두 책은 공통적으로 우리 불교사를 통해 민족의 문화적

가치를 증대시켰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일본이나 중국, 세계의 불교학자들이 한국불교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로 인식할 만큼

그 학술적 가치가 독보적이다. 또한 문학과 철학 등 인문학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인용되고 있다.

 특히 <불교통사>에 실려 있는 고승들의 비문과 사적기들은 1차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 금석문을 집대성한 <조선금석총람>이 <불교통사>가 나온 뒤인 1919년에 간행된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당시 불교 관련 문헌과 금석문을 망라한 자료집으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불교통사>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훈민정음의 어법 원류가

범어에서 왔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이러한 의견은 일찍이 국어학계에서 주목한 바 있지만 그

전문이 번역 소개되는 것은 이 전집이 처음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관련연구자들이 한 번도

언급조차 하지 않은 석굴암 조성에 관한 내용을 비롯해 불교미술사 분야의 다양한 기록과 자료가

수록돼 있다.

이 외에도 민간에 전래되거나 사서에 언급된 사찰들의 연기설화, 승려와 관련된 신이한 괴담,

각종 민속과 풍습, 제도 등이 다양하게 수록돼 문화콘텐츠의 보고로 그 활용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천지일보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9.20 11:14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창의력 독특한 시각, 모방의 창조적 재해석, 열린 기업문화 2010년 09월 20일(월)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동맹군을 폭격하기 위해

사용한 공중 폭탄을 의미한다. 이 블록버스터는 대규모 자본력과 배급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영화시장을 융단 폭격하는 영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탄탄한 스토리텔링이다. 쉽게 말해 기발한 아이디어가 할리우드

시스템과 만났을 때 전 세계 영화시장을 경악시켰다는 얘기다.

11세 소년의 호기심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보기

1977년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를 만들기 위해 메이저 영화사를 찾아갔을

 때 어느 영화사도 루카스 감독의 시나리오를 받아주지 않았다.

1970년대 당시 SF영화는 생소한 장르였으며 할리우드에서는 찬밥 신세였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폭스(Fox)사가 루카스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영화사상

불멸의 블록버스터 스타워즈가 탄생한다. 스타워즈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역대

영화 흥행 순위에서도 탑 3안에 들 정도로 전무후무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이 영화 한 편으로 루카스 감독은 할리우드를 좌지우지하는 거장으로 성장했다.

▲ 광선검으로도 잘 알려진 스타워즈는 11세 소년의 호기심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스타워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를 연출한

 루카스 감독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이 11세 소년의 호기심을

읽을 수 있다면 블록버스터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놀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것은 성인의 시각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각에서 바라 본 무엇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상상의 나래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각과 세상 물정을 어는 정도 맛본 성인의 시각은 같은 수가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피터팬과 같은 동심을 유지하는 것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시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루카스와 스필버그의

공통점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봤다는 점이다.

이 같은 독특한 시선이 이들의 창의력의 원천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후 이 두

거장이 만든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검증된 원작, 창조적 재해석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이를 블록버스터에 적용해보면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평범한 주부

조앤 K 롤링을 억만장자 소설가로 거듭나게 해 준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 대표적 예이다.

해리포터의 아이디어는 우리 주위에 마법사가 살고 있다는 단순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소설은 해리포터가 마법을 배우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나 죄수를

수감하는 아즈카반 감옥이 어떤 모습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감독만의 시각으로 재창조했다. 


이를 시각적으로 재해석해 창의적으로 창조한 것이 바로 크리스 콜롬버스 감독이다.

소설로 읽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같은 내용이라도 다른 감정과 정서로 다가온다.

콜롬버스 감독은 해리포터라는 베스트셀러 캐릭터를 자신만의 창의력으로

탄생시켰고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는 소설만큼이나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전 세계 영화흥행의 새 역사를 쓴 아바타 역시 모방의 법칙을 충실히 수행한

 작품이다. 아바타가 흥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3D라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혁명과도 같은 기술을 선보였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연출을 맡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전작인 어비스, 터미네이터2,

에일리언2 등을 통해 SF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이미 신화적인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

아바타는 영화의 내용만 놓고 보면 케빈 코스트너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을 답습했다.

늑대와 춤을에서 주인공은 남북전쟁 당시 다리가 절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어다가 일약 전쟁영웅이 된다. 이후 주인공이 국경지대 인디언들과 마찰을

 겪는 과정에서 점차 인디언들에게 동화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21세기 판도라 행성으로 응용한 것이 바로 카메론 감독의 창의력이다.

아바타는 휠체어 신세인 주인공이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을 정복하기 위해

파견되지만 점차 나비족에 동화돼 이들과 함께 지구인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설정은 어린 시절 늑대와 춤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관객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잠재적 흥행 요소의 역할도 하게 된다.

해리포터 시리즈나 아바타의 흥행이 말해주는 것은 뛰어난 원작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창의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에서 위로의 열린 조직문화

한편 차별화된 조직문화로 전 세계 영화팬의 시선을 단 번에 움켜잡은 블록버스터도

 비일비재하다. 20년 사이 무려 1,500배의 성장을 이룬 픽사의 작품이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1986년 스티브 잡스(현 애플 CEO)는 500만 달러에 픽사를 인수했다.

이후 2006년 그는 픽사를 75억 달러에 디즈니에 넘겼다.

▲ 픽사만의 열린 조직문화로 경이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토이스토리3 



픽사의 첫 작품은 토이스토리1이다. 토이스토리1은 제작비 대비 12배라는 경이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픽사를 단숨에 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사로 부상시켰다.

토이스토리의 성공비결은 장난감이라는 아이들의 아이템을 성인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픽사는 토이스토리가 탄생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했다.

이른바 픽사웨이라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통해 조직 구성원 모두가 토이스토리에

매달리면서 브레인스토밍의 절정을 이룬 것이 바로 토이스토리1이다.

당시 메이저 영화사였던 디즈니, 폭스, WB, 콜로비아의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

경직된 제작 시스템과는 달리 직원 모두가 모여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픽사의 조직문화는 이후 수많은 히트작으로 이어졌다. 토이스토리는 “속편은

전작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할리우드의 속설을 비웃듯 2편과 3편이 모두 경이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토이스토리3는 역대 흥행순위 7위를 기록했다.

픽사의 독특한 조직문화는 종종 구글의 조직문화와 비교된다. 직장은 놀이터이고

직원은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아야 한다는 픽사와 구글의 조직문화는 이들 회사를

그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의 회사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고전의 숲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 나무 찾기

창의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혜성같이 등장하는 아이디어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다이하드2, 클리프 행어 등으로 90년대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주름잡았던 레니

할린 감독은 “내 영화적 상상력의 원동력은 고전에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반지의 제왕으로 뉴질랜드를 호주를 능가하는 관광대국으로 견인한 피터 잭슨 감독

역시 “고전에서 상상력의 원동력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상상력은 기존에 존재하는 세상의 지식(고전)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영감을

 얻는다고 말할 때 그 영감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소재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다수이다.

픽사의 성공스토리를 책으로 엮은 ‘픽사 이야기(흐름출판)’의 저자 데이비드

A 프라이스는 창의력 향상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안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할 것,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해 볼 것,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해 볼 것 등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09.20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9.13 22:06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13~17일 인문주간 다채로운 행사

뉴스와이어 | 입력 2010.09.12 11:08

(서울=뉴스와이어) '기억과 상상으로 여는 인문학의 미래'-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0 인문주간 행사

인문학의 활로를 찾고 대중과 소통하는 2010 인문주간 행사가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건국대학교, 건국대학교 병원 및 광진구 일원에서 열린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후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인문주간 행사는 전국 15개 대학 및 문화단체가 주관기관으로 선정되어 열리는데,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은 지난 2008년 이래 3년 연속으로 주관기관으로 선정되어 그 역량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은 이번 행사의 주제를 '기억과 상상으로 여는 인문학의 미래'로 정하여 인문학과 대중과의 소통을 기획하였다.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6.25 전쟁 60주년으로 우리 근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해이므로 이에 주목하고, 아울러 일상에서 벌어졌던 놀이문화와 소소한 삶의 현장도 기억의 현장으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 일상적 현장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여기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하여 우리의 미래상을 설계하도록 기획한 것이다.

역사적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근대사 현장답사 '100년 전 역사현장을 거닐다'를 기획하여 경복궁과 덕수궁 일대를 역사학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거닐 수 있게 하였고, 아울러 현재 대학생들의 한일관계에 대한 의식을 설문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역사토론의 장을 '역사토론대'로 마련하여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를 되짚고 상생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과거와 현재의 놀이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선현들의 한강 뱃놀이를 재현하여 한강 유람선에서 신명나는 국악 한마당도 펼치며, 현대의 문화 키워드인 디지털콘텐츠 관련 체험 행사도 마련하였다. 글로벌시대의 새로운 구성원인 해외 유학생들이 추억을 '사진과 편지로 풀어내는 고향이야기'로 기획하여 더불어 함께하는 마당과 인문학적 치유를 시도하여 '시와 춤이 있는 치유의 음악회'도 건대병원에서 기획하고 있다.

구체적인 진행 프로그램

13일(월)에는 '2010 인문주간 선포식'에 이어 '역사발언대 : 아픔의 기억을 넘어 상생의 미래를 향한 역사난장(亂場)'이 열린다. 역사난장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의 '한일강제병합 100주는 특강'과 '한일관계에 대한 대학생 설문 조사 분석', '친일과 반인을 넘어'를 주제로 한 역사난장 토론이 열린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대학생들의 역사 인식과 미래 인식의 현주소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4일(화)에는 15시부터 새천년관 국제회의장에서 신복룡(건국대 석좌교수) 교수의 통일인문학 석학초청강연 '한국사회의 좌우익 논쟁'이 열리고, 14시 30분부터 건국대학교 병원 지하1층 공연장에서 '디지로그와 인문학, 문화의 상상력 구현'을 주제로 한 '능동로 문화콘텐츠 페스티발'이 열린다. 인문학과 첨단기술의 만남을 통해 기술과 인간이 대화하고, 상생하는 진정한 인문학의 미래를 미리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5일(수)에는 오후 3시부터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의 해설과 함께 명성황후 피살현장을 비롯하여 100년 전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격동기 역사를 몸으로 체험하는 '근대사 현장답사 : 100년 전 역사 현장을 거닐다' 행사가 경복궁 내 건청궁과 정동 일대에서 열린다. 시간을 거슬러 역사의 현장 속에서 전문가의 강의와 현장 답사를 통해 격동의 100년 전 역사의 생생한 호흡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녁 7시부터는 건국대학교병원 지하1층 공연장에서는 김남조 시인, 김지영 무용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세레나데, 혼성중창단 콘서트콰이어가 출연하는 '시와 춤이 있는 치유와 회복의 음악회'가 열린다. 예술이 주는 따뜻한 감성과 내면의 울림을 통해 무디어졌던 감성을 회복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16일(목)에는 다문화 한마당 '사진과 편지로 풀어보는 고향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문화 한마당 행사는 전시와 공연으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건국대학교 학생회관에서는 아침 9시부터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고향에 대한 추억의 사진과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전시하고, 오후 4시부터는 학생회관 중강당에서 '고향에 보내는 편지 낭송 및 다민족 전통문화 공연'이 열린다. 세계 각국의 문화를 접하는 다문화 한마당에서는 지구촌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인간적 소통에 대한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17일(금)에는 '한강 선유락 : 선상에서 만나는 과거와 현재의 놀이문화'가 열린다. 오후 1시부터 건국대학교 풍물패 열림터의 '길들이 풍물마당'으로 뚝섬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오후 1시 30분에 한강유람선에 승선하여 4시까지 유람선에서 '한강 선유락'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이 행사는 선현들의 한강 뱃놀이를 재현한 놀이 마당으로, 판소리 이수자인 채수정 명창을 비롯하여 민혜성(판소리이수자), 송은주(경기민요이수자), 나동욱(대금), 이철진(승무), 전통예술단 아우름, 채수정판소리예술단이 출연한다. 한강의 선상에서 익어가는 가을의 정취와 전통예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처:건국대학교

보도자료 통신사 뉴스와이어(www.newswire.co.kr) 배포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9.10 04:52

영화로 살펴보는 자연재해와 과학 재난에 대처하는 끊임없는 노력 2010년 09월 10일(금)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는 한 번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를 동반한다. 이 때문에 인류에게는 재앙이지만, 역으로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서스펜스, 재난을 극복하는 주인공의 영웅담으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자연재해를 모티브로 차용한 할리우드 고전을 꼽는다면 1939년 제작된 영화 오즈의 마법사(빅터 플레밍 작)를 꼽을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는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로 내던져진 도로시의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트위스터, 토네이도의 핵을 쏴라

오즈의 마법사를 눈여겨봤던 장 드봉 감독은 1996년 영화 트위스터를 연출했다. 트위스터는 어린 시절 트위스터라는 회오리 바람에 아버지가 날아가는 것을 목격한 주인공 조가 토네이도를 연구,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토네이도는 라틴어 ‘tornare(돌다)’에서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매우 강하게 돌아가는 가늘고 긴 깔때기 모양의 회오리 바람을 일컫는다.


자료 수집을 위해 조는 토네이도 내부의 풍속, 기온, 압력 등의 수치를 계측할 수 있는 계측기 ‘도로시’를 개발, 도로시를 토네이도 속에 설치하려고 노력한다. 토네이도 계측기 도로시는 실제로 토네이도 연구가들이 궤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인 T.O.T.O에 대한 감독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사용된 관측기기인 도로시는 토네이도와 같은 소규모 기상현상을 관측할 때는 이용할 수 있지만 최근 한반도를 강타한 곤파스와 같은 태풍을 관측하는 데는 이용할 수 없다. 태풍은 토네이도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가지는데, 그 에너지가 1945년 일본 나카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약 만 배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태풍 관측에는 여러 국가에 걸친 레이더, 항공기, 인공위성 등 다양한 첨단장비를 이용한다. 이를테면 레이더를 통해 태풍의 위치를 추적하고 자동기상관측자료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부자 뿐?

한편 투머로우(2004, 롤랜드 에머리히)는 지구온난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이다.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게 되고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공동 대응과제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한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유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2007년 제4차 보고서의 자료가 왜곡됐다는 의혹이 지난 연말 제기돼 이른바 ‘기후게이트’로 확산됐으며, 최근 국제아카데미위원회(IAC)는 지난달 30일 기후게이트를 조사한 결과 보고서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이후 2012(2009)를 통해 스펙터클과 노아의 방주를 적절히 버무렸다. 인류의 재앙을 간파한 선진국들이 일부 부자들에게만 현대식 노아의 방주에 승선할 수 있는 승차권을 비밀리에 판매한다. 가난한 주인공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승선에 성공하고 이를 통해 부자와 빈자가 인류 종말에 앞서 극적 화해를 이룬다는 것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이다.

영화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미래 기술의 혜택(현대식 노아의 방주)이 단지 부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복제인간을 통해 인공장기를 구입, 불로장생을 꿈꾼다는 내용을 그린 아일랜드(2005, 마이클 베이 작)와 일맥상통한다. 이 같은 설정은 할리우드가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로써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미국이 단지 자본논리에 의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파하는 역할도 한다.

동물의 공격, 환경오염에 따른 필연 될 수도

이밖에 태풍이나 지진, 해일 등과 같은 재난뿐만 아니라 동물의 공격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스펜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새(1963)는 인류를 공격하는 새와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 새 이후 정체불명의 괴생물체의 공격을 다룬 수많은 아류작이 제작됐는데 이러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이들 괴생물체의 탄생이 인류의 무분별한 환경오염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예로 한국영화 괴물(2006, 봉준호 작)은 한강에 버린 포르말린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괴물고기를 그린 영화이다.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로는 해운대(2009, 윤제균 작)를 꼽을 수 있다. 해운대는 2004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간 인도네시아 쓰나미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지진해일 일명 쓰나미는 해역지진이 발생해야 가능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83년과 93년 두 차례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지진해일, 각각 7.7, 7.8 규모)로 인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기상위성 천리안, 수치예측모델 등 첨단장비 무장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막기위해 우리나라는 지난 6월27일 발사된 통신해양기상위성 ‘천리안’을 시험운용 중에 있다. 천리안은 앞으로 7년간 동경 128.5도의 적도 상공 3만 6000킬로미터 고도에서 지구와 같은 속도로 자전하면서 기상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천리안위성은 태풍, 집중호우 등의 위험기상 감시와 초단기예보지원, 수치예보모델의 입력 자료 활용, 예보지원과 기후분야 활용 등에 이용된다.

기상자료가 수집되면 이를 ‘수치예보모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예측자료를 산출한다. 수치예보모델은 전 지구적으로 정지궤도 기상위성과 극궤도 기상위성자료를 수집해 자료동화에 활용한다. 국가기상위성센터는 상세한 위성관측 및 분석자료를 이용해 수치예보모델의 입력자료 생성을 지원하고 있다.

수치예보모델은 그 계산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예보의 정확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 슈퍼컴퓨터 자체가 아니라 슈퍼컴퓨터에서 구동되는 수치예보모델 프로그램의 성능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기상예보가 빗나갈 때 받는 ‘슈퍼컴퓨터로 테트리스 게임이나 하고 있냐’라는 비난은 기상청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기도 하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100% 완벽한 수치예보모델의 탄생은 불가능하다. 정확한 기상예보를 위해서는 예보관의 역량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대략 기상예보 정확도는 수치예보모델성능 40%, 관측자료의 양과 질 32%, 예보관역량 28% 순이다. 기상청은 영국의 선진 수치예보모델을 도입해 우리 환경에 맞게 조정해 사용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9년에 걸쳐 독자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09.10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9.01 04:41

역사의 큰 자랑, 귀주대첩 강한 비바람 등진 고려군 쾌승…애국심도 한몫 2010년 09월 01일(수)

‘사이언스타임즈’와 ‘국방일보’가 지난해 6월 29일 MOU를 맺고 콘텐츠를 제휴하기로 했다. 이로써 사이언스타임즈의 과학·창의교육 콘텐츠가 70만 국군장병들에게 보급되고, 국방일보의 글로벌 이슈에 관한 우수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활용하게 됐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국방일보에 연재 중 ‘기후와 전쟁, 역사와 기상’을 연속 게재한다. [편집자 註]

▲ 강감찬 장군의 초상화 
기후와 전쟁 2007년 국군의 날, 4400톤급 한국형 구축함이 해군에 인도돼 실전에 배치됐다. 이 구축함은 5인치 주포 1문과 일명 ‘골키퍼’라 불리는 근접방어무기체계(CIWS), 대함·대공 유도탄, 어뢰 등을 장착했다. 대공·대함 레이더와 수중음탐기, 해상 작전용 헬리콥터 등도 갖추고 있다. 한 마디로 공수능력이 크게 강화된 최신형 구축함이다. 해군은 이 구축함을 ‘강감찬’함이라 명명했다. 귀주대첩에서 거란을 격퇴시킨 강감찬 장군의 이미지가 나라를 지키는 해군력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신예 구축함에 명명될 정도로 강감찬 장군은 우리 역사의 큰 자랑이다.

거란(契)은 4세기 이래 동 몽고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민족의 국가로 고대 튀르크어로 ‘키타이’라고 불렸다. 중화항공(Cathay Pacific)에서 Cathay가 바로 키타이에서 유래됐을 만큼, 거란은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되기 전까지 상당한 국력을 자랑하던 나라였다. 이런 거란에 대해 고려는 태조 왕건 때부터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진정책을 펼쳐왔다. 이것이 원인이 돼 993년 거란은 고려를 1차 침공했다. 그러나 고려는 서희(徐熙)의 외교적 담판으로 전쟁을 종결시켰다.

강동6주(州)가 군사적 거점이 되자 이를 차지할 목적으로 거란은 강조(康兆)의 정변을 구실로 1010년 제2차 침략을 시도했다. 별다른 소득 없이 철수한 거란은 1018년 12월 3차 침공을 단행했다. 거란 성종은 소배압에게 10만 대군을 줘 고려를 정복할 것을 명했다. 고려는 강감찬(姜邯贊)을 상원수,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삼아 거란에 맞서 싸운다.

강감찬 장군, 을지문덕식 수공작전 사용

물밀듯 쳐들어오는 거란의 군사를 맞아 강감찬은 을지문덕식 수공작전을 사용했다. 소가죽을 꿰어 흥화진 동쪽으로 흐르는 내를 막은 후 거란군이 강을 건너자 물 보를 터뜨려 혼비백산하는 거란군을 공격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전술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소배압은 개경을 향해 계속 진군했다. 거란군은 자주(慈州)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아 또다시 타격을 받았다. 그러자 소배압은 개경 함락을 위해 직할대를 직접 이끌고 신계까지 진출했다. 고려는 성 밖의 모든 작물과 가옥을 불태우거나 없애버리는 청야작전을 실시했다. 또한 후방보급을 차단하는 작전으로 개경사수의 의지를 불태웠다. 정월의 맹추위와 함께 식량보급이 끊어진 데다가 무리한 행군으로 지칠대로 지친 거란군은 결국 개경을 눈앞에 두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던 거란군은 청천강 유역의 연주(漣州)·위주(渭州)에서 강감찬의 공격을 받아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귀주였다. 이곳에서 고려군과 거란군이 대규모로 마주쳤다. 처음에는 양 진영이 팽팽하게 맞섰다. 하늘의 도우심인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강한 비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기 시작한 것이다. 남쪽에서 공격하던 고려군은 백만 원군을 얻은 듯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고려군이 쏘아대는 화살은 백발백중했지만 비바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거란 군이 쏘아대는 화살은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허공만 갈랐다. 강한 비바람을 등에 지고 고려군이 강력하게 진격해 들어가자 패닉 상태에 빠진 거란군이 등을 돌리며 패주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병사는 거란군의 목을 줍기만 하면 됐다고 한다.

▲ 거란 3차 침입로와 강감찬의 귀주대첩 지도 

강한 비바람을 등에 지고 공격한 고려군의 승리

강감찬 장군이 공격을 시작할 무렵, 바람의 급변과 함께 동시에 비가 내렸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압골에서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온난전선 전방에서는 바람이 변하지 않아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랭전선의 이동이 빠른 경우, 즉 활강형 한랭전선이 형성된 경우 귀주대첩의 기상현상이 발생한다. 활강형 한랭전선 전방에 수직적인 구름이 발생하면서 강한 바람의 급변과 비가 동시에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4월 19일에 있었다. 이때 강한 비구름은 충청 해안을 거쳐 내륙으로 이동하며 최고 순간풍속 20m/s 이상의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이보다 바람이 다소 약한 15m/s 였다고 해도 거란군이 비바람을 맞보고 화살을 쏘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전투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세의 사가들이 ‘귀주대첩’이라 이름 붙인 이 전투에서 살아 돌아간 거란군이 겨우 수천 명에 불과할 만큼 고려는 놀라운 쾌승을 거뒀다. 그 이후 거란은 언감생심 고려 국왕의 친조와 강동6주의 반환을 다시는 요구하지 못했다.

기록에 의하면 강감찬 장군은 이미 8살에 천문과 지리에 밝았으며 평생 천문지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날씨와 지형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즉 천(天)과 지(地)를 통달한 명장이었던 것이다. 사가들은 귀주대첩이 우연한 비바람의 도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강감찬 장군이 날씨를 미리 예측하고 이용해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승리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의 연구와 노력의 열매인 것이다.

제공: 국방일보 |

글: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저작권자 2010.09.01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8.21 06:01

“정치에 만족 못 하는 한국인들, 정의에 갈증 느끼고 있다” [중앙일보]

2010.08.21 00:24 입력 / 2010.08.21 00:24 수정

[기획 인터뷰]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주의(majoritarianism)는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히마티온(옛 그리스인의 겉옷)만 두르면 딱 고대 철학자처럼 보일 것 같았다. 서양인치곤 호리호리한 체구에 목소리는 작고 조곤조곤했다. 그의 얼굴엔 평생에 걸친 사색과 명상의 흔적이 담담하게 배어 있었다. 그의 강의가 하버드대생들을 열광케 하는 건 아무래도 ‘지혜의 힘’ 때문인 것 같았다.

인터뷰는 그의 숙소인 조선호텔에서 20일 오전에 이뤄졌다. 그는 사흘간의 살인적 일정에 파김치가 돼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지적 탐험이 즐거운 듯했다.


- 하버드대에서 당신 강의는 매 학기 1000명 이상의 학생이 수강한다고 들었다. 우리가 정의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할수록 정의로운 삶에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의를 공부하고, 그에 대한 책을 읽어도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건 아니다. 나는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들었다. 독자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정의를 말한 철학자들의 주장에 도전하게 하기 위해서다. ”

- 당신 책이 한국에서 30만 부 넘게 팔린 건 혹시 한국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방증이 아닐까. 사회가 부정의 하니까 정의를 더 갈망하는 게 아닌가.

“(웃으며) 나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철학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곤 꿈도 안 꿨다. 한국 사회가 부정의해 내 책이 많이 팔렸다는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정의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이 존재한다. 또 시장의 영향력이 강력해지면서 보다 근본적인 도덕적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에 대한 갈증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 왜 유독 한국인들만 갈증이 큰가.

“그 대답은 여러분이 나한테 해 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을 하려는 열망이 많다는 건 좋은 것이다. 건강한 자극이다.”

- 한국의 교육열은 유명하다. 그런데 교육을 많이 받으면 더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건가. 아니면 교육보다는 인간의 품성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

“품성이다. 교육 수준이 높다고 더 정의롭게 산다는 보장은 없다.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는지가 핵심이다. 과학과 기술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해 정의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철학과 예술, 역사, 인문학 등을 배워야 한다. 사회 지도자가 될 학생들은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도덕적 도전들에 대해 질문하고 배워야 한다.”

- 그게 당신이 정의론을 강의하는 이유인가.

“그렇다. 하버드대의 내 강의는 온라인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다. 무료다. 유튜브나 하버드대와 PBS(미국 공영방송) 웹사이트, 아이튠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맘대로 퍼갈 수 있다. 하버드대의 한국 학생들이 한글 자막을 넣겠다고 하더라. 중국어로도 번역됐다.”

-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30년 전과 지금 학생들은 많이 다른가.

“개인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미국 평균보다는 진보적이다. 그래서 정확히 알긴 힘들지만 바뀐 건 사실이다.”

- 당신은 정의가 공정하고(fair) 좋은 것(good)이라고 했다. 공정함은 소득과 권력, 기회의 공평한 분배와 관련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분배가 잘된다고 좋은 사회는 아닌 것 같다. 분배를 강조한 공산주의는 좋은 사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의에 있어서는 좋은 것(goodness)이 공정함(fairness)보다 우선하는가.

“좋은 지적이다. 사실 공산주의는 공정하지도 않았다. 또 공정한 사회가 좋은 사회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좋은 사회는 공정함과 배분의 문제를 뛰어넘어 일정한 가치와 도덕적 규범이 실행되는 사회다. 교육, 건강, 시민정신, 환경, 예술,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더 나은 것을 지향하는 태도를 갖는 것 등이 좋은 삶의 특징이다. 나는 좋은 삶이 뭔지 모르면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 당신의 주장은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주장과 비슷하다.

“그렇다. 그 부분에선 그가 맞았던 것 같다.”

- 전쟁터에서 살기 위해 적군을 쏴 죽인 병사를 비난하긴 어렵다. 결국 정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닌가.

“전쟁터에서도 정의의 문제가 생겨난다. 군인이 적을 죽이는 것과 민간인을 죽이는 건 다르다. 정의롭다는 건 적절한 수단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 그에 합당하게 행해졌느냐는 문제다.”

- 내가 궁금한 건 시간과 공간, 상황을 초월하는 보편적인(universal) 정의의 원칙이란 게 있느냐는 것이다.

“아주 일반적인 원칙 수준에서 답하자면 그렇다.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돌아갈 정당한 몫을 주는 것이다. 그게 정의의 원칙이다. 문제는 각자의 몫이 얼마만큼이냐는 것이다. 철학자들도 정의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논쟁이 생긴다. 구체적인 상황, 시간과 공간에 따른 갭(gap)은 우리가 채워 가야 한다. 정의의 의미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철학자가 통치하는 사회가 가장 정의롭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철학자들이 좋은 왕이 될 것 같지는 않다(웃음). 철학자 대부분은 비실용적이고 공공 영역(public affairs)에 관한 지식도 없다. 혼란스럽고 편견이 있어도 정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했다. 그게 철학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게 해야 한다.”

-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민중의 이름으로,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됐다. 민주주의는 쉽게 오도(misled)될 수 있다. 어떤 정치 시스템이 최선인가.

“ 민주주의와 다수결주의(majoritarianism)를 구별해야 한다. 무조건 다수의 주장에 따르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건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공동선과 정의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선동 정치가나 폭군을 지지하는 다수는 민주시민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고 논쟁하고 추론하고 숙고하지 않는 다수는 군중(mob)일 뿐이다. 그래서 교육과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투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수결주의인데 착각이다. 시민적 삶(civic life)과 대중적 심사숙고(public deliberation), 시민 교육(civic education)의 질에 모든 게 달려 있다.”

-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국가들 중에서 가장 정의로웠던 국가는 어디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지금 그걸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김종혁 문화스포츠에디터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마이클 샌델(57교수) 1980년 27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전공은 정치철학. 그의 ‘정의’ 강의는 20여 년 동안 이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그는 극장식 강의실을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학생에게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도덕적 딜레마를 소재로 강의한다. ‘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섯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걸 실행하는 게 옳은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같이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강연 동영상을 웹사이트(justiceharvard.org)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강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 『정의란 무엇인가』를 펴냈다. 이 책은 국내 출간 석달 만에 30만부 이상 팔렸다.

1975년 미국 브랜다이스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82년 미국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1971년)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8.20 05:24

'정의란 무엇인가' 샌델 교수 신드롬

한국일보 | 입력 2010.08.19 21:15 | 수정 2010.08.19 21:40

서점가 열풍 너머 방한 강연에 5000명 신청 폭주
학부모 교육열까지 가세… 지방서 버스대절 상경도
샌델 "한국서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 큰 듯"

"마이클 잭슨 공연도 아닌데…."

< 정의란 무엇인가 > 의 저자 마이클 샌델(57)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방한 강연을 준비하던 출판사 김영사 관계자들은 독자들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해외 학자, 그것도 정치철학자의 강연에 마치 유명 팝스타의 공연처럼 참가 신청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정·관계, 학계 인사 등 1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김영사는 지난달 26일부터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샌델 교수의 강연 참가 신청을 받았는데, 당초 1,000명 정도로 신청자를 예상했다가 하루 500명꼴로 신청이 몰리자 지난 3일 서둘러 마감했다. 신청자가 무려 5,000명에 육박한 것이다. 강연 장소도 코엑스로 잡았다가 부득이 4,700석 규모의 경희대 평화의전당으로 바꿔야 했다.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지금도 "뒤늦게 강연 소식을 알게 됐는데, 강연을 꼭 보고 싶다"며 초대장을 양도해 달라는 호소글이 적지않게 올라와 있다.

올해 상반기 32만여부가 판매되며 국내 출판계를 강타한 < 정의란 무엇인가 > 가 저자의 방한으로 다시 한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0~30대 독자층의 '정의'에 대한 관심은 물론, 우리사회의 뜨거운 교육열까지 가세하고 있는 양상이다. 독톡한 토론식 강의로 유명한 샌델 교수의 강연에 중고교생과 학부모들이 대거 참가 신청을 한 것이다. 김영사 관계자는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강의를 듣겠다는 학부모들도 있고, 45인승 버스를 대절해 학원생들을 이끌고 오겠다는 학원도 있다"며 "하버드대 교수가 직접 영어로 하는 강의를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20일 오후 7시 열리는 강연에서 하버드대에서 20년 동안 최고 인기 강좌로 꼽힌 '정의(Justice)' 수업과 똑 같이 청중과 직접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19일 방한 기자회견에서 "5,000여명이나 되는 청중과의 토론식 강의가 유효할지, 나에게도 흥미로운 실험이다"라고 말했다. 강연 참가자들이 사전에 제출한 샌델 교수에게 던질 질문에는 '대북정책' '군 복무 가산점 제도' '연고주의' 등 우리사회 현안에서부터 자본주의 체제 문제, 사형제도 등 심도 깊은 주제까지 망라돼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초청으로 18일 밤 방한, 22일 출국할 예정인 샌델 교수는 19일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오전 대학생들과의 조찬 간담회에 이어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오후 5시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정ㆍ관계 인사 및 각국 대사 등 170명을 상대로 1시간30분가량 정의론에 대해 강연했다. 강연에는 한나라당 정몽준 원희룡 전여옥 의원, 민주당 신낙균 추미애 의원,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해 샌델 교수의 정의론 바람이 정치권에도 불고 있음을 보여줬다.

샌델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내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며 고무된 표정이었다. 자신의 저서가 정치철학서로는 드물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한국인들의 갈증을 반영하는 것이란 그간의 분석들처럼, 그도 "한국에서도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십년 간 미국과 유럽,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가 경제성장에만 치중해서 '좋은 삶'과 '공동선' 등 삶의 중요한 문제를 도외시했는데, 풍요해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며 "윤리적ㆍ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즉 의견의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첫 단계"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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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8.06 22:58

지킬의 후예에 필요한 건 ‘창조적 다중인격’
한겨레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 정여울 /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청소년인문학 /

나쁜 남자, 사이코패스, 팜 파탈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단골 악역들.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눈에 띄게 급증한 악역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어둡고 은밀하고 사악한’ 본성에 호소한다. 결국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던 기존의 스토리와 달리, 최근 급증하는 악역들은 인간의 사악함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악인 예찬으로 흘러가는 듯한 심상찮은 사회 분위기는 ‘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 대한 탐구가 억압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곧바로 그 사악함의 ‘결과’에 노출된다. 인간이 어디까지, 어떻게, 왜 사악해지는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이 악역들은 심지어 참신한(!) 캐릭터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는 이런 악역들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신상품이 아니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사악함이 탄생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에 대한 치밀한 보고서로서 최근 유행하는 ‘도시형 악역 캐릭터’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악인은 ‘우리는 결코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경계심으로 다가와, 나에게도 혹시 저런 욕망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심어준다. 우아하고 지적이고 모범적인 지킬 박사의 또 하나의 자아인 사악하고 야만적이며 폭력적인 하이드. 그는 어떤 도덕과 법률에도 지배당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자극한다. 지킬 박사는 남들 앞에서 모범적인 자아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한다. 그의 위태로운 가면이 찾은 탈출구가 바로 하이드다. 체면이나 명예는 물론이고, 자신의 악행에 대한 죄책감조차 사라진 괴물적 신체, 하이드. 하이드는 지킬이 자신의 ‘저급한 요소’라 불렀던 부분이 육화된 것이었다.

지킬 박사의 실패는 단지 과학적 실험의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출발한, 인간에 대한 왜곡된 ‘사유’ 자체가 문제였다. 지킬 박사의 실패는 단지 과학의 실패가 아니라 사유의 실패고 삶의 실패다. 하이드의 천인공노할 범죄 행각은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하이드는 오직 체면과 명예만이 지상 목표인 위선적인 삶이 도출해낸, 억압된 무의식의 그림자다. 바람직한 사회생활을 위해 요구되는 각종 복잡한 에티켓과 화려한 처세술은 인간의 솔직한 욕망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도시형 라이프스타일’의 끔찍한 대가였던 것이다.

각자의 취향과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드는 자아 이미지를 디아이와이(DIY)처럼 자유로이 고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아한 자아’를 극대화하면 ‘솔직한 자아’가 울고, ‘신중한 자아’를 택하자면 ‘성급한 자아’가 울게 마련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 나 자신조차 쉴 곳이 없어질 지경이다. 내 맘에 드는 자아 이미지, 더욱 ‘나다운 나’의 가면을 가꾸고 다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면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 가면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는 지킬 박사처럼, 남들이 아는 가면과 자신만이 아는 가면의 차이로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매일 ‘가면의 아이디’를 쓰고 컴퓨터 뒤에 숨어 타인을 비난하면서 쾌감을 얻는 악플러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아한 가면’에 비해 ‘초라한 내면’으로 고통 받는 지킬 박사의 후예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딱 맞는 가면을 찾아 행복해지는 가면들도 많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근엄한 정체성의 가면을 훌쩍 벗고 그 어떤 직함도 아닌 그저 ‘나’로서 행복해지는 사람들. 자신이 만든 블로그 공간에서 일상생활보다 더 열정적이고 행복한 ‘또 하나의 삶’을 가꾸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굳이 다채로운 가면을 바꿔가며 쓸 필요가 없는, 어디서나 투명한 자기 자신인 채로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가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면이 많은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위급할 때 쓸 수 있는 가면이 전혀 없을 때다. 우리는 남에게 보이는 ‘사회적 자아’만으로는 인간 본성의 다양성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체면이나 지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일상이라는 무대 뒤편에서 심각한 자아의 붕괴현상을 겪기 쉽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꼭 맞는 가면을 쓸 수 있다면, 억압된 본성을 해방시키면서도 자신을 파괴시키지 않는 저마다의 맞춤형 가면을 발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갑갑한 일상의 책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과 욕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내면의 아이디, 진심의 가면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 ‘나다움’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자기 안의 다양한 가능성개발하는 ‘창조적 다중인격’의 가면을 발명할 수 있을까.

정여울 문학평론가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8.02 16:31

[신경진의 서핑차이나] 북학파 홍대용의 중국역사 삐딱하게 보기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8-02 오전 9:26:28

홍대용(洪大容, 1731~1783). 후기실학파(後期實學派)의 선구자다. 1765년 34세때 숙부를 따라 청나라를 다녀왔다. 3개월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청나라 학자들과 학문, 역사, 풍속 등에 대해 토론하고 귀국 후에도 지속적으로 교우했다. 청나라를 오랑캐로 인식하던 당시 유학자들을 비판하고 청과 서양의 문물 도입을 주장, 북학파의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문집 『담헌서(湛軒書)』를 남겼다. 특히 중국의 안과 중국의 밖을 가르는 경계에 있는 의무려산(醫巫閭山)에서 가상인물 허자(虛子)와 실옹(實翁)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한 『의산문답(毉山問答)』에서는 기존의 화이관(華夷觀)을 타파하고 중화와 오랑캐가 모두 하나라는 ‘화이일야(華夷一也)’ 이론을 내세웠다. 즉 중국의 역사 서술 관점을 교묘하게 거꾸로 뒤틀어 홍대용식의 민족주의 논리를 계발한 것이다. 다음은 그 구체 내용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글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중국 공부가 나름대로의 ‘관점’이 있었음을 확인하기 바란다. 국내 차이나 워처(China watcher)들에게 한국적 ‘관점’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좋은 자료임에 틀림없다.


기주(冀州)는 지방이 천리로 중국이라 일컬었다. 산을 등지고 바다에 임하매 바람과 물이 혼후(混厚 넉넉함)하고, 해와 달이 맑게 비치매 춥고 더움이 알맞고, 물과 산이 영기(靈氣)를 모으매 선량한 사람을 탄생시켰다. 대개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ㆍ요순(堯舜)이 일어나서 초가집에 살면서 자신부터 검소한 덕을 닦아 백성의 재산을 마련해 주었으며, 공손하고 겸양한 모습으로 밝은 덕을 몸소 실천하여 백성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문명한 교육이 차고 넘쳐서 천하가 화락하였다. 이것이 중국에서 이른바, 성인의 정치요 가장 잘다스려진 시대였다.
(중략) 하후(夏后, 우(禹)임금 이름은 문명(文命), 씨(氏)는 하후(夏后))가 천자(天子)의 위(位)를 아들에게 전하게 되자 백성이 비로소 제집 이익만 꾀하게 되었고, 탕무(湯武)가 임금을 내쫓고 죽이자 백성이 비로소 위를 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몇몇 임금의 허물은 아니다. 잘 다스려진 끝에 쇠하고 어지럽게 됨은 시대와 형세의 자연인 것이다.
하(夏) 나라가 충(忠)을 숭상하고, 상(商) 나라가 질(質)을 숭상했으나 당우(唐虞, 도당씨(陶唐氏) 요(堯)와 유우씨(有虞氏) 순(舜)을 아울러 이르는 말)에 비하면 이미 꾸민 것이었고, 성주(成周)의 제도는 오로지 화려하고 사치함만 숭상하여 소왕(昭王, 주 나라 제5대의 임금)과 목왕(穆王, 주 소왕의 아들)부터는 임금의 기강이 이미 떨어져 정사가 제후(諸侯)에게 있었고, 한갓 헛 이름만 안고 윗자리에 기생(寄生)하였으니, 유왕(幽王)ㆍ여왕(厲王)이 천하를 망치기 전에 주(周) 나라는 이미 없어졌던 것이다.
영대(靈臺, 주 문왕이 도성 안에 쌓은 축대. 즉 지금의 공원과 같음)는 놀이를 위해 아름답게 만든 것이고, 구정(九鼎, 하후씨가 구주(九州)에 금을 거두어 만들었다는 솥. 이것이 천자의 보물로 전해졌음)을 보배로 여겨 갈무리한 것이었다. 옥로(玉輅, 주옥으로 꾸민 천자가 타는 수레)와 주면(朱冕, 붉은색 관)은 복식(服飾)을 사치하게 한 것이고, 구빈(九嬪)과 어첩(御妾)은 예쁜 여색을 뺏아들인 것이었다. 이리하여 낙읍(洛邑)과 호경(鎬京)에 토목 공사가 번다하였으니, 저 진시황(秦始皇)이나 한 무제(漢武帝)도 이것을 본받았다 하겠다.
또 미자(微子)와 기자(箕子)를 버리고 무경(武庚, 중국 상(商)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의 아들)을 세워서 은(殷) 나라 도(道)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주 나라의 속 마음을 어찌 숨길 수 있겠느냐? 성왕(成王)이 즉위(卽位)함으로부터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형제간에 다투었던 바, 주공(周公)이 3년 동안이나 동쪽으로 정벌하는데 창과 도끼가 다 부서지고 여덟 번이나 매방(妹邦)에 고시(誥示)하였으나 미련한 백성이 대항하고 따르지 않았으니, 주 나라가 은 나라를 대신함에 천하를 차지하려는 마음이 어찌 없었다 할 수 있겠느냐? 공자(孔子)가 순(舜)의 덕을 칭찬함에는 ‘성인(聖人)이라’ 했으나 무왕(武王)에 대해서는 ‘천하의 좋은 이름을 잃지 않았다.’ 했고, 태백(泰伯)의 덕을 칭찬함에는 ‘지극하다.’ 했으나 무왕을 말함에는 ‘다 착하지는 못했다.’ 하였으니, 공자의 뜻을 크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주 나라 이후로 왕도(王道)가 날로 없어지고 패도(覇道)가 횡행하여 거짓 인(仁)한 자가 황제(帝)로 되고 병력(兵力)이 강한 자가 왕(王)이 되었으며, 지략(智略)을 쓰는 자가 귀하게 되고 아첨을 잘한 자가 영화롭게 되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림에는 괴임과 녹으로 꾀이고 신하가 임금 섬김엔 권모(權謀)를 미끼로 하였다. 이리하여 얼굴을 반쯤 알아도 마음이 맞게 되고 남모르는 식견으로 걱정을 예방하는 바, 상하가 서로 다투어 사욕만 꾀하였다. 아아! 슬프구나. 천하가 번잡하게 됨은 이욕을 품고 서로 대한 때문이었다.
(중략) 어떤 자는 말하기를 ‘나무와 돌의 재앙은 유소씨(有巢氏, 상고 시대의 집짓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친 자)에게서 비롯했고 짐승의 재화는 포희씨(包羲氏, 복희씨(伏羲氏)의 별칭)에게서 시작되었으며, 흉년의 걱정은 수인씨(燧人氏, 불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에서 유래되었고 교묘한 지혜와 화려한 풍습은 창힐(蒼頡, 옛날 새의 발자취를 보고 처음으로 문자(文字)를 만들어 냈다는 자)에게서 근본하였다. 봉액(縫掖, 선비가 입는 도포(道袍)의 별칭)의 위용이 좌임(左袵, 옷깃이 왼쪽으로 덮이게 한다는 오랑캐의 별칭)의 편리함만 못하고 읍양(揖讓)의 허례가 막배(膜拜) 참다움만 못하며, 문장(文章)의 빈말[空言]이 말타고 활쏘는 실용만 못하고 따뜻하게 입고 더운밥 먹으면서 몸 약한 것이 저 추운 장막에서 우유 먹고 몸 강건한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는 혹 지나친 의론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이 떨치지 못한 까닭이 여기서 싹트게 되었다.
혼돈(混沌, 혼돈은 하늘과 땅이 아직 나뉘기 전의 상태를 뜻하므로 큰 순박함이 이미 사라졌다는 뜻으로 도가에서 하는 말)이 뚫어지매 대박(大樸)이 흩어졌고 문치(文治)가 승해지매 무력(武力)이 쇠했으며, 처사(處士)가 제멋대로 의논하매 주(周) 나라 도(道)가 날로 쭈그러졌다. 진시황(秦始皇)이 서적을 불사르매 한(漢) 나라 왕업이 조금 편케 되었고 석거(石渠)에서 분쟁이 생기매 신망(新莾, 신은 국명 왕은 왕망)이 왕위(王位)를 찬탈했으며, 정현(鄭玄, 동한(東漢)의 학자. 자는 강성(康成))과 마융(馬融, 자는 계장(季長). 동한(東漢)의 학자)이 경서를 연역(演繹)하매 삼국(三國)이 분렬 되었으며 진씨(晋氏)가 청담(淸談)을 일삼으매, 신주(神州 중국)가 망하였다.
육조(六朝, 중국의 여섯 나라, 곧 오(吳)ㆍ동진(東晋)ㆍ송(宋)ㆍ제(齊)ㆍ양(梁)ㆍ진(陳)이다)는 강좌(江左)에 부속되었고 오호(五胡)는 완락(宛洛, 宛(완)은 남양, 洛(락)은 낙양. 하남(河南)의 고도(古都))을 처부셨으며, 탁발(拓跋)은 북조(北朝)에서 위(位)를 바르고 서량(西凉)은 당(唐) 나라에 통합되었다. 요(遼)와 금(金)은 서로 주인 노릇하다가 송막(松漠)에서 합쳐졌고, 주씨(朱氏)가 왕통을 잃으매 천하는 오랑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남풍(南風 천자의 덕)이 떨치지 못하고 오랑캐[胡]의 운수가 날로 자라남은 곧 인사(人事)의 감응이기도 하지만 천신(天時)의 필연이다.”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짓되 중국은 안으로, 사이(四夷)는 밖으로 하였습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이 이와 같이 엄격하거늘 지금 부자는 ‘인사의 감응이요 천시의 필연이다’고 하니, 옳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今夫子歸之於人事之感召。天時之必然。無乃不可乎。)”
“하늘이 내고 땅이 길러주는,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 이 사람이며, 여럿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 이 임금이며, 문을 거듭 만들고 해자를 깊이 파서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요, 장보(章甫, 유생이 쓰는 관(冠)으로, ‘유생’을 달리 이르는 말)이건 위모(委貌, 주 나라의 갓 이름)건 문신(文身, 문신(文身)은 오랑캐의 별칭임)이건 조제(雕題, 미개한 민족의 별칭)건 간에 다 같은 자기들의 습속인 것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하고 제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를 지키고 제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한가지다.
대저 천지의 변함에 따라 인물이 많아지고 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물아(物我 주체와 객체)가 나타나고 물아가 나타남에 따라 안과 밖이 구분된다. 장부[五臟六腑]와 지절(肢節)은 한 몸뚱이의 안과 바깥이요, 사체(四體)와 처자(妻子)는 한 집안의 안과 바깥이며, 형제와 종당(宗黨)은 한 문중의 안과 바깥이요, 이웃 마을과 넷 변두리는 한 나라의 안과 바깥이며, 법이 같은 제후국(諸侯國)과 왕화(王化)가 미치지 못하는 먼 나라는 천지의 안과 바깥인 것이다. 대저 자기의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죄가 아닌데 죽이는 것을 적(賊)이라 하며, 사이(四夷)로서 중국을 침노하는 것을 구(寇)라 하고, 중국으로서 사이(四夷)를 번거롭게 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그러나 서로 구(寇)하고 서로 적(賊)하는 것은 그 뜻이 한 가지다.
공자는 주 나라 사람이다. 왕실(王室)이 날로 낮아지고 제후들은 쇠약해지자 오(吳) 나라와 초(楚) 나라가 중국을 어지럽혀 도둑질하고 해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춘추(春秋)란 주 나라 역사책인 바, 안과 바깥에 대해서 엄격히 한 것이 또한 마땅치 않겠느냐?
그러나 가령 공자가 바다에 떠서 구이(九夷)로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법을 써서 구이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 나라 도(道)를 역외(域外)에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즉 안과 밖이라는 구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가 그대로 중국 밖의 역외 춘추(域外春秋)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聖人)된 까닭이다.”


우 임금이 고대 성왕이 아니라 세습왕조를 시작한 임금에 불과하고, 탕(湯) 임금과 무(武) 임금은 윗사람에게 대항하여 역성 혁명을 성취한 최초의 임금이었으며, 사실과 달리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도리어 한(漢) 나라의 행복을 열어 줬고, 전한(前漢) 시대의 치열한 경학 논쟁이 도리어 전한의 멸망을 초래하였다고 홍대용은 실 노인의 입을 빌어 주장한다.
이에 허 선생은 공자가 중국은 안으로, 오랑캐[四夷]를 밖으로 여긴 춘추를 근거로 논박을 시도한다. 홍대용은 다시 실 노인을 내세워 공자를 주 나라 시대에 중국에서 살았던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공자가 중국화되는 순간 ‘중화와 오랑캐’도 주 나라 시대에 중국에서의 ‘중화와 오랑캐’ 관념으로 상대화된다. 이어서 공자가 조선에 와서 중화 문명을 전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며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글을 마무리짓는다.
그 사이에 홍대용은 “사이(四夷)로서 중국을 침노하는 것을 구(寇)라 하고, 중국으로서 사이(四夷)를 번거롭게 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그러나 서로 구(寇)하고 서로 적(賊)하는 것은 그 뜻이 한 가지다”라고 해석한다.
최근 한미 군사훈련 ‘불굴의 의지’가 동해에서 중국 해군의 해상 실전 훈련이 서해에서 펼쳐졌다. 한미’동맹’과 한중전략적’동반자’관계도 삐딱하게 뒤틀어보자. 불변처럼 보이는 진리도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상대화되기 마련이다.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7.30 02:19

꿈과 현실, 과학적 상상력을 만나다 흥행질주 '인셉션'의 Inception은? 2010년 07월 30일(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평단과 대중의 놀라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 7일 만에 15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인셉션(Inception)의 사전적 의미는 ‘개시, 시작’이다. 도대체 무엇을 개시하기에 영화 제목이 인셉션일까? 


영화속 인셉션, 드림머신…림보…킥…토뎀

영화 인셥션에서 개시는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는 첫 번째 단계를 의미한다. 꿈을 꾸었는지 안 꾸었는지도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여기에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코브와 피셔가 같은 공간(비행기)에서 꿈을 꾸고 서로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로 연결돼  꿈에서 이들은 서로 만나게 된다.

아찔한 것은 꿈에서 만난 사람들이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꾸면 또 다른 꿈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꿈의 단계라고 하는데, 현실이 1단계라면 처음에 꾸는 꿈은 2단계이고 2단계 꿈에서 꾸는 꿈은 3단계가 된다. 최종 단계는 림보라는 무의식의 세계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애초 3단계의 꿈을 디자인하려고 한다.

자, 이제 타인의 꿈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했다. 꿈에서 코브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목표 인물인 피셔(킬리언 머피)를 꿈에서 만난 코브 일행은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피셔와 접촉,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상황을 조작한다.

코브 일행은 거대 에너지 회사의 후계자인 피셔로 하여금 아버지가 이룩한 에너지 제국을 분할하도록 인식을 전환해달라는 제안을 라이벌 에너지 회사의 사이토(와타나베 켄)로부터 의뢰 받는다. 코브 일행은 피셔 아버지의 임종 직전, 아버지가 피셔한테 “네가 나처럼 되려고 노력한 것에 실망했다”라는 유언을 듣고 피셔가 회사를 쪼개기로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꿈의 세계를 설계한다.

어렵게 임무를 완수한 코브 일행은 어떻게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코브는 이미 꿈의 마지막 단계인 림보 단계까지 왔는데, 림보에서 탈출을 해야 순차적으로 4단계, 3단계, 2단계, 그리고 1단계인 현실로 돌아 올 수 있다.

코브 일행이 꿈을 깨는 방법은 ‘킥(kick)'이다. 의자에서 잠을 자는데, 누군가 의자를 걷어차면 깜짝 놀라 꿈을 깨듯이 킥이라는 방법이 이용된다.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 이 같은 킥 신호를 인지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전설적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명곡 ‘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란 노래가 사용된다. 코브 일행은 작전 개시 전에 이 노래가 들리면 킥 신호라고 훈련을 받았다.

▲ 3단계 호텔에서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들리면 킥을 알리는 신호이고 이제 코브 일행은 킥을 실행해서 잠에서 깨야 하는데, 잠을 자고 있는 이들에게 누가 킥 신호를 보낼까? 때문에 각 단계별 꿈에서 일행 중 한 명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호텔에서 꿈을 꾸는 3단계는 2단계의 꿈인 자동차 질주에서 자동차가 강물로 떨어지면서 일시적 무중력 상태가 된다.

호텔방에서 둥둥 공중을 떠다니는 이들을 깨우기 위해 아서(조셉 고든 래빗)는 일행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고 간다. 아서는 엘리베이터 줄을 끊음으로써 자유낙하를 유도한다.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꿈을 꾸고 있는 다른 일행들은 그 충격으로 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코브는 킥을 통해 1단계인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기가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여전히 꿈 속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토뎀’이라는 조그만 팽이가 사용된다. 코브가 토뎀을 돌렸을 때 무한정 계속 돌면 여전히 꿈인 것이고 멈추면 현실세계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코브는 이 토뎀을 돌리는데 아쉽게도 멈출 듯 말듯 아슬아슬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즉 코브가 꿈에 남아있는 것인지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인지는 관객 각자의 상상에 맡긴 셈이다.

현실의 1단계,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 꿈 속에서는 도시를 한 번에 부서뜨릴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했으니 이제 현실의 1단계부터 들어가보자. 인셉션의 첫 단계인 드림머신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예상했다시피 현실에서 ‘드림머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의학적으로 꿈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면술은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의식을 꿈을 통해서든 다른 무의식 방법을 통해서든 바꾼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킥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서가 호텔에서 엘리베이터 줄을 폭파시킴으로써 자유낙하를 유도하는데, 이 때 킥의 충격은 과연 이들이 꿈에서 깨어날 만큼 충분한 크기일까? 현실에는 무중량 상태라는 것이 있다. 무중량 상태는 무게는 느끼지 못하는 상태인데, 엘리베이터 같이 자유낙하하는 물체의 안에 있는 사람은 중력가속도와 같은 가속도를 받으며 운동하기 때문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무중량 상태가 되면 마치 바이킹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코브의 조작으로 ‘회사를 분할하겠다’고 인식을 바꾼 피셔는 꿈에서 깨고난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생각을 계속 가질 수 있을까? 사람이 보통 잠에서 깨면 꿈을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못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어떤 규칙이나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 때문에 피셔가 꿈 속에서는 인식을 바꿨더라도 현실에서 이 인식을 기억하고 그대로 이행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2단계인 거리 질주에서 코브일행이 피셔를 납치하고 질주하는 차는 갑자기 도심 한복판에 등장하는 기차의 추격을 받는다. 왜 느닷없이 기차가 등장했을까? 이에 대해 피셔의 방어기작이 작동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피셔의 방어기작이란 대기업의 후계자인 피셔의 경우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무의식에 들어가서 기밀정보를 빼내는 이른바 ‘추출’이라는 작업에 대비해 피셔가 훈련으로 만든 무의식의 방어기작이다.

이 피셔의 방어기작에 프로이트를 적용해보자.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프로이트는 에고(자아)와 이드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드는 성욕, 식욕 등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욕구이지만, 이런 이드는 에고에 의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만약 너무 이드가 억압되면 결국 폭발하게 되는데, 피셔의 무의식이 코브에 의해 심하게 억압되면서 폭발한 이드가 기차의 형태로 분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실의 2단계, 과학적 상상력의 근원은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고 그 꿈에서 또다시 꿈을 꾸는 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감독은 도대체 어떻게 상상했을까? 이제 2단계로 들어가 보자. 고드 셀러 SF 작가 겸 카톨릭대 교수는 지난 22일 열린 제21회 융합카페 ‘과학적 상상력과 SF’에서 작가들이 소설의 아이템을 얻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개인적 선호’를 지적한 바 있다.

즉, 작가 개인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아이템은 훌륭한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인셉션의 각본을 쓴 당사자이자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적용해보면 놀란 감독이 어떻게 과학적 상상력을 SF영화로 승화했는지 엿볼 수 있다.

▲ 인셉션의 각본, 연출, 제작까지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놀란 감독은 영화 ‘메멘토’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메멘토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그때그때 얻은 정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문신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놀란 감독이 기억과 상실이라는 의식의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놀란 감독은 첫 블록버스터 영화인 ‘인썸니아’를 만든다. 인썸니아는 주인공이 백야인 알래스카에서 불면증에 휩싸이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있다. 역시 이 영화에서도 놀란 감독을 잠, 불면증이라는 무의식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했다.

이후 ‘배트맨 비긴즈’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우뚝 선 놀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역시 의식과 무의식을 모티브로 차용했다. 주인공인 배트맨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강도에게 살해당한 것을 목격했을 때의 충격과 우물 속에 빠져 박쥐들에게 공포감을 느낀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돈다.

놀란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의식, 무의식, 기억, 꿈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선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인셉션의 시나리오를 16살 때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셉션은 그가 그동안의 작품에서 갈고 닦은 연출력과 탄탄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의식, 무의식, 기억, 꿈이라는 그의 선호가 빚어낸 마스터피스인 셈이다.

현실의 3단계, 현실의 인셉션

▲ 꿈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주는 토뎀 

영화 인셉션이 대중에게 인셥션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보자.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 코브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세계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해피엔딩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기본적으로 감독은 해피엔딩인가, 아닌가의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영화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이 영화가 대중에게 던지는 인셉션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고드 셀러는 최근 SF계의 이슈 가운데 하나는 인종주의라고 소개한 바 있다. 즉 왜 항상 미국의 백인 남자가 인류를 구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냐는 것이다. 단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영화 인셥션 역시 미국 백인 남자인 코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코브를 도와 꿈을 설계하는 설계자 애리어드니(엘렌 페이지)는 프랑스 파리대의 대학생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미국인(미국)이고 주인공을 돕는 조연은 프랑스(EU)라는 설정은 미국과 EU간의 국제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꿈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설정은 영화에서는 매우 흥미롭고 경이로운 아이디어이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영화를 보고나서 불현듯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작하고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면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 심히 궁금해진다.

인셉션과 유사한 영화로 네티즌들은 서슴없이 ‘매트릭스’를 꼽는다. 매트릭스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세계이고 진짜 세계는 기계들이 지배하는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인셉션이 꿈과 현실이라는 의식과 무의식을 그렸다면 매트릭스는 가상세계와 실제세계라는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그린다. 모티브는 다르지만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꿈이든 가상세계이든 누군가에 의해 조작됐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조작한 가상세계에서 주인공 네오는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통제받는다.

현실에서 그 조절자는 과연 누구일까? 판단은 각자 개인의 몫이지만, 알게 모르게 관객의 무의식 속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고집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셉션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07.30 ⓒ ScienceTimes

Posted by 전충헌 전충헌
심층체계/상상력2010.07.23 05:28

과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까? 선호, 전통, 대화, 인간애가 비결 2010년 07월 23일(금)

1870년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주인공 피에르 나로낙스는 미국 정부로부터 새롭게 등장한 바다괴물을 처치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 바다괴물 연구를 위해 링컨호에 승선한 피에르 일행은 링컨호와 바다괴물과의 교전 중에 바다에 빠지게 되고, 이후 네모선장에 의해 구조된다. 네모선장은 피에르에게 “당신이 지금 승선하고 있는 ‘노틸러스’호가 바로 바다괴물”이라고 말한다.

미 해군은 SF의 고전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가상의 잠수정 ‘노틸러스’의 이름을 따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명칭을 USS 노틸러스라고 명명했다. 베른 시대의 사람들은 잠수함을 바다괴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SF작가들은 어떻게 과학적 아이디어를 얻을까

SF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베른은 어떤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인 잠수함을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 소설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겠으나, SF관련 전문가들은 “과학기술과 인문,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공유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융합이 밑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드 셀러 SF 작가 겸 가톨릭대 교수는 “SF 작가들은 개인적 선호, 문학적 전통, 지역사회와의 대화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채집한다”고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로 CGV 강변에서 열린 21번째 융합카페에서 말했다.

▲ 쥘 베른이 당시 획기적이었던 '잠수함'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수 있던 밑바탕에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공유'가 있었다. 

즉 자신의 개인적 선호가 사이버 펑크라면 그와 관련한 연구논문이나 소설 등을 읽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끈이론’과 관련한 소설 집필을 거의 끝마치고 있다는 셀러 교수는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소설의 모티브로 활용할 정도로 끈이론에 대해 공부했다”며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SF 문학계 최고 권위상인 존 캠벨 신인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SF 작가들은 과학, 기술 자체에 대한 소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구상하기도 하지만 과학자체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즉 과학이란 부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흐름과 무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라고 셀러 교수는 덧붙였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있었던 기록, 과거작품들을 읽어보면서 소재를 찾는 것이다. 이를 문학적 전통이라고 셀러 교수는 소개했다. 또 다른 방법은 작가와 팬이 모여 토론하는 지역사회와의 대화이다.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소설과 ‘영원한 전쟁’이라는 소설은 모두 동일 작가가 쓴 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전자를 전쟁에 옹호적인 입장이라면 후자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동일작가가 전쟁이라는 같은 소재를 놓고 이렇게 상반된 견해의 소설을 쓴 배경은 본인 신상의 변화도 중요했지만 이에 따른 지역사회, 팬들과의 대화 또한 중요했다.

즉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후 구상한 영원한 전쟁의 경우,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전의 확산이었고 이와 같은 기류를 작가의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공상과학 소설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아이템은 인종주의이다. 왜 거의 모든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백인 미국 남성이 인류를 구할까? 단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져서일까?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SF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SF가 돈이 될까?

‘SF작가들이 어떻게 과학적 상상력을 불러오는지’ 알아봤다면 ‘SF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는지’ 그 현실성에 대해 알아보자.

통계청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책을 읽는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평균 연간 독서량은 최근 22.4권에서 17.4권으로 줄어들었다.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애플의 아이패드는 출판문화의 새로운 혁명을 불러와 새로운 전자책시장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대분의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통해 게임, 인터넷 등을 하지 책을 읽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과학소설이 1년에 100권이 출간된다면 한국은 1.75권 정도가 출판되는 수준이다. 고장원 SF평론가는 “책을 잘 안 읽고 문학시장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과학소설은 장르문학으로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며 “더욱이 창작과학소설이라고 하면 들어갈 돌파구가 있을까”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고 평론가는 침체된 국내 과학소설장르를 활성화하기 위해 몇 가지 제언을 당부했다. 단발적인 출간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시리즈 기획을 통한 시장부양, 청소션 과학소설 시장에 대한 투자, 과학소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워주기 위한 SF 작가 클럽 결성의 필요성 등이다.

즉 열악한 문학시장에서 창작과학소설이라는 장르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제 21회 융합카페가 '과학적 SF와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CGV 강변에서 열렸다. 

과학과 SF,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과학과 기술은 사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픽션으로 다가올 뿐이다. 실제 매일매일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예비논문들을 보면 이것이 과학논문인지 혹은 SF소설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비전공자의 경우 생소할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려운 과학소설을 읽고 감동을 느끼기는 사실 요원한 일이다. 때문에 SF작가들은 우선적으로 과학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를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 즉 SF 소재가 과학적인만큼 그 내용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가를 1차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신빙성, 과학적 가능성, 과학적 사실에만 천착한다고 해서 좋은 SF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종필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연구원은 “과학과 SF의 연결고리는 결국 휴머니즘”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SF가 우주나 미지의 세계나 새로운 생명체나 기계나 AI 등을 소재로 했을 때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런 제3자적 대상을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직류전기를 쏴주면 인체 근육이 움직인다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했다. 동물에 지능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리어스라는 소설이 탄생했다.

SF를 위한 과학적 상상력은 결코 고차원적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거나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누구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인류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이미 훌륭한 과학작가인 셈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07.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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